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상허 이태준의 <무서록>

Gijuzzang Dream 2008. 4. 11. 13:39

 

 

 

 

 파초 그늘 아래 이태준의 조촐한 행복 <무서록>

 

무서록, 이태준·범우사·1993

"소설만으로 전업을 못 삼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고 쓴 이태준(1904~1956)은 비운의 소설가다.

이태준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나라를 개혁하려고 개화당에 가담했던 아버지는 개혁에 실패하자 가족을 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몇 해 뒤 부모를 잃고 이태준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누이 둘과 함께 철원의 친척 집에 맡겨졌지만 친척 어른의 구박에 반발해 가출한다.

고학을 하며 어렵게 휘문고보 등을 거쳐 스물한 살 때 일본 도쿄로 건너가 조치대 문과에 입학하지만 곧 자퇴한다.

그 무렵 쓴 작품 ‘오몽녀’로 문단에 나온 뒤

‘까마귀’와 같은 빼어난 단편소설을 내놓으며

탁월한 미문가로 이름을 날린다.

“상허(尙虛 · 이태준의 호)의 산문, 지용(芝溶 · 시인 정지용)의 운문”

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의 문체가 뿜어내는 아취는 당대의 일급이었다.

 

이태준이 일제강점기에 대표적인 문예지 ‘문장’을 창간하고,

이효석 · 박태준 등과 ‘구인회’ 활동을 하고,

해방 후 좌익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회의 부위원장직에 있었다는

문단사적 이력은 그 자취가 뚜렷하나 여기서 그것들을 조목조목 주워섬길 필요는 없다.

그보다 이태준이 남긴 사진 한 장에 더 주목한다.

이태준 일가가 1943년 서울 성북동 한옥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태준은 갓난애인 삼녀 소현을 안고,

아내 이순옥 등과 함께 장녀 소명, 차녀 소남, 장남 유백, 차남 유진 등을 앞세우고

가족 사진을 박았다. 이태준과 아이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어린 시절은 박복했으나 단란한 일가를 이룬 성북동 시절은 이태준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터다.

비 갠 맑은 아침에는 새들이 꽃숲에서 지저귀고,

여름에는 뜰의 발육이 좋은 큰 파초가 절정에서 꽃을 피웠다.

파초 그늘 아래 의자를 놓고 남국의 정조를 명상하던

그 즈음의 조촐한 행복을 드러내는 이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내 가슴은 아릿해진다.

 

이태준 일가의 뒤로 사철나무가 보인다.

얼마 전 이태준의 성북동 옛집을 다녀왔는데 지금도 이 사철나무는 그 푸름을 뽐낸다.

이 집은 ‘수연산방’이란 이름으로 이태준의 핏줄이 운영하는 찻집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소극적 처세에만 머문 제 행적을 내내 자책하며 자괴감을 떨쳐내지 못한 이태준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돌연 홍명희와 함께 월북하지만

1956년 무렵 친일 혐의가 짙고 우경적 경향의 작품을 썼다는 죄목으로 규탄당한 뒤

함흥으로 추방되어 콘크리트 블록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한다.

(왼쪽) 이태준의 생가 ‘수연산방’. 이태준


‘무서록’은 이태준의 수필집이다.

파초와 난을 키우고, 오래된 성벽을 바라보며 양치질을 하고,

책을 아끼고, 고완품(古翫品)의 그윽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이태준의 청담고박한 생활과 서권향(書卷香) 그윽한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산문들이 실려 있다.

 

이태준의 성정은 다감하고 온화한 탓에 두루 깨끗한 고요함을 바라고,

고상한 덕과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청결한 취미를 아꼈다.

책과 난과 서화(書畵)와 도자(陶瓷)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불가피한 성정 탓이다.

 

허나 생활은 촌음의 여유도 없이 바특하기만 했던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러 해 별러 초려(草廬) 한 칸을 지어놓고

공부할 책권(冊卷)과 눈을 쉬일 서화 몇 폭을 걸어놓고

'상심루(賞心樓)'란 현판을 얻어 걸어놓은 지 이미 7, 8년.
그러나 하루를 누(累) 없이 상심낙사(賞心樂事)한 적이 별로 없다.”


(‘난’) 한일(閑日)에 주린 각박한 생활에서 그가 누린 청복은 난을 돌보는 일이었다.

