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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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기 - 헤엄치는 오리(유압도, 遊鴨圖)

Gijuzzang Dream 2008. 4. 7. 22:23

 

 

 

 

 

 

 

 화가 아버지와 화가 아들 / 김양기의 헤엄치는 오리

 

 

 

 

부자(父子)의 사연을 담은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유물전시관 이홍근실에서는

조선 후기, 말기 화단의 대표적인 부자(父子) 화가들과 관련된 그림 두 점을 만날 수 있다.

 

<시령도(詩聆圖)>는 대나무 그림의 대가 신위(申緯, 1769-1845)와

그의 두 아들 명준(命準, 1803-1842), 명연(命衍, 1809-1892)이 합작하여

이시령(李詩聆)이라는 청년을 위해 그려준 그림이다.

 

<유압도(遊鴨圖)>는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이후)의

그의 아들 김양기(金良驥, 18세기말-19세기 전반)가 그린 그림이다.

 

 

■ 아버지 김홍도와 아들 김양기 

 

 김양기, <유압도: 헤엄치는 오리>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92.4×49.3㎝, 족자(151.4×60.6×65.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양기는 김홍도의 아들로 자는 천리(千里), 호는 긍원(肯園)이다.

산수화, 산수인물화, 동물화 등을 남겼으며 화풍은 부친의 영향을 보인다.

알려진 행적과 작품이 많지 않은데,

선말기 선비화가 조희룡(1789-1866)과의 교유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그가 부친 김홍도의 시문(詩文)과 편지 글을 모아 만든 <단원유묵(檀園遺墨)>은

단원의 생년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양기는 김홍도가 48세부터 51세초까지 연풍현감으로 재직했을 당시 얻은 아들이다.

연풍현감을 지낼 때 얻은 아들이라고 해서 연록(延祿)이라 불렸다.

김홍도의 나이 쉰이 다 되어 얻은 만득자(晩得子)이다 보니 그의 아들사랑은 지극하였을 것이다.

 

김홍도는 환갑의 나이, 이미 화단의 대선배로서 위치하였을 때에도

궁중화원들의 녹취재(綠取才: 궁중화원들을 관리하고 재교육하기 위한 그림 시험)에 응하여

후배화원들과 경쟁을 하였는데, 이는 어린 아들을 보살피기 위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들 양기가 아버지의 사후 아버지의 시문과 편지글을 모아 엮어낸 <단원유묵>에는

김홍도가 세상을 떠나기 전 1805년 12월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남긴 편지가 실려 있다.

 

 

녹아에게

날씨가 이처럼 차가운데 집안 모두 편안하고 너의 공부는 한결 같으냐?

나의 병상은 내간서에 이미 다 말하였으므로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김동지는 찾아가서 이야기하였으리라 생각한다.

너의 선생님 댁에 보내는 삭전을 보낼 수 없어 한탄스럽다.

정신이 어지러워 더 쓰지 않는다.

12월19일 아버지가 쓴다.

 

寄祿兒     完

日寒如此, 家中都得安過, 而如之課讀如一否.

吾之病狀, 內間書中已悉矣, 不須更言耳.

又況金同知想往面陳也.

汝之師丈宅朔錢未能覓送, 可歎歎.

餘수擾不宣.

乙月+巤十九 父書

 

[<단원유묵>중 34번째 글.

원문글과 해석 - 이광호, <단원유묵>, <한국의美 21, 단원김홍도>, 중앙일보사, 1985, pp 213-220]

 

어린 아들을 ‘녹아(祿兒)’라고 애정을 담아 부르며 학비를 걱정하는 김홍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미 노쇠해진 아버지는 이 편지를 끝으로 아들에게 아무런 말을 남기지 못했다.

 

 

■ 헤엄치는 오리(遊鴨圖)

 

복숭아꽃이 핀 냇물 위를 암수 오리 두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오리들이 만들어내는 물결 표현이 서툰 듯, 딱딱한 듯 재미가 있다.

화면 상단과 하단의 바위는 대담한 붓질로 표현되었으며,

냇물 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복숭아나무는 헤엄치는 오리들을 뒤에서 안아주며

화면에 안락한 공간감을 만든다.

생기가 샘솟는 봄날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그림이다.

 

 

 

화면 하단 바위에 ‘긍원(肯園)’이라는 관지(款識)가 있으며,

이어서 ‘千里’라고 쓰인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 이혜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와의 대화, 제77회, 2008년 2월27일

 

 

 

 

 

 

 

 

 

 단원 김홍도의 헤엄치는 오리(유압도, 遊鴨圖)

 

  (보물 782) 1796년, 종이에 엷은 색, 26.7×31.6 ㎝

 

 

   김홍도 <병진년화첩> 중의 이 <유압도> 작품은,

   잔잔히 흐르는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오리 한 쌍과

   그 위의 넓은 수초 사이에서 먹이를 찾는 해오라기,

   수면 위를 낮게 날아가는 작은 물새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강물을 화면상에 수평으로 두고,

   넓은 공간 속에 새들을 여유있게 배치하여 시원한 여백의 효과를 한껏 살리고 있다.

   오리를 노란 색으로 채색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화면 중앙으로 쏠리게 하는 탄탄한 구성과

   간단한 몇 개의 필치로 날렵하게 그려낸 새들의 묘사에서

   단원의 뛰어난 영모화 솜씨가 잘 드러나 있다.

 

   강세황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

   인물, 산수, 선불(仙佛), 화과(花果), 금충(禽蟲), 어해(魚蟹)에 이르기까지

   모두 묘품(妙品)에 들었는데, 특히 신선과 화조에 더욱 뛰어나

   한 세대에 명성을 날리고 후세에 전해지기에 충분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헤엄치는 오리(유압도), 단원 30대, 23.8×16.0 ㎝ 

 

소품이나 정확한 묘사력에 의해 소재가 선명하며,

화면 구성의 묘(妙), 고운 선채기법 등에 의해 시선을 모으게 하는 그림이다.

화면 오른쪽 상부에 버드나무를, 하좌단에 많은 비중으로 연잎 그늘에 한 쌍의 오리를,

그리고 이 두 소재 사이로 하천을 지그재그로 나타내 거리감과 깊이를 더한다.

 

좌상단에 사능(士能)이란 관서에 의해

단원의 생애 중 전반인 30대에 그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증좌하듯 필법이 정제되어 있고 세부처리가 꼼꼼함을 엿볼 수 있다.

50대의 활달함과는 거리가 있으나, 버드나무 잎과 줄기묘사 및 연잎,

그리고 지면의 묘사 등에서도 농담의 구별 및 선염(渲染)의 뛰어남을 감지케 된다.

영모화의 소재 중 이른 비교적 시기의 것이되 이 소재에 있어서도

결코 타 분야에 뒤지지 않는 김홍도의 역량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헤엄치는 오리(유압도), 단원 50대, 26.5×20.2 ㎝

 

교차된 낮은 언덕 사이로 난 작은 개울을 따라 헤엄치는 두 쌍의 오리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그렸다.

언덕 사이에 여백처리로 자연스럽게 대기감(大氣感)을 내고

몰골법(沒骨法)으로 생동하는 오리의 모습을 표현했다.

힘들이지 않은 필치, 노련한 공간감각, 세련된 담채(淡彩), 특유의 관몸(灌木)표현 등이

김홍도의 50대 원숙기의 작품으로 보게 한다.

좌하단에는 구룡산인(九龍山人) 김용진(金容鎭 ;1882~1968)의 소장인(所藏印)

‘영운진장(潁雲珍藏)’이 찍혀 있다. <근영화휘(槿域畵彙)> 지첩(地帖)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