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오딧세이] 시인 윤동주는 고국에 묻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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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서 자주 읽는 시가 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다. 이 시에는 북간도가 고향인 시인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윤동주가 1941년 서울 연희전문에서 수학 중이던 시절에 쓴 시다.
시 속에 나타난 중국 소녀들의 이름은 윤동주가 북간도의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고향 인근 중국인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1931년의 시절, 알고 있던 사람들을 떠올린 것이라고 그의 연구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그의 증조부인 윤재옥은 1886년 함경도 회령을 떠나 두만강 이북 자동촌에서 살았다. 1900년에는 그의 할아버지인 윤하연이 명동촌으로 옮겨갔다. 그의 집안은 어떻게 보면 간도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방이 되기 전인 1945년 2월 옥사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경향신문 주필인 정지용 시인이다. 윤동주의 친구인 강처중은 경향신문 기자로 있으면서 1947년 윤동주의 시를 정지용에게 보였다. 윤동주는 생전에 정지용의 시를 좋아했다. 정지용은 윤동주 시의 뛰어난 작품성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1947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에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가 처음 실렸다. 정지용은 1948년 발행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에 서문을 실었다. 서문 일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얼음 아래 다시 한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은 이제 고토 간도에 누워있다.”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갑자기 이런 의문이 생긴다. 우리나라 말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한국인인 그는 과연 남의 나라 땅에 묻힌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땅에 묻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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