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지켜(연재자료)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 신의(神醫) 화타 ② 두뇌절개수술 일리 있다

Gijuzzang Dream 2008. 9. 26. 00:25

 

 

 

 

 

 

 신의(神醫) 화타, 두뇌절개수술 일리 있다 ②

 

 

화타와 관련된 전설적인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느 군의 태수가 병을 앓아 누구도 치료를 하지 못했다.

화타가 태수의 병환을 보고 다른 환자들을 치료할 때와는 달리

매우 불손하고 기분 나쁘게 대했고 진료비도 높게 받았다.

더구나 환자에게 어리석은 사람인데 병을 고쳐 무엇 하겠느냐면서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태수는 크게 화를 내고 부하에게 그를 추격하여 잡아 죽이라고 했다.

다행히 태수의 아들이 화타의 뜻을 알고 부하에게 쫓지 말라고 했다.

태수가 너무나 화가 나서 피를 토했는데 곧바로 병이 나았다.

화타가 고의적으로 태수를 화나게 하여 피를 토하게 한 것으로

태수가 곧바로 화타에게 감사의 뜻을 표명했음은 물론이다.

광릉태수(廣陵太守)였던 진등(陳登, 2세기 말)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얼굴이 붉고 밥을 못 먹는 병을 앓았다.

화타가 진단한 결과 진등의 배 속에 기생충이 있음을 알고 탕약으로 기생충을 토해내게 했다.

 

화타는 진등에게 이유를 말했다.
“당신의 위 속에 몇 되의 기생충이 안에서 악성종기가 되려고 하는데

이것은 비린내가 나는 음식물을 날것으로 먹고 생긴 일입니다.”

이를 보면 화타는 이미 기생충을 갖고 있는 날것을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화타는 진등을 치료한 후 바른 소리를 했다.

3년 후에 같은 병이 재발할 터인데 그때도 훌륭한 의사를 만나면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타가 말한 대로 3년 후 진등의 병이 재발했다.

허나 그 때는 이미 화타가 타계하고 없어서 진등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었다.



신의 화타의 전설

한번은 한 군인이 아내의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화타를 불렀다.

화타는 진찰을 한 후 부인이 유산을 했는데 죽은 아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군인은 부인이 임신 중에 몸을 다쳐 유산을 하기는 했지만

이미 사산한 아이를 배출했다며 화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군인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그는 응급처리만 해준 후 자리를 떴다.

군인은 화타를 돌팔이 의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인의 병이 악화되자 화타를 다시 불렀다.

화타는 부인이 과거에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먼저 나온 죽은 아기가 피를 많이 흘려

나중에 나와야 할 아이가 나오지 못하고 모체에 남은 것이라고 말하고

약물을 준 후 침을 놓자 사산아가 나왔다.

외과분야에서 화타는 독보적인 존재로 중국에서는 현재 그를 ‘외과의 비조(鼻祖)'로 대우하고 있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화타가 길을 가다 목구멍이 막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을 보았다.

신음소리를 들은 화타는 환자를 살펴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방금 왔던 길 끝에 떡을 파는 집이 있소.

그곳에 마늘을 잘게 부수어 만들어 놓은 것이 있으니 3되 사서 먹도록 하시오.

그러면 병이 자연히 없어질 것이오."

화타의 말대로 했더니 환자는 뱀 하나를 토해내었다.

환자는 수레 옆에 토해낸 뱀을 걸어놓고 화타를 방문하니

화타는 출타 중이고 어린아이가 그를 보고 말했다.

“우리 아저씨를 만난 것 같군요. 수레 옆에 뱀을 매달았으니 말입니다.”

전설은 계속된다.

한 환자의 얼굴에 주먹만한 혹이 생겼는데 화타가 혹 속에 새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웃었는데 화타가 혹을 째니 혹 속에서 황작(黃雀)이 날아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 후에는 혹이 다시 생기지 않았다.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華陀)의 수술 장면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동오의 주태(周泰, ?~225경)가 손권(孫權, 182~252)을 보호하여

손책(孫策, 175~200)에게로 돌아가려다 12군데의 창상(創傷)을 입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중태일 때 화타가 그를 구하는 내용이 있다.

다른 의사들이 주태를 구할 방도가 전혀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타는 간단하게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의 치료법은 현대와 다름이 없다.

화타는 먹는 약과 바르는 고약을 준비하여 주태에게 약을 복용하는 동시에

상처에 고약을 바르게 했다.

『삼국지』에는 화타가 처방한 약의 효과가 매우 빨라 약을 바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처에서 올라오던 독기와 화기가 단번에 가라앉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를 당대의 신의(神醫)라 부르는 것이 과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화타의 전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마비산(麻沸散)이란 마취약으로 환자를 전신 마취시킨 뒤 외과수술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느 날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찰하니 환자의 비장이 염증으로 괴사된 것을 발견했다.

화타는 환자에게 마비산을 술에 타서 마시게 하여 마취시킨 후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그는 환자의 배를 가르고 환부를 절제한 후

남은 부분을 실로 봉합한 후 새살이 돋게 하는 고약을 붙였다.

이후 조리약을 먹였는데 환자가 한 달 만에 일어나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관우 숭배, 관우는 재신으로도 알려져 많은 상인들이 숭배한다. 

화타의 전설을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화타가 발군의 의술을 펼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 의학에서 화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임상 의료에서 양생 · 침구 · 방약은 물론

외과수술도 겸하여 소위 동양과 서양 의학을

모두 섭렵했다는 점이다.

알려지기는 화타가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침구과 등에 뛰어났으며 특히 외과 부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중국에서는 현재 그를 ‘외과의 비조(鼻祖)'로 대우하고 있다.