기르는 난들에 물을 주고 볕을 쪼여주고 잎을 닦아주는 것에서 마음의 위안과 소일의 보람을 찾았다.
책읽기에 지치거나 글쓰기가 막힐 때 난초 잎을 닦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한다.

하루 저녁의 부주의로 난들을 얼려 잃은 뒤 상실감이 얼마나 컸던지

마치 식구가 집 나가 돌아오지 않은 듯 허전해 견딜 수 없었다고 쓴다.

이태준은 파초를 사랑했다.

소 선지가 파초에 좋은 거름이란 소리를 듣고

소 선지와 생선 씻은 물, 깻묵물을 틈틈이 주며 정성스럽게 키운다.

마침내 파초는 성북동에서 제일 큰 파초로 우뚝 자란다.

늠름하게 잘 자란 파초에 대한 그의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은

파초를 팔아 집 수리비에라도 보태라는 이웃의 채근에도 꿈쩍 않는 데서 드러난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파초’)

 

장대하게 키운 파초가 폭염 속에 드리우는 그 싱그러운 그늘에 눈길을 주고,

비 내리는 날 넓은 파초 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청복으로 삼는 이의 여유가 손에 잡힐 듯하다.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분원사기(分院沙器),

담청 바탕에 선홍 반점이 선연한 천도형(天桃形) 연적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어린 시절에 헤어져 아무 기억이 없는,

글씨를 좋아하셨다는 아버지의 기품과 교훈, 그리고 참먹 향기를 맡아보려는

그의 태도는 견결하다.(‘고완’)

 

이태준은 고완품에 마음을 뺏겨 완물상지(玩物喪志)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호고인(好古人)의 속되지 않고 고고하며 의젓한 취향이 심미적 자부심을 예찬한다.

 

“그림 하나를 옮겨 걸고, 빈 접시 하나를 바꿔놓고도 그것으로 며칠을 갇혀 넉넉히 즐길 수 있게 된다.

고요함과 가까움에 몰입되는 것이다.

호고인들의 성격상 극도의 근시적 일면이 생기기 쉬운 것도 이러한 연유다.

빈 접시요, 빈 병이다. 담긴 것은 떡이나 물이 아니라 정적과 허무다.

그것은 이미 그릇이라기보다 한 천지요 우주다.

남 보기에는 한낱 파기편명(破器片皿)에 불과하나

그 주인에게 있어서는 무궁한 산하요 장엄한 가람(伽藍) 일 수 있다.”(‘고완품과 생활’)


‘무서록’은 아껴 음미하며 읽을 만한 책이다.

삶과 자연, 문학과 크고 작은 생명에까지 미친 날카로운 관찰과 그윽한 성찰은

잔잔한 감동을 가져온다.

몇 평 안 되는 마당에 앵두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모란, 백화, 파초를 심어 기르며

식구들 모두 떠받들어 귀히 여기는 범부의 행복을 실감할 수 있고,

고서와 옛 기물들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며 기쁨을 누리는 선비의 정신을 엿보고

그 청복의 고요함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그는 “천재는 더 오래 산다고 더 나올 것이 없게

그 짧은 생애에서라도 자기 천분(天分)의 절정을 숙명적으로 빨리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적어도 천명(天命)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고담(枯淡)의 노경(老境)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조숙’)

 

그가 품은 높은 뜻과 교양과 견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쉰을 갓 넘기며 맞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설야 등 극좌파와의 권력쟁투에서 밀려

변방으로 쫓겨나고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만난(萬難)에 맞닥뜨린 것을

이념의 현혹으로 잠시 저 북쪽을 이채찬연(異彩燦然)한 화원으로 착각한 어리석음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문학이 “더 넓은 삶, 자유의 영역에 들어가는 여권”(수전 손택)이라면,

이태준은 그 여권을 들고 불운한 운명이 소용돌이치는 시간대(時間帶)를 잘못 찾아들어간 것이다.

 

운명의 생태는 어느 시대에나 누구에게나 불가지(不可知)한 것이다.

다만 반세기 뒤에 한 후학이 “고담의 노경”을 누리지 못하고 떠난

그의 비운을 쓸쓸하게 회고한다는 사실을 여기에 적어둔다.
- 2008 04/15   뉴스메이커 770호 [독서일기]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Secret Garden / Sometimes When It Ra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