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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연재자료)

소수민족 신화기행 - 廣西 이야기 (4) 부누야오족의 창세 여신, 미뤄뤄

Gijuzzang Dream 2008. 6. 13. 17:19

 

 

 

[소수민족 신화기행] 광시이야기

 

 

 

 ④ 부누야오족의 여신 미뤄뤄

소수민족신화기행의 마지막 원고를 쓰는 밤, 광장은 여전히 시끄럽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광장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쥔 사람들은 여전히 ‘배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배후’가 등장하지만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나오는 ‘줌데렐라’들이야말로

그 든든한 ‘배후’ 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씩씩함과 거침없음은 이미 세계에 그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바,

이번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그들의 당당함은 그들이 왜 ‘줌데렐라’로 불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병든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이들에게 좀더 나은 생태환경,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거리로 나온 아줌마들.

주변 상황이 거칠어지면 거칠어질수록 더 용감해지는 여성들,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감싸안고 보듬어주며 한없이 자애롭지만 때론 아주 강력하고 강인한 힘.

여성이라면 누구나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위대한 힘.

그 힘은 신화 속에서 종종 창세의 여신으로 형상화된다.

물 맑은 강이 흐르고 있는 바마의 풍경.


소수민족들의 신화에는 참으로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

위대한 창세의 여신들은 언제나 넘치는 지혜와 강한 신통력, 그리고 끈질긴 참을성으로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든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인간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여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간을 도와준다.

곡식의 씨앗을 주기도 하고 홍수에서 인간을 구해주기도 하며

너무 많이 떠오른 태양과 달을 없애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광시 부누(布努)
야오(瑤)족의 미뤄퉈 역시 그런 여신이다.

부누야오는 야오족의 한 지파로서 광시 좡족자치구의 북부, 바마(巴馬)와 두안(都安) 지역에

주로 거주한다. 그들에게 전승되는 창세신화에 미뤄퉈가 등장한다.

‘미뤄퉈’의 ‘미’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미뤄퉈는 창세의 여신이면서 동시에 부누야오족의 시조이다.

바마에 사는 104세 탄 노인이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광시 좡족자치구의 북부에 있는 바마는 유명한 장수촌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꼽히는 장수촌이라는 바마에는 야오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지만 좡족도 많이 산다.

공기와 물이 맑은 이곳에는 100세 이상의 노인만 해도 74명이나 살고 있다.

 

필자가 가서 만나본 바마 자�(甲篆)향의 탄(譚) 노인은 104세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대나무 바구니 짜는 일을 하고 계셨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은 탄 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옥수수 죽이라고 했다.

술과 담배는 아예 하지 않고 그저 늘 웃으면서 산다고 말씀하셨다.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쪼그리고 앉아 대나무 바구니를 짜다가 손님들이 왔다고 바지를 자꾸 펴 내리시는 할아버지의 웃음이 눈부시게 밝고 찬란했다.

 

좡족 사람들의 속담에

“마을에 노인 세 분이 계시면 그 어떤 보물이 있는 것보다 훌륭하다”라는 말이 있다.

 

좡족의 시조신 부뤄퉈 역시 ‘한없는 지혜를 가진 노인’이란 뜻이다.

노인은 지혜롭고, 그 지혜로 세상을 이끌어간다.

바마에 살고 있는 야오족에게 가장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존재가 바로 시조할머니,

창세의 거인여신인 미뤄퉈이다. 미뤄퉈는 바람에서 태어났다.

아득한 그 시절/ 해와 달, 별이 없었지

큰 강이나 냇물도 어디 있는지 몰라

우주는 달걀노른자처럼 혼돈 그 자체였어

바람이 그것을 맷돌 돌리듯 빙빙 돌렸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미뤄퉈는 자신의 금귀고리를 삼켜 금빛 찬란한 태양을,

은귀고리를 삼켜 은빛 달을 낳았다.

찬 바람 몰아치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걱정되어

자신의 고운 치마를 태양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구름이 되었고,

친구가 없어 심심해하는 달을 위해 자신의 진주를 하늘에 뿌려 별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미뤄퉈가 태양을 낳는 데 9000년, 달을 낳는 데 9000년이 걸렸다.

신들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천지만물을 만들어낸다.

하늘과 땅을 만들 때에도 하늘과 땅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세상을 만든다.

