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석주선박사 10주기 추모 출토복식 특별전 - 환생

Gijuzzang Dream 2007. 11. 6. 21:51

 

 

 

 

 

 

 "다시 태어난 우리 옷 - 환생"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딸인 청연군주(1754~1821)의 당의(唐衣)로,  이번 전시에 최초공개됩니다.
- 청연군주의 무덤에서 발견된 출토복식들은 학계에 최초로 공식발표되었던 것들입니다.
 
 
 

 전시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 2006년 4월26일 - 5월28일

  

 전시내용  

1존  여성의 옷 : 일상과 의례를 넘나들며

  - 혼례에 갖추어 입는 옷 : 단령과 원삼

  - 선이 아름다운 옷 : 당의

  - 여인의 외출복 : 장의

  - 여인의 기본 차림새 : 치마와 저고리

  - 불경을 담은 옷 : 적삼

  - 조선시대 임부복


2존  선비의 옷 : 일상 속에서도 예를 갖추며

  - 트임이 있는 겉옷 : 소창의, 중치막, 창의

  - 기품과 멋이 담긴 옷 : 심의, 도포

  - 선비의 방한용 겉옷 : 장의

  - 활동성을 강조한 옷 : 액주름, 방령

  - 선비의 기본 차림새 : 바지, 저고리

  - 조선판 사랑과 영혼: 400여년전의 편지

  - 관리들의 대표적인 옷 : 단령

  - 유행따라 바뀌는 옷 : 철릭

  - 소매가 짧거나 없는 옷 : 답호

  - 깃이 곧은 옷 : 직령

  - 나라의 큰 행사에 입는 옷 : 조복


3존  미라의 방(조선소년미라는 4.30일까지 전시됨)

  - 소년미라 300년만에 깨어나다


4존  다시 태어난 우리옷, 환생

  - 무덤에서 나온 우리옷 재현품 20여점과 환생길


5존  출토복식연구의 개척자 석주선박사


※ 별도의 기념촬영 코너, Q/A 코너, 옷감무늬 찾아보기 코너가 있음.

 

 

            

 

 

 

 

 

 

 

 

▲ 조경 무덤출토 단령(團領) Official Robe with Round Neck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31호


조경(1541-1609) 

경기도 화성시 출토(1998. 9)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복식유물은 출토될 당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누런색을 띄는데 이 유물의 경우 검정에 가까운 짙은 밤색을 띄고 있다.

형태는 목파임이 적고 소매는 긴 조선전기 단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앞무와 소매배래의 처리방법은 지금까지의 출토유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형태이다. 앞무의 윗부분을 삼각형으로 잘라내고 소매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삼각형 모양을 이어주어 배래를 마무리하였다. 뒷길에는 대(帶)를 끼울 수 있는 고리가 있다. 주를 사용한 홑옷이다.


▲ 조경 무덤출토 해치흉배 Mythical Unicorn-lion Insignia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31호


조경(1541-1609) 

경기도 화성시 출토(1998. 9)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해치흉배로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해치는 일명 ‘해태’ 라고 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안다는 상상의 동물로, 뿔 달린 머리에 갈기가 돋아 있고 몸에 상서로운 기운이 차 있어서 천지의 조화와 정의를 상징한다. 따라서 사헌부(司憲府)의 장관인 대사헌의 흉배 무늬로 사용되었다.

금사와 견사로 수를 놓았는데 기법이 특이하며 매우 정교하다. 해치 주위로 위쪽에는 구름, 아래쪽에는 불로초와 파도 등을 장식하였다. 머리 위쪽의 갈기와 꼬리는 푼사로 평평하게 수를 놓은 후 금사로 꼬리결을 만들면서 징금수로, 몸체는 꼰사로 평수와 자련수의 기법으로 수놓았다. 수놓은 후 모든 테두리를 돌아가며 금사로 장식하였다.


▲ 조경 무덤출토 답호 Coat with Short Sleeve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31호


조경(1541-1609) 

경기도 화성시 출토(1998. 9)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겉과 안이 모두 칼깃이고 10㎝ 너비의 동정이 달려있다. 소매부리로 갈수록 약간 넓어지는 직선배래 모양이고, 소매부리로 갈수록 약간 넓어지는 직선배래 모양이다.

정응두(1508-1572)의 답호와는 달리 무의 윗부분이 뾰족하다. 밑단과 옆단은 따로 바느질하지 않고 대부분 식서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길과 무의 경계는 앞길과 뒷길에 각각 4㎝를 삼각형 모양으로 접어서 줄여주었다. 연화만초문(蓮花蔓草紋)으로 제작한 홑옷으로 어깨바대에는 주(紬), 옷고름에는 채화라(菜花羅)를 사용하였다.


▲ 조경 무덤출토 철릭(帖裏) Coat with Pleats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31호


조경(1541-1609) 

경기도 화성시 출토(1998. 9)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겉깃은 칼깃이며 소매는 매듭단추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아래의 치마부분에는 0.3~0.4㎝의 잔주름을 잡고 4.5㎝의 너비로 안단을 대주었다.

