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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Gijuzzang Dream 2009. 3. 22. 03:56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Eugène Delacroix. Liberty Leading the People (28 July 1830).

1830.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보통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 제목은 <민중을 바리케이트로 이끄는 자유: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 aux barricades>이다.

부제: 1830년 7월 28일.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어버린 이 그림은

사실주의, 낭만주의, 고전주의가 뒤섞인 절충적 작품이다.

프랑스 삼색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 나오는 여인은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이다.

혁명을 기리고 있지만 그 방법은 고전적인 도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살롱에 출품된 이 작품을 보고

‘자유의 여신’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기보다는 욕설을 퍼부었다.

‘생선 파는 아줌마’같다고 하기도 하고 또 가슴을 드러낸 것을 가리키며

어떤 이들은 ‘갈보’를 그림 속에 집어넣었다고 험악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화면 오른쪽 포화 연기 사이로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혁명 당시 노트르담 성당의 탑에 아침부터 삼색기가 꽂혔다.

여인은 프랑스대혁명 당원이 쓰던 붉은 모자 프리지아를 쓰고 오른손에 삼색기를 들고 있다.

삼색기는 1789년 루이 16세가 봉기군의 적청색 모표를 자신의 흰색문장과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고 있는 여인이 들고 있는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총을 든 어린 소년은 프랑스 미래를 상징한다.

 

혁명이나 전쟁에 등장하지 않는 신화적 인물로는 자유의 여신 옆에서 양손에 총을 들고 뛰쳐나오는

어린 소년이나 실크햇에 턱시도를 입고 있는 반대편의 신사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 소년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게 될 꼬마 가브로슈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림 속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이미 격렬하고

역사의 발전과 민중의 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나타내고 있어 낭만주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림 전경에 누워있는 여러 구의 시신들은 사실적인 묘사로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시신을 그림 전경에 확대해서 사실적으로 배치하는 구성은

그러나 또 다른 낭만주의 화가였던 테오도르 제리코(Géricault, Théodore, 1791~1824)의 그림인

<메두사의 뗏목>에서 이미 사용되었던 구도로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에서 구도를 빌려왔다.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면서 시작된 프랑스대혁명은

지금도 프랑스에서 가장 성대한 기념행사가 벌어지는 최대의 축일이며,

샹젤리제 거리에서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유일한 기념일이다.

바스티유감옥은 혁명 당시 점령된 후 여러 달이 흐른 뒤 완전히 철거되는데

이때 나온 돌은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콩코드 다리다.

이러한 유래로 지금도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은 데모, 파업 등을 할 때

흔히 집결지로 이용되며 이곳에 모인 시위대가 파리 시청을 거쳐 콩코드로 진행하는 것이

파리에서 일어나는 시위의 전통적인 코스다.

 

바스티유 광장에는 1830년 7월혁명을 기념하는 47m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왕정복고를 물리치기 위해 일어났던 7월혁명은 7월 26,27,28일 3일동안 가장 극렬한 양상을 보였고

그래서 이 3일을 프랑스 역사에서는 ‘영광의 3일’로 부른다.

이 ‘영광의 3일’이 확대 해석되어 다른 부분에도 사용되곤 하는데,

가령 예를 들어 2차대전 이후 70년대 중반에 오일쇼크로 인해 급격하게 경기가 하락할 때까지 지속된

30년 경제부흥을 이른바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7월혁명은 부르봉 왕조의 샤를 10세의 실권을 가져왔지만 공화국은 세워지지 못했고

대신 입헌군주인 루이 필립의 7월 왕정이 들어선다.

 

으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 역시 이 혁명을 묘사한 그림이다.

샤를르 10세의 왕정에 반기를 든 1830년 7월혁명을 기리는 이 그림은 1831년 루이 필립이 구입했고

그 이후 오랫동안 혁명이나 시위를 선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창고에 보관되어 왔다. 실제로 그림을 보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적 인물이기는 하지만

자유의 여신이 ‘나를 따르라’며 앞장서 나가고 있는 장면은 선동적이다.

 

그림의 도상학적 관심에서 보면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구성요소들은

그림의 배경이 된 정치적 사건 못지않게 흥미롭다.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국가 수도에는 공화국 광장(piazza della repubbica)이 있고

또 그 광장을 비롯해 도시 곳곳에 공화국을 상징하는 동상이나 기념물들이 서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런 공화국을 기리는 동상이나 기념물에는

어김없이 들라크르와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이 약간씩 모양을 바꿔 등장하곤 한다.

 

실제로 프랑스대혁명 당시 인권선언문에도 여성들이 등장했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가 제작해 선물한 뉴욕 맨해튼의 ‘자유의 여신상’도

여인을 모델로 제작된 동상이다. 그런데 이들 여성상은 사실은 고대 로마에서 아사형(餓死刑)을

선고받은 가족에게 딸이나 부인이 젖을 물릴 수 있는 면회가 허락된 전통과 관련이 있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여러 점 그린

<로마식 자비(Roman Charity) : 부제는 simon & pero>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면

장성한 딸이 아사형을 선고받은 아비에게 젖을 물리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가슴을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수의를 입은 노인의 딸이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고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감옥을 찾아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던 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어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

노인과 여인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과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16-18세기 화가들은 이 장면을 주제로 회화와 조각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다.

 

 

로마식 자비(Roman Charity)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간수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장면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 소장

 로마식 자비(Roman Charity)

원 제목 : Roman Charity(= 로마식 慈愛) / 부제 : simon & pero

1612,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The Hermitage, St. Petersburg

 

   

1848년 제2공화국이 선포될 당시 공화국 선포를 기리기 위해

프랑스에서 공화국도상을 현상 응모한 적이 있는데,

비록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로 공화국은 한낱 꿈이 되어버렸지만,

당시 제출된 작품을 보면 공화국이 가슴 풍만한 여성을 모델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 <공화국>을 보면

국민을 나타내는 어린아이들이 공화국이라는 이름의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고

그 밑에는 다른 한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공화국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Honore Daumier. 공화국(Sketch for "La République).

1848. Oil on canvas. 73×60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파리에도 공화국광장(piazza della repubbica)이나 나시옹 광장(Place de la Nation) 등에

공화국을 상징하는 기념조각들이 있다. 모두 여인들을 모델로 해서 제작된 이 조각들은

전형적인 주문 조각이고, 정치적 색채가 진한 작품들이지만

그 기원은 멀리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왕권과 신권을 부인하고 국민 재권을 주장한 공화국은 신화적 인물들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공화국 역시 나름대로의 정치적으로 조작 가능한 상징들이 필요했고,

로마시대의 아사형에서 예외적으로 인정해주었던 로마식 자비로부터 이 상징을 빌려다 쓴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도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채

한손으로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프랑스 삼색 깃발을 들고 뛰쳐나오는 여인은

우선 총과 깃발보다는 풍만한 가슴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쓰러진 채 여신을 올려다보는 청년과

여신의 뒤를 따르는 군중들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그 다음일 것이다.

 

지금도 프랑스 각 도시, 지방에 가면 유명배우들을 모델로 삼아 제작한 공화국 흉상들이 서 있다.

이는 오랜 관습이긴 하지만 현존하는 배우들을 모델로 사용함으로써

새롭게 주민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림 한 점이 자아내는 정치적 프로 파갠더로서의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오랜 시간 지속된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있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제작된 지 거의 1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에게 혁명이나 파업 등을 선동하는 그림이 아니라

회화가 정치적 조작의 탁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 LES VACANCES, 명화로 보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