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벅수신앙과 성(性)신앙
이 종 철(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1. 벅수신앙의 구조
1) 장승문화의 옛 터전
남해안과 금강 · 만경강 · 영산강 · 섬진강 등을 끼고 넓은 평야에 자리한 호남은
성모신사(聖母神祀)로 유명한 지리산을 동부에 두고 있는 축복받은 땅이다.
세계적으로 지석묘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고,
최근에 발굴된 섬진강 상류의 구석기 유적이 말하여 주듯 일찍부터 선사문화가 발전되었던 곳이다.
마한과 백제의 옛터로 이 지역 사람들은 벼농사와 수리시설을 발달시켰고,
중국 · 일본과 빈번한 해상교류로 건축 · 토기 제작 · 금속공예에 뛰어난 기술을 발휘했었다.
이 지역에는 벼농사와 관련된 천신사상 · 자연숭배신앙이 널리 퍼져 있고,
공동노동 경작의 오랜 전통을 계승한 두레조직에 의하여
민요 · 풍물 등 집단 예술도 특징있게 전승된 곳이다.
부여 · 공주 · 개성 · 서울이나 식량보급 지역으로 농업생산의 중요한 터전이었지만,
역대의 권력계층으로부터 경원시되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주민은 순진무구한 농사꾼의 진리를 그 기본 성향으로 간직하면서 노동의 고뇌와 한(恨), 개혁의지 등을
그들의 풍물·판소리 · 육자백이 · 시나위 음악의 신명(神明) 속에 발산시켰다.
전라남북도는 장승들의 최대 잔존지역으로, 잠정 확인된 통계로 보면
전국 167개소 가운데 73개소가 이 지역에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전남은 54개소로 돌장승 37기, 목장승 17기이며, 전북은 돌장승 15기, 목장승 4기가 남아 있다.
부르는 명칭은 '국장생 · 장승 · 장성 · 벅수 · 당산(돌탑 · 상당 · 입석)할아버지·할머니' 등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 속에 용해되고 융합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이곳 장승들의 세워진 시대나 지역은 매우 다양하여
장흥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장생탑비, 전북 익산군 동고도리(東古都里)의 수구막이,
영암 월출산 기슭의 국장생 · 황장생, 남원 만복사지의 석장승 등은
멀리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것으로는 남원 실상사(實相寺) 돌벅수, 나주 운흥사(雲興寺) · 불회사(佛會寺)의 돌벅수,
무안 법천사(法泉寺)의 돌벅수, 해남 대흥사(大興寺),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목제 호법신장(護法神將)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성격상 무교와 불교의 조화적 만남이 돋보이는 명품들이기도 하다.
호남에는 나라의 기틀을 굳게 하고 고을의 지맥을 다스리며 재앙과 역병을 막아 주는
풍수비보장승(風水裨補長性)이 많다.
그 중에서도 전북 익산 동고도리의 수구막이,
남원 운봉(雲峰)의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 방어대장군 벅수, 순창읍 충신리(忠信里)와 남계리의 돌벅수,
전남 여수, 여천의 화정여(火正黎) · 남정중(南正重) 문자 벅수,
광주 동문밖 보호동맥(補護東) · 와주성선(蝸株成仙) 등은 매우 주목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한편 읍 · 진(邑·鎭)의 성문에서 귀신과 도깨비를 막고,
천연두 · 두창병(頭瘡病)을 가져오는 호귀(胡鬼)를 쫓는다는 '성문벅수'의 예로는
전북 부안의 서문안 당산 장성, 전남 강진의 병영성 서문밖 돌벅수, 장흥 관산 북문밖 돌벅수,
보성 해평(海坪) 벅수 등이 있다.
마을 제사의 신체(身體)가 되는 장승은 여수와 여천의 돌벅수들,
진도 덕병(德柄)의 대장군 · 진상등(鎭桑燈), 장성 와우리의 한글 장승 등 현재 약 20여 기가 확인된다.
결국 호남지방 장승의 기능은 액맥이 · 잡귀방지 · 수호신(풍농 · 풍어 · 해상안전) · 사역수호 ·
읍성수호 · 풍수비보 · 득남 등 매우 다양하여 한국 장승문화 연구의 중요한 대상지역이 된다.
