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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시,서,화)

헌종가례진하도 병풍

Gijuzzang Dream 2008. 4. 4. 10:05

  

 

 

 

 헌종가례진하계도병

 (憲宗嘉禮陳賀圖)  

 

  

 

 

 

 

 

  

 비단에 수묵채색 / 401.6×113.3㎝ / 8폭 / 부산 동아대박물관 소장

 

 

 

헌종이 효현왕후를 대신하여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 효정왕후(孝定王后)를 계비로 맞아들인 후

경희궁 숭정전에서 문무백관의 진하를 받은 광경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배경은 창덕궁 인정전이며 좌목(座目)이 선전관(宣傳官)으로 구성된 것을 보아

이 그림은 선전관청(宣傳官廳)에서 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 참고문헌 및 도판 : 박정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일지사,2000), pp.560-561, 도판 102.

 

 

 

<헌종가례진하도>는

헌종 10년(1844) 계비 홍씨(명헌왕후, 明憲王后, 홍재룡의 딸)와 경희궁에서 거행한

혼례의 모습을 비단에 당채를 사용하여 그린 8폭의 병풍그림이다.

 

병풍의 제1폭에는 예문제학(藝文提學) 조병구가 쓴 하례교문(賀禮敎文)이 행서체로 쓰여 있고(가례후진하반교시 반교문),

제8폭에는 정3품-정9품에 이르는 선전관 25명의 관직과 성명을 석차 순으로 적은

'선전관청좌목(宣傳官廳座目)'이 쓰여져 있으며,

제2, 3, 6, 7의 4폭에는 산과 수목들 사이에 여러 전각들이 산수화처럼 그려져 있다.

 

무관들 옆에는 다른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내전의 연(輦)이 준비되어 있고,

노랑 철릭을 입은 선전관이 월대 위에 양쪽으로 서 있다.

 

헌종과 명헌왕후의 가례는

1844년 삼간택(9월 10일), 홍재룡의 따님으로 결정하였음을 공포(10월 6일),

납채(10월 9일), 납징(10월 15일), 고기(10월 18일), 경희궁 숭정전에서 왕비 책봉(10월 21일),

본궁에 나아가 친영(10월 21일), 경희궁 광명전에서 동뢰연(10월 22일),

숭정전에서 교서 반포, 진하, 사유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결혼식에 해당하는 절차인 “친영례”는 본궁(어의궁)에서 거행하였다.

친영례는 관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그런 공식행사가 아니라

궁궐에서 나간 소수의 인원과 왕비의 친정가의 소수 인원만이 참석하는 의식이다.

 

경희궁 숭정전에서 거행한 것은 그 다음 날의 교서 반포와 진하, 사유 등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배경은 경희궁 숭정전이 아니라 창덕궁 인정전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까닭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의례적으로 창덕궁 인정전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까

관습적으로 인정전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 헌종비 명헌왕후=효정왕후=효정성황후

1844년(헌종 10)에 왕비(계비)로 책봉(冊封)되었다.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헌종비는 대비가 되어 명헌왕후의 존호를 받았다.

1857년 철종비 순원왕후가 죽자 왕대비가 되었고,

1897년 태후(太后)의 칭호를 받았으며

1904년 1월 2일(양력)에 춘추 74세로 승하하였다.[동구릉의 경릉(景陵)]

1908년 시호(諡號) 효정성황후로 존호가 개칭되었다.

효정왕후는 1853년(철종 4)부터 1904년 사이 모두 14차례나 존호를 받았는데

최종존호가 '효정(孝定)'이었다. 승하한 뒤 5일 후(양력 1월 7일)에 시호를 받았다.

‘효정’이라는 시호는 5대의 종실(宗室)을 편안하게 하였다고 하여 ‘효(孝)’이며,

순결한 덕행을 잃지 않았다는 뜻에서 ‘정(定)’ 이라고 하였다. <高宗實錄>고종 41년

 

 


가례후진하교시시반교문(嘉禮後陳賀敎是時頒敎文)

: 가례를 올린 뒤 진하할 때의 교시문

 

 

 

땅의 물덕(物德)이 무궁하여 만류가 태어나고, 하늘의 배명(配命)이 공고하여

육례(六禮)가 성취됨을 온 나라에 선포하노라.

대저 인륜을 탄생시키는 것은 군자의 도요, 가정을 다스리는 것은 교화를 넓히는 근원이다.

주나라 이남(시경편명, 주남, 소남)의 풍교와 행실은 음양의 결합에서 비롯되고,

우나라 오전(오륜, 오상)의 질서와 행실은 규예(요녀의 생장지)의 모범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가정의 화락을 위해 이성지합을 이루어,

우리 종묘의 중책을 이어받아 구중궁궐의 왕후로 책봉했다.

 

과인이 이 막대한 국기를 이어받은 것을 생각해 볼 때,

내치와 보좌의 도리에 맞도록 조심하고 경계하여,

근검온공(勤儉溫恭)하고 금슬과 종고(鐘鼓)처럼 다정하고 화목하여,

유한정정(幽閑貞靜)한 배필이 되기를 기대하노라.

천도는 홀로 운행할 수 없는 것이니, 곤위(坤位)를 어찌 오래도록 비워둘 수 있겠는가.

내전을 맞이함은 양위전의 기대요, 왕손의 번성은 온 백성의 소망이다.

합혼문은 선왕의 예의에 따르고, 길흉점은 경사의 동조에 의한 것이다.

 

왕비 홍씨는 충직하고 성실한 가문의 태생이요,

주상은 단아하고 씩씩한 품성을 지녀, 국시를 지키고 의리를 밝혀 세덕을 사책에 빛내고

행실이 돈독하여 청백한 기풍을 전파하고 있다.

비위는 여사의 교훈에 부합하여, 사록(귀녀의 발상지)의 길상을 배양하여

경복을 쌓고도 남음이 있고, 화기가 하주에 넘쳐 세업의 계승에 본보기가 됨으로,

자전(慈殿)에 의해 특별히 간택되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명망이 신인에 부합되고, 요조한 자태와 완만한 언행이 종묘를 받들만한

배필이 되기로, 본년 12월 18일, 책보를 내려 비위로 정하고,

21일 갑인에 대례를 올려, 청강에 배를 띄워 팔도의 환희를 싣고,

장추문 열쇠로 육궁을 활짝 열어 사미송(부덕송)을 드날리니,

궁중에 길조가 깃들어 내공이 하늘처럼 아름답고,

옥책이 찬란하여 곤덕(坤德)이 태양처럼 밝아온다.

 

효자가 면면히 이어지는 아름다운 터를 닦아, 백세의 본지가 천복을 받아 영원의 미를 누리고,

만년의 보록(왕실보록)을 공고히 하리라.

조야의 환희를 실어 온 세상에 전파하여, 삼라만상이 모두 소생하고, 일월의 광명이 찬란히 비춰,

묵은 때가 말끔히 씻기고 뇌우가 훈훈히 풀려, 크나 큰 혜택이 드널리 퍼지리라.

 

이에 본월 22일 새벽을 기해, 잡범이나 사죄 이하는 모두 사면하고,

관직에 있는 자는 각기 1품계씩 올려주고, 만계(滿階)에 달한 자는 타급으로 대신한다.

아! 이 나라가 비록 새로워졌으나 서민들에겐 별 다른 혜택을 가할 수 없으니,

성대의 낙토(樂土)에서 행복을 공유하게 하리니, 모든 신민은 그리 알지어다.
- 예문제학 신 조병귀 제진(藝文提學臣趙秉龜 製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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