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왕세자탄강진하도

Gijuzzang Dream 2008. 5. 7. 23:26

 

 

 

 

 <왕세자탄강진하도 병풍> - 보물 1443호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조선의 제27대 임금인 순종(純宗, 1874-1926)의 탄생을 기념하여

궁중에서 거행한 행사 광경을 그린 10폭 채색화병풍이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왕세자탄강진하도 십첩병(王世子誕降陳賀圖十疊屛)>이라는 이름으로

2005년에 보물 제1443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10폭으로 구성되었으며, 8폭에 걸쳐 진하례 광경이 그려져 있고

좌우 양쪽 끝 폭에는 관원들의 좌목과 성명이 적혀 있다.

1874년(고종 11) 왕세자(순종, 1874~1926)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해 2월 14일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거행한 진하례 의식 광경을 그린 궁중기록화이다.

병풍의 그림에는 진하례가 열리고 있는 창덕궁 인정전을 중심에 배치하고

양쪽 옆으로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나무, 산봉우리 등을 그렸으며,

각 인물들과 건물 등이 모두 짙은 색채로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전체적으로 평행사선구도가 이용되었으며 진하례 광경은 부감법(俯瞰法)을 써서 표현하였다.

 

인정전 건물의 기둥과 벽면을 훨씬 높게 표현함으로써

실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까지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필묘와 채색, 묘사 면에서 다소 수준이 떨어지고 규모도 작아서 내입건의 병풍은 아닐 것이며,

당시 관원들이 제작하여 나누어 가진 계병 중 한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행사를 기록한 계병으로는 매우 희귀한 작품이다.


※ 계병(契屛)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도감의 벼슬아치들이 행사를 치른 뒤에,

기념으로 그 행사 때의 광경모습을 그려 만든 병풍

 

 

순종이 태어날 때 임시로 설치된 기관인 산실청(産室廳)에서 일했던 관리들의 주문에 의해

일종의 기념화이자 기록화로 제작된 이 그림은 몇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이 담고 있는 고유의 내용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순종의 탄생과 당시 실제로 거행된 축하 행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이러한 궁중행사도들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자 한다.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王世子誕降陳賀圖十疊屛)>, 보물 제1443호,

조선, 1874년, 종이에 채색, 그림크기 각폭 137×56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1874년 2월 8일 묘시(卯時 ; 오전 5시-7시), 창덕궁 관물헌(觀物軒)에서

장차 왕위를 계승할 귀한 원자(元子) 아기씨가 탄생하였으니 이 아기가 바로 훗날의 순종이다.

순종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명성황후는 이보다 앞서 1871년 11월 첫 아들을 출산했지만

그 아기는 태어난 지 닷새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기의 사망 원인은 ‘대변불통증(大便不通症)’, 즉 대변을 누지 못하여 숨지고 만 것이다.

그 때에도 고종과 대신들은 장차 왕통을 이을 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진하례陳賀禮]를

거행하고자 계획을 세웠으나, 원자의 갑작스럽고도 허망한 죽음으로

행사 계획도 자연 없던 것으로 되고 말았다.

이처럼 참담한 일을 겪은 뒤 다시 원자를 얻게 되었으니,

아기 순종의 탄생은 왕실 경사 중에서도 최고의 경사였다.

 

원자의 탄생은 단순히 왕실 차원의 경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적장자 중심의 왕위계승 체계를 엄격하게 지켜오던 조선 왕실에서,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원자는 종묘와 사직으로 상징되는

국가 전체의 안녕과 영원한 존속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원자의 탄생은 곧 온 나라의 경사였다.

 

국가적인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고종은 원자의 탄생 당일 즉시 지시를 내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인들과 섬에서 유배중인 이를 풀어주고,

관직을 박탈당한 이들을 재임용하게 하였다.

이처럼 원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조치는

이전부터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것으로,

순조임금 때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태어났을 때에도

순조는 명을 내려 죄인을 석방하고 특별 과거시험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순종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는

생후 7일째 되는 날인 2월 14일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거행되었다.

행사 참석을 위해 고종은 붉은색 강사포(絳紗袍) 입고 원유관(遠遊冠)을 썼으며

손에 규(圭 ; 옥으로 만든 홀)를 들었다.

행사는 가마(여, 轝)를 타고 인정전에 도착한 고종이

통례(通禮, 조선시대 국가의 의식에 관한 일을 담당했던 기관 통례원의 관원)의 진행에 따라

전(殿)에 올라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하는(사배례, 四拜禮) 것으로 시작되었다.