이 지역 사람들의 돌벅수에 대한 강한 애착은 민중문화 변천의 잔존상을 실감있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호남지역 장승은 너무 다양하여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신라 · 고려시대의 장승은 화강석을 다듬은 돌비석에 얼굴 표현 없이
국장생 · 황장생의 문자만 각(刻)한 유형이 있다.
조각수법에 있어서 남원 만복사지 · 남원 신기리 장승처럼 힘이 넘치는 금강역사 수문신을 닮은 것,
순창읍 남계리 벅수 · 익산 동고도리 수구맥이처럼 불교의 영향을 받아 미간에 백호를 한 것,
그리고 전북 부안과 정읍, 전남 무안의 당산 벅수처럼 순박한 시골 노인과 같은 것 등이 있다.
남원 실상사, 운봉 서천리, 영암 금정산 쌍계사 벅수는 머리에 차양이 있는 벙거지를 쓰고,
불력(佛力)이 들어가 있는 왕방울 눈, 힘있게 솟은 주먹코와 송곳니, 굳센 장사의 턱,
한 가닥 혹은 두 가닥의 팔자수염, 괴체의 몸통 등 명산사찰을 지키는 당당한 풍채를 지니고 있다.
강진 병영, 보성 해창, 나주 불회사 · 운흥사, 영광 도동 · 무안 성암, 진도 덕병, 담양 천변(川邊)의
장승들은 담력과 지혜, 익살과 기지, 관용과 응징, 용서와 화해의 심상을 두루 갖춘 표정을 하고 있다.
해남 대흥사, 승주 선암사, 화순의 나무벅수, 장성, 곡성, 여천, 신안, 해남, 전북의 장수 · 순창,
고창 선운사(禪雲寺), 부안 내소사(來蘇寺)의 장승들은 뽐내거나 우쭐댐이 없이 느긋하고 그윽한 맛,
세월 속에 고뇌를 극복하는 지혜가 담긴 탈속한 아름다움을 가졌다.
전라남북도는 장승 유적지의 본고장답게 11개소의 전국 지정문화재 가운데
중요민속자료가 나주 · 남원 · 순창 · 부안 등지에 7개소가 있고,
지방 지정문화재 장승도 영암 · 부안 · 남원 등지에 약 16기가 있다.
(이종철 /『장승』/열화당/1988 중에서 발췌)
2) 제의(祭儀)의 구성
① 제의(祭儀)의 명칭 및 일시
조사통계에서 장승과 관련된 제의(祭儀) 명칭은 불명 100개소, 확인된 87개소 가운데
당산제계통(堂山祭系統)이 23개소, 산신제계통(山神祭系統)이 15개소, 장승제 계통이 11개소,
신굿·별신굿 계통이 8개소, 탑제(塔祭) 6개소, 동제(洞祭) 5개소의 분포를 보였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별신(別神)굿 계통은 주로 전남지역이 많고, 당산제 계통은 전북과 경남이,
장승제 계통은 충남이, 경기는 상당(上堂) · 국시당 · 용당 · 신사당(神祀堂) · 구천제 등 잡다(雜多)하다.
제의일시는 확인된 78개소 중 정월 1일에서 13일까지가 19개소, 정월 14일 6개소, 정월 15일 24개소,
정월 택일(擇日) 3개소 등 53개소로 전체 제일의 68%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다음이 10월 1일에서 15일로 12개소이었다.
② 제(祭)의 기능
장승의 기능별 분류로는 마을 수호가 34개소로 가장 많고, 액맥이 · 잡귀방지 등은 32개소,
득남이나 낙태(落胎) 관련이 3개소, 부락 안녕 7개소 등으로 대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기능은 마을의 형편이나 제사자(祭祀者), 기구자(祈求者), 시대와 환경에 따라
천태만상을 보여주고 있다.
③ 제신(祭神)의 신격(神格)
이상에서 장승의 기본적인 제의는 원초적 신앙행태에 주술적(呪術的), 유교적(儒敎的) 신앙이 가미되었고,
제후에 있어 고대인의 신에 희생이나 제물헌공방법(祭物獻功方法)에서 지신은 매헌(埋獻),
하해신(河海神)은 침헌(沈獻), 천공(天空)의 신은 투상(投上),
산신과 수신(樹神)은 수지암석상(樹枝岩石上)에 현헌(縣獻)의 제양상(諸樣相)이 엿보였다.
