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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신(三美神, The Three Graces)' - 라파엘로와 루벤스 外

Gijuzzang Dream 2009. 3. 11. 23:12

 

 

 

 

 

 삼미신 (The Three Graces)

 

 

 

삼미신(三美神)은

서양미술사에서 헬레니즘 시대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를 거쳐 현대미술에까지도

화가들에게 즐겨 차용되는 상징적 테마이다.

삼미신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눈을 돌린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도상으로

신에게 인간의 육체를 입힘으로써 인간도 신과 같이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유연한 곡선이 강조된 여성의 몸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묘한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키고

르네상스 특유의 인간과 여성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십수 세기를 지나면서 시대가 바뀌고 그에 따른 여성의 역할과 지위가 달라지면서

그 상징 의미가 점차 변화되고 있다.

 

세 여신(삼미신, 三美神)'그라케스(Graces)'라고 하는데

로마식으로는 '채리티스(Charities=카리테스, Charites)'라고 한다.

인간에게 모든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여신들로 제우스와 에우리노메(Eurynome)의 딸들이다.

카리테스(Charite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들로

아프로디테(Aphrodite)를 따르는 젊고 아름다운 세 자매로,

쾌락, 매력,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관장한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그라티아이(Gratiae)'에 해당한다.

 

아글라이아(Aglaia), 에우프로쉬네(Euphrosyne), 탈리아(Thalia).

이들은 주로 다른 신들과 함께 올림포스 산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그녀의 아들 에로스(Eros)의 각별한 시종이었다.

카리테스는 여러 신화 속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은 별로 없는 편이나

즐거움이 요구되는 제전 등에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때문에

결혼식 또는 여타의 축제들에 자주 등장하며

카리테스는 무사의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수호자로서 아폴론의 역할을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카리테스는 제우스의 딸들이며, ‘미’  ‘우아’  ‘은혜’가 의인화된 여신들이다.

 

대부분 전통은 로마시인 헤시오도스가 분류한 삼분법에 따라

아글라이아(Aglaia, 광휘), 에우프로쉬네(Euphrosyne, 환희), 탈리아(Thalia, 축제)라 불리는

세 명의 여신으로 분류한 것에 따른다.

한편 호메로스는 이들 중 막내를 파시테아(Pasithea, 미덕)이라 명명하였다.

 

 

  

 

 

 (1)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

 

 

 

 

 

삼미신(三美神) Tre Grazie(Three Graces).

1504-5, Oil on panel, 17×17㎝, Conde Museum. Chantilly, France

 

 

라파엘로는 공교롭게도 태어난 날짜에 사망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르네상스시대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초기그림 <기사의 꿈><삼미신>에서 통일적 형식미 구축하고

1504년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과 미켈란젤로의 조형법을 익혔다.

1508년 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청으로 로마로 이주,

이후 1520년 사망할 때까지 12년간 바티칸 궁정화가로 재직하며 시대의 총아로 군림했다.

바티칸궁 벽화는 그리스 인문주의와 기독교 정신의 합일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예술의 정수로

평가된다. 특히 <아테네 학당>은 장대한 건축공간과 다수의 인물군상들이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고전양식의 규범으로 평가되며,

라파엘로는 성베드로대성당 건조에도 관계했고, 고대유적 발굴 감독관도 맡았다.

우르비노 지방화가에서 시작하여 바티칸 교황청 궁정화가가 되기까지

예술가로서 당대 최고의 사회적 영예, 세속적 부와 성공을 누렸다.

 

르네상스의 거장인 라파엘로가 그린 ‘삼미신(1505)’은 정숙, 청순, 사랑을 상징하고 있고,

3명의 여신(카리테스 세 자매)들은 사과를 손에 쥐고 있다.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들고 있다.

로마신화에 따르면 이 사과는 쾌락 대신 선을 선택했던 장군 스키피오에게 내려진 보상이었다고 한다.

라파엘로의 ‘삼미신’에서 여신들이 들고 있는 사과 역시 분명히 관능적인 미를 상징한다.

세 명의 여신이 들고 있는 사과를 가만히 보면 사과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기사(騎士)의 꿈>과 한 쌍으로 취급되고 있는 이 그림은

고대 조각 이래, 일반적으로 ‘삼미신’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발췌한 것이다.