만들어낸 하늘이 땅보다 작았지

만들어낸 땅이 하늘보다 넓었네

미뤄퉈가 실과 바늘 가져다가

하늘과 땅의 가장자리를 꿰매어 실을 잡아 당겼네

하늘의 가장자리 단단하게 달라붙었지만

실을 잡아당기니

하늘은 솥뚜껑처럼 되고

땅은 주름치마처럼 되었네.

미뤄퉈가 인간을 만드는 과정은 더욱 힘들었다.

처음에 붉은 돌로 인간을 만들었지만 실패해서 귀신이 되었고

진흙으로 만든 것은 그만 항아리가 되어버렸다.

파초 잎과 옥수수 잎으로 만들었더니 메뚜기가 되었고,

찰밥으로 만들어보려 했더니 향기로운 술이 되고 말았다.

무슨 재료를 써야 좋을까 고민하던 미뤄퉈는 마침내 밀랍에 꿀을 섞어 반죽하여 인간을 빚었다.

그리고 그것을 네 개의 상자 속에 넣어두고 270일이 지나 뚜껑을 열었다.

그랬더니 상자 속에서 야오족과 좡족, 한족과 먀오족이 나왔다.

 

미뤄퉈는 그렇게 힘들게 만든 인간에게 자신의 젖을 먹였다.

부누야오족 사람들은 지금도 인류의 어머니인 미뤄퉈를 기억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노래를 부른다.

미뤄퉈에 대한 야오족사람들의 존경심은 또한 ‘아기포대기의 노래(背帶歌)’에도 들어있다.

광시 좡족자치구박물관에 전시된 아기 포대기.


야오족의 어머니들은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외손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정성껏 아기포대기를 만들었다.

아기를 보호해줄 수 있는 온갖 다양한 문양을 수놓아 고운 포대기를 만들어

시집간 딸이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린다.

 

첫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 어쨌든 첫 아이가 태어나는 건 경사스러운 일이다.

마침내 딸이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의 식구들은 아기포대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선물을 장만한다.

 

그리고 좋은 날을 골라 부자오(布覺: 여자 쪽의 가수)를 앞세워 딸의 집으로 간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예물을 준비하여 귀여운 외손에게 아기포대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행렬이 딸의 집에 도착하면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나와 영접한다.

 

문 앞에는 남자 쪽의 가수인 부쌍(布桑)이 기다리고 있다.

부자오가 “은별이 땅에 내려온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노래하면

부쌍이 화답한다.

“하늘이 금을 줍게 해주어 고맙고, 땅이 은을 줍게 해주어 고맙지요.”

 

둘의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태양의 금빛이 포대기의 앞면을/ 달의 은빛이 포대기의 속을 보내주었어요.”

“첫 번째 포대기를 잊어버리면/ 인류는 번성하지 못한다오.”

여기에서 ‘첫 번째 포대기’는 지고무상의 여신 미뤄퉈가 전해주는 것이다.

미뤄퉈는 야오족 사람들의 생명과 영혼의 근원이며 포대기는

대대로 이어지는 민족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의 요람이다.

‘포대기의 노래’는 미뤄퉈를 잊지 말라고 노래한다.

 

‘포대기의 노래’ 12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농사짓는 자에겐 부지런할 것을,

지식인에겐 도리를 제대로 할 것을, 노인에겐 젊은 시절을 잊지 말 것을,

젊은이에겐 노인에게 잘 할 것을 두루 당부한다.

미뤄퉈가 전하는 도리를 잊지 말고 미뤄퉈가 열어놓은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보라를 보며 꼬리 흔들고

새는 푸른 잎을 보며 즐거워하네

외손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와 외할머니가 아기포대기 만들었네

포대기가 그물로 변해 하늘의 별들을 거두기를

별들이 등불 되어 책 읽게 하여 외손 뱃속에 문장 가득 들어가 총명해지길.”

광시 좡족자치구박물관에 전시된 아기포대기 아래엔 이런 외할머니의 노래가 적혀있다.

하루 종일 아이를 업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은

자신의 딸에게 고운 아기포대기를 만들어주며 그 속에 미뤄퉈의 영혼을 담았다.

창세의 여신과 자신, 그리고 자신의 딸과 그 아이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아기포대기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줄이며 여성들의 지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광장에서는 오늘도 아기포대기 대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줌데렐라’들의 목소리가 뜨겁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마도 여신들의 신화가 계속 되는 한, 줄기차게 이어질 것이다.

- 경향, 2008년 06월 11일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