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螺鈿漆器)
나전은 무늬대로 오려낸 자개를 물건 표면에 붙이거나 박아 넣어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나(螺) - 나선형의 껍질을 가진 조개종류
전(鈿) - 금, 은, 동의 금속판을 물건 표면에 새겨 넣어 장식한다는 뜻
나전기법은 기원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유행한 목화(木畵)기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목화기법은 자단(紫檀)과 같은 단단한 나무에
감촉이나 색이 다른 재료를 박아 넣어 장식하는 일종의 모자이크 기법이다.
이 기법으로 장식된 악기가 서아시아에서 중국으로 들어오고,
8세기경에는 자개를 장식 재료로 사용하는 나전으로 변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전성기 唐의 작품이나 일본 쇼소인(正倉院)의 비파, 완함(阮咸) 등 초기의 나전이
거의 자단과 같은 나무의 바탕에 자개를 박아 넣은 목지나전(木地螺鈿)이라는 점도
나전기법이 목화(木畵)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나전기법은 唐과 밀접한 교류관계에 있던 통일신라, 일본 등지에도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나전(螺鈿)’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한자어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개’라는 고유한 용어가 있어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혹은 ‘자개 박는다’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나전은 대개 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갈아내어
무늬가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나전에는 으레 칠(漆)이란 단어를 붙여 ‘나전칠기’라고 말한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나전 기법을 이용한 미술품이 전해진다.
그러나 나전 외에도 다른 칠기장식법이 함께 발전하였다.
중국에서는 조칠(彫漆 : 바탕에 두껍게 칠을 한 후 무늬를 조각한 것),
묘금(描金 : 칠기 표면에 금니로 그림을 그린 것),
침금(沈金 : 칠기 면에 무늬를 새기고 다시 금가루로 메워 넣은 것)이,
그리고 일본에서는 칠 위에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마키에(蒔繪)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에서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전칠기 외에는 다른 칠기 장식분야가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고
칠공예 혹은 칠기를 말하면 곧 나전칠기가 연상될 만큼 확고한 위치를 가져왔다.
우리나라 나전칠기는 대부분 옻칠을 한 나무 기물(器物)에 자개로 장식한 목심칠기(木心漆器)이다.
◆ 시대적인 특징
(1) 기원 및 고려 이전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칠기문화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기원전 4세기경으로 알려졌다.
충남 아산 남성리 석관묘 유적에서 출토된 옻칠조각이다.
분석결과 이 옻칠 편은
평양 부근에 형성된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기원전 108-기원후 313)의 칠기와는 다른 성분으로 밝혀져
기원전 4세기경 한반도에 독자적인 칠기제작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알려준다.
이후 기원전 1세기경부터 원삼국시대(기원전후-300년경)에 이르는 기간에 조성된
창원 다호리고분군, 광주 신창동유적 등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발견되었다.
대부분 나무 용기에 흑칠(黑漆)을 한 목심칠기로
이 중에는 토착적인 토기 형태와 비슷한 흑칠 고배(高杯)가 포함되고 있어
이 역시 낙랑칠기와는 다른 토착적 제작 전통을 보여준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의례용에서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칠기가 제작,
사용되었으며 특히 신라시대에는 칠을 담당하는 관청이 있어 칠기제작의 전문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나전기법의 직접적인 원류가 되는 평문(平文), 유사기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입사(入絲), 감장(嵌裝) 등으로 장식한 유물들은
당시 나전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이 마련되었음을 보여준다.
(2) 12세기경까지(고려 전기)
작은 꽃무늬의 꽃잎이나 꽃술을 표현할 때 복채(伏彩)한 대모(玳瑁)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복채대모법은 바다거북 등딱지인 대모를 얇게 갈아서 투명하게 만들고
안쪽에 붉은 색, 노란 색 등을 칠하여 비쳐보이도록 하는 기법이다.
대모를 이용하여 무늬를 장식하는 기법은 唐의 작품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으나
당의 작품들은 자연적인 무늬가 있는 대모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고려의 나전은 대모를 복채하여 사용하였다는 차이점이 있다.
물론 당에서도 복채기법이 사용되었으나, 그것은 수정이나 호박과 같은 보석류에 적용된 것이었다.
