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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슈 미술관 - '비너스와 큐피트' '돌아온 탕자'

Gijuzzang Dream 2009. 3. 12. 14:35

 

 

 

 

 

 

 에르미타슈 미술관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너스와 큐피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 미술관은

18~19세기 유럽 최고의 건축가들에 의해 5개의 건물로 지어져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한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기원은 표트르대제의 컬렉션부터 시작되었지만

1700년대 중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에 의해 진정한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나는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며

유럽에서 구입한 예술품을 친구들과 함께 감상하기 위해 겨울 궁전 옆에 작은 궁전 에르미타슈를 지었다.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 처음부터 조용한 장소로 설계된 에르미타슈는

러시아말로 '은자의 집'이라는 뜻이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은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으로 인해 시련을 겪었으나

러시아 국민들에게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주는 장소로서

원시시대부터 현대 예술품까지 270만점에 소장품을 자랑하고 있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16세기 컬렉션으로

당대의 여인의 아름다움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대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너스와 큐피드>다.

 <비너스와 큐피드>, 1509년, 캔버스에 유채,  213×102 


이 작품은 북유럽 최초의 누드화로서 크라나흐가 처음으로 신화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당시 신화적 주제에 대해서 비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비너스의 어깨 곡선이나 표정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여신의 모습이기보다는

살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비너스는 팔을 뻗어 큐피드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는데

비너스는 당대에 궁정에서 유래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면 상단에 화가의 이니셜과 날짜가 라틴어로 적혀 있는데

크리나흐는 고전문화에 관심이 많아 라틴어로 자신의 이니셜과 제작날짜를 적었으며

라틴어로 비너스가 큐피드를 전리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북유럽 최초의 누드화 <비너스와 큐피드>

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은 16세기 북유럽을 대표하는 화가 중에 한 사람으로서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1505년 작센 지방의 프리드리히 3세의 궁정화가가 되면서 북유럽에서 영향력이 있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자연과 인물이 하나가 되는 양식을 개발했으며 16세기 에로티즘 미술의 대가로서

그의 누드화는 고전적이면서도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램브란트 <돌아온 탕자>

램브란트 최후의 미완성 성화 중 하나

 


에르미타슈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램브란트(Rembrandt)의 <돌아온 탕자>다.

이 작품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아들 둘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먼저 상속받았다.

둘째 아들은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한 다음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

 

<돌아온 탕자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8~1669년경, 캔버스에 유채, 262×206 

Oil on canvas.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에 묘사되어 있는 비유에서 돌아온 탕자를 모티프로 한 것.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은

그동안 고생을 했는지 다 떨어진 옷과 낡고 보잘 것 없는 신발을 신고 있다.

그의 차림은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아버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무릎을 꿇은 아들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아버지의 행동과 풍성한 옷은

아들의 행동을 용서하고 품에 안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머리를 깎고 두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은 참회의 모습을 나타낸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형으로 동생과 아버지의 행동이 마음이 안 들어서 표정이 굳어 있다.

그 뒤로 하인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램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1669)은 성서의 이야기를 표현하면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말년에 과거를 회상하며 살았던 램브란트는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에 자신이 걸어왔던 삶을 담아냈다.

죄의 용서를 표현한 이 작품은 램브란트의 최후의 미완성 성화 중에 하나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 2009.02.10 [명화산책]ⓒ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