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 표현한 ‘孝’ | |||||||||||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버이날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아니더라도 평생 자식위해 애쓰시느라 세파에 찢긴 부모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거친 손을 잡아드려 자식의 따뜻한 온기로 감사의 뜻을 전하여 봄직하다.
국어대사전에 가정(家庭)은 “부부와 어버이 자식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라 한다.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이 개인의 편리와 이익 때문에 무너져 가는 요즈음 가정의 달을 맞아 조상들이 남긴 불교 미술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보고자 한다.
“부모 없인 내가 없기에 그 은혜가 태산 같다”
길가 마른 뼈에 세존 예경…“전생의 부모 였을것” 용주사의 어머니 부처님 모습, 효 중요성 드러내
부처님이 말씀하신 부모님의 크신 은혜 10가지가 있다. (회탐수호은, 임산수고은, 생자망우은, 인고토감은, 회건취습은, 유포양육은, 세탁부정은, 원행억념은, 위조악업은, 구경연민은)
흔히들 부모님 회갑이나, 칠순, 팔순에 가족이 합창하여 부모님 앞에서 감사의 눈물로 불러드리는 양주동 박사가 가사를 쓴 ‘어머니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 또한 2600년 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설대보 부모은중경>을 현대적 가사로 옮긴 것으로 한번 비교해보자.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臨産受苦恩, 임산수고은 : 낳으실 때 고생하신 은혜로 잉태한지 열 달이 차고나면 그 고통은 저승의 문턱이라. 아침마다 중병을 치룬 듯하고 매일 같이 까무러친 사람 같고, 두려움과 근심은 눈물 되어 옷깃을 적신다.)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乳哺養育恩, 유포양육은 :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하늘과 땅에 비기랴 자식의 두 눈이 멀었어도 개의치 않으시고 팔 다리 절더라도 싫어하지 않나니 내 속에서 태어난 자식이기에 종일토록 아끼시고 귀여워한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回乾就濕恩, 회건취습은 : 젖은 자리 부모님 누우시고 마른자리 자식에게 뉘여 주신 은혜로 젖고 찬 자리는 부모님 누우시고 자식은 따뜻하고 좋은 자리 골라 누인다. 자식 보살핌에 단잠을 설쳤어도 언제나 자식 편안함만 바랄 뿐 자신의 고달픔은 생각지 않는다.)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洗濯不淨恩, 세탁부정은 :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신 은혜로 아버지의 곧은 허리, 어머니의 고운 손 이제는 굽어지고 거칠어 졌어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 변함이 없네. 아플 땐 자식업고 병원을 달리셨고 똥오줌 싼 옷 또한 깨끗하게 빨아 입히셨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懷耽守護恩, 회탐수호은 : 자식으로 뱃속에 받아주시고 지켜주신 은혜로 여러 겁 동안 부모 만나기를 원하여 금생에 어머니 뱃속에 의탁했네, 달이 차서 점점 뱃속에서 자라니 몸은 둔해 산같이 무겁고 설 땐 넘어질 듯 아찔하다.)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究竟憐愍恩, 구경연민은 : 눈을 감을 때까지 자식을 걱정하시는 은혜로 부모님의 자식 걱정 끝이 없어라. 잘난 자식, 못난 자식 가리지 않고 언제나 철부지로 걱정하시네. 간절한 그 사랑 언제 끝날까? 두 눈을 감아도 끝나지 않는다.)
구구절절 눈시울을 적시는 부모님의 은혜를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부모은중경>이 나오게 된 동기는 세존께서 대중을 거느리고 길을 가시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를 보시자 몸을 던져 마른 뼈에 예경하셨다.
이때에 아난 등 대중들이 놀라 “삼계(三界)의 큰 스승이시며 사생(四生)의 어버이신 세존께서 하찮은 이 마른 뼈에 정례(頂禮) 하나이까?” 하고 묻자,
부처님께서 “너희들은 비록 나의 우두머리 제자로서 출가한지 오래 되었으나 아는 것이 넓지 못하구나. 이 한 무더기 뼈는 나의 전생의 조상이거나 부모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절을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희유(稀有)하신 세존이시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만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모 없이는 태어날 수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이 이상 소중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른 뼈의 예경은 사찰의 벽화에 많이 나타난다. 불교에서는 효도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 예부터 부모은중경이나 변상도를 그려서 백성들에게 널리 유포하였다.
수원 용주사 지장전의 여래정례
이 불화는 용주사 지장전 벽화로 부처님이 해골에 정례하는 모습이다. 좌측 구름 속에 쌓인 전생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른 뼈에 정례하니 아난이 옆에서 그 사유를 묻고 우측의 많은 대중들이 합장 공경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신 부처님께서 제일 보잘 것 없는 마른 뼈에 예경하는 모습이야말로 이중의 의미를 함축한 해학적인 표현으로 더욱 감동적인 느낌을 나타나게 한다.
태극 부채를 들고 탁자에서 글을 읽고 있는 부처님의 전생을 어머니가 우리나라에 사셨던 것처럼 표현한 것 또한 재미있다.
부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은혜를 하나의 조각으로 멋지게 나타낸 불상이 용주사 효행 박믈관에 있다. 과연 효의 으뜸 사찰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이한 형상이 있다. <부모은중경> 내용을 나타낸 독특한 모습이다.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를 표현했는데,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중생들의 진리에 대한 갈증을 언제나 넉넉히 채워주시는 것이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 먹여 양육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조선시대 어머니의 모습으로 저고리를 뒤로 젖혀 불어나 살짝 나온 젖가슴은 풍만하여 여유로워 언제나 자식을 튼튼히 기르려는 어머니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기를 감싸 안은 양손은 큼직하고 얼굴의 형태는 눈은 크고 입은 작으며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신다.
귀는 길고 나발은 소라형으로 말려 있으며 정상에는 육계가 솟은 금빛 부처님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또한 치마를 입은 앉은 모습에서 앞면에만 음각으로 살짝 연꽃문양을 보일 듯 말듯 새겼다. 그러나 저고리를 입고 쪽을 찐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 부처님?
이런 해학적인 부처님이 또 어디 있겠는가?
천수경에 보면 ‘칠구지 불모 대 준제보살’이 있다. 칠억 부처님의 어머니가 관세음보살님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곧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존재임을 강조한 듯 역설적이고 해학적인 이 불상에서 다시 한 번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았으면 한다.
충주 중원 미륵사지 거북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투박한 돌에도 자식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내었으니 그것은 바로 충주 중원 미륵사지에 남아있는 비석의 아랫부분 귀부로 자연의 돌에 대충 형태를 만들어 거북의 앞머리 형상하고 있으나 어미에게 기어오르는 새끼 거북 두 마리를 표현하여 생동감 넘치는 거북의 자식 사랑을 앙증맞게 나타내고 있다. 이 또한 기발한 발상이다. 인간과 자연을 동일개념으로 보는 한국 해학의 특색을 중원 미륵사지의 귀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장아함경>에 이르시길 “자식된 자는 마땅히 다섯 가지 일로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이바지해 받들고 모자람이 없게 하며, 두 번째는 할 일은 먼저 부모께 여쭈는 것이며, 세 번째 부모가 하는 일을 순종하고 어기지 말며, 넷째는 부모의 바른 명령을 어기지 말며, 다섯째는 부모가 하던 바른 가업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하셨다.
- 권중서 / 조계종 전문포교사 - 불교신문 2422호/ 2008년 4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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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목(한명희 작시 / 장일남 작곡), 박인수 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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