이 대모복채법을 적용한 것은 고려시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다.
(3) 고려 후기의 나전칠기
자개와 대모를 써서 만들던 고려의 나전은 후기가 되면 점차 대모의 사용은 없어지고
자개를 주로 이용하게 된다. (대모<자개)
고려시대 나전칠기에 주로 나타나는 무늬는 국화, 모란과 같은 작은 꽃무늬이다.
자개를 잘라 만든 작은 조각 몇 개가 한 조를 이루어 어떤 종류의 무늬를 형성하고
그것이 규칙적으로 배치되거나 또는 연속적으로 전개되면서 장식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자개를 최소한의 단위 사방 1㎝를 넘지 않은 크기로 작게 잘라내어 작은 꽃넝쿨무늬를 만들고
바탕의 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장식하는 것은 매우 정교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넝쿨선이나 무늬 사이의 경계선을 한 줄 혹은 두 줄의 금속선으로 표현하였다.
물건의 테두리를 금속선으로 장식한 것은 힘을 보강해주는 역할을 하고
넝쿨선이나 경계선에 사용된 금속선은 단위무늬가 눈에 띄도록 하여 정돈된 느낌을 준다.
고려 전기에도 이러한 기법이 사용되었으나 자개와 금속선을 사용한 장식수법이 부각되는 것은
고려후기에 와서이다. 특히 꽃잎에 선각을 하여 세부를 더 자세히 표현하려는 모조법이 나타난다.
잘게 썬 자개를 연결하여 거북등무늬나 기하학적 무늬를 장식하는 기법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재료에서는 자개와 대모를 함께 사용하고,
넝쿨줄기나 테두리, 무늬 사이의 경계선에 금속선을 사용한 특징을 보인다.
(4) 조선 전기
조선 건국-임진왜란, 병자호란에 걸친 15-16세기를 전후한 시기
조선 나전칠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고려 나전칠기 무늬 소재의 확대, 구도와 무늬 배치의 다양성,
표현방법 등에서 조선 나름대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정착시켜 나갔다는 점이다.
①고려 나전칠기의 전통을 계승하는 계열
- 줄음질로 잘라낸 형태에 세부무늬를 선각으로 표현하는 모조법
- 보다 큰 국화무늬로 장식, 꽃무늬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특징
- 꽃은 겹꽃으로 표현하며 넝쿨을 금속 대신 자개를 길게 끊어 사용하면서
바탕에 여백을 두지 않는 특징이 있다.
- 작은 꽃무늬와 균형이 맞도록 넝쿨을 가는 금속선으로 표현하는데,
넝쿨의 흐름이 고려 나전칠기에 비해 자유롭고 느슨해지며 바탕에 여백을 두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②꽃무늬의 크기가 확대되고 배치가 자유로워지는 등 새로운 특징을 보이는 계열
- 타발법
- 꽃무늬의 표현방법이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도안화된 꽃무늬에서 벗어나
사실성을 추구하려는 듯한 방식
- 바탕의 여백이 보다 넓어지는데 커진 꽃무늬와 대담해진 무늬 배치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 조선 중기
양란 이후- 영정조, 즉 17-18세기 전후
- 전기에 없던 매화, 난초, 대나무 등의 사군자, 포도와 같은 식물무늬, 화조무늬 등
회화적인 소재가 새롭게 등장한다. 이러한 무늬는 모란, 연화넝쿨무늬 등과 함께 쓰이거나
아니면 단독으로 쓰인 것 두 계열로 본다.
- 식물무늬로 대체되는 사군자무늬는 대부분 주 무늬가 아니라 종속무늬로 사용되었다.
- 고려 나전칠기의 주요 특징들을 반영한 복고적 성향을 가진 작품들이 나타난다.
- 한편으로는 고려 나전칠기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여 제작된 나전칠기들도 나타나고,
조선 전기에 새롭게 창안된 타발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6) 조선 후기
19-20세기 초에 해당
나전칠기의 사용계층이 늘어나면서 기종이 다양해지는 한편,
무늬의 종류나 표현도 대중적인 성향으로 나타난다.
