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어보고(전시)

[서울역사박물관 5/23-8/26] 중국국보展 - 3

Gijuzzang Dream 2007. 11. 4. 23:05

 

서울역사박물관에 모처럼 괜찮은 내용으로

많은 관람객들을 불러모으는 인기있는 전시 <중국국보전>.

 

이번 기회에 중국의 한-당나라까지의 연대표를 살펴보고

전반적인 문화들을 두루 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지않을까 싶네요.

 

여기저기

자료들을 모으는 작업을 하다보니까

 

이번 전시회와 같은 비슷한 내용으로

작년(2006년 7월28일-10월10일) 중국에서도 전시회를 했었네요.

 

이번에  전시되지않는 유물도 많이있지만 내용을 추려서 옮깁니다.

(유물내용을 조금 수정 정리했습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 기주짱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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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화제속에 작년 여름, 중국 호남성 박물관에서는
중국 39개 박물관에서 325점의 '최상의 보물'만을 모아

 

'성당시기로 나아가자!(走向盛唐)' 라는 '國寶大展' 특별전시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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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전시회를 제 중국인 친구가 갔다 온 다음
보고 느낀 점을 써서 자기 회사 홈피에 올렸는데
요즘 똑같은 유물들이 <중국국보전>이라는 타이틀로

서울에서 전시된다고해서 친구한테 메신저로 사진들을 건네받았고

그 기사를 번역해서 올립니다.


여러 박물관 수장품중에서 고르고 또 고른 보물이기에
많은 분들이 꼭 한번 친견(親見)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실제로 박물관에 가셨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일부 유물에 설명도 붙여보았습니다.

이 유물들이 서안의 병마용 박물관에 있는 '황금 마차'나
고궁박물관에 있는 '청명상하도(靑明上河圖)'같이 중국의 초(超) A급 국보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들 몇점 안되는 초 A급 국보를 제외하고는 최상의 유물들로써
이런 유물들을 이렇게 한 곳에 모아 전시를 하는 일은

앞으로  다시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중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차이나' 유물들이 아니라

'인류'가 만든 위대한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착은동우등(錯銀銅牛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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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시대(22~220년) 유물. 높이 46cm

1980년 강소성 한강현이라는 곳에 있는

후한 광무제의 9번째 아들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며 남경박물관에 있다.


이 작품에서는 동(銅)에다가 은실로 구름을 새겨 넣었고

용, 호랑이, 봉황, 사슴을 새겨 넣었다.
동으로 만든 등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있었는데
한대에 들어서면서 그 쓰임과 수요가 확대되면서 미적인 요소까지 추가된다.


이 유물은 소 모습을 하고 있는 
등좌(燈座)부분,

소 등허리부분에 위치한 등잔(燈盞)부분,

그을음이 빠져나가는 연도(烟道,이를 虹管이라고 함)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불을 밝혔을 때 생기는 그을음은

소의 배 안에 담겨져 있는 찬물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거기에서 용해된다.


여기서 착(錯)이란 특수한 공예의 일종(은입사)으로,
청동 표면에 무늬나 그림을 새기고,
새겨진 홈 속으로 은실을 두드려 메워서

무늬를 이루도록 하는 기법을 말한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으로 만든 등은

서한시대(BC202~ 8)때 만들어진 바로 '장신궁등(長信宮燈)'으로

한나라 금속공예의 대표작이다. (참고: 아래 사진이 '장신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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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무수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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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시대(22~220년) 유물, 높이 94cm, 길이 126cm, 너비88cm.

1972년 감숙성 무위시에서 발견되었고 감숙성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고대 중국의 상류층 귀족이나 군주가 타던 교통수단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한나라의 목조제품중 가장 크기가 큰 작품이다.
말 한 필이  끌었던 마차로 수레, 우산 덮게. 시종과 말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종과 말은 나중에 이 유물을 무덤에 넣을 때 만들어 넣은 것으로 보
인다.