세 여인은 각각 손에 사과를 갖고 있으며 정숙, 청순, 사랑을 상징한다.

인체의 표현은 유연한 곡선과 부드러운 육체감을 미묘한 색조로 나타내고 있으나

조형적인 구체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젊음의 생동감은 탄력 있는 육체의 표출로 시사되어 있고,

우아한 분위기는 여인들의 조용한 자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등을 보인 여신은 은혜의 베풂을 나타내고, 앞을 보고 있는 두 여인은 은혜를 갚는 것을 나타낸다.

즉 언제나 받은 은혜는 배로 갚아야 함을 강조한 그림이다.

원래 자비의 의미를 설명하는 여신들인데

베풀고, 받고, 되돌리는 자비의 세 단계 원리를 설명하느라 이런 자세로 모여 섰다고 한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자비의 세 단계 대신 사랑의 세 가지 원리로 고쳐 읽었다.

‘순결’ ‘사랑’ ‘아름다움’이 르네상스 삼미신의 새 이름이 되었다.

 

삼미신에 대한 그림 중에 라파엘로와 루벤스 그림을 절충한

피에리오 발레리아노(Pierio Valeriano Bolzani, born Giampietro Valeriano Bolzani, 1477–1558)

그린 ‘삼미신’이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한 여신이 뒤로 서 있고 다른 여신은 앞을 ,

또다른 여신은 옆을 보고 서 있다.

이 그림 속에서 뒤로 서 있는 여신은 사랑을, 앞을 보고 선 여신은 미를,

그리고 옆을 보고 선 여신은 쾌락을 나타내는 절충식 ‘삼미신’의 구성을 보여준다.

즉 인간의 사랑이 아름다움에서 시작해 쾌락으로 끝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화가가 정신적인 미를 추구했는가 아니면 육체적인 미를 표현했는가에 따라

그림에는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

 

 

 

 

 (2) 루벤스(Peter Paul Rubens)

 

바로크 미술의 절정을 이루는 위대한 화가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루벤스는 23세부터 31세까지 이탈리아 체류를 통해

르네상스 시기의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대가들의 작품을 답습했고

건축, 조형물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체득했다.

 

당시 화풍인 고전적, 이상적 미의 형태를 추구하지 않고

빛과 색체의 강조, 과감하고 복잡한 화면 구도, 그만의 빠른 필력으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화법을 추구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고대문헌과 예술에 정통했고 인문주의자였던 루벤스는 그림의 주제를 그리스신화에서 찾았다.  

'삼미신'은 아름다운 누드화로서 서로 사랑스럽게 포옹하는 모습이

자비의 순환과정을 의인화한 작품으로 그만의 해석이 돋보인다.  

 

루벤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신들의 몸에서는 음탕한 기운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엉덩이의 신격화를 노린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관능적인 풍만한 몸매와 그 건강미에 이상(理想)을 추구하였던 루벤스에게

그리스신화의 여신은 적합한 주제였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라파엘로와 티지아노의 작품을 보았고,

고대 조각의 미를 수학한 루벤스는 ‘삼미신’ 또는 ‘파리스의 심판’을 여러 번 그렸다.

이 작품에서 세 여신은 탄력있고 윤기있는 육체의 촉감적인 관능미를 과시하고 있다.

루벤스는 이와 같은 여체의 특성을 직접 광선으로 조명시켜 그 형태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 여신들의 표출을 충분히 하기 위해 루벤스는 360도 각도로 회전시키고 있다.

정면, 측면, 후면으로 세 여신이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루벤스의 여체에 대한 미적 관찰이라 할 수 있다.

 

 

  Peter Paul Rubens. The Three Graces.

1620-1624, Oil on wood, 119x99cm  

 

 

 

Peter Paul Rubens. The Three Graces.

1628-1630. Oil on canvas. Palazzo Pitti, Galleria Palatina, Florence, Italy

 

 

Peter Paul Rubens. The Three Graces.

c.1639. Oil on Wood, 221×181㎝,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미술사에서 유명한 이 자세는 등을 보이고 있는 중간 인물과 나머지 두 인물이

서로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Peter Paul Rubens. Marie's Education

1621-1625.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제우스의 딸들로 사랑과 기쁨과 연회의 여신을 그린

아름답고 우아하고… 聖스러운 ‘예술 · 문화 수호자’

 

세 명의 서로 닮은 젊은 여인들이 아름다운 나신을 뽐내고 서 있다.