영정조 이후 부의 축적과 신분질서의 변동을 바탕으로 나전칠기 사용 계층이 확대되고
그들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종류가 제작되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복을 기원하고 길상(吉祥)을 의미한 여러 가지 무늬가 민화풍으로 표현되거나,
거북등무늬와 같은 기하학적 무늬, 산수무늬 등이 애호되었다.
십장생, 쌍학천도, 칠보, 박쥐, 용, 수복(壽福) 등의 글자, 여러 가지 무늬가 나타난다.
이러한 무늬들은 모두 부귀, 영화, 장수에 대한 소망과 꿈을 담은 것들이다.
서상문(瑞祥文)은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두 세 가지 이상의 소재가 함께 쓰이는 특징
기하학무늬, 사실풍의 산수무늬를 선으로 표현한 것이 조선후기 나전칠기의 다른 특징이다.
자개를 가늘고 길게 끊어서 자유자재로 무늬를 잇는 방법으로 끊음질 장식기법으로 표현.
특히 타발법, 끊음질, 모조법 등 다양한 장식기법이 이용되었다.
◆ 나전칠기의 장식기법 바탕
(1) 평문(平文)
칠을 한 표면에 무늬대로 오려낸 얇은 금판이나 은판을 붙이고,
그 위에 칠을 하여 고정시킨 후 무늬 위의 칠을 벗겨내는 기법이다.
중국에서는 평탈(平脫), 일본에서는 평탈과 평문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 기록 신라 흥덕왕때 사치를 금하는 내용에
‘평문’이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있다. 평문기법은 唐에서 시작되어 통일신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이 기법에서 금, 은판 대신 자개를 사용한다면 바로 나전기법으로 연결되므로
나전칠기의 원류로 평가된다.
이처럼 평문과 나전이 재료상의 차이일 뿐 제작과정이 길고 두 기법 모두 당에서 성행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도 평문과 함께 나전칠기가 발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2) 감장기법, 감입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금은세공품 중에는 색유리나 옥 등을 박아 넣어 장식하는 것들이 있다.
이 기법은 바로 나전기법과 연결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으나
물건의 표면에 바탕과는 다른 재료 특히 보석과 같이 빛나는 물질로 무늬를 장식하는 제작방식은
나전기법의 선구적인 기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입사
철이나 구리 같이 금속으로 만든 기물 위에 홈을 파고 금은을 두드려 박아 장식하는 기법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발달한 이 기법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입사는 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전과 직접적인 연결을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재료를 감입하여 장식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므로
나전이 발달할 수 있었던 기술이나 미적 풍토의 바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나전칠기의 장식기법
(1) 감입법(嵌入法)
: 상감법(象嵌法)이라고도 하며, 파고박기와 눌러박기 두 종류가 있다.
① 파고박기(굴입식 : 掘入式)
목지(木地 : 白骨)에 상감할 모양을 새김칼로 깊이가 고르게 떠서 그 속에
접착제 역할을 하는 옻(漆)을 넣고 자개를 끼워서 바탕 옻칠을 하고 마르면 상칠(上漆)을 한다.
자개를 박을 자리의 깊이는 자개 두께보다 약간 덜 깊게 하여
문양 밖의 여백에 옻칠한 두께와 백골 위로 튀어나온 자개의 두께가 알맞도록 한다.
파고박기는 후패(厚貝)를 사용할 때 쓰는 기법으로 우리나라 나전칠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파고박기 중에는 같은 모양으로 자른 조개를 몇 개로 쪼개서 상감한 것이 많다.
② 눌러박기(압입식 : 押入式)
백골 위에 바탕 옻칠을 두껍게 하여 칠이 굳기 전에
상감 재료를 한 단위씩 칠 표면 위에 눌러 고착시키는 방법이다.
완전히 고착된 후 숫돌갈기를 하여 칠 두께와 자개 두께를 한 평면으로 맞추고
마감 옻칠을 하는 수법이다. 고급 나전칠기 수법에는 잘 쓰지 않는 방법이다.
(2) 부착법(埋入法)
감입법과 달리 접착제를 이용하여 목지(木地)에 자개를 붙이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자개를 붙인 후 뜨거운 인두로 지져 고착시키므로 부착법을 붙임질, 지짐질이라고도 한다.
◆ 나전칠기의 재료
(1) 자개
자개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와 같은 조개류의 껍데기를 갈아
반짝이는 층을 드러나게 한 후 잘게 썰어낸 것이다.