말은 양마식(良馬式)이라는 당시  표준모형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

말의 머리, 목, 몸통, 네 다리와 귀, 꼬리 등은 모두 따로 만든 다음
나중에 끼워 맞춰 연결하거나 붙이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이 차의 주인은 6백석에서 1천 석의 녹을 받던 관리로 보인다.

 


(3) 유
금상감 연동합(硯銅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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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시대 유물, 높이 10cm, 길이 25cm
1969년 강소성 서주시 한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벼루를 담는 합이다.


유금(金)이라는 것은 전통금속공예 가공기술 중의 하나.

보통 황금과 수은을 1:7의 비율로 섞고 이를 400도의 온도에서 가열하게 되면
일종의 '슬러시' 상태가 되는데 이를 기물(器物)의 표면에 입히는 기술로

이때 수은은 증발하게 되고 황금만 남게 되는데

이후 계속 가볍게 두들겨서 모양을 내게 된다.


이 유물의 경우,

두꺼비 모양의 머리에는 용머리에 있는 뿔(龍角)이 있고
몸에는 날개가 달렸으며 뒤에는 말린 꼬리가 있다.
아래턱 부위에 물을 담아놓도록 설계되어 있어 안에 벼루를 꺼내 먹을 갈 때 편리하다.

아래사진들은 같이 발견된 당시의 붓과, 붓을 올려 놓는 용도로 만들어진
푸른색이 도는 백옥(靑白玉)으로 만든 양(羊) 조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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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차마 의장용군(銅車馬 儀仗俑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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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시대 유물, 감숙성 박물관소장
기사용(騎吏俑) 길이35cm, 높이 38.5cm
무사용(武士俑) 길이 35cm,높이 52.5cm


중소 국경분쟁이 한창이던 1969년, 감숙성 무위시에서 지하 방공호를 파던 중

우연히 발견된 뇌대(雷臺) 한나라 무덤에서 나왔다.

14개가 한 세트로  말을 모는 기사용(騎吏俑)과 말을 타고 있는 무사용(武士俑),

도끼를 들고 있는 무사용(武士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뇌대(雷臺) 한나라 무덤은 길이 40미터, 넓이 10미터의 대규모 무덤으로

모두 99점의 의장용이 나왔는데 이 유물은  그중 일부분이다.


기사용(騎吏俑)의 기사는

머리에 위가 평평한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하급관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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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용(武士俑)은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데
이들은 호위임무를 맡고
있다.
도끼를 들고있는 무사는 그냥 위협용으로 보인다.

당시 기록을 보면 공작 이하 현령 이상의 관리들이 외출를 할 경우

도끼를 든 무사들이 호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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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덤 출토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지금 중국여행사 마크로 잘 알려져 있는 '마답비연(馬踏飛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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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실크로드의 개척자인 장건(張騫)이 10년의 유랑 생활을 마치고
장안으로 돌아와 한무제에게 보고했던 이야기에서 연유하고 있다.

이 '마답비연'에는

한무제가 그토록 원했던 피같은 땀을 흘리며 제비처럼 빠른 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말을 얻기 위하여  한무제는 서쪽으로 군사를 계속 보냈고,
무위같은 변방에 이런 당시 일급 유물들을 묻을 수 있는 거물들도 살게 되었으며
그 기세에 흉노족들은 훈(Hun)족으로
동유럽에서 다시 그 모습을 보일 때까지

이때부터 서진(西進)에 서진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5) 은제봉수병(金銀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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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지역에
그리스 원정군들이 세운 박트리아(Bactria)
왕조의 유물이다.

높이 37.5cm, 영하고원박물관 소장

 

1983년 영하회족자치구에 있는

북주(北周)의 개국공신인 이현의 무덤(569년 사망)에서 나왔다.
당시 이런 종류의 주전자가 서역으로부터 들어와
호병(胡甁)이라고 불려지면서 민간에 많이 퍼졌다는 기록이 있다.


