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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미술관 - '야간경비대' / '성 니콜라스 축제'

Gijuzzang Dream 2009. 3. 16. 00:42

 

 

 

 

[암스테르담 미술관], 네덜란드 황금 시기 작품 소장

 

 

 집단 초상화의 대표작 <야간 경비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정치적 격동기에 프랑스로부터 빌렘 5세의 소장품 일부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주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자국의 예술품들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민단체의 협력으로 계획적으로 설립되었다.

1885년 공식적으로 개관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네덜란드 회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특히 17~18세기의 네덜란드 황금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네덜란드는 회화의 황금시기를 맞이해 유럽의 그 어떤 나라보다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간 경비대>다.

 

<야간 경비대>The Night Watch

(The Militia Company of Captain Frans Banning Cocq and

of Lieutenant Willem van Ruytenburgh).

1642. Oil on canvas. 363×437㎝, Rijksmuseum, Amsterdam, the Netherlands.  

  


<야간 경비대>는 렘브란트 전반기 시절의 작품으로서

이 시기에 제작된 집단 초상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 초상화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행하던 회화 테마 중의 하나였다.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에 있던 시민 민병대 건물의 사령부를 장식한 5개의 작품 중 하나다.

네덜란드에 있던 지방 민병대의 활동을 표현한 작품으로서

중앙에 붉은색 띠의 장식이 있는 옷을 입은 사람이 민병대 지휘자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이다.

그는 왼손을 앞으로 뻗치며 민병대원들에게 전진을 명령하고 있다.

그 옆에 황금색 옷을 입은 사람은 빌렘 반 로이텐부르크 부대장으로서

그는 머리부분이 넓은 ‘파티잔’이라는 창날을 들고 있다. 이 창날은 그가 맡은 직무를 상징한다.


민병대 깃발 아래 있는 소녀의 허리에는 죽은 암탉이 매달려 있는데 암탉은 민병대의 상징이다.

소녀의 모델은 그 해 결핵으로 죽은 렘브란트의 아내 사스키아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북은 행군을 나타내고 있으며 소총과 창을 장비한 병사들이 행군을 준비하고 있다.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민병대는 그 당시 남성들의 사교클럽의 역할을 했었다.

성문 뒤로 보이는 방패에는 18명의 민병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들은 이 집단 초상화에 포함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앞에 선 병사들의 동작 때문에 인물이 반밖에 보이지 않았던 민병대 사람들은

후에 비용을 지불하는 데 불만을 일으켰다.

당시 민병대원들을 그린 다른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을 같은 높이에 두었으나

렘브란트는 일반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비중을 두고 그렸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2층 중앙홀의 가장 큰 전시실에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는

렘브란트의 <야간경비대>는 한 정신이상자가 달려들어 여러 곳을 칼로 난자해 놓았다.

지금은 완전히 복원되어 난자당할 당시의 상태와 복원과정까지 별도로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전통 문화 그린 <성 니콜라스 축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 시기에는 매일 매일 접할 수 있는 일상을 그린 그림들이 유행이었다.

이러한 풍속화는 네덜란드 회화의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으며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에서 벗어나 네덜란드 전통 문화를 그린 작품이

스텐의 <성 니콜라스 축제>다. 이 축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 있다.

성 니콜라스는 해적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어린이와 선원들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주고 구출해

수호성인이 되었다. 성 니콜라스 전설은 노르만 족에서 북유럽으로 전파되어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스의 변형된 이름이다.

12월 6일이 성 니콜라스 공식 축일이지만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이 축일을 맞아하여

하루 전날 가난한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가난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풍습을 네덜란드인들은 산터 클레스라 불렀다.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식민지로 이주하면서 해마다 성 니콜라스 축제를 열었다.

성 니콜라스 축일 전야의 의미와 북유럽의 신화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합쳐져

산타클로스가 탄생한 것이다.

 

 

 

<성 니콜라스 축제>Jan Steen. The Feast of St. Nicholas. c.

1665~8년경, Oil on canvas, 82 x 70.5 cm.

Rijksmuseum, Amsterdam, the Netherlands


이 작품에서 화면 앞의 어린이가 황금색의 명절 옷을 입고 선물로 받은 세례 요한의 인형을 꼭 안고 있다.

세례 요한은 어린이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성인이다.

아이의 왼쪽 팔에 들고 있는 양동이에는 장난감과 군것질거리가 들어 있다.

화면 왼쪽에 울고 있는 남자가 이 집안의 큰 형이다.

뒤에 서 있는 하녀가 큰 형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산타클로스는 나쁜 일을 한 어린이의 신발에는 선물 대신 너도밤나무 가지를 놓아두고 가는데

큰 형은 한 해 동안 나쁜 일만 했기 때문에 그의 신발에는 회초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에 있는 동생은 손가락질 하며 형을 놀리고 있지만 동생 뒤에 있는 할머니가 커튼 뒤를 가리키고 있다.

큰 형의 진짜 선물이 커튼 뒤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화면 왼쪽 탁자 옆에 있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형태의 빵은

네덜란드에서 성 니콜라스 축제나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다.

탁자 끝에 있는 동전을 넣은 사과는 손님들은 위한 것이다. 동전이 들어 있는 사과는 행운을 상징한다.

얀 스텐(Jan Steen, 1626~1679)는 인물들의 손짓이나 표정을 통해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묘사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03.1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