자개에서 여러 가지 색이 어울려 눈부시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무색투명한 결정(結晶)이고,
껍데기 안쪽 조직이 얇은 잎사귀 모양의 많은 조각들로 여러 층을 이루어,
빛을 받았을 때 무지개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조개껍질 자체의 얇은 막에서 생기는 색 현상도 그 발색에 영향을 미치는데
전복껍데기는 특히 얇은 막에서 생기는 발색이 화려하고 강렬하여
오래 전부터 나전칠기에 애용되었다.
(2) 칠(漆)
칠 혹은 옻칠은 원산지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로 알려져 있는 옻나무에서 채취하였다.
고대로부터 옻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료(塗料)로서 이용되어왔다.
내구성이 요구되는 기물에 옻을 바르면 장기간 사용할 수 있고
산(酸)이나 알칼리, 염분 등에 강하고 습기나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성분이 섞여있어서
기물을 장기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옻나무로부터 채취된 생칠(生漆)은 회백색의 유상(乳狀)이며 단맛이 나고,
공기에 닿으면 갈색으로 변하면서 점차 짙어져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진다.
생칠은 그대로 사용할 수 없고 용도에 따라 적당히 가공하는 정제의 과정을 거친다.
즉 옻 속의 수분을 제거하고 광택을 내거나 투명도를 높이기 위해
더욱 맑고 깨끗하게 하여 용도에 맞는 칠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 나전 장식 방법
(1) 줄음질
주름질이라고도 한다.
자개를 계획된 무늬대로 오려내어 기물의 표면에 붙이는 방법이다.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하고 곡선의 무늬를 섬세하게 나타낼 수 있으며
자개를 여러 장 붙여 한 번에 같은 무늬를 오래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로 면으로 이루어진 무늬 제작에 이용되었다.
(2) 끊음질
가늘고 길게 오려낸 일정한 크기의 자개를 이용하여
직선은 길게, 곡선은 촘촘하게 끊어 이어 붙이면서 계획된 무늬를 형성하는 기법이다.
기하학적 무늬 표현, 산수풍경 등 회화적인 무늬표현이 가능하며 조선후기에 주로 사용되었다.
(3) 모조법(毛彫法)
줄음질로 만든 무늬의 세부를 선각으로 묘사하여 무늬의 속성을 보다 상세하게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용, 물고기의 비늘, 새의 깃털, 나뭇잎의 잎맥 등이 그것이다.
선각 후 생칠을 하고 자개 위에 묻어있는 칠을 긁어내어
선 부분의 칠만 남게하여 선명한 효과가 나게 한다.
조패법(彫貝法)이라는 용어도 같이 사용되었으나,
조패법은 자개를 조각하여 입체감을 살리는 기법이다.
(4) 타발법(打撥法)
줄음질로 제작된 자개의 굽은 면을 평면에 부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개에 균열을 가하는 기법이다.
물건 표면에 자개를 붙이기 위한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 인위적인 균열이 또다른 무늬효과를 내고
보다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얇은 자개보다는 두꺼운 자개로 무늬를 만든 후 기물의 표면에 부착할 때 이용한다.
조선에서 창안한 독자적인 기법으로 조선 중기에 특히 유행하였다.
타찰법(打擦法), 할패법(割貝法) 등의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 나전칠기 제작과정
(1) 백골에 생칠하기
칠기의 바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나무인데 이것을 백골이라고 한다.
백골에 생칠을 하여 목재 세포의 눈을 메우고 바탕을 견고하게 한다.
(2) 베 바르기
삼베나 무명 등을 바르는 작업으로 바탕을 고르게 하고 견고하게 고정하는
우리 전통 나전칠기의 핵심적인 밑바탕 공정이다.
(3) 베 눈 메우기 : 베에 생칠을 발라 표면을 고르게 하고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4) 고래 바르기
고래는 골회(骨灰)라고도 하는데 황토와 생칠과 풀을 섞어 만든다.
거친 초벌 칠을 다듬는 과정이다.
(5) 면 고르기 : 숫돌에 물을 묻혀 부드럽게 돌리면서 바탕이 매끄럽게 되도록 간다.
