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도(甘露圖) / 배고픔에서 구제하는 단 이슬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머리를 삭발하고 긴 가사를 입은 모습에서 그가 출가(出家)의 길을 택한 승려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부처가 열반에 들던 재세시(在世時)에
부처를 따르던 열 명의 제자 중 하나인 목건련존자(目鍵蓮尊者)이다.
부처의 제자는 저마다 모두 한 가지씩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는 무엇보다 신통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루는 그가 신통력의 눈으로 삼라만상 온 세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아귀도(餓鬼道)에 빠져 있었다.
아귀(餓鬼)란 윤회(輪廻)를 통해 태어나는 여섯가지 길(六道)중 하나로,
아귀도에 빠진 영혼은 목구멍이 바늘처럼 가늘고 음식을 먹으면 모두 불꽃으로 변하여
늘 굶주림의 고통에 허덕인다고 한다.
아귀로 태어난 어머니는 피골이 상접하여 차마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옥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된 목련은 슬픔을 가다듬고
발우에 밥을 가득 담아 어머니에게 드시게 하였으나 밥은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불꽃으로 변했고,
그의 어머니는 끝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는 비참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대신해
지옥의 고통을 받겠다고 부처에게 어머니의 구제방법을 묻게 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업력이 무겁고 악업의 뿌리가 깊어 비록 모자간이라 해도 대신할 수 없고,
효도의 마음이나 천신(天神)이나 지신(地神), 사천왕신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으며,
오직 시방의 대중 스님들의 위력이라야 비로소 구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듣는다.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에 전하는 목련존자 이야기는
유교의 효사상이 불교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에서는 사랑이나 애정도 미움, 질투, 탐욕과 마찬가지로 모두 인연에 의한 마음의 병으로 본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도 불교에서는 한낮 인연의 업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승려들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평생토록 부처의 가르침에 따른 길을 걷고자 선택한 사람이다.
이들에게 현생의 어머니는 윤회하는 내내 인연을 맺게 되는 무수한 인연중 하나일 뿐이다.
어머니에게 가족에게 얽매인다면 애당초 수행의 길을 가는 승려의 자세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근심하고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
이것은 일상의 삶 대신 수행을 가는 승려, 보살의 자비심의 다른 표현이다.
목련존자 이야기를 모티브로
아귀지옥에서 고통받는 망자를 극락세계로 천도하고자 하는 염원이 감로(甘露),
즉 ‘단 이슬’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불화에 도해되어 있다.
<감로도>에는 육도윤회(六道輪廻)의 굴레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이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 감로를 받고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드라미틱한 이야기가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중생들은 자신들이 지은 업(業)에 따라
여섯 가지 세계에 태어나고 죽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이를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한다.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세계이다.
그런데 여섯 세계를 순서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태어나기도 한다.
감로도에 도해된 배고픔을 호소하는 아귀는
목련존자의 어머니이자 육도를 헤매는 모든 영혼을 상징한다.
감로도의 하단부에는 지금은 아귀가 되어 고통받는 고혼들의 살아생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집이 무너지고, 물에 빠져 죽거나, 산에서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장면들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감로도에는 억울하게 죽은 모든 영혼이 억울함을 풀고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아
다음 생에서는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미술관 불교회화실 학예사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77회, 2008년 2월27일
조선시대에 인간의 삶을 종교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유형화하여 체계화시킨 대표적인 그림이 <감로도>이다.
감로도는 조선시대에 조성되고 신앙된 여러 종류의 불교회화 가운데 하나이다. 그림의 내용에서 인간은 영원히 거듭되는 고통스러운 생사의 윤회를 하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즉 생사의 윤회를 되풀이하는 주체를 인간으로 보아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온갖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감로도에 나타난 인간의 모습은 불교의 이념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지만, 당대의 생활감정과 풍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풍속화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인간은 영웅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만나거나 죽는 순간 등 종교화로서 인간을 구제의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러한 순간에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16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제작된 감로도는 인간의 삶과 죽음, 죽음 후의 세계를 주제로 한 의식용 불화. 전 세계에서 한국에 밖에 없는, 민화 풍의 불화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영가천도재 때 사용한 걸개그림으로, 죽은 이에게 ‘감로(甘露)’ 같은 법문을 베푼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
감로도는 현재 국내에도 60여 점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전국 국·공·사립박물관과 사찰 전각에 흩어져 있었던 데다 학술적 관심도 그리 높지 않아 ‘잊혀진 불화’로 불리기도 했다. 감로도는 중국 불화의 일종인 수륙화에는 없는 그림을 추가하는 등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불화형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회화 형식적으로 감로도는 ‘삼세(三世)’와 ‘삼단(三段)’을 표현하고 있다. 삼세는 전생과 현세, 내세를 의미하며 삼단은 부처의 세계, 재단과 법회, 윤회를 반복하는 세계가 상중하단으로 펼쳐진다. 한국적 특성은 바로 ‘삼단’을 표현하는 데서 발휘된다.
