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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여 ! - 솔바람모임

Gijuzzang Dream 2008. 4. 6. 18:24

   

 

 

 소나무여, 언제나 푸른 네 빛  

 
- 솔바람모임 전영우 교수 -

 

 

묘목이 자라서 노거송이 되기까지

수백 년 세월의 시련을 감내하는 놀라운 생명력, 완벽한 자기실현,

개체와 전체의 오묘한 조화, 소나무 특유의 격과 운치 등을 감안할 때

소나무는 가히 겨레혼의 상징이요 위대한 모범이라 할 만하다. - 시인 박희진

2002년 봄, 나는 갑작스럽게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원인은 횡행결장에 생긴 악성 종양이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으며 정신과 육체가 함께 곤궁했던 때,

용기와 희망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 시절, 소나무는 슬며시 나에게 다가왔다.

전영우(57) 교수(국민대 산림자원학과)에게 소나무는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구해준 생명의 나무였다.

아무런 예후도 없이 찾아든 육신의 병은 갑작스레 그를 쓰러뜨렸고,

수술 후 6개월에 걸친 항암 치료가 이어지면서

그는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형편없이 나약해져 있었다.

평소 전문 등반가에 가까우리만치 산행을 즐기던 그였으나,

그해 여름 가까스로 오대산 적멸보궁에 오른 후 복받쳐오르는 설움에 끝내 오열하기도 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시사일본어사 임호열 사장이

‘명목(名木) 소나무’에 대한 책을 제의했다.

임 사장 스스로 이미 소나무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었던 터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명목 소나무들의 자태가 아른거렸다.

 

육체적 한계를 미처 되돌아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그때부터 소나무는 그에게 절망과 불안을 떨쳐낼 수 있는 몰입의 대상이 되었다.

 

소나무는 용기와 희망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오래된 벗이었고, 생기발랄한 기운을 끊임없이 채워주는 묘약이었다.

2003년에는 때마침 한 신문사에서 ‘소나무를 찾아서’라는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이호신 화백과 그에게 작업을 맡겼다.

당시 만연하던 소나무 재선충의 폐해를 환기시키면서 ‘우리 소나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기획이었으나, 그에게는 그 이상의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병을 앓고 있는 소나무의 처지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례적으로 소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간간이 ‘같이 가자’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 수가 하나둘 늘어나 나중에는 버스를 대절할 정도에 이르더니 결국은 정식 모임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렇게 해서 결성된 것이

‘솔바람모임’(www.solbaram.or.kr)이다.

 

소나무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주력을 이루고 있는 ‘솔바람모임’의

현재 회원 수는 300명에 이르며, 소식지인 ‘솔바람통신’은 2000부 넘게 발간하고 있다.

그들은 전국 소나무 답사를 비롯해 소나무 재선충을 방제하는 데 앞장서기도 하고,

‘소나무교실’을 여는 등 소나무 사랑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그들이 이룬 최대의 성과는

2005년 ‘죽어가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긴급동의’라는 문화예술인 100인의 선언으로

지지부진하던 ‘재선충병방제특별법’의 통과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이 법이 통과된 이후 각 지자체의 행정·재정적인 지원 아래

재선충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통제를 강화했고, 그 결과 재선충병의 전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솔수염하늘소라는 매개충이 전염하는 소나무 재선충병은

일본의 소나무들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무서운 병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적극적인 방제작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둬

이 땅에서 소나무가 아예 멸종되는 위기만큼은 벗어난 듯 보이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을 찾지 못해 아직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

게다가 최근에는 북방수염하늘소를 매개로 한 잣나무 재선충병까지 번질 조짐이 있어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형편이다.

지리산 천년송

소나무는 식물 중 유일하게

‘한국의 100대 아이콘’에 꼽힐 만큼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해온 나무다.

 

한국인의 DNA 속에는

소나무에 대한 상징 코드가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그것들은 때로 지조, 절개, 충절 등이기도 하고,

때로 장생, 안일, 풍요이기도 하다.

소나무를 심은 곳이 바로 길지이며,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으면 생기가 돋아난다.

소나무는 문학과 예술과 신앙과 사상과 풍습에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하나의 상징 체계로 녹아들었다.

 

소나무에서 유래된 이러한 상징은

이 땅의 풍토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한국인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소나무가 지닌 이런 상징들은

세대가 지속됨에 따라 공유되고 축적, 발전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우리의 가슴 밑바닥에 새겨졌다.

따라서 우리가 소나무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나무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간직한 생명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3일, 강원도 홍천 샛말에서는

빗속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불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할 소나무는 어디 있을까,

무너진 궁궐을 다시 지을 소나무는 어디서 구할까’.

 

‘솔바람모임’에서 북부지방산림청의 후원으로

경복궁 복원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목(大木, 큰 건축물을 잘 짓는 목수)들과 함께 벌인

소나무 심기 행사였다.

 

이날 50여 명의 대목을 이끌고 행사에 참여한

도편수 신응수(67·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솔바람모임’ 고문) 대목장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소나무를 심었다.

목수로서 평생 나무를 베어내기만 했던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젊은 시절 직접 중수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던 숭례문의 참화를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괴감 때문이었다.


신응수 대목장의 경우도 그렇지만, 전영우 교수는

무엇보다도 ‘솔바람모임’을 통해 ‘소나무 사랑’이

사람들 마음속에 더 깊게 뿌리 내리고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음을 소중히 여긴다.

 

생각지도 않은 명품 소나무를 만나면 부둥켜안고 마냥 해후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시들어가는 노송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마을 이장에게 슬며시 돈 봉투를 건네며 막걸리라도 받아주기를 부탁하는 사람들,

소나무 그늘 아래서 ‘솔바람춤’을 추고, 소나무의 신명으로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야말로 소나무처럼 늘 푸르고 어진 이 땅의 사람들이지 않은가.

학교로 돌아온 전 교수는 여전히 부산하다.

학생들을 이끌고 묘포장 실습도 나가야 하고,

식목일 날 열릴 ‘소나무교실’을 준비하는 데도 마음이 바쁘다.

 

이번 ‘소나무교실’에서

그는 ‘한국 문화에 자리 잡은 소나무의 상징성’과 ‘소나무숲의 육성과 보호방법’ 등을 강의할 예정이다.

 

소나무 재선충병의 발생과정과 방제현황도 보고하고,

참가자들이 가정에서 직접 소나무를 키워볼 수 있도록 솔씨를 뿌리는 실습 기회도 있다.

산림청에서 마련해준 금강소나무 종자와 묘목도 분양할 계획이다.

불현듯 꼭 6년 전 이맘때쯤 죽음의 문턱에서 보았던 소나무의 푸른 빛이 떠오른다.

육신이 순환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그 가녀린 빛은 마음의 위안으로 다가왔다.

그 푸른 빛은 작으면서도 얼마나 넉넉했던가.

설령 다시 어떤 위기가 닥친다손 치더라도 이제는 마음을 비워낼 수 있다.

 

소나무는 내게 이른다.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고. 비우고 살아도 괜찮다고.

눈에 보이는 빛이 사라진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래, 소나무여, 같이 가자꾸나.

- 솔바람모임(www.solbaram.or.kr)

= 전영우 국민대교수

- 2008년 4월8일, 경향 뉴스메이커 769호

 

 

 

 

 

 

 

---- Down By The Salley Gardens - 임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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