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한국 전통 목가구 - 배치(안방, 사랑방)

Gijuzzang Dream 2007. 11. 2. 15:29

 

 

 

 

 *** 클릭하면 좀 더 큰 그림을 확인할 수 있어요.

 

 

- 사랑방

 

1. 사랑방하고 사랑채는 무엇이 다른 건가요?

유교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이념에 맞춰 사회적 규범은 물론 남녀의 사회적 역할과 생활방식이 뚜렷하게 구분되었고

이에 맞춰 한 집안에서도 남녀의 생활공간을 엄격하게 분리하였습니다.

집 안쪽에 만들어져 여성들이 자녀를 기르고 집안 살림을 꾸려가며 생활하던 공간이

안방, 또는 안채였다면,

주택의 바깥쪽에 위치해 집안의 큰어른인 가부장을 중심으로 남성들이 거처하며 생활하던 공간이

사랑방 또는 사랑채였던 것인데요.

서민들의 집에서는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외부와 맞닿은 온돌방을 그냥 사랑방이라 불렀습니다.

양반들은 가부장의 거처인 큰 사랑방을 비롯,

장성한 아들의 생활공간인 작은 사랑방, 누마루, 대청, 서재, 침실 등의 독립된 여러 개의 건물로

공간을 따로 꾸몄습니다.

그 독립된 여러 개의 방들과 건물로 이루어진 남성들이 공간을 사랑채라 불렀던 것입니다.

 

 

2. 남자들이 기거하던 사랑방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나요?

사랑방은 조선시대 남성들의 직업이 주로 책을 읽는 선비들이었던 만큼,

공부를 하거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선비들이 주로 낮 시간에 기거하던 사랑방은

기본적으로 공부방 역할을 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사랑방은 선비들이 글동무들과 선비들의 필수교양이자 취미였던 시 · 서 · 화(詩書畵)와

담소를 즐기며 우정을 나누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손님접대를 위한 공간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랑방은 가부장이 거처하는 개인적인 서재이기도 했지만

자기 집을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응접실 역할도 겸했던 사회적 교류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3. 사랑방에는 어떤 가구들로 꾸며졌나요?

기본적으로 사랑방은 선비가 글을 읽거나 글씨를 쓸 때 사용하던 앉은뱅이책상인 ‘서안(書案)’이나

종이두루마리들이 책상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도록 책상의 양끝이 두루마리 형식으로

위로 올라간 모양의 ‘경상(經床)’을 중심으로 간결하고 견고한 가구들과 물건들이 놓여져

서재로서의 안정된 방안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역점을 두고 꾸며졌습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데 필요한 문방구들과 책들을 올려놓거나 보관하는데 필요한 ‘연상(硯床)’과

사방탁자(四方卓子), 책궤(冊櫃), 문갑(文匣) 등과 같은 가구, 불을 밝혀주는 ‘촛대’ ‘화로’

담배를 피울 때 필요한 끽연구 같은 생활용구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꾸며졌습니다.

 

 

4. 요즘처럼 사랑방에도 벽에 그림 같은 것을 걸어놓았나요?

조선시대의 사랑방 역시 방주인의 취향과 학식, 빈부의 격차에 맞춰 꾸몄습니다.

그림 같은 서화들을 걸어두고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양반이면서도 선비들이 기거하던 사랑방은

그 집안의 품격과 취향을 사회적으로 공개하는 공간이었던 까닭에

‘서화를 양 벽에 대칭으로 거는 것은 매우 속된 짓’이라 하고

‘사랑방의 네 벽은 될 수 있는 한, 단순해야 하므로 거는 것 외엔 일체 서화를 붙이지 말아야 하지만

성현의 좋은 말씀은 해서(楷書)하여 좌우에 붙여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습니다.

사랑방 네 벽에는 성현의 말씀을 해서로 쓴 글씨를 좌우 벽에 붙이고,

나머지 두 벽에다가는 편지나 두루마리 종이를 꽂아두던 고비, 붓걸이 외에는 걸지 않는 방꾸미기를

‘예(禮)’로 여겼습니다.

외형적인 미감보다는 절제미, 단순미, 간소함으로 만들어낸 사랑방,

바로 그 안에서 청빈과 검소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조선시대의 선비정신과 유교적 이념의 뿌리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 국립중앙박물과 웹진, MUZIN 32호

 

 

 

 

 

 

- 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