그리고 유사 속에 상이한 의식은 장승신앙이 토속적이고 지역발생적이며 비조직적인 전승이어서
특정한 마을이나 주민의 생활관습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제약을 더욱 강하게 받으며
인간본연의 종교적 욕구를 그대로 허식 없이 표현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었다.
상술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민족의 신앙적·정신적 측면의 이해는 신관(神觀)에서 규지(窺知)될 수 있다.
장승에 대한 신앙의례와 속신(俗神)은
신의 성격이나 서민생활의 이해에 필요불가결의 문화현상이며 종교현상이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장승은 천신(天神) · 산신(山神) · 수신(水神) · 수문신(守門神) · 농업신(農業神) ·
방위신(方位神) 및 노신(路神)으로서 주민들은 장승에 신의 초월적인 힘을 부여한다.
인간에게 신의 영력(靈力)을 베풀게 하고 인간을 보살피는 '제신(諸神)의 체계'로서
인간에게 길흉화복과 농사의 풍년과 풍어, 우마(牛馬)의 번성, 산천의 비보, 축사축귀(逐邪逐鬼),
해상안전, 자손창성, 재액(災厄) 및 질병 방지, 방위보호(方位保護), 여로무사(旅路無事) 등을
풀어주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④ 신앙구조(信仰構造)
장승의 신앙은 외적 표층종교(表層宗敎)인 불교 · 유교 · 기독교 등에 깊게 습합(習合)되지 않은 채
내적 기반신앙(基盤信仰)으로서 민간의 신앙생활 속에 스며든 집약사고(集約思考)의 부분요소이다.
그러나 농경문(農耕文) 청동의기의 솟대 신간(神竿)이나 고문헌에서 볼 수 있었던 장승복합문화는
외래종교에 영광의 자리를 승계시켰고,
동제신앙체계에서마저 서낭굿 · 산신굿 · 별신굿 · 당산굿에 밀려
마을의 적극적인 수호신에서 액막이나 수문신 · 노신(路神) 등의 차위신(次位神)으로 변천해 가고 있다.
제의 또한 규모에서나 내용면에서
신수(神樹)와 신단(神壇) · 신당(神堂)이 있는 주제장(主祭場)이 되지 못하고,
장군신(將軍神) · 신장신(神將神) · 손님신 · 제액귀신(除厄鬼神) · 노신(路神) 정도로서
비손 · 고사(告祀) · 퇴식(退食)을 받으며 발원(發願) 형식의 대상신(對象神)으로 비중이 약해지고 있으며
주기적 제사로서 기능마저도 상실하면서
한국인의 사고체험의 잔영으로서 근대화 · 과학화의 정신적 혼돈 속에서 인멸되고 있다.
3) 결어(結語)
① 장승복합문화의 신앙상징은 경계표(境界標) · 석묘전설(石墓傳說)을 통한 영상(嶺上)의 경계신(境界神) · 천신(天神) · 산신(山神) · 수신(水神) · 수신(樹神) · 지신(地神) · 노신(路神)이 복합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신앙적 기능을 폭넓게 수용하기 위한 신수(神樹) · 신당(神堂) · 신체(神體) · 누석단(累石壇) ·
장승 · 짐대 등으로 신체가 분화되면서 수호신(守護神)·조상신(祖上神) · 지모신(地母神) · 성신(性神) ·
호법신(護法神) 등 제신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수용하게 된다.
또한 각목독신(刻木篤神)으로서 신성(神性)을 가지다가 도깨비·귀면(鬼面) 등의 상징체계를 부여받으면서
후세에 이정표(里程標) · 비보신(裨補神) · 방역신(防疫神) · 수문장신(守門將神)과
악귀를 쫓는 기원적 액막이로서 상정되고 있다.
② 장승제의에는 경계신(境界神) · 노신(路神)으로서 비념이나 퇴식(退食)공양과
읍락수호신(邑落守護神)으로서 동제사(洞祭祀)나 별신제(別神祭) 숲고사가 있고,
동제의 하위신으로서 피박 · 고사 · 거릿제사 등이 남아 있다.
