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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시,서,화)

조지운 - 영모도(翎毛圖)

Gijuzzang Dream 2008. 4. 4. 09:55

 

 

 

 매창 조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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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상숙조도(梅上宿鳥圖): 매화나무 위의 졸고 있는 새
17세기, 종이에 엷은색, 100.9 x 56.3cm, 족자, 국립중앙박물관

 

조지운(趙之耘, 1637- ?)은 조선 중기 수묵화조화로 이름난 도화서 화원이다.

창강 조속(滄江 趙涑, 1595-1668)의 아들로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받았다. 

 

그는 그림 재주가 뛰어나 중국을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벼슬은 현감을 지냈고

수묵화조화와 묵매를 잘 그렸다. 

그의 아호를 매창(梅窓), 매곡(梅谷), 매은(梅隱)이라 한 것을 보아도

매화에 얼마나 심취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뛰어난 구성의 묘를 보여주는 매상숙조도(梅上宿鳥圖, 졸고 있는 새)인데,

조지운의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매화가지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든 새를 묘사하였는데, 뛰어난 구성미를 보여준다. 

 

매화가지와 대나무가 반원을 그으며 뻗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새가 앉아 있는 간결한 화면구성에서 조지운의 뛰어난 화가적 기량을 엿볼 수 있다.

간결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허술한 구석이 없는 구도이다.

 

왼편 하단부에서 반원을 그으며 화면을 상하로 나누고 있는 매화나무 위에

고개를 숙인 채 잠에 빠져있는 새가 비스듬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매화나무와는 대조적으로 농묵으로 처리한 대나무잎들이

새를 감싸면서 사선 방향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화면의 아랫 부분에 중점을 두면서도

매화나무 잔가지 하나가 새의 뒤편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꺾여 올라,

상단의 관서(款署)에까지 시선을 유도하여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루었다. 

 

이렇듯 간결한 가운데 허술한 곳을 찾아볼수 없는 그림을 그린 조지운은

어몽룡(魚夢龍)의 묵매도 영향을 받아 이를 변화시킨 작품들도 남기고 있다.

 

 

 

 조 이삭 쪼아 먹는 메추리, 가정의 평안 

 

 

 메추리(홍료추순도, 紅蓼秋순圖)

 17세기, 24.8×15.8 cm, 간송미술관 소장

 

통통하게 살찐 메추리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진 낱알을 쪼아 먹고 있다.

빨간 열매가 매달린 나뭇가지나 붉은 잎사귀로 보아 계절은 가을이 분명하다.

메추리 그림은 주로 조와 함께 그려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메추리의 암컷을 암(鵪)이라 하는데

중국발음으로 같은 소리를 내는 한자 중에 편안하다는 뜻의 ‘안(安)’과 같다.

한편 조는 벼과의 식물인데, 벼는 한자로 ‘화(禾)’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화목하다는 뜻의 ‘화(和)’와 소리가 같다.

그러므로, 메추리와 조가 함께 있는 그림은 ‘안화도(安和圖)’라고 한다.

편안하고 화목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는 뜻.

 

메추리 그림은 아마 그런 마음을 담은 그림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조금 억지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옛 사람들은 이런 의미를 그림에 담는 데 익숙하였다.

그러므로 메추리 그림 선물은 가정의 화목과 편안함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소리가 같은 글자를 이용하여 뜻을 엮어 내는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가을날 조 이삭을 쪼아 먹는 메추리 그림은 풍성한 느낌이 든다.

 

메추리는 살이 쪄서 보기 좋고, 조는 특히 이삭이 많이 달리는 작물이므로,

부귀와 풍요를 기원하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림 등에서 메추리는 보통 조, 여뀌꽃, 국화 등과 함께 그려진다.

조는 풍성한 결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메추리와 함께 자식을 많이 낳아 풍성하고 넉넉한 삶을 누리라는 의미를 갖기도 하며,

벼[禾]과의 식물이기 때문에 메추리와 함께 편안하고 화락하게 복을 누리라는

축원의 뜻을 가지기도 했다. 벼 화(禾)를 동음인 화할 화(和)의 의미로 풀이한 것이다.