고름바대는 직금단(織金緞)을 사용하고, 도련의 안단은 문사(紋紗)로 마무리하였다. 대화문단을 사용한 홑옷이다.


▲ 이언충 무덤출토 직령(直領) Coat with Straight Collar


중요민속자료 제243호


이언충(星州李氏 大司憲公 彦忠, 1524-1582)

서울특별시 중계동 출토(2000. 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직령은 포괄적으로는 곧은 깃이 달린 포류(袍類)를 지칭하며, 단령의 받침옷을 겸하기도 한다. 고려시대에 하급관리의 관복으로 제정된 후, 조선 말기까지 여러 계층에서 착용하였다. 사대부에게는 평상복이나 의례복이었으며, 하급관리에게는 관복으로 착용되었다. 단령과 비교했을 때, 깃 외의 부분은 거의 동일하며 단령의 형태변화에 따라 직령도 변화한다.

이 유물은 이언충의 직령 네 점 중의 하나로, 임란 이전의 조선전기 직령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깃의 중앙이 접힌 이중깃에, 길이는 앞이 뒤보다 6㎝ 짧다. 무는 길고 넓은 사다리꼴로 이중으로 접히도록 되어 있다. 옷고름은 짙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짧고 좁은 것이 상하 두 개씩 네 개가 달려있다. 동정과 겉감, 안감에 모두 주를 사용한 솜옷이다.


▲ 이변 무덤출토 창의(?衣) Coat with Slits in the Rear


 

 

이변(全州李氏 耽陵君 1636-1731)

경기도 용인시 출토(1981. 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창의는 곧은 깃에 길이가 길며, 옆선이나 뒷중심에 트임이 있는 포(袍)이다. 출토된 창의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중치막이나 소창의보다 고급 옷감를 사용한 것이 많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듯이 당시에 관복용 받침옷의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의 소매는 중기에 비하여 통이 넓은 두리소매로 후기의 포袍 형태가 반영되어 있다. 겉감은 운보문단, 안감은 주를 사용하였다.


▲ 이변 무덤출토 답호 Coat with Short Sleeve


이변(全州李氏 耽陵君, 1636-1731)

경기도 용인시 출토(1981. 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소매가 없어진 중기형 답호이다.

뒷중심의 트임이나 깃, 옷고름 등은 동시대의 창의와 형태가 같다. 조선전기 답호에 비하여 섶은 중심으로 이동하고 옷고름은 길고 넓어졌다. 이것이 후기의 전복(戰服)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뒷트임은 51㎝이다. 겉감은 연화문단, 안감은 주를 사용하였다.


▲ 이변 무덤출토 배자(褙子) Double Layered Vest


이변(全州李氏 耽陵君, 1636-1731)

경기도 용인시 출토(1981. 6)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이 유물은 뒷길과 끈(옷고름), 고리가 완벽하게 남아있어서 입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등에서 어깨로 연결된 좁은 앞길의 끝에 달린 끈을 옆선 고리에 걸어 앞에서 교차해서 입는 옷이다. 겉감으로 작은 꽃들이 모여 둥근 틀을 이룬 화문주를 사용한 누비옷이다.


▲ 이직 무덤출토 조복(朝服) Silk Coat


이직(全州李氏 密昌君, 1677-1746)

서울특별시 상암동 출토(1999. 1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조복(朝服)은 설, 동지 등의 큰 명절과 국가의 주요한 축하행사에 왕 이하의 관리들이 입는 옷이다. 관리들의 옷 중에 가장 화려하여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고도 한다. 경축행사이므로 의(衣)의 색상은 붉은색으로 하였다. 전체적인 구성은 같지만 등급에 따라 양관의 양(梁)의 숫자, 후수(後綬)의 무늬와 위에 부착하는 고리의 재질, 혁대의 장식, 홀(笏)의 재질 등에 차별을 두었다.

이 유물은 의(衣), 상(裳), 폐슬(蔽膝), 후수(後綬), 대대(大帶) 등을 갖춘 이직의 조복 일습의 하나이다.

의는 웃옷으로, 넓은 당코깃에 소매부리와 가장자리에는 선을 둘렀는데, 선을 댄 부분이 다소 넓은 편이다. 겉감은 무문사, 안감은 매우 얇은 세주(細紬)를 사용하였다. 아들인 이익정의 조복 의(衣)는 삼족항라를 사용하였다.


▲ 이직 무덤출토 단령(團領) Official Robe with Round Neck

 

 

 

이직(全州李氏 密昌君, 1677-1746)

서울특별시 상암동 출토(1999. 1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묘주가 착용하고 있던 쌍학흉배가 달린 단령, 대(帶), 화(靴) 일습의 하나이다. 겉옷과 받침옷을 각각 홑옷으로 제작하여 끼워준 18세기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생전에 입었던 것을 그대로 착용하였다. 전 시대보다 깃의 파임이 전대(前代)보다 깊다. 겉감과 안감에 모두 운보문단을 사용하였으나, 겉감에 비하여 안감의 질은 다소 떨어진다.

