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205곳에서 생활유적. 고분


한국고고환경연구소 관계자가 9일 오전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 발굴 현장에서 한성도읍기 백제시대의 고분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횡혈식 석실분인 KM-016호분 내부에서 발견된 도굴범들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고무물통의 모습이 보인다.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에서 출현한 한성도읍기 말기 거대 지하 백제고분. 무덤방 한쪽에다가 바깥으로 통하는 무덤길(8.13m)을 별도로 마련한 횡혈식석실분인 이곳 KM-016호분은 완전한 지하식 무덤인데다 묘광은 네 변 길이 각각 4.74m에 깊이는 최대 3.48m에 이른다. 묘실 네 벽면은 깬돌을 촘촘히 쌓되 모서리 각을 죽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이른바 ‘궁륭형(穹隆形) 석실‘로 축조했다. 한국고고환경연구소제공
한국고고환경연구소는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지하무덤 등 6개의 백제 석실분(돌방무덤)을 발굴했다고 9일 밝혔다.
지하 궁전을 연상케 하는 한성도읍기 백제시대의 거대한 지하고분이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서 발굴됐다.
연구소는 2030년 완공될 행정도시 7291만㎡(2205만 평) 중 송원리 일대 12만㎡(34만 평)를 4월부터 발굴 조사해 왔다. 조사 지역에서 백제 거대 고분을 비롯해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각종 생활 유적과 고분 등을 205곳에서 확인했다.
이 중 백제 대형 석실분은 3m 이상 땅을 파내려 간 뒤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한변 5m 길이로 조성한 지하 고분이다. 바깥에서 무덤방에 이르는 무덤 길은 8.13m에 달한다.
연구소 김무중 실장은 "함께 나온 토기가 서울 풍납토성의 후기 양식인 것으로 미뤄 백제가 한성에서 공주로 천도하기 이전인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무덤은 3m 이상 되는 깊이까지 땅을 방형으로 파내려 간 다음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인 묘광(墓壙)을 한 변이 5m에 이르는 길이로 조성했으며, 외부에서 무덤방으로 향하는 무덤길 또한 길이가 무려 8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흥종)는 지난 4월30일부터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이후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각종 생활유적과 고분 등을 205곳에서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중 해발고도 72m인 송원리 송계동 마을 북쪽 야산 정상의 평탄지역에서 확인한 백제시대 고분 KM-016호분은 외부에서 묘광으로 통하는 길을 별도로 마련한 이른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규모로 밝혀졌다.
|
더구나 이 무덤은 묘광 전체를 지하에 마련한 첫 번째 백제시대 고분으로 기록됐다.
이 무덤은 최대 3.48m까지 땅을 파내고 시신을 안치하는 묘광(墓壙)을 네 변 길이가 각각 4.74m에 이르는 길이로 조성하고 네 벽면에 깬돌을 촘촘히 쌓되 모서리 각을 죽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이른바 '궁륭형(穹隆形, 활이나 반달처럼 굽은 모양) 석실'로 축조됐다. 무덤길은 총 8.13m에 달한다.
이는 백제 석실의 기원인 낙랑 전축분(평양 석암리 99호분)을 연상케 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책임조사원인 김무중 연구실장은 "무덤방은 흡사 낙랑 전축분(벽돌무덤)인 평양 석암리 99호분을 연상케 한다"면서 "아직 무덤 내부가 제대로 조사되지는 않았으나 광구장경호(아가리가 넓은 목 긴 항아리)나 삼족기(세발토기), 개배(뚜껑접시) 같은 토기 유물로 보아 한성도읍기 중 말기에 속하는 고분임이 확실하며, 나아가 그 시대에 이 지역에 대단한 지역적 기반을 갖춘 세력가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백제시대 고분만 석실분 6기, 석곽묘 19기, 토광묘 16기, 주구토광묘 9기, 옹관묘 5기 등이 확인됨으로써 이 지역이 공주나 부여 못지 않은 대규모 백제시대 유적지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무덤 속에서 나온 유물이라곤 항아리와 토기, 뚜껑접시, 그릇받침 조각 등 토기 유물 몇 개뿐이다. 오히려 있어서는 안될 고무동이 2개와 2002년산 건전지, 담뱃갑 등이 나왔으며, 무덤 상부 양 귀퉁이에는 도굴꾼들이 고분에 들어가기 위해 파낸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 대형 무덤 인근에서는 또 200여 기의 청동기∼조선시대 생활유적 및 분묘유적이 확인됐으나, 상당수에서 도굴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게 발굴 팀의 설명이다.
