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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대미술관 - <아비뇽의 처녀> vs <캠벨 수프 깡통>

Gijuzzang Dream 2009. 3. 20. 14:24

 

 

 

 

 

 

뉴욕 현대 미술관

 

 독창성의 모순 - <아비뇽의 처녀> vs <캠벨 수프 깡통>

 

뉴욕 현대 미술관은 현대 미술만 전시할 목적으로 1929년 설립된 최초의 미술관으로

릴리 P 블리스, 록펠러, 메리 퀸 설리번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장품만으로 오늘날 뉴욕 현대 미술관이 발전하게 된 것은 아니다.

뉴욕 현대 미술관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의 퇴폐미술로 낙인 찍혀 나온 작품들을 사들인

미국의 부유한 기증자들과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예술가들이 기증하면서부터이다.

현대 미술의 발전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뉴욕의 현대 미술관은

3천200여 점의 회화, 조각, 모던 아트, 영상, 영화, 사진, 건축 등 다양한 장르를 구분해

전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19세기 후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현대 미술 걸작들은

따로 선별해서 전시하고 있다.

뉴욕 현대 미술관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전쟁 직후에 중요 작품을 수집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다.

이 작품은 현대 미술의 기원이 되는 중요한 작품 중에 하나로서

르네상스 시대부터 그림에서 표현되었던 이상적이고 고전적인 형태의 여성에서 벗어나

심하게 왜곡된 형태로 여성을 표현했다.

피카소는 전통적인 구성 방식이나 원근법에서 탈피해 독창적인 양식을 선보인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Oil on canvas. 244×234㎝

The Museum of Modern Arts, New York, NY, USA 


 

<아비뇽의 처녀들>은 다섯 명의 벌거벗은 매춘부가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서

화면 오른쪽 두 명의 여인이 커튼을 열어젖히고 있고

열린 커튼 사이로 세 명의 여인이 유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화면 중앙에 있는 2명의 나부만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은 고전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그들도 여성의 특유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여성미는 보이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납작한 형태를 띠고 있는 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 오른쪽 무서운 가면을 쓰고 커튼을 열고 있는 여인과 그녀 아래 앉아 있는 여인의 가면은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다. 피카소가 여인의 얼굴에 가면을 그려 넣은 것은

아프리카 가면이 악령을 막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적 욕망이 강했던 피카소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성병이었다.

피카소는 한때 성병에 걸려 고생했었다.

피카소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그린 최초의 액막이 회화’였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실의 쾌락을, 과일바구니는 죽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인간의 육체는 과일과 마찬가지로 금방 시들어 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사창가의 장면을 습작하고 있었다.

이 작품의 습작에서는 두 명의 남자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습작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피카소는 남자를 화면에서 제외시켰다.

 

Sketch for The Demoiselles d'Avignon.

1907. Watercolor on paper. Museum of Art, Philadelphia, PA, USA.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는 유명한 환락가로서

처음에 피카소는 외설적인 주제의 이 작품에 <철학적 사창가>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친구가 1916년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바꾸면서 알려졌다.

 

 

그런데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루브르에 기증하겠다는 소장가 자크 두세의 손을 떠나 마침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미술작품만이 아니라 두세는 그의 이름을 딴 필사본 도서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작가들의 필사본 수집가로 더 유명한 수집가였다.

<아비뇽의 처녀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다니, 그것도 고작 2만8천달러에.

프랑스로서는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차대전 후 수 세기 동안 누려왔던 예술의 메카로서의 명성을 빠른 속도로 미국에 내주게 된 데에는

지나치게 신념에 찬 프랑스 관료들의 안목이 큰 몫을 한 셈이다.

하지만 프랑스 교과서 어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사(野史)라는 것이다.

 

 

 


 


 

 


 

 

독창성 개념 파괴한 앤디 워홀 <캠벨 수프 깡통>

 

 


현대 미술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대중매체다.

만화나, 영화, 텔레비전 등 대중 매체의 이미지를 차용해 표현하면서

팝 아트라는 미술사조가 등장했다.

팝 아트의 대표적인 화가가 앤디 워홀(
Andy Warhol, 1928-1987)이다.

팝 아트는 당시 미국의 미술계를 휩쓸고 있던 추상표현주의의 대안으로 부상한 미술사조로서

앤디 워홀은 1960년대 미국에서 부상한 팝 아트의 공동 설립자다.

팝 아트 예술가들은 미국 문화 속의 언어와 이미지 대중매체에 큰 관심을 가졌다.

워홀은 초기에 고급 패션 잡지의 세련된 광고들을 통해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는 순수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1960년대 초 앤디 워홀은 목표를 바꾸었다.

영화배우와 1달러 지폐, 깡통 수프들이 작품의 주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미술이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이 일반적인 대중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듯이

대중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대량생산되는 상품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이다.

이 작품은 깡통 같은 미국의 가치에 대한 워홀의 관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캠벨 수프 깡통(Campbell's Soup Cans) >

「32개의 캠벨 수프 통조림(32 Compbell's soup cans)」

1961-1962, 서른두 개의 캔버스에 합성물감, 각 50×40㎝


 

1962년 워홀은 슈퍼마켓 식품 진열방식에 따라 대량생산되는 캠벨 수프 깡통을 전시했는데

당시 그림들의 가격은 100달러였으며 캠벨 수프의 가격 29센트와 비교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의식적으로 고가의 미술품 거래와 식료품 거래를 동등한 것으로 암시해

사회적 도발을 야기시켰다.

같은 크기, 같은 이미지의 캠벨사의 제품을 워홀은 제조 순서대로 완벽하게 진열하고 있는데

그는 작품 하나하나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 미술의 개념을 파괴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은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미국적 상징을 정의 내리는 시도다.

미국 사회의 일용품을 차용해 이를 상업 미술품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방식이

곧 앤디 워홀의 예술세계를 대변하게 된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생애 대부분은 캠벨 수프로 점심을 대신했다고 밝혔다.

앤디 워홀은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한 유일한 팝 아트 예술가로서

그는 자신을 위해 온갖 형태의 미디어 작품을 만들면서 시대 욕구에 적절하게 반응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 03.18 ⓒ ScienceTimes [명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