쌍학흉배는 운보문단(雲寶紋緞)에 위아래에 두 마리의 학을 배치한 것으로, 가슴을 모두 가릴 정도로 크다(가로 31, 세로 34㎝). 조선 말기에는 크기가 작아지지만 무늬와 구도는 동일하다. 숙종과 영조년간의 흉배제도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대(帶)는 공단 바탕에 무소뿔무늬를 구체적으로 그려서, 1품용 서각대(犀角帶)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 이직 무덤출토 답호 Coat with Short Sleeve


이직(全州李氏 密昌君, 1677-1746)

서울특별시 상암동 출토(1999. 1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네모난 맞깃에 소매가 없이 답호이다. 깃에는 동정을 달았고, 도련의 안단은 별도로 처리하였다. 방한용으로 집안에서 단독, 또는 받침옷으로 입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겉감으로 추사, 안감으로 초를 사용하고, 솜이 없이 0.8㎝ 정도로 정교하게 누벼 주었다.

 

 


▲ 이직 무덤출토 화(靴) Mid Calf Length Boots


직(全州李氏 密昌君, 1677-1746)

서울특별시 상암동 출토(1999. 1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화(靴)는 군화처럼 신목이 있는 신발로 관복용이다. 이 유물은 묘주가 착용하고 있던 쌍학흉배달린 단령, 대(帶), 화(靴) 일습의 하나이다.

아랫부분은 세 조각의 옷감을 이어서 모양을 만들었고, 신목 입구에는 5㎝ 너비의 화문단(花紋緞)을 대주었는데 뒷부분은 터주었다. 평소에 신는 목화 모양으로 비단으로 정교하게 누비주름을 잡았다.

겉은 공단, 안은 명주를 사용하였다. 밑창은 명주를 겹으로 사용하였다.


▲ 홍희준 무덤출토 바지(袴) Pants


홍희준(豊山洪氏 羲俊, 1761-1841)

충청남도 천안시 출토(1991. 11)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홍희준의 분묘에서 출토된 바지 두 점 중의 하나이다. 허리띠와 대님, 행전까지 일습이 수습되었다. 옷감은 목면으로 만들었다.

 


▲ 홍희준 무덤출토 저고리 Jacket


홍희준(豊山洪氏 羲俊, 1761-1841)

충청남도 천안시 출토(1991. 11)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남자 옷의 기본차림은 웃옷인 저고리에 아래옷인 바지이다. 저고리 위에는 방한용이나 장식용으로 배자, 마고자 등을 덧입기도 하였다.

이 유물은 홍희준의 분묘에서 출토된 저고리 세 점 중의 하나이다. 칼깃에 안섶은 아래 부분을 한 번 이어 바느질한 겹저고리이다. 겉감과 안감에 고운 삼팔주를 사용하였다. 

 

▲ 정응두 무덤출토 답호 Coat with Short Sleeve


정응두(羅州丁氏 忠靖公, 應斗, 1508-1572)

경기도 고양시 출토(1988. 1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답호는 포(袍)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변화하는 옷이다. 유물이나 명칭은 조선전기에만 보이며, 중기와 후기까지 다른 모양과 이름으로 이어진다.

전기에는 반소매에 양 옆의 무가 넓고 트였으며, 깃과 동정은 다른 포와 같이 직령이다. 이는 전기의 직령(直領)과 같은 것으로 소매가 반소매인 것만 다르다. 중기에는 소매가 없어지고 다른 형태는 같은 시대의 창의와 같다. 이것이 후기에는 전복(戰服)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유물은 조선전기 답호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직선배래의 반소매 포(袍)로 품은 매우 넓다. 깃은 직령에 이중 칼깃이며, 무는 양옆으로 길게 뻗으면서 트여있고 이중으로 접히도록 하였다. 길이는 앞이 뒤보다 10㎝ 정도 짧다. 옷고름은 앞뒤 두 쌍씩 네 개로 짙은 밤색이다. 옷고름에서 길의 고리에 연결시키는 쪽은 가는 고리를 만들어 달고, 옷고름을 매는 부분은 별도로 좁고 짧게 만들었다. 운보문단으로 만든 홑옷이다.


▲ 정응두 무덤출토 철릭(帖裏) Coat with Pleats


 

 

 

 

 

정응두 (羅州丁氏 忠靖公 應斗, 1508-1572)

경기도 고양시 출토(1988. 1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정응두의 출토복식은 56점인데, 이 중 철릭은 23점을 차지하여, 조선전기에 철릭이 많이 착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물은 위와 아래의 길이가 거의 같은 비율이고, 소매는 매듭단추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 겉감과 안감에 모두 주를 사용하였다.


▲ 동래정씨 무덤출토 중치막(中致莫) Coat with Side Slits

 

 

 


동래 정씨 일가
(東萊鄭氏 一家, 1574-1669)

경기도 여주시 출토(1987. 3)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중치막은 곧은 깃에 소매통이 넓고, 무가 없으며 옆이 트인 포(袍)이다.

소창의처럼 ‘세 자락 옷’이지만 소매가 넓은 것이 다르다. 도포나 대창의의 받침옷이며 얇은 술띠를 허리에 맨다.

