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 신화기행] 티베트이야기
① 바람, 햇빛, 설산, 호수 그리고 사랑 | ||||||||||||
그곳에서 자연은 신이 되고 신은 자연이 되었다 ‘칭짱철로’라 불리는 기찻길이 열리면서 그곳을 속수무책으로 열려버렸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티베트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려버린 그 길을 통해 ‘문명’ 세계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신은 과연 언제까지 라싸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마구 늘어나는 거리의 네온 불빛 속에 신의 자리는 남아있기나 한 걸까.
종교적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외지인들이 아무리 몰려든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의 영혼이란,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바코르의 순례 길을 돌며 다음 생에서의 더 나은 삶을 기원한다. 현실은 참으로 팍팍하고 힘들지만 착하게 살면 다음 세상에서는 더 좋게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는 그들의 믿음이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늘 밝다. 낯선 이들에게 보여주는 티베트 사람들의 환하고 맑은 미소는 그런 선한 마음에서 나온다. 뵌교를 믿는 사람들을 ‘뵌뽀’라고 했는데, ‘뵌뽀’는 ‘경전을 외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와서 자리잡기까지, 뵌교와 오랜 투쟁을 벌여야 했다. 뵌교는 원초적 샤머니즘과 맥이 닿아있다. 뵌교의 사제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그들이 모시는 신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티베트 신화의 전승자 역할을 했다. 바람과 햇빛, 설산(雪山)과 호수에 관한 아름다운 티베트 신화들은 그렇게 전해져 왔다. 그러나 뵌교가 불교와의 투쟁에서 패배하면서 신화는 불교식으로 각색되었으며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성격도 모두 바뀌었다. 그들을 둘러싼 가장 장엄한 자연, 거대한 설산의 산신들은 티베트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바코르와 강디쎄(카일라스)산의 순례 코스를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뵌교 신도들이 남아있고 (불교 신도들은 왼쪽에서 오른쪽, 즉 시계 방향으로 돈다) 적은 수이지만 뵌교의 사원도 남아있다. 물론 뵌교 사제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오래된 신화들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불교의 흔적을 살짝 지우기만 한다면 그것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사가 그 다섯 가지 물질을 그의 몸에 넣고 불었더니 바람이 생겼다. 바람이 빠르게 돌면서 불이 생겼고, 불의 열기와 바람의 냉기가 합쳐져 이슬방울이 생겨났다. 이슬방울에서 미립 원소들이 나왔고, 그것이 바람에 날려 쌓여서 산이 되었다.
바람과 불, 물과 흙, 그리고 텅 빈 ‘공(空)’이라는 다섯 가지가 바로 티베트 신화에서 세상을 만드는 요소이다. 생각해보면 이 다섯 가지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이다. 해발 고도가 4000~5000m에 달하는 그 땅에는 숨을 멎게 할 정도의 바람이 강하게 분다. 투명하게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햇살은 피부를 태울 정도이다. 1년 내내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산은 경배의 대상이며 설산 아래에 있는 맑고 차가운 호수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바람(風)과 햇빛(火), 설산(土)과 호수(水), 그리고 텅 빈 하늘(空)은 티베트 사람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다.
룽다는 ‘바람의 말(風馬)’이라는 뜻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천신과 동일시했던 산신은 그들의 수호신이다. 가축의 새끼를 잘 낳도록 도와주고 인간의 병을 고쳐주었던 산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색의 룽다를 내걸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룽다는 신들에게 보내는 인간들의 경외심과 소망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뵌교 경전인 ‘십만용경(十萬龍經)’에 등장하는 용신은 대부분 여신이고, 가장 중요한 계보에 속한 360여 명의 신들도 모두 여신이다.
여신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신화는 만주족에게도 있다. 천신이자 버들잎 여신인 아부카허허를 비롯한 300여 명의 여신들이 악의 세력인 에루리를 물리치는 신화가 그것이다.
뵌교의 경전에 이렇게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신화의 시작에 언제나 여신이 있었던 다른 소수민족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
‘십만용경’의 용모(龍母)는 자신의 온몸을 세상 만물로 변화시킨다. 머리는 하늘이 되고 왼쪽 눈은 해가, 오른쪽 눈은 달이 된다. 네 개의 앞니는 별이 되고 목소리는 우레가, 혀는 번개가 된다. 핏줄은 강이 되며 몸은 대지가 된다.
창조의 힘과 관련된 여신들의 이름은 초모랑마(에베레스트)에도 남아있다. 초모랑마 다섯 봉우리의 산신이 모두 여신이라는 것은 이런 뵌교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티베트에서는 산신은 남성, 호수는 여성으로 나타나며 산신과 호수의 혼인은 하늘과 땅의 결합을 의미하고 있다. 티베트 신화에서는 천상의 세계나 주재신이 따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는 하늘 높이 솟은 신산이었다. 얄람샴뽀와 녠칭탕글라를 비롯한 티베트 지역 4대 신산의 산신들은 현지인들의 위대한 수호신이다.