③ 관련제의는 당산제 · 산신제 · 장승제 · 별신굿 순이며 제일(祭日)은 음력 정월이 가장 많았고,
10월이 그 다음이었다. 이는 일년의 시작이고 농사 준비기인 정월의 가장 밝은 상원일(上元日)에
신의 강림을 맞아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이 만나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축제이었다.
이는 고대 은정월(殷正月)의 풍습이었고 세시의례와 농경의례가 조화된 삶의 시작이었다.
④ 제관(祭官)의 선출에서 강신(降神) · 협의(協議) · 윤번(輪番) · 연장순선정(年長順選定)은
고대신화에서 단군의 하강, 박혁거세의 옹립, 고신라의 왕위계승을 낳은 신탁(信託) · 화백(和白) ·
육촌회의(六村會議) 등의 유습과도 관련을 갖는다.
⑤ 선출된 제관의 생기(生期) · 연로(年老) · 순결(純潔) · 금기(禁忌) 등은 지도자 윤리를 강조한 것이며,
마을사람들은 신역(神域)의 청소, 동네우물 치우기, 금줄 · 황토의 설비, 언행의 조심은
단군신화 등에 보이는 금기처럼 세속을 성속(聖俗)으로 융합하는 내적 확인이었다.
⑥ 제비(祭費)의 공동조달 · 공동의례(불밝히기 괴산예(槐山例)) · 공동금기 등은
집단성원의 우리의식을 지켜 주는 공동체 유산이었다.
이러한 의식화 과정을 통하여 마을 사람은 전통적 가치를 확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사회통제의 규범속에 사회화하는 여과적 장치를 제도화하였다.
⑦ 제의과정에서
영신(迎神 : 청소 · 금기 · 장승 제작) - 제신(祭神 : 祭物 · 祭儀) - 송신(送神 : 소지 · 놀이 · 음복)은
신인합일(神人合一)의 상호작용(between relation)과 인간과 인간의 교환(exchange)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제의를 통하여 마을사람은 신의 축복을 함께 한 이웃으로서
보호의 감정과 안도감, 긴장해소, 인간상호간의 재조정, 의견의 교환(통신) 등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⑧ 장승 제의(祭儀)는 별신굿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문 사제자(司祭者)이고,
연예인인 무당(Shaman: recreation leader)을 통하여 마을사람에게 집단예술을 전수하였고,
뒷풀이로 이어지는 굿거리는 무용·연극·희곡의 모태가 되었다.
매구굿에서 마을사람은 탈아(脫我)의 경지에 몰입되어 청량제적 놀이문화를 즐김으로써
고된 농사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적 휴식을 가졌다.
(이종철 /『장승제의 신앙체계』/ 1967 / 김원룡 교수 정년논총 중에서 발췌)
2. 마을 공동체 성기 신앙
1) 서언(序言)
인간은 일상 및 비일상세계에서 보이는 성(sexuality)에 대해
한편으로는 성(聖)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속(俗)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양면성(ambivalence)을 지닌
사회문화적 대상물(socio-cultural objects)로 생각하여 왔다.
이러한 사실은 성이 지닌 '생산력' 및 '쾌락성'과 연관되어 표출된 주술종교적(呪術宗敎的) 관심의
여러 표현(representation)을 세계 도처에서 찾아 진다는 점에서 보다 명백해 진다.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넘어가는 과정 또는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성이 갖는 종교적 측면 및 사회문화적 측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이것이 제도화된 절차나 상징적인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이 발표에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다면적(multi-dimensioned)인 의미체계를 띠고 있는 성을 하나의 생리적 현상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하나의 종교적 현상이자 문화적 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즉, 성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세속적인 이미지와 성스러운 이미지가
일상 및 비일상세계에서 어떠한 메카니즘을 통해 상호 전이되는지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일상 및 비일상세계에서 보이는 성에 관한 담론(談論:discourse)들이
어떠한 경우에는 성스러운 것이 되고 또 어떠한 경우에는 속스러운 것으로 규정되는지
그 과정적 측면(processional aspect)에 연구의 초점을 두고자 한다.