 

여뀌꽃은 요화라고도 불리는데 마칠 료(了)의 의미를 가져 메추리와 함께 그려질 때

벼슬을 마친 시기, 즉 만년에 편안하게 지내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국화는 머물 거(居)의 뜻이 있어

메추리와 함께 그려지면 안거(安居), 즉 편안하게 지내라는 축원의미가 된다.

 

실제로 메추리는 암수 한 쌍이 아주 다정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고 하니,

메추리 그림에는 부부간의 사랑도 함께 들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메추리 그림은 볼품이 없다.

짜리몽땅한 몸집이며, 얼룩덜룩한 털빛이 더욱 그렇다.

 

같은 과에 속하는 꿩처럼, 꼬리가 길지도 않고 소리도 우렁차지 않다.

겨우 키 작은 풀밭 등지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작은 풀 한 포기를 만나도 조심스럽게 돌아가니, 그저 겸손하게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하다.

그래서 메추리는 넉넉지는 않지만 만족하며 사는 안분자족의 마음, 안빈낙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옛사람들은 이런 메추리에게서 오히려 배울 점을 보았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처지에 맞게 행동하면 다른 이의 공격을 받지도 않고 마음도 편하다는 것이다.

 

자, 이제 메추리는 왜 꽁지깃이 없는지, 옛 이야기를 통해 알아 보자.

 

어느 날 배고픈 여우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마침 나무 그늘에 메추리 한 마리가 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우가 메추리를 붙잡자, 메추리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우야, 날 살려 주면 맛있는 걸 많이 먹게 해 줄게.”

여우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메추리를 놓아 주었다.

“그래, 지금 당장 맛있는 걸 내놔 봐!”

여우는 메추리에게 다그쳤다. 메추리는 여우를 데리고 길가로 갔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들로 나가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메추리는 팔짝팔짝 뛰어서 아주머니 앞으로 갔다.

아주머니는 난데없이 나타난 메추리를 잡으려고 빨리 걷기 시작했다.

메추리는 가만 기다렸다 손이 닿을 즈음 잽싸게 달아나곤 하였다.

애가 탄 아주머니는 아예 광주리를 내려놓고 메추리를 쫓기 시작했다.

그때 길가 숲에 숨어 있던 여우는 광주리에 든 밥을 맛있게 훔쳐 먹을 수 있었다.

 

메추리는 여우 곁으로 돌아와 말했다.

“이번에는 재미난 걸 좀 보여 줄까?” 여우는 또 귀가 솔깃하였다.

마침 길 저쪽에서 옹기 장수 둘이 옹기를 가득 짊어지고 걸어왔다.

메추리는 앞 사람의 옹기 짐 위로 날아올랐다.

뒤따라오던 사람이 메추리를 보자 작대기로 내리쳤다.

메추리가 살짝 피해 버리자, 그만 옹기들이 와장창 깨져 버렸다.

앞서 가던 이는 너무 화가 나서 상대방의 옹기도 박살을 내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여우는 그만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메추리는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엄청 슬픈 걸 보여 줄까?” 여우는 이번에도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추리는 길가 구덩이 속으로 여우를 들어가게 한 다음, 코만 내놓고 있게 하였다.

메추리가 여우 코 위에 살짝 앉는 순간 지나가던 소금 장수가 가까이 와서 작대기를 휘둘렀다.

메추리가 살짝 옆으로 비키자 그만 작대기는 여우의 코를 정통으로 맞춰 버렸다.

여우는 너무 아프고 화가 나서 곁에 있는 메추리를 꽉 물었다.

메추리는 살살 빌며 말했다.

“여우야, 죽더라도 어머니 소리 한 번만 들어 보자.”

순진한 여우가 어머니를 외치자 메추리는 있는 힘을 다해 날아올랐다.