얄람샴뽀의 산신은 하얀 야크로 화신하기도 하는데 그는 입과 코에서 끊임없이 눈보라를 뿜어낸다. 그 산신은 하얀 인간이 되어 사람과 혼인, 아이를 낳기도 한다. 녠칭탕글라의 산신은 산의 북쪽 면에 산다. 그가 사는 곳은 늘 봄처럼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있고, 하늘엔 터키석 빛깔의 매가 날아다닌다. 산신은 백마를 타고 오른손에는 등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수정검을 들고 있다. 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는 투명하고 맑은 하늘 호수, 남초는 녠칭탕글라 산신의 아내이다.
티베트 신화에서 호수는 언제나 여신이다. 강디쎄(카일라스)산에 있는 마팜유초(마나사로바호)는 여신의 검고 맑은 눈동자이다. 원래 강디쎄는 나무나니와 혼인했다. 그런데 강디쎄는 결혼식 날 꽃을 가지고 온 여인의 검고 그윽한 눈동자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 날, 마팜유초를 거닐던 강디쎄는 그 호수에서 검고 맑고 깊은 여인의 눈동자를 보았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슬픔에 젖은 나무나니는 히말라야로 가서 산봉우리가 되었다. 그녀의 슬픔을 이해한 강디쎄도 산이 되고 그를 사랑한 마팜유초는 영원한 검은 눈동자, 호수가 되었다. 티베트의 오래된 시에 등장하는 반차바나는 사랑의 신이다. 그의 아내 린디 역시 사랑의 여신이다. 사탕수수와 꿀로 만들어진 반차바나의 화살은 에로스의 화살과 같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그 화살을 맞는 자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 반차바나의 화살이 정결한 신 신와의 세 번째 눈에 맞았다. 신와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빙하에 뒹굴었지만 더욱 뜨거워지기만 했다. 결국 눈의 신과 결혼하고 난 뒤에야 안정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정결함을 잃었다. 사랑의 신 반차바나가 죽은 후 세상엔 사랑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신들은 그를 부활시켰다.
티베트 사람들의 주식인 칭커, 즉 보리 종자를 구하러 98개의 산과 98개의 강을 건너 머나먼 길을 떠났던 아추 왕자는 무시무시한 뱀 왕의 방해를 뚫고 무사히 보리 종자를 구한다. 그러나 뱀 왕의 저주로 인해 왕자는 개로 변해버린다. 물론 단서가 달린다.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야 저주가 풀릴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없어서 안 되는 주식인 보리를 구해온 영웅 아추에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왕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뱀 왕의 마법이 풀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신화 속의 사랑은, 치유의 힘이다. 그것은 티베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 경건함에 감동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앞서는 것은 티베트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다. 티베트 신화는 그러한 자연에 바쳐지는 송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노래이기도 하다.
|
② 무지개,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 | ||||||||||
인간과 신은 하늘사다리 오르내렸다 한여름이 되면 한바탕씩 갑자기 비가 내리곤 한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환상처럼 나타나는 눈부신 무지개, 그것은 설역고원(雪域高原)의 또 다른 상징이다.
제대로 된 반원형의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상을 한다. 물론 신화 속의 무지개는 이미 사라졌고 그 빛깔은 티베트 사원의 곱디고운 오색문양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지만 햇빛과 물이 만나 만들어낸 그 찬란한 무지개를 보며 사람들은 아득히 먼 ‘그때(illud tempus)’를 떠올린다.
인간과 신은 하늘로 통하는 사다리를 타고 서로의 세상을 오르내렸다. 살면서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인간은 하늘로 올라가 신에게 질문을 했고 신들도 심심하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그렇게 어우러져 살았다.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뒤덮인 높은 산이나 하늘로 치솟은 나무들은 그들이 타고 오르내리는 사다리였다. 강디세(카일라스)산은 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였으며 린즈(티베트 동부지역)의 신산(神山)에 있는 높다란 나무는 인간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죽으면 그 시신을 상자에 담아 그 나무에 놓아두었다. 나무는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사다리였기 때문이다.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에벤키나 오로첸족에게도 수목장(樹木葬)의 풍습이 있었다. 그들 역시 죽은 영혼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믿었다.
서북지역의 치앙(羌)족은 원숭이가 마상수(馬桑樹)라는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나무를 타고 하늘까지 올라간 원숭이는 천신의 경고를 듣지 않고 금으로 된 대야를 엎어버렸다. 금 대야에 들어있는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인간 세상에는 홍수가 일어났다. 인간과 신은 그렇게 여러 길을 통해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하늘사다리가 끊겼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고 신도 지상으로 내려올 수 없게 되었다. 하늘에 와서 천상의 지식을 가져간 인간들이 신들보다 총명해질까봐 걱정이 되어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하늘나라를 너무 소란스럽게 만드는 무례한 인간들이 귀찮아진 신이 그 길을 끊었다고도 하고 냄새를 피우거나 욕심을 부려 끊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신들에게 요구하거나, 자연을 파괴하여 신들을 노엽게 하거나, 지켜야할 규칙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인간들을 신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신은 하늘사다리를 거두어들였다. 인간은 이제 하늘을 잃었다. 머나먼 옛날, 하늘에서 비범한 아이가 내려왔다. 그리고 장성하여 얌드록호수의 여신 남무무와 혼인해서 아들 무치를 낳았다. 그리고 무치가 ‘혼자서 말을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 부부는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인 ‘무탁’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긴 티베트의 서사시 ‘게사르(Gesar)왕 전기’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링 왕국의 왕 게사르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다. 무탁은 바로 티베트의 오색무지개이다. 자신의 후계자를 세상에 남긴 티베트 왕들은 자신들의 아들이 혼자서 말을 탈 수 있는 나이, 즉 13세가 되면 하늘 밧줄을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들은 시신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티베트사람들의 화장 습속을 보여주는 신화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화장을 하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사람들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하늘로 돌아간 왕들, 즉 천신들의 이야기는 7대까지 이어진다.