고종이 행사의 순서에 따라 거듭 사배례를 할 때마다

인정전 마당에 자리한 종친과 문무백관을 역시 다 함께 사배례를 하였다.

 

(순종 탄생 축하 행사 광경)

 

이 자리에서 고종은 원자가 탄생한 경사를 온세상과 함께 한다는 내용의

교서(敎書)를 선포하였다.

 

<승정원일기>에 실려있는 교서의 내용 중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위대한 하늘이 도탑게 도와 영원히 자손이 번성할 아름다움을 맞이하였고,

열 달의 기간을 상서롭게 채워 원자가 탄생하는 기쁨을 보게 되었다.

이에 팔도가 모두 기뻐 춤추고 있으므로 교서를 멀리까지 선포하는 바이다.

생각건대, 나라의 근본은 진실로 세자에게 매어 있으며,...(생략)...

사직이 의지하여 장구히 유지되는 것은 그 처음 원자가 탄생함에 있는 것이고,

천지에 태화(太和)의 기(氣)가 모이는 것도 후사를 이어가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생략)... 과인이 무궁한 선    조의 왕업을 계승함에 미쳐,

후손을 끝없이 내려 주는 천명을 기다렸다....(생략)...

때는 2월이 돌아와 진실로 뭇 상서가 모두 모였다.

강가에 뜬 무지개와 별의 기상은 상서의 빛을 빨갛게 발하며 드리워 있었고,

그림을 그려놓은 높다란 궁궐에는 아름다운 기운이 엉켜 복을 기르고 있었다.

다행히 하느님의 말없는 도움을 입어 순조롭게 총자(冢子)가 탄생하게 되었다....(생략)...

이제 나는 왕업을 잘 계승하라는 큰 부탁을 근심할 것이 없게 되었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큰 도모책이 견고하게 되었다....(생략)’

 

교서 선포를 마친 뒤 종친과 문무백관들은 임금께 사배례를 올리고

통례원 소속의 찬의(贊儀)가 외치는 '산호(山呼)'라는 구령에 맞추어

'천세 ! 천천세 !'라고 외쳤다.

 

이날 고종은 산실청의 관원들을 포함하여

왕비의 출산 당일 원자의 탄생과 관련된 일을 맡아보았던 하급관리들에게까지

골고루 상을 내리고, 특별과거시험을 실시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거행된 순종탄생 축하행사를 주제로 한 <왕세자탄강진하도 십첩병>에는

여덟 폭에 걸쳐 행사장의 전경이 그려져 있다.

각 폭은 분절� 있지만, 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넓은 규모의 행사장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 묘사된 행사장을 들여다보면 인정전 내부 북쪽 벽에 닫집이 있고,

닫집 안에는 일월오봉병과 임금님의 의자인 용상(龍床)이 설치되어 있다.

그 앞으로 승지들과 무관들이 엎드려 있거나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인정전 건물 앞 너른 마당에는 문무백관들이 질서있게 열을 지어 자리하였고,

그들 주변에는 무관들과 깃발 등 가지각색의 의장물을 들고 있는 군인들이 둘러서 있다.

그리고 인정문 바로 안쪽에는 건고(建鼓), 편경, 편종 등의 악기들이 놓여있어

의식의 절차에 따라 장엄한 음악이 연주되던 행사장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인정전 내부광경)

 

그런데 정작 행사의 주체인 임금을 비롯한 왕실 인물의 모습은

그림 속 어디에도 보이지않으니 그것은 왜일까?

<왕세자탄강진하도 십첩병>에서 인정전 앞 어도(어도) 위에는

고종이 타고 온 가마가 놓여있는데,

이 가마는 현재 임금이 행사장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단서가 된다.

임금의 실제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그림을 보는 이들은 일월오봉도와 용상처럼 임금을 상징하는 사물들을 단서로

임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인정전 마당에 놓여있는 가마)

 

전통적으로 임금은

엄격한 절차와 법식에 의거하여 그려지는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 이외에는

그림 속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임금뿐 아니라 왕비와 왕세자 등 주요 인물들도

하나같이 의자나 방석과 같은 상징물로만 표현된다.

이것은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존재인 왕실의 인물들을

어떤 형태로든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금기와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왕세자탄강진하도 십첩병>에 그려진 광경이

구체적으로 행사의 어떤 순서를 보여주는 것인지는 아쉽게도 확인하기 어렵다.