이 유물은 동래 정씨 일가의 분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것으로, 묘주는 확실하지 않다. 창의류의 초창기 형태로, 소매는 진동에서 소매부리쪽으로 넓어지는 절구통(두리소매) 모양이다. 겉감은 소화문초, 안감은 주를 사용하여 곱게 누빈 방한용 속옷이다.


▲ 동래정씨 무덤출토 배자(褙子) Double Layered Vest


래 정씨(東萊鄭氏 一家, 1574-1669)

경기도 여주시 출토(1987. 3)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배자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웃옷이다. 섶과 소매, 고름이 없다. 조선후기의 남자배자는 허리정도의 길이에 소매가 없고 마주보는 둥근 깃에 동정이 달린 형태가 된다.

이 유물은 깃은 네모에 이중이며 옷감과 다른 색으로 하였다. 소매가 없고 옆은 완전히 트여있다. 길이가 다른 포에 비하여 짧은 편으로, 집에서 간편하게 입도록 고안한 방한용 옷이다. 이와 같은 형태는 드물지만 조선 중`후기 출토유물로 나오고 있어 방한복 또는 편복이나 받침옷이 다양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겉감은 격자화문단, 안감은 주를 사용하였고, 얇은 솜을 두었다.


▲ 신여관 무덤출토 방령(方領) Square Collar Long Jacket


 

 

 

 

신여관(高靈申氏 郡守公 汝灌, 1530년대초-1580년대)

경기도 양주시 출토(1998. 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방령은 깃이 네모나고 여밈이 나란한 옷으로, 품이 넓고 반소매에 앞이 길고 뒤가 짧다.

조선전기 임란전후에만 드물게 나타난다. 뒤가 짧은 것은 말타기에 적합하도록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은 반소매에 앞이 길고 뒤가 짧은 형태이다. 앞은 매듭단추로 맞여미도록 하였다. 양 쪽의 마주보는 섶의 윗부분에는 주름을 잡았다.

겉감은 소화문단, 안감은 주를 사용하였다.


▲ 이익정 무덤출토 심의(深衣) Coat for Scholar


 

 

 

이익정 (全州李氏 靖簡公 益炡, 1699-1782)

서울특별시 상암동 출토(1999. 1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심의는 위와 아래를 따로 바느질하여 연결한 옷인데, 다른 포와는 달리 무늬가 없고 흰색이다. 덕망 있는 학자들이 편안하게 있을 때 애용하였으며, 유학자들의 숭상이 대단하여 각 부분마다 상징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출토 당시 묘주가 가장 겉에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의, 복건, 대(帶), 조대(組帶), 운혜(雲鞋)가 일습의 하나이다.

아래는 옷감 12폭을 이어서 만들었고, 옷고름은 위와 아래의 연결선에 달았다. 섶과 도련, 소매부리, 대의 끝부분에 두른 선은 길과 같은 공단인데 짙은 갈색으로 남은 것을 볼 때, 검은색으로 추정된다. 대는 허리를 한 바퀴 둘러 앞에서 동심결(同心結)로 맨 다음, 그 위에 조대(組帶, 230㎝)를 두 가닥으로 나란히 걸었다. 조대의 색은 변하였으나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를 매는 방법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이익정 무덤출토 운혜(雲鞋) Shoes with Cloud Pattern

 


이익정(全州李氏 靖簡公 益炡, 1699-1782)

서울특별시 상암동 출토(1999. 1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운혜는 앞코와 뒤축에 구름무늬를 장식한 신발이다. 기록에는 있지만, 출토유물로 정태제(鄭泰齊, 1612-1699)와 이익정의 수의용 신발만이 유물로 전해진다.

이 유물은 이익정의 심의 일습의 하나이다. 망자(亡者)에게 신기는 신은 옷감이나 종이로 간단하게 만든 것이 대부분인데, 겉은 공단, 안은 공단(바닥)과 명주로 하고 사이에는 무명을 겹쳐서 모양이 잘 잡히도록 만든 신발이다. 앞코와 뒤축에는 구름모양 장식을 덧붙였다. 밑창도 명주로 되어있는데, 다른 출토사례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밑창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초상화에 나타난 것과 같은 모양이어서, 운혜의 모양 및 재료와 만듦새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 홍계강 무덤출토 액주름(腋注音) Coat with Pleats Underarm


 

 

 

 

홍계강 (南陽洪氏 縣監公 係江, 16세기 추정)

경기도 양평군 출토(198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액주름은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을 잡아 실용성과 멋을 낸 옷이다. 편안하게 있을 때 착용하거나, 관복의 받침옷으로 입었다. 시기상으로는 조선전기부터 임란 후 1600년대 초까지만 나타난다. 다른 겉옷에 비해서 소매길이가 짧고 통이 좁으며 옷길이도 조금 짧은 편이다.

이 유물은 뒷길이가 앞길이에 비해 짧아 평상용보다는 말을 탈 때 착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총길이나 소매도 다른 관복류(官服類)에 비하여 작다. 다만 품, 배래, 4개의 옷고름, 겨드랑이까지 오는 여밈 등은 조선전기 포류(袍類)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겉감은 짙은 남색을 띤 공단, 안감은 소색(素色) 주를 사용하였다.