(6) 고래 위 생칠 바르기
(7) 칠면 틈 메우고 갈아내기
(8) 밑칠하기 : 2차에 걸쳐 밑칠을 한다.
(9) 밑칠 갈기 : 연마용 숯으로 칠면을 갈아 고르게 한다.
(10) 자개 붙이기 : 종이를 붙인 자개에 아교를 바르고 백골 위에 놓고 인두로 지져 붙인다.
(11) 풀 빼기 : 종이와 자개 밖으로 묻어나온 아교를 뜨거운 물로 닦아낸다.
(12) 자개 손보기 : 떨어져 나갔거나 잘못 붙은 자개를 교정하고 자개 주위에 남은 아교를 제거한다.
(13) 자개 면 생칠하기 : 자개를 더욱 단단하게 붙이기 위한 작업이다.
(14) 고래 바르고 갈아내기 : 고래를 발라 건조시키고 숫돌로 갈아낸다.
(15) 초칠하기 : 옻칠을 하여 건조한 후 연마용 숯으로 칠면을 갈아낸다.
(16) 중칠하기 : 초칠과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17) 상칠하기 : 질이 좋은 정제 칠을 바른다.
(18) 자개 위 칠 긁기 : 자개 위에 덮인 칠을 칠긁기 칼로 긁어낸 후 연마용 숯으로 갈아낸다.
(19) 초벌 광내기 : 연마용 숯으로 갈아 칠면을 고르게 하고, 솜에 콩기름과 숯가루를 묻혀 광을 낸다.
(20) 접칠하기 : 생칠을 묽게 하여 한 번 바른 후, 닦아내면
표면이 단단해지고 보이지 않는 틈을 메울 수 있다.
(21) 마감 광내기 : 콩기름을 묻힌 솜으로 문질러 광을 낸다.
<한국 근 · 현대 나전도안 - 나전장 故 김봉룡의 도안>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한국 근·현대나전도안-나전장 김봉룡의 도안』을 발간했다.
이 책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한국전통문양원형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도에 발간한『한국 근·현대나전도안-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송방웅) 전승 도안』에 이은
두 번째 도안집이다.
이 도안집은 나전장 故김봉룡(金奉龍, 1902-1994년)이 1910년대 전통 나전공예에 입문해
1994년 타계할 때까지 작품제작을 위해 먹과 붓으로 직접 그린
나전도안 가운데(현존작품 294건) 211점을 추려 유형별, 제작시기별로 편집하고,
그의 삶을 조망한 글을 함께 실어 구성했다.
우리 전통 나전공예품은 옻칠공예, 소목공예와 함께 발달한 최고급 공예품으로,
문양이 완성되기까지 매우 까다롭고도 복잡한 작업공정을 거쳤다.
자개문양 시문을 위해 먼저 전체 기형(器形)을 고려한 설계도와 같은 도안을 제작하므로
나전장에게 도안제작은 가장 중요한 공정에 속한다.
故김봉룡이 활동한 근·현대시기는 일제에 의해 우리 공예의 전통이 침탈되던 시기였지만,
그의 도안은 밀려드는 서구 문명 속에서도 전통에서 출발해 근현대로,
또 실용품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나전칠기의 전승과 발전과정을 잘 보여준다.
근현대의 전통공예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리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도안집의 발간은 근현대 공예의 실상을 밝히고
그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한국전통문양원형기록화를 위해 전통문양집을 꾸준히 발간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번 도안집은 국민이 가깝게 찾아 함께 즐기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국·공립도서관 및 대학도서관, 박물관 등에 배포된다.
故김봉룡 나전시문 장면
책표지
박쥐/ 1969년/ 20.6×20.6cm/ 종이에 먹
박쥐무늬 화형과일쟁반
새와 꽃넝쿨/ 1971년/ 16.7×21.7cm/ 종이에 먹
새와 꽃넝쿨무늬 사각상자
국 화/ 1967년/ 24.0×34.8cm/ 종이에 먹
봉황과 구름/ 1965년/ 40.3×30.0cm/ 종이에 먹
백합넝쿨/ 1960년/ 24.4×32.4cm/ 종이에 먹
모란넝쿨과 박쥐/ 1980년/ 29.9×24.0cm/ 종이에 먹, 색연필
- 2010-08-25,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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