화타의 전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움직이면 곡기(谷氣)가 없어지고

혈맥이 잘 통하며 병이 생기지 않는다.

예컨대 문지방이 끝내 썩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고 주장하면서 유명한 보건체조를 만들었다.

“옛날에 장수한 신선은 몸과 수족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양생법인

도인(導引) 활동을 진행시켰다.

곰처럼 나무를 끌어안고, 올빼미처럼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고 목만 돌려 뒤를 돌아다보고

허리를 펴고 각 부위의 관절을 활동시켜 장수를 구했다.

나는 이를 발전시킨 운동 방법을 알고 있는데 이를 ‘오금희(五禽戱)’라 부른다.

이는 곧 호랑이ㆍ사슴ㆍ곰ㆍ원숭이ㆍ새의 동작을 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질병을 제거할 수 있으며 아울러 수족을 자유롭게 하여 도인(導引) 작용을 한다.

신체 중에 불편한 곳이 있을 때 일어나서 한 동물의 놀이를 한다면 땀을 흘려 옷을 적시게 되며

불편한 곳 위에 가루약을 부리면 신체는 경쾌해지고 뱃속에서도 음식을 먹으려고 할 것이다.”

화타가 중요하게 여긴 양생학설(養生學說)은 그 후 중국의학의 주요 학파로 자리 잡는다.

 


전설적인 관우의 수술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관운장처럼 한국인에게 친숙한 인물은 거의 없다.

관운장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위정자는 물론

민간 신앙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깊숙하게 신봉된 외국인으로 더 유명하다.

관운장을 신으로 모신 사당은 서울에만 다섯 군데가 있었고

강진, 남원, 성주, 안동 등 지방에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곳이 동묘인데

동묘는 국가에서 건립하여 국가적인 행사 차원에서 왕이 직접 사당에 나가 제사를 지냈다.

관운장이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한국인과 맥을 잇게 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운장을 중국과 한국에서 깊게 믿게 된 이유는 두 가지 경향 때문으로 본다.

하나는 관우가 충용의열(忠勇義烈)의 인물이므로 무신(武神)으로 섬겨

국가를 수호하고 평온을 빌고자 한 것으로 주로 위정자들이 관우사당에 임하는 소망이라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재신(財神)으로서 제사 지내는 것으로 민간신앙이 이에 해당한다.
관우가 재신으로 숭배된다는 것은 매우 의아한 일인데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관우가 생전에 이재에 매우 밝고 회계업무에 뛰어났으며,

필기법(筆記法)을 설계하여 일청부(日淸簿)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인들은 의기와 신용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관우가 신의를 모두 갖추고 있어 이를 받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설에 따르면 관우가 죽은 뒤에 진신(眞神)으로

늘 다시 돌아와 전쟁을 도와주어 승리를 얻었으므로, 상인들은 언젠가 사업이 좌절되었을 때

관우처럼 재기하여 최후의 성공을 얻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 사실 관우는 조조 · 유비 · 손권처럼 제왕이 되지 못했다.

또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했지만 오나라와의 전투에 패배하여 포로가 된 후 참수되었으므로

만고의 승장은 아니다. 그런데도 관우가 이와 같이 각국에서 신봉의 대상이 되었다면

그렇게 만든 요인이 여러 가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그의 성가를 드높인 것은 바둑을 두면서 화타가 어깨를 수술했다는 장면이다.

화타의 관우 치료, 화타가 진통제 없이 관우가 바둑을 둘 때 뼈를 깎는 수술을 했다고 알려지지만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화타의 치료일화 중의 압권은 관우의 치료이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도 이 내용은 잘 알 정도로 유명한 일화이다.

형주에 있던 관우는 조조의 용맹한 장수인 방덕(龐德 ?~219)의 군대와 전투를 치르다가 팔에 독화살을 맞아 상처가 심해져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게 된다.

상처의 염증으로 고열이 심해 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우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치료하고자 달려온 사람이 화타였다.

화타는 관우의 상처를 살펴보고 독이 뼈까지 침투했으니 오염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면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 설명했다.

 

관우는 화타로 하여금 곧바로 수술을 하게 했다.
화타는 시술하는 동안 관우가 고통을 참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관우의 몸을 먼저 묶으려 하지만 관우는 이를 제지하며 바둑판과 술을 대령하게 한다.

그리고 화타가 한 팔을 치료할 동안 다른 한 팔로 자신의 진영에 있던 마량과 바둑을 두었다.

화타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상처를 째고, 독에 오염된 뼈를 긁는 소리가 사방에 들렸다.

화타가 오염된 뼈를 모두 긁어낸 다음,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을 무렵,

관우가 두던 바둑도 거의 종국이 되었다고 한다.

관우는 상처가 완치되자 화타에게 큰 상을 내리려 했으나 화타는 거절하였다.

화타는 장군 같은 환자는 처음 보았다면서 명환자가 있기에 명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유유히 길을 떠난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과학향기’는 말한다.

뼈를 깎는 시술을 마취제도 없이 견디기는 힘든 일이다.

중국 작가들 특유의 과장을 감안한다면, 시술이 아주 미미한 것이었거나,

화타가 요즘의 마약류에 속하는 국부마취제(마비산)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수술했다면 관우는 분명 사망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관우에게도 마취제가 필요했다」, 최승일, 사이언스타임스, 2004.02.18
『동묘, 동묘자료집』, 종로문화원, 1997
「외과수술을 가능하게 한 마취」, 과학향기편집부, Sci-Fun, 2005.4.1
 
http://www.loveantique.com/study/caishencn.htm

 

-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빙과학자 / mystery123@korea.com

2008년 10월 17일(금)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