▲ 고여우 무덤출토 적삼(赤衫) Inner Jacket


고여우(濟州高氏 參判公 汝雨, 1560-1630)

충청남도 천안시 출토(1995. 3)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출토 당시 묘주가 착용하고 있었던 삼베적삼이다. 다른 옷처럼 겨드랑이에 무를 따로 재단하지 않고, 진동에서 연장하여 내린 부분을 접어 바느질하였다. 겨드랑이의 삼각 무나 섶에 주름을 잡은 모양은 조선전기 적삼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깃은 3㎝로 좁고 옆선에 트임(8㎝)이 있다.


▲ 김함 무덤출토 장의(長衣) Long coat


중요민속자료 제209호


김함(金海金氏 涵, 1568-1598)

전라남도 영암군 출토(1985)

솜누비,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관리


 

 

 

장의는 조선시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입었던 포(袍)로서, 여자의 경우에는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쓰개로 용도가 변화하였다. 쓰개로 변천되기 이전의 장의는 성별구분이 거의 없었지만, 다만 여자의 것은 소매 끝에 흰색 끝동이 달리며, 깃의 색상을 길과 달리 하고 화려한 문양이 있는 직물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유물은 18세기 이전의 일반적인 장의 형태이다. 흰색 끝동에 길과 다른 색의 깃을 달고, 겨드랑이의 삼각무에 운문단(雲紋緞)을 사용하여 여성의 것으로 생각된다. 묘주인 김함이 남자임에도 여자의 장의가 출토된 것은 관의 내부를 가족의 옷으로 채워 넣던 당시의 풍습으로 이해된다.


▲ 청연군주 무덤출토 당의(唐衣) Ceremonial Long Jacket


청연군주(淸衍郡主, 1754-1821)

경기도 광주시 출토(1963)

겹, 도류문단(桃榴紋緞), 운보문단(雲寶紋緞),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소생인 청연군주와 부군 김기성(金箕性)의 합장묘에서 출토된 복식 200여 점 중 하나로 왕실용 당의이다.

두 벌의 겹당의로 구성되어 있으며, 속당의의 거들지가 겉당의로 넘어와 접히면서 연결된다. 깃은 목판당코깃이며, 같은 시기 저고리처럼 소매가 매우 좁고 길다. 어깨와 소매, 길 아래 부분에 금박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겉당의는 도류문단, 속당의는 운보문단을 겉감으로 사용하였다. 안감은 모두 주(紬)를 사용하였다.


▲ 청연군주 무덤출토 저고리(赤古里) Ornamental Jacket


청연군주(淸衍郡主, 1754-1821)

경기도 광주시 출토(1963)

겹, 포도다람쥐문단(松鼠葡萄紋緞),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깃은 목판당코깃에 소매는 좁고 길고, 길이가 짧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저고리이다. 깃과 곁마기는 짙은 색 옷감을 사용하였다. 겉감은 다람쥐와 포도무늬가 있는 단(緞), 안감은 주(紬)를 넣어서 만들었다.


▲ 은진송씨 무덤출토 저고리(赤古里) Ornamental Jacket


정경부인 은진 송씨 (羅州丁氏 應斗 配位, 恩津宋氏, 1509-1580)

경기도 고양시 출토(1988. 10)

겹, 운문단(雲紋緞), 금선단(金線緞)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여자의 저고리는 기본 웃옷으로, 기본형태는 동일하지만 시대에 따라 길이, 품, 깃과 소매배래의 모양 등에서 많은 변화를 보인다. 따라서 저고리의 형태로 시대를 가늠하기도 한다. 조선초기에는 남자의 옷처럼 품이 넓고 길었던 것이, 후기로 가면서 점차 짧아져 가슴을 가릴 수 없고 입고 벗기에 불편할 정도로 좁아진다. 적삼 역시 저고리와 같은 변화를 보인다.

이 유물은 충정공(忠靖公) 정응두와 부인 은진 송씨의 합장묘를 이장할 때 충정공의 관 안에서 보공용(補空用)으로 출토된 저고리이다.

넓은 목판깃에 동정이 짧게 달려 있으며 옷고름은 달렸던 흔적만 남아있다. 소매 중간을 2㎝ 정도 접어 소매길이를 줄여준 것이 특징적이다.

녹색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길과 소매, 섶 등에 운문단을 사용하였다. 옷감의 구름은 완만한 곡선으로 묘사되어서, 당시 남성복에서 주로 보이는 입체형 구름과 차이를 보인다. 깃과 끝동, 겨드랑이에는 편금사(한지에 금박을 입혀 가늘게 자른 금사)를 넣어 직조(織造)한 금선단을 사용하였다.