여우는 놓치지 않으려고 꽁지깃을 꽉 물었다.

그러자 그만 메추리 꽁지깃이 쏙 빠져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 박영대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 화가)

- 한국일보, [우리그림 한국화]

 

 

 

 

 

 

 

 

매창 조지운 / 매창절필(梅窓絶筆) 
종이에 먹, 수묵담채, 31.7×27.2cm(1면), 15.5×27.8cm(14폭)

 

이 화첩은 총 14폭의 수묵화조도가 첩장(帖裝)된 화첩으로 서두에 발문의 내용으로 보아

조지운이 절필했으나 친구를 위해 특별히 그려준 매우 의미있는 화첩이다.

 

전반적인 필치와 새의 표현, 화목(花木)과의 포치 등에서 조지운의 필치를 엿볼 수 있다.

 

두번째 면과 네번째 면은

고매(古梅)의 줄기에 단정히 앉은 까치와 고개를 푹 숙여 머리를 파묻은 까치를 각각 그렸으며,

나머지 작품은 난꽃, 패랭이꽃 등이 피어있는 수변(水邊) 암석을 배경으로 한

새들의 다양한 동작들을 담았다.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화풍을 보여주는데

다양한 구성과 활달한 필치에는 문기가 배어난다.

간결한 구도와 강인하고 신속한 필치, 담묵 위주의 묘사, 줄기와 가지를 중시하는 화면 구성에서

어몽룡과 조속의 영향이 강하게 간취된다.


본관 풍양, 자는 운지(耘之), 호 매창(梅窓) ∙ 매곡(梅谷) ∙ 매은(梅隱)으로

조선 중기 수묵 화조화의 대가였던 조속의 아들로 부친의 화풍을 계승하여

선비의 정신과 기풍을 담은 묵매와 영모에 뛰어나 수묵화조를 잘 그렸다.

묵매는 조선 중기의 묵매화법을 고루 갖춘 그림으로 주로 직립식과 사선식 구도를 썼으며,

거칠고 성근 필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작품으로는《매상숙조도》《매죽영모도》《묵죽도》《송학도》등이 있다.
 

 

- 발문 -

 

 

 

매창은 옛 친구 조운지의 호이다.

운지(耘之, 조지운의 字)는 곧 창강 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의 행의와 절조를 나라사람들이 존경하고 우러렀으며

여사와 문장을 겸하시어 서화가 일시에 으뜸이었다.

 

운지는 가정으로부터 얻은 것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에도 화격이 천하무쌍이라

아동에서 자심할 뿐 아니라 중국인도 또한 많이 일컬었으니 가위 기장하다 하리라.

내가 소시에 다행히도 창강선생을 상하(床下)에서 뵈었고

그로 인하여 운지와 더불어 교유하였는데

내가 호중(湖中)에 유락(�落)하면서 보지 못한지 수십 년이 되었다.

 

계해 년 봄에 운지가 금정(金井)독우가 되었는데 우정이 폐거되어 소가 울었다.

그와 더불어 옛날의 기쁨을 이었으니 어찌 평봉지행이 아니랴.
단란한 나머지 옛날의 휘호를 청하였더니 말하기를

“중년 이후에 병이 있어 절필(絶筆)한 지 오래 된 것을 자네가 모르는구나.”

내가 듣고 “억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돌아가는 날 십여 책 고서를 헤쳐 보는 사이에 화훼 ∙ 영모를 책 속의 빈 곳에 그려내니

대개 작별한 뒤의 면목이라 나를 향한 인정이 심상에서 나왔으니

어찌 파계하면서까지 억지로 하였단 말인가.

노숙한 솜씨가 더욱 기묘하니 천금(千金)으로도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후 십여 년이 안 되어 문득 천고의 사람이 되었다. 책을 덮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 참고문헌 : 간송문화 / 조선중기회화 제65호 (한국민족미술연구소,2003), pp.16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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