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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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의 놀라운 상술… 실제로는 불가능-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리하여 생활상의 문제를 우선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아내의 애걸에 부응하여 허생은 경제활동 역시 어느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집을 나선다.
우선 그는 한양 제일의 갑부인 변부자를 찾아간다<그림 1>.
허생은 변부자에게 1만냥을 빌려 달라고 했고, 변부자는 ‘기껏해야 10냥 정도나 빌리러 온 줄 알았는데, 보기와는 전혀 다른 선비’라고 생각하며, 영수증도 받지 않고 1만냥을 빌려주었다. 허생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일어섰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지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청년사)를 보면 상평통보 1냥을 2만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1냥을 3만원이라고 계산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1냥의 가치를 4만원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돈의 기준이 쌀값이었는데 쌀값이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1냥을 2만원으로 계산해 보면 허생은 1만냥, 즉 2억원을 빌린 셈이니 오늘날에도 그것은 아주 큰돈이다. 거기서 대추, 곶감, 배, 사과 등 온갖 과일을 모두 사들였다. 그렇게 해서 나라 안의 과일이란 과일은 모두 곳간에 쌓아두었는데 몇달이 지나자 과일 값이 폭등하게 되었고 허생은 10만냥을 벌게 되었다. 이렇게 요새 돈으로 20억원을 벌어들인 허생은 농사에 필요한 괭이, 호미, 낫 등과 베와 무명 등을 사서 제주도에 가서 팔아서 수만냥의 이득을 얻게 되었다.
현종 13년인 1672년에는 8490호에 2만9578명이란 기록이 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이보다 앞선 시기인 효종 때이니 인구가 더 적었을 것이나, 계산의 편의상 그 당시의 제주도 인구를 3만명이라고 하자. 그리고 허생이 5만냥의 이득을 얻었다고 하자. 허생이 과일을 판 솜씨를 생각하면 제주도에서 5배 이상의 값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1만냥에 사서 5만냥 이익을 봤다면 물건 값은 6만냥이다.
그러면 제주도 사람 1인당
이때는 제주도 사람 1인당
어느 경우든 그 당시의 제주도 사람들의 구매 능력으로 봐서 이것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다시 허생은 제주도에서 말총을 사모아서 15곱 이상의 비싼 값으로 팔아서, 투자비용을 제외하고 100만냥을 벌었다고 한다. 그 돈을 가지고 도둑들을 구제하여<그림 2> 어느 섬으로 가서 농사를 짓게 하고 일본에 쌀을 팔아서 다시 100만냥을 벌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허생은 일본에 가서 10배 이상 비싸게 팔지 않았을까? 그러면 쌀 한 섬이 50냥이라고 할 수 있다. 100만냥을 벌었다고 하면 한 섬은 한 사람이 1년간 먹는 양(옛날에는 140㎏ 정도이지만 지금은 80㎏ 정도)이라고 하니까 실제로는 쌀이 부족한 일본에서는 3만~4만명이 1년 동안 먹는 양에 해당할 것이다. 힘센 사람은 40㎏ 정도는 들 수 있다. 그런데 100냥도 들지 못했다고 하니 돈 1냥의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이 계산은 여러분이 해보기 바란다.
허생은 변부자에게서 돈을 빌린 후 5년이 지나서 10만냥을 갚았다. 그러자 변부자는 10만냥은 너무 많다고 하면서 돈 1만냥에다 10분의 1의 이자를 쳐서 1만1000냥만 받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당시 사채 이율은 실제로는 10분의 1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 10%라고 해도 5년 후의 이자는 5000냥이며, 복리로 계산한다고 하면 원리합계는 1만6000냥이 된다. 그러므로 변부자는 부자답지 않게 이자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수학적으로는 약간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의도하는 것을 제대로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독서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수학적으로 분석해 봄으로써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옥에 티를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좋은 수학공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수학적으로도 빈틈이 없다면 사실성이 보태져서 더욱 흥미진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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