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초상화 전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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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테마전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
- 전시 기간: 2007. 7. 31∼10. 28 8건 35점(보물 2건 4점)
상설전시 미술관 1 회화실에서 7월 31일(화)부터 10월 28일(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최덕지 초상 초본>(보물 제594호) 등 35점이 공개된다. 이 전시는 "초상화를 어떻게 그렸을까?"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초상화의 제작 과정 속에서 초본의 성격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을 보면 거의 완성본에 가까울 정도로 얼굴의 묘사가 자세하다.
기름종이인 유지(油紙)에 먼저 유탄(柳炭, 버드나무를 태운 숯)으로 대략 인물의 윤곽을 잡은 후, 먹선을 올리고, 화면 뒤에서 칠하는 소위 '배채(背彩)' 기법을 사용하였다. 배채는 뒷면에 칠한 색이 앞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기법으로, 주로 얼굴색이나 관복의 색을 내는데 사용되었는데, 앞면에서만 칠했을 때보다 더 자연스럽고 품격 있는 효과를 내어 초상화에서는 필수적인 기법이었다. 배채는 고려 불화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뒤에 칠한 색채가 앞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기법이다.
종이 초본의 경우에는 기름을 먹여 반투명하게 만든 유지를 사용함으로써 이 효과를 냈다. 이처럼 완벽에 가깝게 제작된 초본은 비단에 그 윤곽을 정식으로 옮기기 전에 미리 그 결과를 볼 수 있게 만든 일종의 샘플작이라 할 수 있다. 초상화의 주문자들은 이러한 초본을 기준으로 수정, 보완을 거쳐 비단 정본의 제작 방향을 정하였던 것이다. 영암의 전주 최씨 문중 소장 <최덕지 초상> 초본과 정본(보물 제594호), <채제공 초상> 초본과 정본(보물 제1477호)이 함께 전시되어 초상화 초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도울 것이다.
아울러 이번 테마전에 맞춰 조선시대 무관 이성유의 관복본, 군복본 초상 2점(서울 이건일 소장)을 최초 특별공개 한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초상화를 어떻게 그렸을까?” 라는 물음을 가지고, 제작과정 속에서의 초상화를 살펴 볼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초본이란 완성본을 그리기 전에 인물의 특징이나 채색 효과를 미리 보기 그려본 습작, 또는 일종의 샘플작이다.
초본의 제작과정을 보면, 먼저 기름종이인 유지(油紙)에 유탄(柳炭, 버드나무를 태운 숯)으로 대략 인물의 윤곽을 잡은 후, 먹선을 올리고, 화면 뒤에서 칠하는 소위 ‘배채(背彩)’ 기법을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1744년 작) 중 <이의현(李宜顯) 초상>의 제작 과정을 추정하여 유지초본부터 비단에 그린 완성본까지 8단계로 재현하여 전시하였다.
- 오재순 초상 / 17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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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화사에 대한 연구가 다양해지면서 산수화 위주의 연구를 넘어 초상화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옛 초상화를 조명하는 전시도 자주 마련된다. 올들어 서울역사박물관이 ‘흥선대원군과 운현궁의 사람들’이란 특별전을 연 데 이어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해 보물로 지정한 초상화를 모아 올 가을에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2003년 말 서울시립미술관은 ‘한중일 초상화 대전’에서 한·중·일 3국의 국보급 초상화를 모아 조명하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미술관 회화실에서 테마전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전을 열고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제작 과정과 기법을 살필 수 있는 자리다.
초본(草本)은 초상화 제작시 인물을 묘사하는 밑그림이다. 그렇다고 초본을 소략한 스케치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초상화 초본은 완성본에 가까울 정도로 묘사가 자세하다. 이는 초본이 비단에 정본을 그리기 전, 미리 그 결과를 볼 수 있게 만든 ‘일종의 샘플작’이라는 측면에서 제작됐기 때문이다.
고려불화에서도 사용되는 배채(背彩) 기법이다. 여러 개의 초본을 그려 비교해 그중 하나를 정본을 완성할 초본으로 택하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조선초 문신 ‘최덕지(崔德之·1384~1455) 초상 초본’을 비롯해 35점이 공개된다. 특히 ‘최덕지 초상’과 정조대 인물묘사에 탁월한 화원 이명기가 그린 ‘채제공(蔡濟恭·1720~99) 초상’은 초본과 정본이 함께 전시돼 초본에 대한 입체적 이해가 가능하다. 그림 2점이 최초로 선보인다. 관복과 군복을 입은 모습인 초상은 당대 최고의 문인서화가였던 강세황이 쓴 제문이 관복본에 남아있다. |
- 경향, 2007년 8월 7일, 윤민용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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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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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교수, “우리 초상화는 예술 넘어선 조상 표현” | |
“초상화는 오지에 많아요. 종가의 사당이나 영당, 서원의 사우에 모시니까요. 당시엔 ‘증보문헌비고’라는 책 하나에만 의지해서 종가의 사당 위치를 물어 물어 찾아가곤 했어요. 보여달라고 청해도 거절당한 적이 많았죠. 그 인물의 제삿날이 오면 보여주겠노라고 해서, 다시 가도 종친들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마지못해 허락하곤 했어요.” 초상화 답사 회고담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초상화는 예술작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초상화는 조상, 그 자체를 표상했다. 조교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초상화 연구에 바쳤다. “워낙에 렘브란트를 비롯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를 좋아했어요. 초상화의 매력이라면 화폭을 통해 한 인간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죠.” 개인 사정으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국내 최초로 홍익대 대학원에 한국미술사 박사학위 과정이 개설되면서 한국미술사로 전공을 바꾸면서 ‘한국의 초상화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저서 ‘초상화 연구-초상화와 초상화론’(문예출판사)을 펴냈다. 여태껏 발표했던 초상화 논문 19편 중 12편을 추렸고, 새로운 자료를 보완하고 수정했다. 조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상화 연구의 정수”만 뽑은 책이다. 한국 초상화의 유형별 분류, 조선 시대 초상화의 성격 규명, 중국 초상화와의 비교 연구가 주를 이룬다.
중국에서는 초상화가 의례용뿐 아니라 감상용 목적으로도 제작돼 그 종류가 더 다양하다. 야외를 배경으로 한 야외초상화나 세대별로 자손들을 하나의 화폭에 담은 대도(代圖)라는 집단초상화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의례용이 대부분이어서 크기도 크고 거의 전신상입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시녀나 동자 등은 그리지 않고 대상 인물 1인만 묘사했죠.” 오른쪽으로 약간 고개를 돌리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려져 전형성을 띤다. 조교수는 이를 조선시대의 유교이념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이들 초상화 대부분이 봉안용이었고,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그려진 대상인물의 순간적이고 적나라한 모습보다는 오랫동안 숭배하고 기억하고 싶은 바람직한 성정이 드러난 모습을 원했기 때문에 이 같은 유형의 초상화가 대대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전신사조’(傳神寫照 · 형상을 통하여 정신을 전하는 것)와도 관련이 깊다. 화가들은 그림이 대상 인물과 얼마나 닮았느냐뿐 아니라 인물의 품격까지 묘사하도록 강요 받았다. 채제공 초상, 서직수 초상 등을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초상화가 화산관 이명기를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뽑는 조교수. 조교수는 조만간 한국의 대표적인 초상화 70여 점을 선정해 입체적으로 조명한 ‘한국 초상화 걸작선’을 들고 일반 독자들 곁을 찾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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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w Me / Moya Bren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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