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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미술관 -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아메리칸 고딕>

Gijuzzang Dream 2009. 4. 2. 21:34

 

 

 

 

 

         시카고미술관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가 추구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작품

 

 

 

 

시카고 미술관은 시카고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들에게 친숙한 미술관이다.

시카고 미술관은 1879년에 설립되어 순수미술아카데미로 시작했다.

1882년 미술아카데미가 미술관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시카고 미술관은 1890년 초대원장 찰스 L. 허친슨과 후원자 마틴 A. 라이어슨이

경매를 통해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작품을 기증하면서

다른 미국의 미술관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1913년 시카고 미술관은 아모리 쇼를 열어 미국 미술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었다.

아모리 쇼에서 유럽의 전위 예술을 북미에 처음 소개해 미국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지만

시카고미술관은 아모리 쇼에 출품한 작품들을 많이 사들이면서

미국 현대 미술 수집품에 메카로 떠오르게 되었다.

시카고 미술관의 특징 중 하나가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카고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 중에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중산층의 일상을 표현하고 있는 주제지만

표현방식에 있어서 쇠라는 인상주의 기법을 따르지 않고 점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Georges Seurat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Study for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86, Oil on canvas, 205x305 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IL, USA


 

화면 가득 공원에서 사람들은 측면이나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양산을 쓰고 있는 부인들, 강변에서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

나팔을 불고 있는 남자, 공원을 뛰어다니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개들이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지만 소란스러움이 없다.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40여 명의 사람들은

옆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그들은 정지된 듯 보인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있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홀로 있다.

소란스러운 공원 내에서 질서 정연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어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당시 파리지엔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화면 오른쪽 엉덩이 쪽이 부푼 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 옆에 있는 원숭이는 음란함을 상징하고 있어

그녀가 매춘부라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 왼쪽 중산모를 쓰고 앉아 있는 남자는 당시 산책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전형적인 옷차림이다.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는

1880년대 프랑스 파리의 중산층 사람들이 휴일을 즐기던 파리 교외의 그랑드자트 섬을 즐겨 찾았다.

쇠라는 평범한 중산층들이 휴일 오후 한때를 즐기고 있는 정경을 담기 위해

2년간 유채 물감으로 70점 이상 스케치와 드로잉을 한 다음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을 완성하면서 쇠라는 빛에 따라 변하는 짧은 순간을 추구하기보다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제작방법을 선보였다.

그는 과학 원칙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을 창시해 점묘법을 완성시켰다.

(점묘법은 광학적인 색채 배합 이론에 따라 원색의 작은 점들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쇠라는 수천 개의 모자이크 점들을 찍어 공원 전경을 먼저 그린 다음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쇠라는 인물들의 개성보다는 형태에 주력하기 위해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 한 다음

화면을 점으로 찍었다. 여덟 번째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된 이 작품을 보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이 ‘신인상주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

 

 

시카고 미술관은 유럽의 거장들의 작품과 현대 미술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지만

미국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시카고미술관에서 미국 미술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이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이다. 이 작품은 미국의 정경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건초용 갈퀴를 든 남자와 그 옆에 딸인 듯한 여자가 고딕 양식의 하얀 집 앞에 서 있다.

건초용 갈퀴는 남자가 농부임을 나타내며

그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갈퀴를 들고 단호하게 서 있다.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

1930년, 비버보드에 유채(Oil on beaverboard), 74×62    


 

한편 남자의 방어적인 자세와 다르게 여자의 시선은 옆을 바라보고 있다.

여자의 블라우스에 달려 있는 화초 장식의 브로치와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여자의 억눌린 욕망을 암시하고 있으며 여자의 시선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우드는 자신의 고향 아이오 주에서 차를 타고 가면서

간소하면서도 어울리지 않고 뾰족 지붕과 고딕 스타일의 창문이 있는 하얀 집을 발견하고

여동생 낸과 자신의 전담 치과의사였던 멕키비 박사를 모델로 기용해 이 작품으로 완성했다.

고딕 아치형의 창문은 이 작품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하고 있다.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1~1942)는 고향인 아이오 주에서 생활하면서

미국 중서부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담았다.

고향 아이오 주에서 예술적 영감의 대부분을 얻은 우드는

미국 미술 내에 지역주의 운동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0년대 전통적인 구상회화를 부활시킨 지역주의는

유럽 미술의 영향 하에 발전한 모더니즘에 반발해서 미국 시골마을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국 농촌의 가치를 옹호한 이 작품은 미국 지역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년 03월 24일 [명화산책] ⓒ ScienceTimes

 

 

 

***** 

그랜트 우드는 앤드류 와이어스, 윈슬러 호머 등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시카코 예술원에서 주최하는 미술살롱에서 1등상을 차지한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이다.