2) 성신앙(性信仰)의 역사적 전승(傳承)형태
고대의 성신앙에 대한 내용은 현존하는 고고학적 자료나 역사민속학적 자료를 통해서
어렴풋이 유추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고고학적 자료나 역사민속학적 자료를 통해서
성신앙 관념의 전반적인 상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선사시대의 성신앙 관념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남긴 예술작품,
구체적으로는 암각화(岩刻畵)에 많이 남아 있다.
그 한 예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동물들이 교미(交尾)하는 모습과 두 팔을 올려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성기를 노출한 인물상이 있다. 이는 수렵, 어로의 성공과 대상 동물의 번식, 그리고 안전을 기원하는
수렵의례의 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인물상에 남성의 성기를 드러낸 그림은 성적인 특징과 직결되며,
이는 남성성기의 신비력에 착안한 생산과 번식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고대 건국신화나 설화 속에 출생과 관련된 주제로
단군(檀君) · 주몽(朱蒙) · 혁거세(赫居世) 등의 이야기들이 전한다.
이들 신화나 설화내용을 근친상간적 패륜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는 성윤리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성과 직접 관련된 내용으로는 『삼국유사』「선덕왕지기삼사조(善德王知機三事條)」에
여근곡(女根谷), 즉 여성성기에 얽힌 기사가 전한다.
백제군사 500여명이 여성의 성기형국(性器形局)을 하고 있는 여근곡에 숨어 있다가 모두 죽게 되는데,
이는 남근의 상징적 표현인 개구리, 즉 백제군사가 여근(女根)인 옥문지(玉門池) 또는 여근곡에 들어오면
죽게 된다는 여성 성기에 얽힌 설화적 내용이다.
그리고 삼한시대 신성구역으로 알려진 소도(蘇塗)를 수터, 즉 남성의 터로 보고
거기에 세운 나무장대(立大木)를 목재남근(木材男根)의 상징물로 해석한 견해도 있다.
한편, 발굴을 통하여 얻어진 유적유물 가운데 신라의 토우상(土偶像)은
성기숭배사상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덤의 부장품으로 사용된 이들 성과 관련된 토우들은
크게 애정이 넘치는 부부상, 성기를 노출한 남녀상, 성교합의 성애상(性愛像)으로 나눌 수 있다.
또 경주 노동동(路東洞)에서 출토된 항아리 장식과 남근이
신체의 전체적 균형에 비하여 과장되게 표현된 노 젓는 뱃사공의 토우상이나,
미추왕릉지(味鄒王陵地)에서 출토된 토우 가운데 남자보다 여자쪽을 크게 만든 토우상,
그리고 남녀가 성교합중에 있거나 남근을 곤두세워 여인의 음부에 맞대고 있는 형상들에서
당시의 성기신앙을 엿보게 한다. 이들 토우 모두가 무덤의 부장용(副葬用)으로 사용된 점은
생산력에 근거한 성기숭배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는 사자(死者)의 저승세계에서의 부활과
자손들의 번창을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의례적 행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1976년 경주 안압지(雁鴨池)에서 송목재(松木材) 모조 남근이 발견되어
삼국시대 이래 통일신라시대의 성문화를 밝혀주는 자료가 되었는데,
이와 비슷한 예가 일본의 나라시대(奈良時代) 평성궁(平城宮) 우물에서 발견되어
이 시대 문화의 교류까지도 짐작하게 한다.
고려시대의 성관련 자료는 구비문학(口碑文學) 및 고고유물을 포함한 여러 사례들이 있다.
그 중에서 출토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성교합을 부각(浮刻)한 동경문(銅鏡文)이 있는데,
이는 조선조 별전(別錢)에서 보이는 성행위 표현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청동거울이 장식용이었는지 아니면 기자(祈子)나 부부화합을 비는 부적같은
주술종교적 상징물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 시대의 성관념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통치기제(control mechnism)를 유교적 가치관에 두고 도덕적 질서유지를 중시한
까닭에 성윤리 또한 강한 제약 속에서 경직된 면을 보이지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전승되어온 성과
관련된 민간신앙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 보인다.
농경문화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직단(社稷壇)에 사직신(社稷神)을 위한 연중제사 의례시에
신물(神物)로 목재남근을 깎아 붉은칠을 하고 푸른 글씨를 써서 봉납(奉納)하였다는
부근(付根) 풍습의 기록이나 부근당(付根堂)의 기록들이 보인다.
