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피에트로 롱기 - 코뿔소

Gijuzzang Dream 2009. 1. 8. 12:39

 

 

 

 

 

 피에트로 롱기의 <코뿔소>

 

 

 

평소에 접해 보지 않은 동물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웬만한 중소 도시에 동물원 하나쯤은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물원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동물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사육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겼던 신기한 동물을 그린 작품이 페이트로 롱기(1702~1785)의 <코뿔소>다.

지금 코뿔소는 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지만 18세기에는 굉장히 희귀한 동물이었다.

▲ <코뿔소>, 1751년, 캔버스에 유채, 60×47,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작품은 1751년에 베네치아 카니발에서 전시되어 인기를 끌었던 코뿔소를 묘사했는데,

베네치아 귀족들의 구경거리를 그린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1741년, 네덜란드 선장 다우에 모트 반 데르 메이르가

인도에서 암 코뿔소 한 마리를 로테르담으로 들여왔다. 로마 제국 이래 유럽 대륙에 다섯 번째 코뿔소였다. 당시 희귀동물이었던 코뿔소는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반 데르 메이르 선장은 수년간 이 코뿔소를 데리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켜 돈을 벌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코뿔소는 반 데르 메이르가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 동안 데리고 들어온 코뿔소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베네치아의 카니발은 다양한 볼거리와 화려함으로 유럽인들을 끌어당겼다.

코뿔소가 전시되었을 때 피에트로 롱기는 두 번이나 귀족들에게 의뢰를 받아 제작했다.

두 작품 모두 배경이나 등장인물들, 구성이 비슷하다.

이 작품은 귀족 지롤라모 모체니고의 의뢰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우리 안의 코뿔소는 배설물 위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건초를 뜯어 먹고 있다.

조용히 건초를 먹는 코뿔소는 야생 동물로서의 공격적인 성향이 보이지 않고

코뿔소를 상징하는 뿔도 보이지 않는다. 코뿔소가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유럽을 관통하는 동안 오랜 시간 여행해 상당히 지쳤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코뿔소의 뿔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뒤로 반 데르 메이르 선장이 코뿔소를 가리키며

한 손으로는 채찍과 떨어진 뿔을 들고 요란하게 설명하고 있다.

선장 옆에서 남자들은 관람하고 여자들은 뒷줄에 서서 희귀한 동물을 바라보고 있다.

녹색의 베일을 쓴 하녀는 가면을 쓰고 있는 젊은 여자를 위험한 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팔을 잡고 있으며 어린 소녀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코뿔소를 관람하기 지루한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여자는 작고 검은 타원형의 ‘모레타’를,

삼각 모자를 쓴 남자들은 흰색의 ‘바우타’라는 베네치아 전통적인 가면을 쓰고 있다.
카니발 기간에 착용하는 전통적인 가면은 익명성을 선사해

카니발을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들었던 관광객들에게

숨겨 놓았던 본능을 마음껏 펼쳐 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작품에서 가면은 베네치아 카니발의 퇴폐적인 문화를 나타내고 있으며

야성을 잃어버린 코뿔소는 사라져가는 베네치아의 영광을 암시한다.
귀족의 잘 차려 옷차림은 당시 코뿔소 전시의 열풍을 나타내고 있으며

운명에 순종하고 있는 코뿔소와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피에트로 롱기(Longhi, Pietro / Pietro Falca)는 당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장르화가다.

그는 장르화를 통해 베네치아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지만

도덕적인 교훈을 주기보다는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

롱기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당시 베네치아 귀족 사회를 잘 나타내고 있다.

- 박희숙 서양화가, 미술 칼럼니스트  bluep60@hanmail.net

- 2008년 11월 05일, ⓒ ScienceTimes [명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