▲은진송씨 무덤출토 당의(唐衣) Minor Ceremonial Jacket with Gold-leaf Imprints


정경부인 은진 송씨(羅州丁氏 應斗 配位, 恩津宋氏, 1509-1580) 

경기도 고양시 출토(1988. 10)

겹, 주(紬), 무문단(無紋緞)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당의는 ‘당저고리’, ‘당의복’, ‘당고의’ 등으로 다양하게 기록하였던 저고리의 하나로 ‘당(唐)’을 수식어로 사용하여 의례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거들지를 달거나 화려한 금선단이나 화문단을 사용하고, 옆트임이 있다. 기본 형태는 동일하나 시대에 따라 길이와 품, 소매, 고름 등이 부분적으로 변화하는데, 16세기에는 품이 넓고 소매가 길며 소매배래와 밑단이 직선이다. 장식이 되는 금선단이나 금박은 깃, 섶, 겨드랑이, 앞뒷길 하단에 사용하였다.

이 유물의 소매부리에는 안감과 달리 고운 세주(細紬)를 별도로 대어 준 것을 볼 때, 소매부리는 걷어 입는 거들지 부분으로 생각된다.

깃과 섶, 겨드랑이, 길의 하단에는 무문단을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주(紬)를 사용하여 겉감에 두 가지 소재가 사용되었다. 발굴 당시에는 무문단 부분에 화려한 연화만초문(蓮花蔓草紋)의 금박장식이 있었으나, 현재는 금박에 쓰였던 아교 흔적만 남아 있다.


▲ 해평윤씨 무덤출토 당의(唐衣) Ceremonial Long Jacket


 

 

 

 

해평 윤씨(海平尹氏, 1660-1701)

경기도 파주시 출토(2001. 6)

홑, 연화만초문사(蓮花蔓草紋紗)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평 윤씨의 당저고리류 세 점 가운데 하나이다. 앞 시대의 당저고리에 비하여 소매가 짧아졌고, 품과 옷자락은 전체적으로 좁아졌으며 옆선도 곡선화되었다. 소매에는 구름과 학문양이 있는 흰색의 사(紗)로 넓은 거들지를 달았다. 깃은 목판당코깃이며 깃 너비의 반 정도나 되는 넓은 동정을 달았다. 안고름은 겉고름보다 약간 옅은 색에 짧고 가늘다. 연화만초문사로 만든 홑옷이다.


▲ 해평윤씨 무덤출토 원삼(圓衫) Ceremonial Robe


 

해평 윤씨(海平尹氏, 1660-1701)

경기도 파주시 출토(2001. 6)

홑, 연화문사(蓮花紋紗), [색동]연화문단(蓮花紋緞), [한삼]도류문단(桃榴紋緞)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원삼은 마주보는 깃에 넓은 소매에는 3줄 색동과 한삼이 달린 형태로 내외명부의 예복이자 혼인하는 여자들의 혼례복으로도 착용되었다.

이 유물은 겨드랑이 아래부터 트여서, 양 옆선은 밑단으로 내려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앞중심, 옆선, 밑단에는 안단이 있다. 깃은 서로 마주보는 맞깃이며, 소매는 같은 시기의 남자 포(袍)처럼 넓은 두리소매이다. 연화문단과 포도청솔문으로 색동을 대고 소매부리의 한삼은 도류문단으로 잇대었다. 두 쌍의 옷고름 중에서 아래쪽 옷고름 한쪽은 남아있지 않다. 금박이나 기타 장식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속이 비치도록 얇은 연화문사로 만든 홑옷이며, 동정은 무문주(無紋紬)를 사용하였다.


▲ 해평윤씨 무덤출토 치마(裳) Skirt


해평 윤씨(海平尹氏, 1660-1701)

경기도 파주시 출토(2001. 6)

홑, 연화문사(蓮花紋紗)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평윤씨의 치마 10점 가운데 유일한 장치마이다. 17세기 이후의 기록에서 ‘치마’와 ‘장치마’라는 기록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다른 분묘에서도 이와 유사한 장치마가 출토되는 것을 볼 때, 임란 이후의 예복용 치마의 형태로 생각된다. 16세기의 장치마와 구성법에서 크게 다른 점은 길이는 여전히 길지만 앞 길이를 줄이기 위한 별도의 바느질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걷어 올려 입는 치마를 ‘거들치마’라고 하듯이 허리끈을 묶는 등의 착장 방식으로 길이의 문제를 해결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유물은 6폭으로 치마 양 끝의 주름의 위치로 볼 때 오른쪽 여밈으로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겉주름은 2.5㎝ 정도이며, 허리말기에는 홑으로 만든 끈을 달았다. 연화문사로 만든 홑치마로, 선단과 밑단에도 같은 옷감으로 6㎝ 너비의 단을 둘렀으며 같이 출토된 홑당의의 재질과 흡사하다.


▲ 파평윤씨 무덤출토 저고리(赤古里) Ornamental Jacket


파평윤씨(坡平尹氏, 1735-1754)

충청남도 예산군 출토(2001. 4)

솜누비,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솜을 두고 곱게 누빈 저고리이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고 품과 소매통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소매 중간을 약 3㎝ 정도 접어서 소매길이를 줄여 준 것이 특징이다. 소매부리 안쪽에 4㎝ 폭으로 별도의 천을 대어주었는데, 오염시 부분 세탁 또는 교체가 쉽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동정과 옷고름은 없으나 달렸던 흔적이 있다. 겉감과 안감에 모두 주(紬)를 사용하고, 솜을 얇게 넣어서 1㎝ 간격으로 곱게 누볐다.


