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해도 (魚蟹圖)
장한종(張漢宗,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철종(張哲宗), 자는 광수(廣수), 호는 옥산(玉山) · 열청재(閱淸齋)
화원 장득만(張得萬)의 증손이며, 장륜(張綸)의 아들이고, 김응환(金應煥)의 사위이다.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과 수원 감목관(監牧官)을 지냈다.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도(園行乙卯整理儀軌圖)>와
1802년 <순조순원후가례의궤도(純祖純元后嘉禮儀軌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장한종 하면 물고기와 해물을 그린 어해도로 유명하며,
자비대령화원으로 책거리인 문방을 그린 적이 있다는 기록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경기도박물관소장, 장한종 '책가문방도병' 195.0×361.0㎝, 최근 공개)
장한종은 어해화(魚蟹畵)를 특히 잘 그려 이 분야의 제1인자로 손꼽혔다.
유재건(劉在建)은 장한종이 소년시절부터 숭어 · 잉어 · 게 · 자라 등을 사다가
그 비늘과 껍질을 자세히 살펴보고 묘사하였으며,
매번 그림이 이루어졌을 때 그 생생함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술회하였다.
쏘가리 · 붕어 · 미꾸라지 등의 민물고기와 소라 · 조개류 · 자라 · 게 등을 즐겨 그렸다.
17세기 김인관(金仁寬)의 어해화풍을 계승하였으며, 소재의 다양화와 사실력의 증진,
배경의 바위와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김홍도의 화풍을 가미하여
조선 후기 어해화의 전통을 확립하였다.그의 이러한 화풍은 아들 장준량(張駿良)과 조정규(趙廷珪) 등을 통하여
말기 화단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유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어해도(魚蟹圖)〉8폭 병풍과 8폭 화첩,
<미꾸라지>(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어도(鯉魚圖)〉·〈어패도(魚貝圖)〉등이 있다.
- 참고문헌: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한국의 미, 화조 사군자 (중앙일보,1985), pp.251-2.
<참고> 장한종의 궐어도(鱖魚圖)
25.6×29.4㎝,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 동원실
장한종은 조선후기 화단에 있어서 한 가지 소재에 능해 이름을 남긴 화원(畵員)에 해당된다.
물고기에 있어서는 신사임당(1504-1551)의 전칭작 <쏘가리>가 전래되며
조선 중기에 윤형(1551-1613), 김인관의 유작이 현존된다.
그러나 이 소재에 있어서 정한종과 장준량(張駿良, 1802-1870) 부자와
조정규(1791-1860년경)가 가장 단연 손꼽히는 대표적인 화가이다.
<궐어(鱖魚)>는 화첩에서 떨어져나온 한 폭으로
오른쪽하단에 무게를 두어 물풀 사이의 세 마리와
왼쪽 상단 수면위로 솟아오른 쏘가리를 그리고 있다.
수면에는 복숭아꽃이 보이는데 그 연원은,
장자(莊子)가 호수에서 고기가 노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복수(濮水)에서 낚시질을 즐기면서
초(楚) 임금의 초빙에 응하지 않았던 옛일에서 유래된 고사(古事)의
'호복한상(濠濮閒想 : 속세를 떠나 자연에 사는 한가로운 심경)'이 있는 봄날의 정경으로
화첩에서는 아마 첫번째 그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탕을 담청으로 가채(加彩)해서 물색을 나타내고 있는데 설채기법이 두드러진다.
'궐어(鱖魚)'란 쏘가리를 말한다.
쏘가리그림 '궐어도(鱖魚圖)'는
복숭아꽃과 함께 그린 그림과 배경없이 쏘가리만 그린 그림이 있는데,
복숭아꽃과 함께 그린 살찐 쏘가리 그림은
장지화(張志和)가 지은 '어가자(漁歌子)'의 한 구절인 "도화유수궐어비(桃花流水鱖魚肥)'의 한 부분인
"서쪽 색산에는 백로가 날고 복숭아꽃이 물 위에 흘러갈 때 쏘가리가 살찐다"는 싯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동양화 시화일체사상에서 연유한 것.
곧 옛사람이 말한 시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西塞山前白鷺飛(서색산남백로비) 서쪽 산 앞에는 백로가 날고,
桃花流水鱖魚肥(도화유수궐어비) 복숭아꽃이 흐르는 강물의 쏘가리는 살이 오르고.
靑箬笠, 綠簑衣(청약립, 녹사의) 푸른 댓잎의 삿갓, 푸른 도롱이 옷,
斜風細雨不須歸(사풍세우불수귀) 비껴드는 바람과 가랑비에도 돌아갈 수 없네.
쏘가리를 나타내는 '궐(鱖)'이라는 한자가 대궐을 지칭하는 '궐(闕)'과 발음이 같아서,
과거에 급제하여 대궐에서 벼슬살이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쏘가리가 낚시바늘에 꿴 모습을 그린 그림은 벼슬자리를 맡아놓았다는 뜻이 된다.
한편 멀리 산, 나무, 바위보다 쏘가리를 더 크게 그리는 것은
여한없이 크게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장한종의 경우 유재건(1793-1880)의 <이향견문록>에도 언급되어있듯
어개(語介)들을 사다가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모사했다고 한다.
임전 조정규(琳田 趙廷奎, 1791- ? )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서(聖瑞), 호는 임전(琳田). 구한말의 서화의 대가였던 조석진(錫晉, 1853~1920)의 할아버지이다.
