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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시,서,화)

렘브란트 - 작업실의 화가

Gijuzzang Dream 2008. 4. 6. 01:54

 

 

 

  

 렘브란트 '작업실의 화가'의 캔버스

 

 


화가의 내면과 심리 드러낸 작업실 그림도 일종의 자화상



 
 

렘브란트의 '작업실의 화가'

목판에 유채, 24.8×31.7㎝, 1629년경.

그림 속 화가는

렘브란트 자신으로 봐도 될 듯하다.

자기 모습을 그린 그림만이 자화상은 아니다. 화가가 자기 작업실을 그린 그림도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작업실 그림도 자화상과 다를 바 없다. 작업실에는 화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화가들은 창작을 하기에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작업실을 꾸민다. 따라서 작업실은 화가를 닮는다. 그런 만큼 자화상에서 화가의 내면 세계를 읽듯이 작업실 그림에서 화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작업실이나 작업실의 화가는 흔한 주제다. 이런 주제는 화가가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을 하는 이유를 세상에 알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베르메르, 쿠르베, 드가, 피카소, 마티스, 이중섭, 이인성 등 수많은 화가가 작업실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0)의

'작업실의 화가'만큼 묵직한 작업실 그림을 남긴 화가는 없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이 많기로 유명하다. 평생 75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역사적인 장면을 재현한 그림 속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을 만큼 자신에게 집착했다.

인생 역정을 자화상과 그림으로 집요하게 기록한 셈이다.  

 

 

  Rembrandt. An Artist in His Studio.

c.1629. Oil on canvas.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MA, USA

 

 

자화상의 일종인 '작업실의 화가'는 구성부터 남다르다.

먼저 작업실을 보면 벽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금이 가 있다.

낡은 마룻바닥에, 가구며 장식물도 일절 없다.

그런 가운데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화가(렘브란트의 제자라고 하기도 하나,

23세의 렘브란트로 보는 설이 유력)가 이젤과 떨어져서 어두운 곳에 서 있다.

손에 팔레트와 한 다발의 붓을 쥔 채 정면을 응시한다.

벽에는 크고 작은 팔레트가 2개 걸려 있고,

탁자 위에는 기름과 유약이 담긴 오일 항아리와 바니시 등이 놓여 있다.

그 앞에 캔버스가 이젤 위에 세워져 있다. 화면이 꽉 찬다.

마룻바닥에는 높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뚜렷하다. 그것뿐이다.

그림 그리기에 필요한 도구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휑하다. '용맹정진'하는 수도승의 방 같다.

 


수도승 같은 캔버스의 뒷모습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캔버스다.

덩치가 K1의 최홍만처럼 크고 위압적이다.

맞선 상대는 각종 붓으로 무장한 왜소한 체구의 화가다.

거인과 소인의 대결 구도. 화가를 보는 캔버스의 뒷모습이 심각하다.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처럼 표정이 무겁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서늘하다. 이 긴장감은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첫째, 화가와 캔버스의 크기이다.

화가가 크고 캔버스가 작은 것이 아니라 캔버스가 크고 화가가 왜소하게 그려 있다.

왜 캔버스를 크게 그렸을까.

 

둘째, 화가의 위치이다.

즉, 캔버스와 이젤이 빛에 노출된 반면 화가는 어두운 곳에 있다.

이 명암의 대비는 그림에 깊이를 더한다. 예술에 경외감을 가진 화가의 겸손일까.

아니면 자신이 채워야 할 캔버스에 압도당한 것일까.

 

셋째, 화가와 캔버스 간의 거리이다.

화가는 왜 캔버스와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일까. 그림을 그리기 전일까,

아니면 그린 후일까, 그도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한 것일까.

이 거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넷째, 캔버스의 포즈이다.

캔버스는 뒷면만 보여줄 뿐, 그림이 그려지는 앞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캔버스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텅 비어 있을까,

아니면 자화상이 그려져 있을까. 보이지 않아서 호기심은 더 커진다.

 


생각하는 화가의 자존심

대부분의 작업실 그림은 작업 중인 화가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다보니 작업실과 화가는

마치 신분을 증명하는 자료로 사용한 듯한 수준에서 그친다.

렘브란트의 작업실 그림은 다르다.

단순히 작업실과 화가를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그의 관심은 화가와 캔버스 '사이'에 있다.

 

그림이 단순한 손재주의 산물이기보다

생각을 동반한 고도의 정신활동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어떤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 활동의 일부이며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 위해선 지성과 기술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함"(나데주 라네리 다장)을 보여준다는 해석을 낳는다.

 

더욱이 렘브란트가 인간과 자아의 본질을 거론하면서 차용한 경구는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

그렇지 않을까. 이와 관련된 그림이 아닐까.

사실 '작업실의 화가'만큼 이 경구와 궁합이 맞는 작업실 그림은 없다.

그림의 내용과 경구가 찰떡궁합이다.
- 정민영(주)아트북스 대표

- 2008.05.07 ⓒ 국제신문(www.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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