박트리아왕국은 월지족(月氏族)에 의해 망해 쿠샨왕조로 대체되게 되는데,

월지족은 한나라의 장건이 흉노를 치기위해 그토록 찾아 돌아다녔던 민족이다.
이 월지족의 영어발음인 Asii 혹은 Assioi에서
'아시아(Asia)'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6) 청화연화준(靑瓷蓮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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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시대의 북조(386-581) 유물
높이 63.3cm, 구경 12.2cm, 밑바닥 직경 20.2cm의 연꽃무늬 청자

1948년  하북성 출토, 중국국가박물관 소장

 

당시까지 청자를 만들 때 이용된 기법들이 이 한 작품에 다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 청자에서는 '6' 이라는 숫자가 강조되고 있는데
목에서 어깨에 이르는 부분에는 둥근 고리모양 같은 것을 여섯개 붙였고,
병목 위쪽 부분에는 꽃 여섯송이를 새겨 넣었으며,
아래쪽에는 짐승 여섯마리의 무늬가 보인다.

이 무렵부터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에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연화문 장식으로 짐작할 수 있다.

 

 - 청자의 부분확대

   아래 부분 - 연꽃이 두층에 걸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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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부분 - 병의 마개를 왕관처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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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부분 - 틀에 올려놓고 만든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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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낙타 도용(陶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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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유물,  산서성 고고학연구소 소장, 높이 45.5cm


강건한 낙타의 모습이다.

낙타의 두 혹 사이에는 비단과 가죽주머니를 실었으며

가죽주머니는 호랑이 머리 도안으로 장식했다.
가죽주머니 위에 앉은 사람은 호인(胡人)으로

짙은 눈썹에 눈이 움푹 패어있고 코가 높으며,

머리에는 둥근 펠트모자를 쓰고 있다.


한쪽 다리는 길게 뻗었고 다른 다리는 구부리고 있으며,
한쪽 손은 채찍을 들고 있고,

다른 한손으로는 먹을 것을 들고 무언가를 먹고 있는 장면을 나타냈다.


실크로드를 분주하게 다니면서 낙타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던
케러반들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나타내고 있다.
일본에서 전시회를 하였을 때 이 유물이 대표유물이었다

 


(8) 사람얼굴과 소머리 형상용기(人首牛頭形陶飮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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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신장 위구르자치구에서 출토, 신장박물관 소장


진흙으로 빚어 만든 용기로
위는 사람얼굴이고 아래는 소머리이다.

사람은 역시 호인(胡人)의 모습을 하고있다.
사람 머리의 정수리부분에는 물을 받을 수 있는 주둥이 부분이 있고
담긴 물은 아래 소의 입을 통해서 필요에 따라 조금씩 쓰게 되는 구조이다.


(9) 채색천왕목용(彩色天王木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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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 높이 86cm
1973년 신장 투루판에서 출토, 신장박물관소장


불교의 호법신인 천왕은 불교가 중국화되면서 중국무사처럼 변해가는 경향을 보인다.
이 유물은 악귀를 물리치는 천왕의 능력을 민간에서 받아들여
무덤 양쪽에 천왕을 놓아
능을 지키는 인형으로 천왕을 쓴 경우이다.

 

 


(10) 비단치마를 입은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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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높이 29.5cm
신장 투루판에서 출토, 신장박물관소장


위에는 소매가 좁은 비단저고리를 입고 있으며
황색의 어깨걸이(숄)를 둘렀고, 하의로는 붉은 노란색의 긴치마를 입고 있다.

얼굴에는 붉은색 분으로 볼을 발랐으며
이마에는 꽃무늬 모양의 화전(花鈿)을 붙였고
보조개(酒窩, 중국말로 보조개가 '술 둥지')를 그린 다음 붉은 입술을 그리는,
당나라때 가장 유행하였던 화장법을 볼 수있다.

 

 

(11) 백옥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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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너비 2cm,직경 8cm
1970년 서안에서 출토, 협서성박물관 소장


금을 장식한 옥팔찌이다. 길이가 같은 굽은 세 마디의 백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 마디의 백옥 양쪽에는 호랑이 머리 형상을 한 금장식을 끼워 넣고
이를 2개의 금못으로 고정시켰다.

