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장 박명배
" 나무 선택부터 모든비결 전수 / "小木 가장 잘 가르친다" 명성
도면 · 현대식 工具 등 서양제작법 결합
나무 10년 말린후 건조한 겨울에만 작업
"전통 미감은 최순우선생에게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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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구 제작을 일컫는 소목(小木)은 전통 공예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이 활발한 분야이다.
그만큼 누가 최고라고 섣불리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소목을 가장 잘 가르치는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견 없이 박명배(54ㆍ노동부 명장)씨를 꼽을 것이다.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와 문화재보호재단이 일반인을 위해 개설한 한국공예건축학교에서
전통가구 짜기를 가르치는 이가 바로 그이이다. 잘 만들면서 못 가르칠 수는 있지만
못 만들면서 잘 가르칠 수는 없으니 그의 가구 만드는 솜씨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만든 전통가구는 청와대 안방과 로마 교황청 박물관 한국관, 스웨덴 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
미 LA와 워싱턴의 한국문화원, 독 베를린 한국문화원, 일 오사카의 한국문화원에도 들어가 있다.
1984년부터 2년간은 유럽을 순회하면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그때 그가 만든 전통가구에 매료된 덴마크의 공예과 학생이 1996년에 박물관 직원이 되어서
한국으로 그를 찾아와 몇 달간 전통 가구 짜기를 배우고 갔을 정도이다.
그의 가구는 전통적인 경기 가구의 단아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만드는 방식은 서양식 가구제작법을 많이 도입했다.
그는 가구의 도면을 정교하게 그리고 제작시에도 현대식 기기들을 많이 활용한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되 만드는 방법은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하자는 주의이다.
그의 정신은 수업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학생들에게 설계도를 그리는 법부터 가르친다.
가구에 대한 구상이 서면 4분의 1 축적으로 먼저 그려본 후
1대1 비례로 정면도 측면도 평면도 상세도를 치수대로 그리게 한다.
지옥장부나 연귀짜임 같은 전통가구의 짜임새나 풍혈의 곡선도 그대로 도면에 그린 후에야
제작에 들어간다. 그렇게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부터가 그렇게 제작을 한다.
그는 실물크기대로 그려놓은 도면을 벽에 붙여놓고 계속 보면서 디자인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가 만든 가구는 빈틈없이 정교하고 철에 따라 뒤틀리는 법도 없다.
그가 이렇게 도면작업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적인 가구제작기법으로 교육을 받은 덕분이다.
충남 홍성 사람인 박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68년 서울로 올라왔다. 3남1녀 중 장남으로서 기술을 익히는 게 좋겠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집안 형뻘인 최회권(71ㆍ캐나다 거주)씨가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하는 미술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최씨는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나오고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공예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최씨는 미술연구소에 목수 2명을 두고 본인과 제자들의 작품을 만들었다.
박씨는 공예과 학생들이 가져오는 디자인대로 가구를 만드는 일을 거들면서 가구의 기초를 배웠다.
목수로서의 일은 보통 오후 7시반이나 8시반쯤 끝났는데 최씨는 이때부터 10시까지 박씨를 잡아두고
데생과 디자인을 해보게 했다. 대학에서 배울 것을 따로 가르친 셈이었다.
구상이 잡히면 모눈종이에다 설계도를 그리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 분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지요.” 이렇게 박씨는 가구 디자인은 어떻게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설계로 옮겨 목재에 구체화하는지 기본적인 원칙을 익히게 됐다.
그러나 이 좋은 스승은 공예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71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첫번째 스승과 헤어진 박씨는 같은 응암동에 있는 목수 허기행(90년대 중반 작고)씨를 찾아갔다.
박씨는 “당시 응암동에서는 허 목수와 오 목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허씨로부터 짜맞춤 기법 같은 전통가구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그러나 박씨가 꼽는 최고의 스승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1916~1984)씨이다.
“사실 짜맞추는 기법은 몇 가지만 배우면 금새 되는 기능이다.
전통 가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 가구의 미감을 찾아내는 일이다.
전통가구의 미감은 비례에서 나오는데 이걸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최순우 관장이다.”
박씨는 80년 허목수로부터 독립해 영산공방을 열었다.
이때부터 그는 박물관에 소장된 옛날 가구들을 재현하는데 몰두했다.
수시로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알게 된 학예사가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씨를 소개해주었다.
최씨를 통해 이종석(1933~1991) 전 호암미술관장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에게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장고를 열어 귀한 고가구의 진면목을 보여준 이들이자
한국 전통가구의 미감을 알려준 스승이다.
사계절의 기온차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나뭇결이 아름답고 가구는 이 나뭇결을 살리기 위해
조그만 판면을 잇대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때문에 면 하나 하나는 물론 전체가 구성작품처럼 면분할이 잘 되어야 아름답다.
전통의 미의식이 지향하는 비례는 1대 1.666(3대5)로
이는 서양에서 황금분할로 불리는 1대 1.658과 흡사한 수치.
박씨는 두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가구를 만들 때 이 같은 전통의 비례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전통을 바탕으로 그가 만든 소반은 89년 동아공예대전에서 대상을,
의걸이장은 9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 의걸이장은 나무표면을 태운 뒤 곱게 긁어내어 나뭇결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낙동(烙桐)기법을
오동나무가 아닌 소나무에 적용한 낙송(烙松)기법을 창안해 전통을 새롭게 살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전통 미감에 따른 가구 디자인이 소목장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를 목재로 재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설계를 잘해도 나무가 따라주지 않으면 허사다.