▲ 파평윤씨 무덤출토 배자(褙子) Vest


파평 윤씨(坡平尹氏. 1735-1754)

충청남도 예산군 출토(2001. 4)

솜, 주(紬), 면포(綿布)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배자는 남녀노소가 저고리 위에 덧입는 조끼모양의 옷으로, 앞이 여며지지 않고 소매, 섶, 고름이 없으며 깃은 좌우 모양이 같은 맞깃이다.

이 유물은 파평 윤씨의 출토복식 십 여점 중에서 유일한 배자 유물이다.

앞은 몸판과 같은 감으로 만든 매듭단추 두 개로 여미도록 되어 있다. 배자의 양 옆은 모두 트인 형태에 겨드랑이 아래로 넓은 띠를 달아 앞뒤 길을 고정하였다. 함께 출토된 저고리들이 배자의 품이나 길이와 거의 일치하여 저고리 위에 착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겉감은 주(紬), 안감은 면포를 사용하고 얇은 솜을 두어서 만들었다.


▲ 문화유씨 무덤출토 단속곳(단이의, 單裏衣) Padded Underpants


문화 유씨
(碧珍李氏 配位, 文化柳氏, 1615-1685)

서울특별시 하계동 출토(1988.5)

솜, 무명(綿)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단속곳은 여자 속옷의 하나로, 치마 속에 입는 가랑이가 넓은 바지이다.

이 유물은 바지단에 접음단 장식을 한 단으로 하였는데, 다른 출토사례 중에는 두 단으로 한 것도 있다. 고운 무명에 솜을 두텁게 넣어서 만들었다.


▲ 경주이씨 무덤출토 장의(長衣) Long coat


경주 이씨(晋州柳氏 參判公 綎 配位, 慶州李氏, 夫1684-1753)

경기도 용인시 출토(2003)

누비, 문단(紋緞)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화려한 무늬의 단(緞)을 사용하고 소매 끝에 흰색 거들지를 단 장의이다. 깃의 색상은 길과 같은 색으로 하였으나 옷고름과 겨드랑이의 삼각 무는 짙은 색 직물을 사용하였다.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지 않고 좁은 간격으로 곱게 누볐는데, 매장환경의 영향으로 솜이 삭았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 경주이씨 무덤출토 저고리(赤古里) Ornamental Jacket


경주 이씨(晋州柳氏 參判公 綎 配位, 慶州李氏 夫 1684-1753)

경기도 용인시 출토(2003)

누비, 문단(紋緞)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짙은 색으로 깃과 곁마기를 장식한 저고리이다. 끝동은 다른 무늬의 직물로 넓게 달아 주었다. 깃은 목판당코깃이다. 겉고름은 한쪽이 없어졌고, 안고름은 겉고름보다 좁고 짧다. 겉감으로 다람쥐와 포도무늬가 있는 단(緞)을 사용하였다.


 

▲ 청주한씨 무덤출토 장저고리(長赤古里) Ornamental Long Jacket

청주 한씨(淸州韓氏, 16세기 후반 추정)

경기도 시흥시 출토(1979. 5)

솜,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이 유물은 겨드랑이 아래에 트임이 있는 70-80㎝ 내외의 조선전기 장저고리로 갈색 깃이 달린 특이한 유형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는 해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광해군비 장저고리(중요민속자료 제3호)와 고령 신씨 출토복식에서도 보인다.

전세유물인 광해군비 장저고리 겉감은 홍색 주(紬)이며 부분적으로 탈색이 된 상태이다. 깃과 고름은 자색으로 하였다. 안감은 트임 부분에는 겉감과 유사한 홍색 주를 대어주었고 나머지는 흰색 주를 사용하였다. 이를 통하여 이와 유사한 출토유물의 색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 양천허씨 무덤출토 저고리(赤古里) Ornamental Jacket


 

양천 허씨(陽川許氏, 17세기 추정)

충청남도 청양군 출토(1982)

겹, 주(紬), 운문단(雲紋緞),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연고(緣故)가 없는 분묘에서 발견되었으나, 남아 있던 명정(銘旌) 조각들을 조합하여 양천 허씨 성을 가진 여인임을 알 수 있었다. 목판당코깃에 소매배래는 부리쪽으로 좁아지는 17세기 여자 저고리의 일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묘주를 17세기의 인물로 추정하는 자료가 된다.

깃, 소매부리, 옷고름은 길과 다른 색상과 운문단을 사용하였으며 여자의 옷에서는 좀처럼 쓰이지 않는 구름무늬 직물을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겉감은 주와 운문단, 안감은 주(紬)를 사용하였다.


▲ 남원양씨 무덤출토 다라니경치마(陀羅尼經 裳) Skirt



남원 양씨(慶州鄭氏 溫 配位, 南原梁氏 夫 1481-1538)

경기도 파주시 출토(1995)

홑, 생초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정온의 분묘에서 출토된 적삼과 일습인 것으로 추정되는 치마이다. 무릎에 해당하는 네 부분에 다라니경을 찍었다. 보공용으로 넣으면서 묘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적 문양을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생초를 사용한 홑치마이다.