인정전 마당에 열지어 있는 종친과 문무백관들의 동작으로 보아

이들은 지금 사배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왕세자탄강진하도 십첩병>이 담고 있는 위와같은 내용과 더불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병풍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이다.

이미 밝혔듯이 이 병풍은 원자의 탄생 당시 설치된 산실청에서 일했던 관리들에 의해

주문, 제작되었다.

산실청은 왕비나 세자빈의 출산예정일로부터 약 3-4개월 전에 설치되었으며,

여기에는 영의정을 비롯한 3정승과 내의원인 어의(御醫),

그 외 여러 관원들이 배치되어 출산과 관련된 업무를 주관하였다.

 

<왕세자탄강진하도 십첩병>의 좌우 양쪽 끝 폭에는

이 병풍의 제작에 참여한 관원들의 이름과 관직, 품계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도제조 이유원(李裕元, 영의정, 1814-1888), 제조 박제인(朴齊寅, 예조판서),

부제조 이회정(李會正, ?-1883, 승정원 도승지), 무공랑(務功郞) 신일영(申一永, 승정원 주서),

계공랑(啓功郞) 김영철(金永哲, 예문관 검열), 수의(首醫) 이경계(李慶季, 지중추부사),

대영의관(待令醫官) 홍현보(洪顯普, 삭녕 군수), 이한경(李漢慶, 내의원정),

박시영(朴時永, 음죽현감), 전동혁(全東爀, 나주감목관),

별장무관(別掌務官) 변응익(邊應翼, 울산감목관) 등 모두 11명이다.

 

뒷날 국왕이 될 왕자이 탄생시 일정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은

이들 각자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큰 의미가 있는 영광이었을 것이고,

그 사실을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 장면을 그린 병풍을 제작하여

각자 나누어 가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병풍의 명단에 있는 사람 수 만큼 병풍이 제작되었을 것이나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만이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과 동일한 크기에 동일한 형태의 그림,

그리고 같은 내용의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풍 제 1폭의 좌목, 座目)

 

국내 박물관에는 이처럼 궁중에서 거행된 왕실의 행사 광경을 그린 그림,

즉 궁중행사도들이 소장되어 있다.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궁중행사도의 일반적인 특징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재 전하는 궁중행사도에는 대비(大妃)와 같은 왕실 어른의 회갑잔치나

국왕의 혼례식, 왕세자 책봉과 같은 왕실 행사의 주요 장면들이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선명한 색채가 주조를 이루고

부분부분 금채까지 사용되어 첫눈에는 화려한 인상이 강하지만,

바라볼수록 왕실 유물다운 품격과 위엄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궁중행사도는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궁중 소속 전문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해학 넘치는 풍속화로 널리 알려진 조선시대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1822)도

궁중화가로서 궁중행사도 제작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전하는 궁중행사도는 병풍 형태가 많다.

하지만 같은 병풍 형태라도 행사 광경을 그림으로 구성하여 보여주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약간씩의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된 행사의 주요 장면들이

각각 표현된 여러 폭의 그림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유형과,

병풍 전체에 걸쳐 행사의 중심 광경이 장대한 스케일로 표현된 유형이 있는데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은 후자에 속한다.      

 

궁중행사도를 보는 사람들은 대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들,

그들의 이목구비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문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흐트러짐 없이

세밀하게 표현한 화가들의 정교한 작업과 공력에 감탄한다.

 

궁중행사도는 그 자체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 하나로도 충분히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더하여 궁중행사도가 더욱 커다란 가치를 갖는 까닭은

그것이 담고 있는 풍부한 정보들 때문이다. 여기에는 각계각급의 관리들,

왕실 잔치의 호화롭고 흥겨운 분위기 연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악사와 기녀들,

시중드는 사람들, 행사장을 호위하는 군인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임무를 띠고 행사에 동원된 수많은 인원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뿐 아니라 행사장에 비치된 각종 행사용품들도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궁중행사도에서

당시의 복식 · 음악 · 무용 · 공예 · 건축 그리고 의례와 풍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다.

사진이 없던 시대의 시각적 기록물로서

궁중 문화의 면면들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는 궁중행사도는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들이 집약되어 이루어진 왕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참고문헌

- 국역승정원일기, 민족문화추진회(www.minchu.or.kr) 데이터베이스

- 박정혜,『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일지사, 2000.

- 신명호, 『조선의 왕-조선시대 왕과 생활문화』, 가람기획,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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