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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수태고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Gijuzzang Dream 2009. 3. 12. 13:33

 

 

 

 

 

 우피치 미술관

 

 

 

 

다빈치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야외의 수태고지 표현

 

 

우피치 미술관은 세계에서 르네상스의 회화의 걸작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의 시초는

메디치가의 코시모가 피렌체 공화국의 행정관리들을 자신의 통치 하에 두고자 지은 건물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메디치가가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들은 미술관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1737년, 가문의 맥이 끊어지게 되어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 공은 메디치가가 소유하고 있던 공방의 문을 닫고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들을 공익을 위해 국가에 기증함으로써

우피치 미술관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다.

당시 보통 수태고지의 장면은 실내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야외의 수태고지를 상상해서 표현했다.

<수태고지>, 1472~1475년경, 나무에 유채, 템페라, 98×217 


15세기 토스카나의 한 별장 앞에서 우아한 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는

야외 독서대에서 책을 읽던 도중 가브리엘의 출현에 놀라 오른손을 책에 올려놓고 책 읽는 것을 멈추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움직임으로 인물들의 개성과 생각을 드러냈다.
가브리엘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꽃밭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성모 마리아는 수락의 표시로 왼손을 들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가 위로 올려져 있는 것은 방금 지상에 도착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가브리엘의 날개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날 수 있을까를 연구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새의 날개를 수없이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에 의해 실제와 똑같이 그려진 것이며

가브리엘 천사가 앉아 있는 꽃밭의 다양한 꽃들 역시 오랜 연구 끝에 실제와 똑같이 그려진 것으로

식물도감을 연상시키고 있다.

얕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 너머에는 항구가 보이고

항구 저 멀리 푸른빛의 바위산은 안개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북유럽의 항구 도시를 상상해서 그려 넣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이 작품에서 건축물을 원근법에 의해 표현했다.

그는 독서대를 크게 묘사함으로서 성모가 책 읽는 지적인 여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20년경, 캔버스에 유채, 170×136 


 

우피치 미술관에서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심리를 드러낸 작품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다.

이 작품은 유디트가 침실에서 술에 취해 잠든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장면을 묘사했다.

구약성서에서 유디트는 미인계를 이용해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죽여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한다.

화면 오른쪽에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는 여인이 유디트다.

하녀는 홀로페르네스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손을 잡고 있고

유디트의 칼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에 반쯤 꽂혀 있다.

그의 목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쳐 나와 침대 시트를 적시고 있다.

유디트를 그린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이 작품처럼 목을 베는 행위를 그린 작품은 많지 않고

대부분 홀로페르네스가 이미 목이 잘린 모습을 등장한다.

젠틸레스키는 당시 유행하던 젊고 아름다운 유디트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역겨움을 참고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성경에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순간 하녀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젠틸레스키는 화면을 삼각구도로 하기 위해 하녀를 그려 넣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7~1751>의 이 작품은 자서전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녀는 어린 시절 화가였던 아버지의 조수에게 겁탈을 당했다고 한다.

기나긴 법원 소송은 이 사건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작품에서 선혈이 낭자한 참혹한 광경은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던 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정의의 구현을 상징한다.

코시모 데 미디치 2세를 위한 작품으로 사실적인 표현과 등장인물들의 강렬한 감정묘사,

화면의 명암처리 등이 카라바조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명화산책]

2009년 02월 03일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