우드는 자신의 이 그림이 성공을 거둔것에 대해 놀라면서도 매우 기뻐했고, 

이 그림은 박물관의 후원자협회로부터 구입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 그림에서 민족적 과거에 대한 오만함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비웃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다른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미국의 개척자적인 미덕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그의 작품에서  매력적이라 할 만한 풍자성을 당연히 엿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정신이 야유적이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화가의 눈에는 이 작품 <아메리칸 고딕>이

그가 자라난 아이오와 주의 작은 도시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정겨운 초상화로 비쳤던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 그려진 집은 엘돈이라는 그 주의 작은 마을에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집으로,

1880년대 초에 건축된 그 집은 '목재고딕'이라 불리는 단순하고 엄격한  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수직적인 선-고딕양식의 특징인 수직선-을 강조하고자 했던 우드는 

'미국의 고딕풍 사람'을 집어 넣었다.  

여자는 자기의 누이인 낸을, 남자는 엘돈시 근처의 시더 래피드시에사는 치과의사를 모델로 하였다.

(20세기 미술의 모험 : 장 루이 페리에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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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처럼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은

미국 미술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미국 문화사를 상징하고 풍자하는 그림으로 너무도 유명하다.

1930년 시카고 미술관에서 $300 의 상금으로 사드린 이 작품은

미술관에서 전시되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미국의 중요 언론에서 다투어 보도하였으며

지금도 변함 없는 애호를 받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이 그림을 그처럼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아이오아의 시골, 고딕 양식의 한 농가 앞에서

(치과의사를 모델로 한) 근엄한 얼굴 표정의 나이 든 남자가 쇠 갈퀴를 들고 서있고

그 옆에 (여동생을 모델로 한) 검소한 옷차림의 딸이 무표정하게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 그림은

당시 경제공황에 허덕이던 미국인의 불굴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동시에 미국 중부의 건전한 농촌문화를 대변하는

소위 “아메리칸 아이콘”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된 까닭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랜트 우드는 아이오아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미술수업을 하고

몇 차례 유럽을 왕래하며 이태리의 고딕예술을 견습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시골 풍경에서 유럽문화에 뒤지지 않는 미국의 자존심을 부각하는 영감을 얻어

이 같은 걸작을 창작하게 된 것이다.

(늘푸른나무/Gallery/2008년 2월 - 해설을 곁들인 명화감상 : 임이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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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오와주 출신의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는

미국 중서부 시골의 풍경과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그는 미국 현대회화사에서 지역주의(regionalism)에 속하는 화가인데,

‘지역주의’란 도시 및 급격하게 발전하는 기술적 진보를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추상주의 화풍에 대해 공격적으로 반대하면서,

시골생활의 정경(American Scene)에 초점을 맞춰 작품 활동을 해나간 미국 미술운동 유파를 가리킨다.

 

지역주의 스타일은 1930년에서 1935년 사이 절정에 달했는데

우드(Grant Wood)와 벤튼(Thomas Hart Benton)과 커리(John Steurt Curry)가 대표작가이다.

아이오와주 애너모서에서 출생한 그랜트 우드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죽자 가족이 서디래피즈로 이사한다.

어려서는 시골의 금속공예점에서 도제생활을 했고

미네아폴리스의 미술학교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공부를 했다.

그는 군대에서 위장물을 그리는 작업을 했고 제대 후에는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1920년대에 네 번에 걸쳐 유럽여행을 하면서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과 인상파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도 했고,

1934년부터는 아이오와 대학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대표작으로는 ‘개척자 터너(1929)’, 자기 어머니를 모델로 했다는 ‘식물을 든 여인(1929)’,

‘아메리칸 고딕(1930)’ 등이 있다.

 

미국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 중의 하나인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이

처음 전시되자마자 그는 이 작품 덕에 상을 타게 되었고,

미국의 신문들이 이 작품에 관한 기사를 전국적으로 내보냄으로써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작품 배경이 된 건물의 모델은 아이오와 남부의 작은 마을인 엘든이란 곳에서

그가 발견한 시골집인데, 그는 이 집에 아주 매혹되어 버렸다.

뾰족한 지붕모양과 지붕 바로 아래의 창은 중세유럽 고딕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며,

작품 제목은 바로 이것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델이 된 사람은 그의 치과의사와 그의 여동생 낸(Nan)인데,

흔히 부부로 오해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작가의 의도에서는 시골농부와 그의 딸로 설정돼 있다.

 

이 작품의 시각적 특성은 딱딱할 정도로 정면에서 인물들을 묘사한 수법이라든가

매우 꼼꼼한 디테일의 처리 등으로 요약되는데,

일부 미술사가들은 그랜트 우드가 북유럽 르네상스 작품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림에서만 아니라 그는 글을 통해서도 미국 중서부 시골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에 대해 강조했다.

‘아메리칸 고딕’에 묘사된 미국 중서부 시골문화 특유의 편협됨과 억압이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해석이 대립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하나는 그랜트 우드가 이것들을 풍자적으로 그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로 도리어 이것들을 상찬하는 과정에서 그렸다는 것이다.

(문화비평가 이재현, ⓒ ww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