천신들은 아침에 지상으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다가 저녁이 되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돌아갔다.
조캉사원 앞에 서있는 회맹비(會盟碑)에도 신성한 왕, 잰포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설산의 가운데, 강물의 원류, 깨끗한 땅’ 토번(吐蕃: 티베트의 옛 이름)의 국왕이 되었는데 그가 ‘천신이면서 인간세상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티베트의 왕들은 천신의 후손으로, 머리에서 하늘로 바로 이어지는 하늘의 밧줄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밧줄이 끊어지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밧줄 사다리를 통해 하늘로 돌아가던 그 시절, 왕들은 어머니의 계보를 함께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에서 더 이상 밧줄이 내려오지 않을 때, 왕들은 어머니의 이름을 잃었다. 그것은 신하에게 살해당한 왕 지굼잰포에서 시작된다. 보통 사람의 몸을 가졌으나 보통 사람과는 달랐네 하늘을 날아올라 세상의 끝까지 가는 큰 신통력을 지녔고 늘 부하들과 무공을 겨루는 걸 좋아했지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신하에게 목숨을 잃고 하늘로 올라가는 밧줄도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리게 된다.
다른 민족의 신화 속에서 하늘사다리가 사라지는 이유가 인간의 오만함 때문이었다면 티베트 신화에서 하늘 밧줄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지굼잰포의 오만함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때부터 왕들은 어머니의 이름을 버리게 된다.
욕심 때문에 하늘사다리를 잃게 된 인간들과 오만함 때문에 하늘 밧줄을 잃어버린 지굼잰포의 이야기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같다.
신화는 인간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 하늘을 만지며 놀 수도 있었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별을 딸 수도 있었던 인간이 하늘사다리를 잃어버린 것은 그들의 방자한 행동 때문이다.
인간은 곡식을 가지고 담을 쌓는 경박한 행동을 했다. 농사는 제대로 짓지 않고 북을 치며 노래하는 인간들이 한심하여 신들은 잡초 씨앗을 세상에 보내어 땅에 잡초가 가득 자라게 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잡초를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북을 치고 노래했다.
그 게으름이 신을 노하게 했다. 생태환경의 파괴는 바로 인간의 파멸을 가져온다. 곰 사냥을 하면서 곰의 넋을 달래주는 제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아무 때나 함부로 곰을 잡지 않는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잡을 뿐, 그저 재미로 사냥을 하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 역시 언젠가는 인간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들을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신통력을 가진 원숭이가 여신과 혼인하여 낳은 후손들이 지금의 티베트 조상인데, 문제는 그들이 낳은 새끼 원숭이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새끼 원숭이들이 너무 많아지니까 먹고살 것이 없어 생존이 어려워졌다. 물론 그때 자비로운 신은 곡식의 종자를 주어 인간들이 계속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원숭이들이 무한번식을 하게 되어 먹을 것이 없어져 살기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사다리를 잃게 된 신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을 잃게 되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던 밧줄을 끊게 된 지굼잰포의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같다. 어머니의 이름은 풍요와 생명을 상징한다. 하늘사다리가 끊겼다는 것은 그러한 풍요로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과의 공존이란 바로 자연과의 공존에 다름 아니다.
하늘사다리가 끊기면서 직접 하늘로 올라갈 수 없게 된 인간들은 샤먼이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가졌던 모든 민족에게서 하늘사다리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하늘사다리가 끊기면서 인간은 낙원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낙원이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니,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잃어버린 무지개를 다시 찾는 것 또한 인간 스스로가 할 일이다. - 김선자, 중국신화연구가
|
'지켜(연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수민족 신화기행 - 廣西 이야기 (4) 부누야오족의 창세 여신, 미뤄뤄 (0) | 2008.06.13 |
---|---|
소수민족 신화기행 - 서북이야기(타지크족, 위그르족) (0) | 2008.06.13 |
소수민족 신화기행 - 구이저우(貴州)이야기 (1) 단풍나무의 후손을 찾아 上 (0) | 2008.06.13 |
소수민족 신화기행 - 구이저우(貴州)이야기 (2) 단풍나무의 후손을 찾아 下 (0) | 2008.06.13 |
소수민족 신화기행 - 구이저우(貴州)이야기 (3)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 (0) | 2008.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