여기에서 부근이라는 명칭은 부군(付君, 府君) · 부군당(付君堂)으로 달리 기록되어 있으나
남성성기인 남근과 같은 것으로 파악된다.
부근에 대한 기록은 또 『중종실록(中宗實錄)』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보면, "우리나라 각사(各司) 안에 모두 신을 설치하여 제사하는 풍습이 있는데 부근이라 한다.
행해온 지 이미 오래이므로 능히 혁파(革破)하는 자가 없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헌부(憲府)가 먼저 지전(紙錢)을 불사르고 각사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모두 불사르게 하여 그 제사를 금하니, '쾌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또 "양현고(養賢庫) 안에 부근의 제사를 지낸 일이 있는데, 대비(大妃)가 내수사(內需司)로 하여금
양현고의 부근신에 양근신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보건데, 성기신앙은 민간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와 궁중에서도 신앙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군당과 관련하여 목제 남근을 당사(堂舍)안에 걸었다는 사실이,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 이수광(李 光)의『지봉유설(芝峰類說)』
『조선의 무격(巫覡)』등에도 언급되어,
부근숭배(付根崇拜) 즉 남성성기숭배신앙이 과거부터 줄곧 계속되왔음을 보여준다.
한편, 불사(佛舍)의 종교적 관행으로 속리산 법주사에는 '송이(松耳)놀이'라 하여
매년 설날에 신자들이 목제남근을 깎아 산정 신당에 봉납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송이란 남근을 이르는 불교적인 은어라 하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보은현사묘조(報恩縣祠廟條)에는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는 속리산정에 있는데,
그 신은 매년 10월 인일(寅日)에 법주사(法住寺)로 내려온다.
산중 사람들이 신을 즐겁게 맞이하기 위하여 신사(神祠)를 지으니 45일 동안 머물다 돌아간다."라는
기사가 있어 그러한 풍습을 짐작하게 한다.
3) 결어(結語)
본고는 한국의 성신앙 중의 일부인 성기신앙을 중심으로 역사적 전승과정과 유형 및 그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보는데 의의를 두었다.
물론 한국의 성신앙이라고 할 때에는 성기신앙 외에도 기우제, 줄다리기, 여성집단놀이, 탈춤, 신화,
전설, 민담, 속담, 쌍말(욕) 등에서 보이는 성신앙의 제현상(諸現象)들을 포함시켜
그 일반성과 특수성을 고찰하여야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의 보다 충실한 연구를 기대하고자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성(性)이 어떤 경우에는 금지의 대상이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허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성 자체의 생산력에서 기인하는 측면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그 사회의 허용진폭력(許容振幅力), 즉 사회문화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성 표현이든지 간접적인 성 표현이든지간에,
성이 어떠한 의미체계에 연루되는가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상이한 관념적인 차이를 발생시킨다.
민속현상에서 보이는 인간의 '또 하나의 문화'인 성은 그 성격이 자의적이고 다원적임에도 불구하고
성의 영역이 '생산-풍요-비보(裨補)'로 표상되면 일상적인 영역에서 비일상적인 영역으로 전환되어
숭배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그에 따른 많은 의례적 행위를 산출한다.
반면 성의 영역이 일상적인 영역에서 경험하는 '쾌락'으로 표상되면
그에 따른 사회적 제재가 가해짐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적인 영역에 속하더라도 그것이 출산이라는 생산적인 측면에 국한되면,
허용의 사회문화적 분위기(ethos)가 함께 나타남을 엿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을 둘러싼 표상(representation)은
사회문화적 요인들(socio-cultural factors)에 의해서 각색되고 위장되어
인간사회라는 무대에서 다양하게 연출되는 행위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종철 외/「한국의 성문화 연구」/1994/ 국립문화재연구소 중에서 발췌)
《참고문헌》 이종철 외/「한국의 성신앙 현지조사」/국립광주박물관/1984
이종철 황헌만 외/「장승」/열화당/1988
이종철 외/「남녘의 벅수」/김향문화재단/1990
김두하/「벅수와 장승」/집문당/1990
이종철 외/「한국의 성문화 연구」/문화재연구소/1994
이종철, 김종대, 황보명/「性, 숭배와 금기의 문화」/대원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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