수종의 선택과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경기 용인에 있는 그의 공방에 가보면 앞마당에 쌓여있는 나무에 우선 놀라게 된다.
지름이 1미터가 넘는 아름드리 통나무 20여 개가 차곡이 쌓여있다.
“나무는 봄철에 자르면 물기가 있어 껍질이 갈라진다”고 설명하는 그는
물기가 다 빠진 가을이나 겨울에 나무를 베서 사온다.
사온 나무는 잘린 면에 풀이나 칠 한지 기름 같은 것을 발라줘
나무가 갑자기 수분이 빠지면서 갈라지는 것을 막는다.
그 후 두꺼운 비닐천을 덮어 5년간 응달에서 서서히 숙성시킨다.
숙성된 통나무를 일정한 두께로 켠 후 다시 실외에 놓고 3년간 말리고,
실내에서 2년간 말려서 그제야 가구재로 쓴다.
이렇게 공들여 판재를 마련하고도 그는 가구를 만들 때도 계절을 탄다.
오로지 겨울부터 초봄까지만 가구를 만든다.
“나무는 말라도 나무라서 외부에 습기가 있으면 흡수할 수 있을 때까지 습기를 흡수한다.
고온다습한 여름에는 나무가 물기를 흡수해서 팽창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기술로 만들어도
가구가 습도 15% 안팎인 아파트 생활을 견뎌내지 못한다.
이 때문에 건조한 겨울에 가구를 만들어야 나무가 트거나 갈라지거나 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가 가구를 만드는 시기는 12월부터 4월까지 딱 5개월 동안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강의를 하거나 목재를 건사하고 가구를 수리하는 일을 한다.
1994년 2명으로 시작한 한국공예건축학교 강의는
기초반이 20명씩 2개반, 연구반이 10명씩 2개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연구반을 졸업한 이들 26명이 목야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박씨는 그가 익힌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자동대패는 누름판 없는 걸 사면 못 쓴다”
“원형톱의 샤프트는 미아리에 가서 깎는 게 최고”
“쇠공구는 스웨덴제가 좋지만 끌만은 우리나라 대장간에 가서 전통기법으로 만든 게 최고”라는 둥
체험에서 우러나온 온갖 비결이 수업에서 다 공개된다.
전통장인들은 제자를 가르칠 때 어깨 너머로 배우게 해서 독립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나무를 고르는 법. 700만원을 주고 산 느티나무 통나무가 속이 썩어 있어서 완전히 날린 적도 있다.
돈을 써가며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이 나무 고르는 법인데
그는 제자들이 같은 혼란을 겪지 않도록 껍질, 구부러진 상태, 옹이, 나이테를 보고
나무를 감별하는 비법까지 일러준다.
제자인 조훈상(44)씨는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하고
가구회사에서 13년동안이나 디자이너로서 근무했는데
“선생님을 만나고서야 가구가 만들어지는 전과정을 제대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반도체 설비 수입업체 대표인 윤봉중(49)씨는 박씨의 강의를 들은 후 아예 본업을 작파하고
가구 디자이너로 나설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다.
나무 고르기 - "악조건서 자란 나무가 아름다워"
‘느티나무 생목에서는 분 냄새가 나고 살구나무에서는 매운 향이 난다.’
36년동안 나무와 함께 살아온 박명배씨의 나무 지식은 대단하다.
그는 같은 나무라도 각 지역의 생장조건에 따라 색상 강도 무늬결이 다르다고 일러준다.
나무는 생장이 어려울수록 덜 자라고 덜 자랄수록 나이테가 촘촘해서 아름다운 나무가 된다.
따라서 나무마다 생장조건이 어려운 곳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목재가 생산된다고 박씨는 일러준다.
참죽나무는 강원도산을 친다. 경상도와 충청도에서도 많이 나는데 충청도 나무가 가장 나쁘다.
딱정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참죽나무를 나물로 먹는데 이 때문에 어린 가지가 떨어져나간 부분이 상처로 남아서 그렇다.
강원도는 산나물이 워낙 흔한 지역이라 참죽나무는 잘 먹지 않아서인지 강원도 참죽나무가
가장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느티나무는 전라도, 그 중에도 전라남도 것이 최고다. 아마도 토질이 느티나무와는 맞지 않는 모양이다.
나이테가 촘촘하여 가구재로 아름답다.
그러나 전라남도에서도 물가에서 큰 것은 색이 흐려서 좋지 않다.
배나무는 경상도 그 중에도 상주의 돌배나무가 가장 아름답다.
피나무는 강원도산이 역시 좋다.
- 한국일보 [빛나는 손끝 - 한국의 장인들] <17> , 2004/06/15 서화숙 편집위원
소목장 박명배 선생의 가구 ‘서안’ 제작 과정 |
'목수'란 나무를 다뤄 목재 가구나 문방구 등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목공' 또는 '목장'이라 부르는데 건축이나 공정을 다루는 '대목장'과 조각과 일반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소목장'으로 나뉜다. 작을 ‘소(小)’에 나무 ‘목(木)’을 쓴다. 대목장이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하면 소목장은 그 안에 세간살이를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소목, 그 기술을 인정받아 보유자로 승격된 사람을 소목장이라고 하며 무형문화재로는 1975년부터 지정됐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의 서안 만들기 제작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사진제공: 박명배ㆍ영산공방)
서안은 글을 읽거나 글씨를 쓰거나 간단한 서한문을 작성할 떄 사용하는 것으로 모양에 따라 ‘궤안’ ‘경상’ 두 종류로 분류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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