 


(12) 청유봉두용병호(靑釉鳳頭龍柄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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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높이 41.2cm


푸른색의 유약을 발랐기에 청유(靑釉)라 하며, 전체적으로는 회색빛의 주전자이다.
주전자의 뚜껑이 봉황머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봉황의 윗부리는 아래 부리와 딱 맞게 만들어져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곧게 선 봉황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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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모양의 손잡이가 달려있는데, 용은 뚜껑의 가장자리를 물고있는 형상이고
용의 앞다리는 주전자의 어깨부분을 잡고있으며
뒷다리는 주전자 받침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주전자의 배부분은 2부분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위쪽은 연주문으로 장식한 6개의 원을 만들고 그 안에 춤추는 호인의 모습을 담았고
아래부분은 꽃잎 6송이를 장식하였다.

 

 

(13)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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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시대때 북제(北齊,550-577)의 유물
1996년 산동성 청주시 용흥사 유적지에서 발견,
산동성 청주시 박물관 소장


미국 메트로폴리탄 전시때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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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6세기에는 불상의 의상도

중국화된 포복식(袍服式)  불의(佛衣)가 나올 시기이지만

이 불상은 굽타양식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육계와 나발(소라껍질 모양으로 돌라 올라간 머리칼)의 분명한 표현,

축 늘어진 귀볼, 수려한 용모에 윤곽선이 분명한 이목구비,

긴 목과 늘씬하게 빠진 팔다리,

큰 눈을 반쯤 감아 내려뜨면서 신비스러움과 간결함까지 갖춘 기념비적인 불상이다.
이때 얻은 별칭이 '동방의 비너스' 라고 한다.

 

 

(14) 관음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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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채색 진묘수(墓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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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유물,

사람얼굴 진묘수 90.5cm 

짐승얼굴 진묘수 75cm

 

1972년 신장 투르판시에게 발견되었으며
'묘수(墓獸)'란 무덤 앞에 위치하면서
각종 악귀나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16) 기마여용(騎馬女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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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유물, 높이 39cm
1973년 신장 투르판 출토, 신장 박물관 소장


당나라때 궁인(宮人)들은 외부 출입시 말을 타고
앞으로 늘어내린 모자를 착용하였다고 한다.
이 용(俑)은 당시 귀족 여인의 행차 모습을 보여준다.
 

 

(17) 옥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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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유물, 총 길이 1m50cm

1992년 협서성 장안현 출토, 협서성 박물관 소장


가죽띠 위에 옥조각들을 얹어서 만들었으나
현재는 가죽은 없어졌고 옥조각만 남아있다.
옥조각 안에는 얇은 금판을 대고 그위에 붉고 파랗고 푸른 보석들로 장식을 하였다.

 

 

(18) 은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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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유물, 높이 6.7cm, 구경 7.4cm
1970년 서안시에서 발견, 협서성 박물관 소장

 

8각으로 잔을 만들었고 둥근 손잡이를 붙였다.
호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8면에 걸쳐서 잔에 부조하여 놓았다.

 

 

(19) 금완(金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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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618~907) 유물, 높이 5.5cm, 직경 13.5cm

 

대접 바깥쪽에는 10개의 연꽃받침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 물고기, 동물들, 인동초, 구름 문양이 들어 있다.
안쪽에는 연꽃들이 새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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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금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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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대업(大業) 4년(608), 길이 43cm
1957년 서안시 출토, 협서성 박물관 소장


북주(北周)의 황태후가 외손녀에게 선물로 준 것으로
금실로 만든 28개의 구슬로 이루어져 있고
매 구슬마다 10개의 진주가 표면을 장식하고 있다.


앞에 보이는 붉은 색의 보물은 마노이고, 맨아래 계란형의 보석은 신비의 진주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phsoophsoo/11480405

 

 

 

 

 

Andre Gagnon - Pour Ma Soeur En Allee (나의 누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