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며(자료)

불교조각승려(彫刻僧) 색난(色難)

Gijuzzang Dream 2008. 2. 25. 22:11

 

 

 

 

 

 

 조각승 색난(色難)의 생애와 불교조각

 

 

 

10년 전에 도자기박물관에 근무하기 위하여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남도(南道)로 내려간 적이 있다.

사립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한계를 벗어나

우리에게 필요한 공립박물관을 만들어 보려는 포부를 갖고 택한 남도행이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에서 고려청자를 만들었다는 역사성 외에

아무 연고없는 그곳의 생활에 기대감과 막막함을 함께 느꼈다.

그러나 박물관으로 출근하는 첫날에 보았던 강진만의 풍경은 이러한 막막함을 말끔히 없애주었다.

[강진 사당리의 노을]

 


7년 동안 강진청자박물관에서 생활하면서

유물의 수집과 전시 등을 추진하여 도자전문박물관으로 면모를 갖추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박물관이 단지 자기 고장을 홍보하는 공간이

아니고, 살아있는 역사을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려고 군민들과 문예모임을 결성하여

정기적으로 여러 지방의 문화재와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이러한 답사를 통하여

전국 사찰에 봉안된 조선후기 불상이 다양한 양식을 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우연한 기회에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색난(色難)이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장된 목조가섭존자와

강진군 옥련사 목조석가불좌상을 제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진 옥련사 불상]


당시에는 불상을 조각한 스님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어

불화를 그린 의겸(義謙)과 범종을 만들던 사인(思印)에 대한 논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조각승(彫刻僧)을 찾아보았다.

색난을 찾기 위하여 17세기 후반에 쓰여진 전라도 지역의 문헌자료를 살펴보다가

고흥 능가사 범종과 사적비에서 관련 기록을 찾게 되고,

1694년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과 극락전에 봉안된 목조불좌상이

색난이 제작한 것을 알게 되면서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조각승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화순 쌍봉사 불상]


2000년 10월 미술사연구회 월례발표회에서

“조선후기 전라도 조각승 색난과 그 계보”를 발표하여

색난의 활동 시기와 불상양식 및 그의 계보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2002년 일본 쿄토에 위치한 고려미술관에 소장된 목조불감을 조사한 후,

색난이 1689년에 제작하였음을 학계에 발표하였다.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불감]


그 후에도 색난이 제작한 불상이

전남 광주 덕림사 명부전, 고흥 능가사 영산전, 해남 대흥사 응진전, 구례 천은사 영산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 등에서 발원문을 통하여 밝혀졌다.


필자는 우연히 알게 된 조각승 색난을 계기로

불상 제작이나 중수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후기 활동한 조각승 인명사전을 출간하였다

("朝鮮後期僧匠人名辭典-佛像彫塑-", 養士齋, 2007).

 

이 작업을 통하여 1600년부터 1910년까지 불상을 제작하거나 중수한 스님이 943명이고,

그 가운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118명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불상이

삼국이나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불상보다 미적(美的)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불교를 억압하던 시기에 제작된 불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으로 생각한다.

조선후기에 불상을 제작한 스님들은 수행과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종교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불상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불상에 복장(腹藏) 의식을 결합시켜 믿음의 대상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식까지

결합시켜 한국적인 불교조각의 독창성을 만들어내었다(태경 譯著, 조상경造像經, 운주사, 2006).


최근 전남 고흥 능가사의 연혁을 적은 사적기(寺蹟記)를 보다가

색난을 조묘공(造妙工)이라 적은 부분을 찾았다.

17세기 후반에 조각승 색난이 가졌던 위상을 가장 잘 표현한 명칭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이 잊혀졌던 조각승을 밝혀내는 것은 근대 조각의 선구자 정관 김복진(1900-1941)보다

앞서 우리나라에 수많은 조각승들이 불교조각에 매진하였음을 밝혀

동양불교조각사에서 한국 불교조각의 독창성을 밝혀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유물을 보면서 만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 속에 풋풋한 사람의 향내가 나기 때문이다.

- 문화재청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최선일감정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칼럼, 2008년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