다리를 살짝 꼰 것이나 몸의 중심을 요염하게 비튼 포즈가 프로모델 뺨친다.

이들은 제우스의 딸이자 여성성이 의인화되어 나타난 '삼미신'으로,

주로 고대 그리스의 많은 지역에서 숭배되었지만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친숙하고 각별한 시종으로 더욱 유명하다.

세 여신은 각각 아름다움과 우아함, 기쁨을 상징하는데,

여러 신화 속에서 주인공 역할은 별로 하지 못했어도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는 덕분에

결혼식 또는 여타의 축제들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러한 점이 많은 화가들로 하여금 여신들을 '예술과 문화의 수호자'로 여겨

대대로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루벤스, 뒤러, 보티첼리뿐 아니라

그 옛날 이집트벽화에도 세 명의 여신이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하니,

화가들의 삼미신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6세기 라파엘로가 표현한 삼미신은 젊으면서도 원숙미가 넘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라파엘로는 곡선과 색채의 미묘함을 십분 이용해 여신들에게 청순하면서도 우아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탄력 있는 몸매를 보고도 에로틱하기보다 성스러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전통적이면서도 그 나름의 독특한 화풍을 정립시킨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화가로 손꼽힌다.

당대에 함께 작품활동을 하던 두 거장들의 천재성에 라파엘로 역시 질려버리고 말았는데,

그는 현명하게도 부담감을 꾸준한 노력으로 승화시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한다.

꿈이 많고 노력형인 성정을 지녔던 라파엘로는 두 천재들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연구와 분석을 거듭한 끝에 미켈란젤로조차 시기할 정도로

예술적, 사회적 성공을 성취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르네상스가 아름답게 꽃피운 데에는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서로 경쟁하고 연구한 덕을 빼놓을 수 없겠다.

세 천재 간의 불꽃 튀는 경쟁의 결과가 당시의 관객들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향유할 수 있는 인류의 예술적 부흥을 낳은 원동력이 된 것이다.
-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명화 속 여성]

- 2008.01.11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3) 기타 여러 화가들의 '삼미신(三美神)=The Three Graces'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Marchese D'lschia Canova, 1757-1822)

 

 

Baron Jean Baptiste(1754-1829)

 

 

자크 블랑샤르(Jacques Blanchard, 1600-1638) 

사튀로스에 의해 놀라는 비너스와 삼미신

 

반 루 카를르(Carle Van Loo, 1705-1765) 

 

프란체스코 퓨리니(Francesco Furini, 1600 or 1603–1646)

 

조지 프레데릭 와츠(George Frederick Watts, 1817-1904)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한스 발둥(hans baldung called Grien, 1484-1545), The Three Ages and Death.

c.1510. Oil on panel.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한스 발둥(hans baldung called Grien, 1484-1545), 삼미신(1540)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 삼미신, 1497년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 1494-1540) , 삼미신(1484-5)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삼미신(1535)

 

 

   

Alessandro Botticelli. Venus and the Three Graces presenting Gifts to a Young Woman. c.1484-1486. Fresco, transferred to canvas. Louvre, Paris, France

한 여인이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예물을 바치고있다. 

 

 

 

 Alessandro Botticelli. Primavera.

c.1482. Tempera on panel.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Correggio. General View of the Abess' Room.

c.1519. Fresco. San Paolo Camera, Parma, Italy.

Correggio(1489-1534). Three Graces. View of the ceiling(detail).

c.1519. Fresco. San Paolo Camera, Parma, Italy

 

 

 

폰트르모(Pontormo), 1535

 

 

 

번 존스(Sir Edward Coley Burne-Jones, 1833-1898). The Tree Graces.

1890-96. Charcoal and pastel on brown paper. 54.72×27.36 inches(139×69.5㎝), Carlisle Art Gallery, UK

   

 

 

Pablo Picasso. The Three Graces. 1925. Oil and charcoal on canvas.

 

 

 

 

 

 

 

  

 

루벤스(Rubens)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

 

Peter Paul Rubens. The Judgment of Paris, 1635-38

 

 

Peter Paul Rubens. The Judgment of Paris

c.1639. Oil on canvas.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삼미신(三美神)은

'파리스의 심판'으로 알려진 신화상 이야기와

흔히 '우미(grazia)의 삼여신'으로 알려진 비너스를 수행하는 세 명의 여신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거의 모든 서양예술가들이 이 주제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리스의 심판'과 '우미의 삼여신'은 서구 회화와 조각의 중요한 주제였다.

