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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박물관] 석굴암, 1910년대 사진 공개 여파

Gijuzzang Dream 2007. 11. 11. 03:08
 
 
 석굴암 부처는 알고 계실텐데…1910년대 사진 공개 여파  

 

 

 

                           


 석굴암 전실() 구조는 굴절형이었을까, 직선형이었을까.
전실 좌우 벽의 팔부중상(·불법을 수호하는 불교 신들의 조각상)은 8구()였을까, 6구였을까.
현재 전실 입구 쪽의 팔부중상 2구와 나머지 6구의 모양과 크기는 왜 다른 것일까.
 

17일 성균관대 박물관이

1910년대 초 석굴암 전실 사진을 공개한 것을 계기로 석굴암 전실의 원형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 팔부중상은 8구인가, 6구인가

 

현재 석굴암 전실 좌우엔 팔부중상이 4구씩(총 8구) 세워져 있다.

그러나 성대 박물관이 발표한 사진엔 좌우로 3구씩(총 6구) 보이고 입구 쪽이 꺾인 상태. 이 꺾인 부분에 1구씩 더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10년대 초에는 꺾인 부분에 조각상이 없었다.

일본인 미술사가인 나카무라 료헤이()의 ‘조선 경주의 미술’엔 당시 전실의 안쪽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이를 보면 꺾인 부분에 조각상은 보이지 않고 돌만 쌓여 있을 뿐이다.

 

조선총독부는 1913년 무너진 석굴암을 수리하는 도중 주변에서 발굴한 2구의 조각상을 팔부중상의 일부라고 판단해 굴절 부위에 붙였다. 문명대 동국대 교수나 성대 박물관의 김대식 학예실장 등 불교미술 관계자들은 조각상들이 굴절 부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굴절 부위에 조각상들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카무라는 책에서

“4번째 조각상 2개는 1913년 보수공사를 할 때 조선총독부가 부가했다…이는 추악의 극이며 실로 대담함 추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을 연구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도 1910년대에 이미 “문제의 두 상은 석굴 인근에서 발굴한 것으로, 무슨 근거로 추가를 감행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제가 찾아낸 2구의 조각상은 나머지 6구와 모양이 다른 점도 논란거리.

입구 쪽 2구가 키도 작고 조각 수법과 표현 방식이 다르다. 같은 팔부중상을 조각하면서 왜 이 2구만 달리 표현한 것일까.

김 실장은 “직선 부위가 아니라 굴절 부위에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모양이 다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것도 추론일 뿐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 굴절형인가, 직선형인가

 

1964년 국내 전문가들은 석굴암 보수공사를 하면서 팔부중상이 조각된 전실의 구부러진 부분을 직선으로 펼쳐 놓았다. 발굴을 해 보니 직선의 흔적이 남아 있어 직선형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13년 사진에 나오는 굴절형의 전실 모습이 원형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후 굴절형인가 직선형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나 매듭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

문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굴절형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전실 부분을 다시 한 번 발굴해 보지 않고서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07년 9월19일,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