부처의 세계는 그림형식이 고정돼있지만 중단이나 하단에서는 바로 당대를 표현했다. 불화 속에서 당대의 가치와 풍속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불교 보다는 유교에서 더 강조하는 효(孝)사상과 조상 숭배사상을 표현한 그림이 등장하고 인도나 중국의 전통 복장이 아닌 한복 입은 인물들도 등장한다.
감로도에는 한복을 입은 상인들과 고객들이 흥정을 벌이는 시장 풍경이 나오기도 하고(불암사 감로도), 별주부전 등장인물들이 한복을 입고(고려대소장 감로도)있고, 침을 잘못 맞아 죽는 경우, 화재로 인한 사망, 추락사 등 죽음에 이른 원인도 다양하게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아귀의 입 속으로 사람들이 떨어지는 지옥 풍경에선 당대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죽음 후의 풍경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 보석사 감로도
<감로도>, 필자미상, 1649년, 삼베에 채색, 220.0×235.0㎝, 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은 원래 충남 금산읍 진락산 보석사에 봉안되었던 것이다.
감로도의 구성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삼세(三世)의 시간이 동시시점에 의해 한 화면에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상단인 불(佛), 보살(菩薩)이 다가올 내새의 구제력을 보여준다면, 중단의 재단(齋壇)과 법회 장면은 현재시점, 하단은 전세(前世)의 업(業)을 변화무쌍한 인간의 현실상을 통해 반영한다. 다시 말하면 하단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온갖 희노애락과 죽음의 순간들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전쟁, 늙어 의지할 데 없는 노인, 동물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집이 무너져 깔려죽는 모습,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모습, 역대 제왕과 군신들의 모습 등 여러 사건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중단은 하단의 모습처럼 살다 죽은 영혼들의 천도(遷度)를 비는 의식 장면과 시식(施食)되어질 공양물이 놓여진 재단이 그려지고,
상단은 바로 이 중단의 의식을 통하여 아래 그려진 하단 유정(有情)의 갖가지 무수한 영혼이 정화되어 안락하게 생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감로도 아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의 현실성을 보여준다. 전쟁장면의 경우,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은 지 반세기 정도 지난 시점에서 제작되어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양진(兩陣)이 치열하게 마상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한쪽은 창과 활을, 그와 맞선 상대편은 창과 칼 뿐만 아니라 조총을 들고 있고, 복식 또한 왜군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쟁장면은 막연한 상상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조총을 실제 사용한 왜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이 장면이 주는 감로도에서의 의미는 전쟁에서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천도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단에 나타난 장면들은 그 시대 생활상의 축소판이며, 불교적 입장에서 구제해야 할 대상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2002년 도판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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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기 기록이 없는(無畵記) 감로도
필자미상, 18세기 중엽, 삼베에 채색, 200.7×193.0㎝, 국립중앙박물관
감로도는 불교의 우주관을 표현한 삼단의 공간성을 확보하면서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三世)의 시간이동을 수직적인 상승구조로 한 화폭 속에 모두 담아놓은 도상의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감로도의 상단은 불보살의 세계, 중단은 재단과 법회 장면, 하단은 윤회를 반복해야 하는 아귀(餓鬼) 등 중생의 세계와 고혼(孤魂)이 된 망령(亡靈)의 생전모습 등이 묘사되어 속계(俗界)에서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펼쳐진다.
또한 내용상으로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고통스러운 경험과 죽음의 장면들이 ‘아귀’를 중심도상으로 하면서 하단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중단은 이 하단에서 겪는 윤회의 고통을 정화시키고자 하는 법회장면이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는 법회 장면과 재단이 생략되었는데, 이러한 것은 18세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하단이 강조되어 수많은 장면이 화면에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따른 결과라 할 것이다.
신속한 구제력을 보여주는 칠불(七佛)의 쏜살같은 하강과 아귀의 고통스러운 모습, 수고한 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진 중생상 등이 아귀를 중심으로 방사선처럼 뻗는 산맥 사이로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나며 역동적인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2002년 도판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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