 

 

 

 

▲ 남원양씨 무덤출토 적삼(赤衫) Unlined Jacket


남원 양씨 (慶州鄭氏 溫 配位, 南原梁氏 夫, 1481-1538) 

경기도 파주시 출토(1995)

홑, 연화만초문사(蓮花蔓草紋紗)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정온의 분묘에서 출토된 보공품으로, 부인 남원 양씨의 적삼으로 추정된다.

앞길에는 보살상, 비천상, 다라니경, 뒷길과 소매에는 연꽃과 정령(精靈) 등의 문양을 찍어서 불심(佛心)을 담았다. 보공용으로 넣기 위하여 불교적 문양을 시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의 저고리 깃과 비교해 볼 때 깃 너비가 4㎝ 정도로 매우 좁다. 겉깃과 동일한 너비의 옷고름이 달렸던 흔적이 있으며 옆선에 트임이 있다. 연화만초문사를 사용하였다.


▲ 해평윤씨(남자어린이) 무덤출토 중치막(中致莫) Coat with Side Slits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 (海平尹氏 男兒, 17세기 중엽 추정)

경기도 양주시 출토(2001. 11)

겹,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곧은 깃이 달리고 양옆이 트여있으며 붕어배래 소매가 달린 임진왜란 직후 중치막이다.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 분묘에서 출토된 성인용 중치막 두 점 중의 하나이다. 남자어린이의 아버지 것으로 추정된다. 양 쪽 소매 부분을 잘라 남자 어린이를 덮어주었다.

겨드랑이 아래부터 사다리꼴형 무가 달려있고 중간부분에 트임을 주었으며, 소매 배래선은 부리쪽으로 점점 넓어진다. 이러한 특징은 1620년대 출토복식에서 처음 확인되는 사항으로, 17세기 중반까지 보이다가 말기에 이르면 무가 작아지거나 없어지고 겨드랑이 아래부터 트임을 주는 형태로 변화한다.


▲ 해평윤씨(남자어린이) 무덤출토 중치막(中致莫) Long Coat for Child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海平尹氏男兒, 17세기 중엽 추정)

경기도 양주시 출토(2001. 11)

솜누비,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양 옆으로 트임이 있는 남자어린이용 겉옷으로 저고리 없이 가장 처음 입었던 옷이다. 깃, 소매, 섶, 무에 다른 색 옷감을 사용하였다. 국말 전세유물 가운데 오방장두루마기와 유사한 형태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일한 어린이묘 출토사례이다.

 

성인 남자의 중치막과 같은 형태이다. 고름은 달렸던 흔적만 남아있다. 겉감과 안감에 주(紬)를 사용하고, 솜을 넣어 누벼 방한용으로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 해평윤씨(남자어린이) 무덤출토 중치막(中致莫) Long Coat for Child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海平尹氏 男兒, 17세기 중엽 추정)

경기도 양주시 출토(2001. 11)

솜누비, 주(紬), 무명(綿)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고름을 달지 않고 별도의 띠를 만들어 둘러주었다. 겉감은 명주, 안감은 무명을 사용하고 솜을 넣고 누빈 것이나, 솜과 안감의 무명은 삭아서 형태를 찾기 어렵다. 겉감과 안감 모두 여러 조각을 이어서 만들었는데, 안감은 서로 다른 명주조각과 무명조각을 모두 사용하였다.


▲ 해평윤씨(남자어린이) 무덤출토 바지(袴) Pants for Child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 (海平尹氏 男兒, 17세기 중엽 추정)

경기도 양주시 출토(2001. 11)

겹,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 미라가 입고 있던 이 바지는 가랑이 윗부분에 트임을 주고, 왼쪽에 트임이 있다. 이것은 여자의 밑 트인 속바지와 같은 구성인데, 어린이의 용변을 편리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겉감과 안감에 모두 주(紬)를 사용하였다.


▲ 해평윤씨(남자어린이) 무덤출토 배냇저고리(赤古里) Jacket for New-born Baby


해평 윤씨 남자 어린이 (海平尹氏 男兒, 17세기 중엽 추정)

경기도 양주시 출토(2001. 11)

겹,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앞은 길고 뒤는 짧아서 배를 덮어주고 기저귀가 젖지 않도록 배려한 기능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안감에는 등솔기가 없고 겉감에는 고대에서 6㎝ 만큼만 바느질하였다. 깃이 고대 부분에만 좁고 짧게 달려 있고, 긴 고름이 몸통을 둘러 맬 수 있도록 길다.

주(紬) 두 겹으로 만들었다.


▲ 해평윤씨(남자어린이) 무덤출토 소모자(小帽子) Hat for Child


해평 윤씨 남자어린이(海平尹氏 男兒, 17세기 중엽 추정)

경기도 양주시 출토(2001. 11)

겹, 주(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유아용 모자이다. 겉은 여섯 조각, 안은 네 조각을 이어서 만들었으며, 정수리는 매듭단추로 장식하였고, 모자의 밑단 양 옆으로 끈을 달았다. 겉감의 밑단을 1.5㎝ 정도 길게 하여 안쪽으로 넘어가도록 안단처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