산수 · 인물과 더불어 어해(魚蟹)를 특히 잘 그려 화명(畵名)이 높았다. 발전된 것으로, 물을 떠난 물고기와 게들을 그리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이러한 어해도들은 손자인 조석진에게 계승되어 근대의 전통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산수화에서도 주목할만한 화풍을 이룩하였는데, 1860년에 그린 〈금강산도병풍(金剛山圖屛)〉은 김홍도의 필치를 따르면서도 근대적인 진경(眞景)표현의 선구적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태점(苔點)의 표현이나 바위에 처리된 선염법(渲染法) 등은 조석진의 외손자인 변관식(卞寬植)을 통하여 근대화단에까지 이어졌다.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산수도〉는 조선 말기의 이색적인 화풍과 관련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그림에 보이는 이례적인 배치와 산들의 형태, 그리고 짙고 윤택한 먹을 구사하여 나타낸 특이한 분위기 등은 매우 높은 수준의 독창성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대표작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게그림-해도(蟹圖)〉가 있다.
임전 조정규의 <게 = 횡행개사(橫行介士) >
<횡행개사(橫行介士)>는 게의 단단한 껍질과 옆으로 걷는 걸음걸이처럼, 옆으로 걷는 선비라는 게의 아칭(雅稱)이다. 따라서 비틀걸음 탓에 예로부터 점잔떠는 선비들이 먹기를 피했다. 더불어 게는 창자가 없다 하여 ‘무장공자(無腸公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창자가 없는 게 아니라 입에 이어진 소화기관의 대부분이 머리와 가슴 속에 있으며 배를 지나가는 창자가 가늘고 짧기에 그리 억울한 이야기를 들은 듯하다.
특히, 게의 생김이나 행위를 빗댄 말도 많이 전해 내려온다. 눈치를 보면서 옆으로 걸을 때 ‘게걸음 친다’, 음식을 빨리 먹거나 어떤 일을 빨리 해치울 때는 ‘게눈 감추듯 한다’, 천성을 감출 수 없음을 일컫는 ‘게 새끼는 나면서 집는다’ , 애쓴 공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게 잡아 물에 넣는다’ 등 게의 입장에서 보면 썩 달갑지 않은 말 들이 많다.
특히, 화가 나거나 흥분했을 때 사람들은 ‘게거품을 문다’고 하는데, 실제 자기네들은 갯벌 등 뭍에서 숨을 쉴 때 촉촉이 젖어있던 아가미 속의 산소가 떨어질 때 입 옆의 작은 구멍(출수공)을 통해 내뿜는 일종의 ‘위험신호’이지 흥분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한편, 게는 그 몸통이나 다리 곳곳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어 제상에 오르지 못한다. 그런 반면, 옹진군 등 경기도 섬 마을에서는 이 날카로운 가시를 돋보이게 하여 문설주에 달아매고 온갖 부정한 것의 근접을 꾀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말뜻을 가지고 있는 게 세 마리가 거리낌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분방하게 그려져 있다. 담묵으로 게딱지를 쓰윽 그리고, 빠른 붓질로 다리를 쓱쓱 그린 후 집게발 같기도 하고 눈 같기도 한 검은 먹점을 툭툭 찍었다. 간략한 몇 번의 붓질로 표현하였지만 게의 특징을 잘 잡아내어 어해도에 뛰어났다는 임전 조정규의 명성을 뒷받침해 주는 그림이다.
|
단원 김홍도, 게와 갈대
게와 갈대는 흔히 함께 그려지는 짝인데 갈대는 한자로 ‘로(蘆)’라 하며
게가 갈대를 물어 전하면 ‘전로(傳蘆)’ 혹은 ‘전려(傳臚)’라 한다.
전로와 전려는 음은 달라도 중국 음으로 같은 ‘루’인데
‘전려(傳臚)’는 예전 과거시험을 볼 때 합격자를
궁궐의 전시(殿試)에서 황제께서 납시어 장원(壯元)으로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게는 한자로 ‘해(蟹)’인데, 예전에는 각 지역의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만 중앙으로 올라가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발해(發解)’이다.
‘해(解)’와 ‘해(蟹)’는 음이 같아 발해에 뽑힌 사람(게)이
다시 전시해서 전려(갈대), 즉 급제(及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횡행개사(橫行介士)
해용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 =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
횡행개사(橫行介士)는 게의 별명인데 게는 말 그대로 옆으로 횡행한다는 말이고,
개사(介士)는 강개(慷慨)한 선비란 뜻이다.
즉 집게까지 든 갑옷 입은 무사가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횡행사해(橫行四海)하며
천하를 마음껏 주름잡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화제(畵題)의 의미는 임금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바른말을 하라는 뜻일 것이다.
갈대 이삭을 문 게로 과거급제를 축원하면서
소과(小科), 대과(大科)에 연달아 합격하라고 두 마리를 굳이 그려 넣어 암시를 했다.
그리고 장원급제한 후에 천하를 주름잡는 큰 인물이 되어
임금 앞에서도 직언(直言)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라는 주문(注文)까지 담았다.
게의 두 가지 상징을 절묘하게 겹쳐놓은 뜻 깊은 그림이라 하겠다.
- 정민 교수의 ‘그림읽기 문화읽기’, 조선일보
'느끼며(시,서,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화(佛畵) - 조선후기 불교회화의 이해 (0) | 2008.04.09 |
---|---|
감로도(甘露圖) (0) | 2008.04.08 |
김양기 - 헤엄치는 오리(유압도, 遊鴨圖) (0) | 2008.04.07 |
홍세섭 - 영모도(翎毛圖) (0) | 2008.04.07 |
변상벽 - 어미닭과 병아리 (0) | 2008.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