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이 보이지 않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이
어느새 내 곁에 성큼 다가오더니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답게
온갖 색깔의 꽃들이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계절이다.
꽃은 봄이 주는 선물이다.
꽃은 보는 이 그 누구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語意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다.
꽃봉오리를 맺으면서 아지랑이 같은 설렘과 희열을 주는 이 아름다움의 화신은
봄이 저물어 가면서 한잎 두잎 꽃잎 흩날리어 떨어지는 꽃비 되어 사라질 때도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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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세주묘엄품 변상도 부분 / 135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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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 약사삼존도 / 156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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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하생경변상도 / 1350년 일본 親王院 소장 |
눈물 아롱아롱 피리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서정주는 그의 시 '귀촉도'에서 사랑하는 님이 가신 곳은
하늘에서 진달래 꽃비가 내리는 부처님이 계신 서역이라고 했다.
왜 부처님이 사시는 곳에는 꽃비가 내릴까?
꽃이 비처럼 내리는 곳은 과연 어떤 장소이고 그 꽃비가 뜻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불경을 보면
부처님이 계신 곳이나 부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범천(브라마, 梵天 : 원래 힌두교의 창조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유입되어 도리천의 왕이 제석천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이
꽃비를 내려 부처님 주위를 장엄 한다고 한다.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경전중 『묘법연화경』의 내용에는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묘법연화경을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하는데 그「法華經 序品」에
부처님이 왕사성 영취산에서 문수보살,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등 세상에 잘 알려진 보살을 따라
모인 8만 명의 보살과 훌륭한 비구들의 무리 1만 2천명을 비롯하여 많은 대중 앞에서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설하신 다음
'무량의삼매(無量義三昧)'에 들어 있는 동안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무량의삼매'는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라고도 하는데 법화삼매의 일종으로
모든 만물의 실상(實像)을 아는 삼매를 뜻한다.
삼매(三昧)란 한 가지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로서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로 불교 수행의 이상적인 경지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던 일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상태,
곧 이 삼매를 통해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나
부처의 도를 이루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천상의 신들이 기뻐하며 꽃비를 뿌리는 것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의 설법 시 나타나는 상서로운 여섯 장면(法花六瑞) 중 세 번째가
하늘에서 축복의 꽃비가 내리는 우화서(雨花瑞) 부분이다.
부처님께서 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큰 법리(法利)를 얻었다고 설하실 때,
허공에서 만다라의 꽃과 마하만다라의 꽃을 내려서
한량없는 백 천 만 억의 보리수 아래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 흩으며,
아울러 칠보탑(七寶塔) 안에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멸도하신 지 오랜 다보여래께 흩으며,
또 일체의 모든 큰 보살과 사부 대중에게 흩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불국토에 내리는 꽃비는
낭만적이고 황홀한 경관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를 깨달아 법을 얻어 부처를 이루었다는 것을 경탄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또 『미륵보살하생경』에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하생하여 다스리는 나라에는
칠보꽃. 발두마꽃. 우발라꽃. 구물두꽃. 분다리꽃. 만다라꽃. 마하만다라꽃. 만수사꽃.
마하만수사꽃 등 꽃비를 내려 땅에 흩뿌리고
거기에 때때로 바람이 불어와 그 꽃들을 하늘에 날리어 나부끼게 한다고 하였다.
「법화경 견보탑픔」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할 때 큰 탑이 땅에서 솟아올라 허공에 머물고,
이때 탑 주위에는 과거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보배와 꽃을 지니고
부처님에게 꽃비를 뿌리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하는 동안
대중의 눈에 다보여래가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석가여래가 다보여래의 탑문을 여니 탑 안에 다보여래가 사자좌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다보여래는 석가여래의 설법이 진실한 것을 확인하고,
탑 속의 자리를 나누어 함께 앉은 다음 허공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꽃비는 진실한 법이 그곳에 있다는 하늘의 인증(認證)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신라인들은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불국사 다보탑에는 사자좌를 석가탑 주위에는 꽃비를 새겨 신라가 불국토임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사찰의 장식에 화문(花紋)이 많이 사용되는 것도 장식의 효과뿐만 아니라
다 이와 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환희의 꽃비인 우화서(雨花瑞)가 내리는 불국토를 상징화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법당은 사부대중을 위해 불법을 설하는 영산회(靈山會)의 장소를 상징하기 때문에
천정이나 불단 문창살 등에 꽃들을 새겨 영축산의 우화서를 법당 안에 재현한 것이라 하겠다.
만다라화는 흰 연꽃이고, 만수사화는 붉은 연꽃이다.
하늘에서 연꽃이 비처럼 내렸다는 것은 천상계(天上界)가 부처님의 설법에 감동하여
꽃 공양을 한 것으로 그들 모두가 부처님의 법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연꽃이 부처님 위에도 내리고 모든 대중 위에도 흩어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계와 천상계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언젠가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내용인 것이다.
이렇게 불법의 세계에서 내리는 꽃비는 마음이 청정해진 대중의 성불을 의미하기도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하늘에서 꽃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면......
상상만으로도 황홀감의 전율이 느껴지는 듯 하다.
휘황찬란한 꽃들이 비처럼 흩어져 내리는 곳에 있으면
부처님 말씀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에도 해마다 봄은 찾아오고
그리고 어김없이 꽃잎이 비처럼 내리겠지만
우화서의 깊은 뜻을 알고서 부처님의 진실된 법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자연은 어김없이 1년에 한차례
우리에게 불국토를 떠올릴 수 있는 장관을 연출해 보이지만
그 흩어져 내리는 꽃비를 보면서 成佛을 떠올리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진실을 구할 것을 구체적인 현상으로 보여주지만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나는 눈뜬 장님과도 같고
잠시 떠올렸다 금세 잊어버리는 건망증 환자와 다를 바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 문화재청 김포국제공항 정진희 감정위원
- 문화재칼럼, 2008-03-31
- 내용 중 사진추가 : Gijuzzang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