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느끼며(시,서,화)

홍세섭 - 영모도(翎毛圖)

Gijuzzang Dream 2008. 4. 7. 02:56

 

 

 

 

홍세섭(洪世燮. 1832-1884)은 사대부화가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현경(顯卿), 호는 석창(石窓)이며, 동물그림을 잘 그렸다.

벼슬은 정랑을 거쳐 정3품인 승정원 우부승지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등청하지 못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큰할아버지 홍대연(洪大淵)는 선비 화가로 알려져 있고,

공조판서를 지낸 아버지 홍병희(洪秉僖, 1811-1886)도 그림을 잘 그려서

그림을 원하는 자가 있으면 부자가 번갈아 그려주기도 하였는데, 사람들이 잘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세섭의 그림을 지배하는 우아함은 다가서기 힘든 맑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그의 가문과 그의 성장 과정에서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홍세섭은

영모(翎毛)와 산수를 잘 그렸다고 전해오는데, 현재 전하는 작품은 대부분 영모화이다.

홍세섭의 이름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며,

현재 남아있는 홍세섭의 그림은 거의가 수묵만을 사용하여 그린 영모화 연작(連作)이 대부분이다.

긴 화면을 표과적으로 이용한 구도와 담채 이상의 다양한 효과를 내는 수묵의 교묘한 운용이 돋보이며,

다른 화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미감과 함께

사의화(寫意畵)로서의 격조 또한 느껴진다.

 

영모도(翎毛圖) 8폭

전홍세섭(傳洪世燮), 비단(絹)에 수묵, 세로 : 119.7 cm / 가로 : 47.9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영모화 역시 원래 병풍그림의 일부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발문(跋文)을 지은 이는 홍세섭의 고종사촌인 간산 조병필(幹山 趙秉弼, 1835-1908),

그러나, 글을 쓴 경산(景山)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조병필의 동생인 병용(秉容)이나 병익(秉翊)으로 추정된다.

 

여러 종류의 새를 그린 8폭의 영모도(翎毛圖)는 원래는 병풍으로 제작된 듯하며,

현재는 여덟 개의 내리닫이 족자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그 소재나 화면의 분위기로 보아 사계절의 8경을 묘사한 것같다.

 

소재는 오리, 백로, 따오기, 기러기, 까치 등 영모 절지의 전형적인 것들이며,

각각 두 마리씩 갈대, 수초, 매화 등과 함께 그려졌다.

그러면서도 화면에 대상 표현의 새로운 해석과 참신함이 가득하다.

부감법 구도의 대담한 화면구성과 배경의 추상적인 표현,

서구풍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시원한 수묵효과로

이색적이고도 근대적인 감각이 풍기는 독창적인 화풍을 이루어냈다.

 

현존하는 홍세섭의 작품은 대부분 관지(款識)가 없으며,

소재도 매화나 대나무 혹은 수초(水草)를 배경으로 한 쌍의 새가 등장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간송미술관에는 홍세섭 스스로 그림에 제시를 쓰고 관지를 남긴 소폭의 편화(片畵)가 소장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문기(文氣)가 흐르는 맑은 분위기의 무낙관(無落款) 영모절지(翎毛折枝) 그림들이

홍세섭의 작품으로 밝혀진 바 있다.

좁은 물가로 날아드는 기러기를 그린 비안(飛雁),

옅은 개울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물새를 그린 수금(水禽),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 한 쌍을 그린 유압(遊鴨),

추운 달밤에 목을 움츠리며 갈대밭에 서 있는 기러기를 그린 노안(蘆雁),

매화가지에 앉아있는 새(梅鳥) 등의 소재가

파격적인 구도와 자유자재로 조절한 먹의 농담, 윤묵(潤墨)의 부드러운 필치와

여백을 충분히 살린 화면 구성이 주는 근대적 신선함이 눈길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현재 전시된 그림은 영모도 8폭 중 2점으로 <까치>와 <따오기>를 소재로 하였다.

 

<까치> 

조선 중기의 조속(趙涑, 1595-1668)이나 그의 아들인 조지운(趙之耘, 1637- ?)의 그림과 맥을 같이 하지만

까치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 배경에 담묵을 입혀 매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 점은 새로운 요소이다.

 

 

겨울철새 <따오기>

조선시대 새 그림 중에서는 신선한 소재이다.

홍세섭은 채색 없이 먹으로만 그린 조선 초, 중기 화조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소재와 표현 방법을 새롭게 하여 조선 말기 새 그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해오라비=해오라기〉

 

 

마치 북극의 물새를 그린 듯 배경이 매우 독창적이다.
두 마리의 해오라비는 모두 한 발을 들고 각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깃털은 방향에 따라 붓끝이 살짝 스친 듯 빠르고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배경의 산은 눈이 내린 모습인지 추상적인 형태의 세 봉우리를 배치하였다.
바닷가인 듯 포말이 일고 세 봉우리 주위는 엷은 먹을 발라 봉우리의 흰색이 두드러진다.
다른 화조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특이한 구도와 자유분방한 묘사로 기발한 구상력이 돋보인다.

  

 

 

    

 

 

 

<유압도(遊鴨圖=헤엄치는 오리)>

 

<영모도 팔곡병풍> 중의 한 작품으로 그의 새로운 시각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다.

전화면을 수면으로 처리하여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려는 듯

두 마리 오리가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담았는데,

정면 위에서 내려다 본 부감법으로 그려진 매우 독특한 구도가 이채롭다.

 

즉 이전의 영모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양식이며, 신선한 수묵(水墨) 구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헤엄치는 두 마리 물오리를 따라 수면에 포물선의 물결이 일고 있다.

두 마리 모두 몸의 방향은 같지만 고개를 트고 있고

따라서 눈길이 크게 엇갈려 강한 동선을 숨기고 있다.

진한 먹과 엷은 먹을 적절히 조화시켜 부드럽고
윤기 있는 오리 깃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 수면의 물결은 엷은 파묵(破墨)과 담묵(淡墨)의 변화로 표현되고

파문(波文)의 포물선 상단에 뚝뚝 떨어뜨린 듯한 농묵(濃墨)의 반점을 찍어

오리의 헤엄치는 속도감을 설명하였다.

 

화풍은 대담한 생략과 자유분방한 구도의 움직임,
옅고 짙은 먹을 환상적으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수면의 독특한 느낌이 마치 서양화에서 물 위에 유성물감을 떨어뜨려
특이한 효과를 내는 마블링 기법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마블링을 보는 듯한 특이한 묵법은 서구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