한 전문가는 "무덤이 온전하게만 나왔다면 무령왕릉이나 금동대향로 등에 버금가는 발견이 됐을 법도 하지만, 도굴꾼들이 한 발 앞선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발굴현장을 둘러본 문화재 지도위원들은 “도굴이 된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이정도 규모의 지하고분군 발굴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라며 “연기군 일대가 그 시대 공주나 부여에 못지 않은 대규모 백제시대 유적지일 가능성, 중앙과 관련된 대규모 세력이 존재했을 가능성 등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
행정도시에서의 유적 발굴은 이제 시작 단계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올 2월 문화재 발굴 조사가 필요한 곳은 사업 대상 부지의 10% 정도인 860여 만㎡(260여 만 평)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발굴 조사 중인 가운데 첫 유적이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백제 고분만 석실분 6기, 석곽묘 19기, 토광묘 16기, 주구토광묘 9기, 옹관묘 5기가 확인됐다. 이 지역이 공주나 부여 못지않은 대규모 백제시대 유적지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발굴조사를 벌인 송원리 일대는 행정도시의 시범단지인 '첫마을'이 들어설 지역이다. 7월 착공한 첫마을은 2009년 하반기 분양에 들어가 2010년 말 1차적으로 26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한국 고고학회 최병헌(숭실대 교수) 회장은 "보기 드문 유적이 나왔으므로 현지에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토지공사 측은 "송원리 유적 주요부를 보존해도 첫마을 사업에는 그다지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며 "보존할 경우 구체적 범위를 빨리 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 2007. 11. 10 연합, 중앙, 경향, 세계, 문화 등 일간신문 기사
###
한성백제시대 (BC 18 ~ AD 47)
웅진백제시대 (AD475 ~ AD538)
사비백제시대 (AD538 ~ AD666)
백제시대의 무덤에는 돌무지무덤과 봉토분이 있으며, 봉토분에는 돌방무덤 · 돌덧널무덤 · 움무덤(土壙墓)이 있다.
백제 초기인 한성(漢城)시대의 무덤양식은,
널무덤 · 돌덧널무덤 같은 토착적인 묘제에 고구려식 돌무지무덤과 함께 합장이 가능한 돌방무덤이 퍼져 들어왔으며, 입지에 있어서도 처음 고구려식 평지무덤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언덕으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돌무지무덤은 한강유역에 특징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재래식 무덤형태로
얕은 대지 위에 네모난 돌무지를 층층으로 쌓아 올리고 가운데 주검을 넣은 형식이다. 제일 아래 단의 네 변에는 돌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돌을 설치하였는데, 한 변이 50m가 넘는 큰 것도 있다.
그 밖에 널무덤은 지하에 구덩을 파서 널을 묻고 때로는 독널을 곁들여 묻었는데,
봉토에 돌 · 기와를 표토 가까이에 한 겹 덮은 것이 특색이다.
웅진(熊津)시대가 되면
고구려계통의 돌무지무덤이 없어지고
널길이 달린 돌방무덤(石室墳)이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에 발생해 한성시대에 이어서 계속 7세기까지 이어졌다. 판돌을 이용해 반 지하나 지면 가까이에 부장품과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인 굴식돌방(橫穴式石室)을 만들었다. 돌방은 지하나 지면 가까이에 만들어 두고, 여기까지 이르는 무덤길로 연도(羨道. 널길)를 뚫었다.
한편 5세기 후반경 중국계 벽돌무덤이 새로이 나타난다.
벽돌무덤은 백제시대를 통틀어 공주에 2기(송산리고분 6호, 무령왕릉)가 남아 있는데,
단면이 터널모양이고 기다란 전돌을 가지고 길이모 또는 작은모쌓기로서 반복하여 만든 것이다.
사비(泗沘)시대의 무덤은
한성 · 웅진시대에 이어 기본적으로 장방형 돌방이 유행한다.
한편, 전남지방에는 늦게까지 토착적 묘제를 고수하여 특별히 큰 독무덤[甕棺墓]이 유행하였다.
영암(靈岩) · 무안(務安) · 나주(羅州) 등지에서 발견되는 이 독무덤은
지방 호족(豪族) 또는 마한 잔여세력의 묘제로서 중요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