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신화기행] 광시이야기
③ 개구리, 인간으로 변한 개, 그리고 ‘미친 소’ | ||||||||
5월31일, 시청광장의 일렁이는 촛불바다에 서있었다. ‘미친 소’에서 시작된 촛불집회, 이제 사람들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을 했다. 소수민족신화기행의 종점이 보이는 지금, ‘미친 소’에 대한 이야기라도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애초에 문제는 ‘미친 소’였다. 동물성 사료를 먹고 미쳐버린 소, 그런 소를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다. 촛불집회 첫날부터 광장에 나갔다. “너나먹어, 미친 소!”라는 구호는 그날 터져 나왔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인간들이 강제로 먹인 동물성 사료 때문에 병에 걸린 소는 참으로 가엾다. 세상에, 선량한 눈을 가진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다는 미친 발상을 하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 발달된 과학문명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인간들이 깊은 산 속에 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소수민족들보다 더 문명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소수민족신화 속의 신들은 자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자연은 인간에게 재앙을 내린다. 그러나 신화를 통해서 볼 때, 그 재앙은 언제나 인간이 자초한 경우가 많다.
‘미친 소’ 역시 마찬가지이다. 풀을 먹도록 되어있는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일이다. 언제나 한없이 자애로운 자연이긴 하지만 자연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할 때 자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 식물, 하다못해 귀신까지도 모두 같은 신에게서 태어난다. 그들은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연계의 구성원들이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동물의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 그 고기를 제공해주는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동물을 지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고방식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루어낼 수 없다. 비를 보내주는 신의 사자인 개구리는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 개구리를 함부로 잡아먹는 부부가 있었다. 나이 45세에 늦게 본 아들이 개구리 고기를 좋아한다고 하여 논의 개구리를 몽땅 잡아다가 아들에게 주고 자기들도 함께 먹었다. 개구리가 다 잡혀 먹히고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개구리들이 개구리 왕에게 호소했다.
“나를 잡아다가 칼로 배를 가른다면 내 고기가 익지 않을 것이야. 네 아들은 그걸 먹게 될 것이다.” 아이의 엄마가 놀라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나 말하는 개구리가 어디 있느냐며 남편은 믿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개구리가 말했다. 네 농사가 잘되도록 내가 도와주는 것인데 나를 잡아먹는다면 너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아무리 삶아도 개구리가 푹 익지 않았지만 아들이 하도 보채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그냥 먹였다. 그런데 그걸 먹자마자 아들의 팔, 다리, 머리가 모두 사라져 버렸고 아들은 순식간에 냄새나는 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해에 메뚜기 떼가 날아와 농사를 망쳐버렸다.
개구리의 복수였던 셈이다. 농사를 도와주는 개구리를 몽땅 잡아먹어 귀한 아들을 잃고 결국 해충 때문에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미친 소’를 먹으면 걸리게 된다는 광우병, 분노한 개구리를 먹고 냄새나는 물로 변해버린 아들의 이야기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어느날 어떤 농부가 청개구리 한 마리를 구해주었다. 다음 해, 농사를 지어야 할 봄이 왔을 때 농부가 그만 병에 걸려 쓰러졌다. 농부의 아내와 딸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청개구리가 청년으로 변하여 그들을 도와주어 풍년이 들었다. 그런데 이웃 마을의 돈 많은 자가 농부의 딸을 억지로 데려다가 첩으로 삼으려 했다. 부자와 하인들이 농부의 딸을 끌어가려고 할 때, 청년이 웃통을 벗었다. 그의 몸에 붙어있는 초록색 속옷 같은 것이 반짝이는 빛을 발하며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찌르려 하니 딸을 끌어가려던 자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 초록빛을 보고서야 농부는 그가 바로 자신이 구해준 개구리인 것을 알았고, 자신의 딸을 개구리청년과 혼인하게 하였다. 개구리청년은 그들을 도와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언제나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남의 딸을 빼앗아가려는 돈 많은 부자, 청개구리만도 못한 인간이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말하는 신화적 사유에서 나온다.
광시에는 야오족(瑤族)이 산다. 야오족은 오색찬란한 털빛을 가진 개, 판후(盤瓠)의 후손들이다.
판후는 평왕(評王)의 멋진 개였다. 키가 컸고 능력이 아주 빼어낸 개, 판후는 용견(龍犬)이라고도 했다.
그 당시, 근처에 있는 고왕(高王)이 자주 평왕의 영역을 침범하여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평왕은 그와 몇 차례 전쟁을 했으나 계속 패했고, 결국 지혜롭고 용감한 자들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하들 중 그 누구도 선뜻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때 판후가 평왕이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고왕을 잡아오겠다고 했다. 평왕은 아주 기쁜 나머지 판후가 일을 해결하고 오기만 하면 궁녀를 아내로 주겠다고 말했다. 판후가 평왕과 이별하고 난 뒤 이레 만에 마침내 고왕의 땅에 도착했다. 고왕은 판후가 자기에게로 온 것을 보더니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어느 날, 고왕이 잔치를 열어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취해서 뒤뜰에 누워 있었다. 판후는 단숨에 고왕의 목을 물어뜯어 그의 머리를 물고 다시 바다를 건너 평왕에게로 돌아왔다. 평왕은 감탄을 금치 못했고 판후에게 큰 상을 내리려 했다. 그러나 판후는 높은 관직이나 돈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판후는 평왕에게 식언을 하지 말고 궁녀를 아내로 달라고 했다. 평왕은 그렇게 하라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판후부부는 회계산(會稽山)에 가서 살았다. 6남 6녀를 낳고 살아가던 어느 날, 판후는 영양을 잡으려고 쫓아가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궁녀는 6남 6녀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평왕은 기뻐하며 판후를 시조 판왕(盤王)으로 삼았고 6남 6녀에게 12성을 내려주었다. 나중에 그들이 서로 혼인하여 야오족이 되었다.
지금도 야오족 사람들은 오색찬란한 옷을 즐겨 입는데 그것은 조상인 판후가 오색의 털빛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꼬리처럼 생긴 의상을 입는 것도 그 때문이고, 가슴 앞에 늘어뜨린 붉은 두 줄의 레이스는 판후가 죽을 때 흘린 붉은 피의 색깔을 의미한다.
판왕이 죽은 후 사람들은 양가죽과 가래나무로 기다란 북을 만들어 판후의 영혼을 위로하고 추모했는데 거기에서 지금 야오족의 장고(長鼓)춤이 유래했다. 야오족 사람들에게 전승되어 오는 책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이다.
물론 다른 전승에서는 이야기 내용이 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멋진 개 판후는 인간의 여인과 혼인하여 야오족의 시조가 되며 지금도 야오족 사람들은 그를 판왕으로 모시면서 해마다 음력 10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배를 타고 먼 곳으로 이주하는 야오족을 풍랑에서 구해준 수호신으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개를 먹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나올 수 없다.
곰과 인간이 혼인한다는 북방민족들의 이야기 역시 이런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유 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동물을 함부로 희생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동물과의 혼인담이 야만인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소위 ‘문명세계’의 사람들, 과연 누가 더 문명인이고 누가 더 야만인인가.
찬 바람 부는 광장에 서서 문명과 야만을 다시 생각한다. - 경향, 2008년 06월 04일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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