우미의 삼여신이 파리스의 심판에서 선택을 받은 비너스를 수행하는 여신들이라는 면에서 보면

우미의 삼여신 역시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 세 명의 미인을 선발했을까?

 

우선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파리스의 심판'에도 세 명이 등장했고, 비너스를 수행하는 여신도 세 명이었기 때문이다.

신화는 죽음을 포함한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불가사의한 것을 해석하는 인류의 지혜이지만

그 의미는 아직도 해석의 대상이 될 정도로 미답의 상태로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리어왕> 등 작품에는 세 명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무의식적 현상들이 그렇지만

<리어왕>에서는 세 명의 딸이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는 반면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반대로 한 여인이 세 명의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리어왕>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인들은 리어왕의 딸들이다.

이들 중 막내인 코델리아만이 아버지를 사랑했다.

반면 <베니스의 상인>에서 수전노 샤일록을 아버지로 둔 여인은

금합도 은합도 아닌 납으로 만든 상자 속에 자신의 초상화를 숨겨놓았다.

 

보티첼리, 라파엘로, 루벤스 등의 예술가들이 그린 세 여인을 살펴보자.

어느 화가이든 그들이 묘사한 세 여인은

마치 한 여인을 그린 것처럼 모두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키도 몸매도 또 얼굴의 미소나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자세 등 모든 것이 거의 동일하다.

이 동일성은 우연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동화나 신화를 포함한 문학에 나타난 이 세 여인을

모두 어머니라는 한 여인의 무의식적 환영으로 파악했다.

최초의 여인은 생식자로서의 어머니이고

두 번째 여인은 어머니를 닮은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아내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여인은 누구일까?

신화, 동화, 문학은 모두 이 세 번째 여인의 비밀을 주제로 삼아 전개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리어왕>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금과 은으로 만든 처음 두 상자가 아니라 값없는 납으로 만든 세 번째 상자였고

리어왕을 사랑했으나 그로부터 아무런 재산도 물려받지 못한 것도 막내딸이었다.

신데렐라에서도 모든 고난을 겪고 왕자를 만나는 것도 막내였다.

 

리어왕은 마지막 장면에서 바로 이 세 번째 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무대에 등장한다.

이 장면은 세 번째 여인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다.

첫 여인이 어머니이고 둘째 여인이 어머니를 닮은 동반자였다면

세 번째 여인은 다름아닌 삶의 원천이자 죽음의 상징이기도 한 어머니, 바로 대지를 나타낸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특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납 상자를 선택한다거나

부귀와 영화를 보장하는 여신이 아니라 비너스를 선택한 것

혹은 결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떠벌리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아버지를 사랑했던 막내딸은

모두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들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근거한 설명이 있기 이전에 화가들은 세 여인이 지닌 의미를 먼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여인을 거의 동일한 형상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여인은 셋이지만 그네들은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를 고향이나 대지의 이미지를 빌려 표현하곤 한다.

모든 남성들이 찾아 헤매는 여인, 즉 흔히 말하듯 구원의 여인이라는 것은

그러므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이미지,

즉 그림이나 조각으로만 형상화가 가능한 신화 속의 인물일 뿐이다.

 

 

 Pablo Picasso. The Bathers. 1918. Oil on canvas. Musée Picasso, Paris, France.

 

피카소는 이 이미지를 해변에서 해수욕하는 세 여인으로 표현했다.

앵그르와 상징주의 화가 퓌비 드 샤반느의 그림을 패러디한 그의 그림은

신화적 의미보다는 현대여성의 활달하고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 여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여성을 아내나 정부로 두었고 여인이 바뀔 때마다

그림 세계까지 큰 변화를 맞았던 점을 염두에 두면

피카소의 창조력 역시 성과 죽음의 딜레마에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최대의 화가로 추앙받는 피카소 역시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 여인을 찾아

그토록 수많은 여인화를 그렸던 것이다.

그의 입체파 그림이나 반추상 계열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따라서 실재하지 않는 여인을 시각화해야 하는 화가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