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신화기행] 광시이야기
② 좡족 - 우레신의 딸 개구리, 북 속으로 들어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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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쓰촨성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두꺼비와 개구리 떼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두꺼비는 일찍이 1900여 년 전의 한나라 때 사람 장형(張衡)이 만들어낸 지진계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어느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그 방향의 용 입에 들어있는 구슬이 떨어져 아래쪽에 있는 두꺼비(혹은 개구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 하필 두꺼비인가? 두꺼비와 개구리에게 지진을 예지하는 능력이 실제로 있는지 여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고 하지만 장형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지진계에 두꺼비 여덟 마리가 앉아 지진이 난 방향을 알려주었다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족에게 두꺼비가 영험한 존재였다면 좡족에게는 청개구리가 그런 존재이다.
좡족 사람들의 청개구리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다. 지금도 좡족 북부지역에서는 해마다 설이 되면 청개구리축제를 연다.
춤추고 노래하며 청개구리(마과이· 拐)를 장례지내는 풍습을 재현하면서 한 해 동안 풍작이 들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때론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우레신은 좡족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였다.
비를 내려주는 권한을 갖고 있는 하늘의 우레신은 그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벼농사를 짓는 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화등잔만한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 눈에서는 초록빛 빛이 뿜어져 나왔다. 등에 달려있는 날개로 날갯짓을 하면 폭풍이 몰아쳤고 길고 육중한 다리로 발걸음을 옮기면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손에 든 도끼를 휘두르면 지상에는 번쩍거리는 번개가 쳤다.
농사 때문에 비가 필요하면 사람들은 청개구리에게 부탁을 했고, 청개구리는 하늘의 우레신에게 말하여 인간 세상에 비를 내려주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청개구리가 신의 사자였던 셈이다. 광시난닝자치구 박물관에는 중국 전역에서 가장 많은 동고가 전시되어 있다. 동고가 울리면 천둥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동고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우레신 때문이었다.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시신을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나눠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엽기적으로 보이는 이런 규칙이 과연 고대의 좡족 사람들에게 실제로 있었는가 하는 것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일종의 풍요제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어쨌든 좡족의 어느 형제가 우레신의 이런 규칙에 반항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제는 소를 잡아 우레신을 속였다. 우레신이 노하여 자신의 아들(여기서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다) 청개구리를 보내 진상조사를 하게 한다. 그런데 그 청개구리가 그만 사람들에게 잡혔고, 청개구리는 우레신의 힘이 개구리 네 마리가 장식된 동고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레신을 이기기 위해 여섯 마리 개구리로 장식된 동고를 만들었다. 마침내 우레신은 자신의 동고를 갖고 내려와 무서운 천둥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섯 마리 개구리로 장식된 동고를 갖고 와 두드렸고, 결국 우레신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노인이 돌아가시면 무당을 불러다가 동고 춤을 추게 한다.
자애로운 창조신 부뤄퉈가 천지를 다 만들고 난 후 인간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당시 세상에는 해와 달의 빛이 골고루 비추지 않아 어둠이 있는 곳에 요괴들이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해 어둠을 없애고 싶어 했다. 그러면 어둠의 요괴들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틀에 부어 금빛 찬란한 북을 만들었다. 북의 아래쪽은 트여있고 위쪽은 막혀있었는데 그 위에 찬란한 별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부뤄퉈는 천둥소리를 내는 그 북을 ‘아란’이라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동고가 남자로 변하여 물 속의 용왕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신화도 등장한다. 동고에는 영혼이 깃들어있고 그 영혼은 밤에 위풍당당한 남자로 변한다. 손에 활을 들고 누런 양을 타고서 마을을 돌며 못된 요괴들을 없애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그는 때론 용왕의 딸과 사랑에 빠져 물 속에 오래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낮에 보면 동고에는 푸른 물이끼가 끼어 있곤 했다. 밤마다 마을을 지켜주던 동고가 여인과 사랑을 하느라 마을을 소홀히 하니 사람들이 슬퍼했고, 그 모습을 본 동고는 자신이 밤에 나가지 못하도록 동고에 달린 고리에 누런 양의 뿔을 묶어놓으라고 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사랑을 포기하는 동고, 우리 눈에는 무생물처럼 보이는 동고가 좡족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고귀한 생명을 지닌 존재인 것이다.
또한 동고에는 배를 타고서 깃털 모자를 쓰고 제사를 올리는 샤먼의 모습이라든가, 새, 별 문양이 등장하며 좡족 사람들의 수호신이자 풍요의 신인 개구리가 자주 나타난다.
이곳에는 참으로 기이한 바위 그림들이 있다.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붉은 빛깔을 띤 깎아지른 절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절벽 여기저기에 붉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 분포된 이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무릎을 굽힌,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그린 것인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수께끼인 이 좌강 화산(花山)의 바위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선연한 붉은 색을 띤 채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팔을 치켜들고 무릎을 굽힌 그 모습은 영락없는 샤먼의 춤이다. 머리에 깃털 모자를 쓰고 있기도 한 그들은 동고 속의 주인공들과 닮아있다. 자세히 보면 개도 있고, 별 모양이 그려진 동고도 보인다. 손에 우산처럼 생긴 것을 들고 허리에 둥근 고리가 달린 칼을 찬 인물은 우산으로 된 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우레신과 싸운 부보 같다.
그러나 도대체 이 그림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앞에 소개한 이야기들과 동고, 그리고 이 그림들을 조합해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다. 바로 개구리이다. 우레신의 아들이자 비를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청개구리는 좡족 사람들의 귀한 수호신이다. 그래서 좡족의 창세신 부뤄퉈를 모신 사당에도 개구리가 있었다. 개구리는 우레신의 권위를 대신하고 있으며 비를 기원하는 의식에서도 개구리는 우레신을 의미한다. 개구리를 연상시키는 자세를 한 절벽 그림 속의 사람들이 추는 춤 역시 동고를 두드리면서 추는 개구리축제의 춤이다. 빛나는 별이 그려진 동고를 두드리며 사람들은 세상의 어둠과 사악한 요괴들이 물러가고 마을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했으며 비가 넉넉히 내려 마을에 풍년이 깃들기를 소망했다.
좡족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아이콘이 바로 개구리인 셈이다.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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