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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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툴루즈 로트렉 作 - 물랭 루즈에서: 춤

Gijuzzang Dream 2008. 2. 23. 01:47

 

 

 

 

 <물랭 루즈에서: 춤>

 -  무용수의 화려한 모습 뒤 감춰진 비애  

 

 

 

앙리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 11.24~1901. 9.9)은

프랑스 프로방스지방의 귀족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 겪은 사고로 성장이 멈춰 그의 키는 152㎝에서 더 자라지 않았다.

세간에는 귀족가문의 사촌 간이었던 부모의 근친결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로트렉은 작은 키와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로 여성은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냉대를 받았다.

19세기 말 화려한 파리의 밤의 산책자였던 그는 카바레와 매음굴을 전전하며

무절제한 생활을 거듭하다 알코올 중독과 성격파탄에게 이르러 결국 37세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신체적 고통으로 인한 불행한 삶 속에서 로트렉은 특유의 유쾌함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카바레의 무용수와 매음굴 창녀 등 당시 파리의 뒷골목 밑바닥 인생의 삶을 작품에 담았다.

정작 자신은 남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없는 처지를 보상 받고 싶어서였을까.

흥겹게 춤을 추는 무용수들을 단골 주제로 삼았다.

풍경화 같은 주제에는 무관심했던 로트렉이 주변의 친구들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소외계층에 대한 동지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로트렉은 1885년 예술가들의 거리인 몽마르트르에 정착해서 10년 넘도록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그 만의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완성해나갔다.

 

‘물랭 루즈에서: 춤’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빨간 풍차’라는 뜻을 가진 ‘물랭 루즈’는

지금도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유명한 캬바레로

여자 무용수들이 치마를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다리를 위로 번갈아 들어 올리는

흥겨운 춤인 ‘프렌치 캉캉’이 첫 선을 보인 곳이다.

1889년에 개장해 당시 선풍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파리의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콘서트를 여는 중앙의 무도장과 관객들을 위한 연회장이 있었으며

외부에는 손님들이 휴식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정원도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제작된 ‘물랭 루즈’라는 뮤지컬 영화에서

당시의 화려했던 19세기 말의 파리의 밤과 함께 로트렉의 모습도 등장하기도 한다.

1890년과 1896년 사이에 로트렉은 이곳 ‘물랭 루즈’를 소재로 30점 이상의 작품을 제작했고,

수많은 잡지에 그의 작품이 실리게 되었다.

 

인상적인 색채와 날카로운 실루엣의 ‘물랭 루즈’ 포스터를 그렸는데

당시 파리시민들 사이에서 수집가가 생겨날 정도로 큰 인기였다.

 

‘물랭 루즈에서: 춤(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앙리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13x148㎝,
필라델피아, 앙리 P. 맥길레니 소장
원명: 물랑루즈에서 새로 온 소녀들의 춤연습
         - Training of the New Girls by Valentin at the Moulin Rouge
 
이 그림은 1890년 ‘물랭 루즈’의 지배인이었던 ‘조셉 올레르’가 구입하여
현관에 걸어 두었던 작품으로 중앙 부분에 당시 ‘물랭 루즈’의 인기 무용수였던 ‘라 굴뤼’와
그녀의 파트너가 흥겨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그 앞쪽으로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손님이 걸어가고 있는 전경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앙의 무용수들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에 수많은 손님들을 배치하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당시의 북적이는 파리의 밤, 명소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정확한 인물들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로트렉 특유의 묘사력과 거친 듯 자유분방해 보이는 붓질의 선들의 움직임,
그리고 인상적인 색채의 표현으로 인해 역동적인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화면 가운데 길게 그려진 바닥 위에 무용수들의 움직이는 모습의 그림자는
구불거리는 선들에 의해 움직임을 암시하면서 한층 더 짜임새 있는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새로운 경향들이 일어났다.
몽마르트르의 젊은 예술가들도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가운데
밤의 보헤미안이라 불리는 로트렉은 세속적인 주제를 즐겨 표현했다.
우리는 지극히 저속한 일상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에서
항상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현실의 모습을,
그리고 화려하고 흥겨운 모습과 웃음 뒤에 가려진 인간의 비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당시 프랑스 사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 2007.02.07 조선 [명화로 보는 논술]

-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 경희대 미술학부 강사

 

 

 

 

  이 그림은 로트렉의 세 번째이자 가장 성공적인 대형 작품으로

  3개의 평행면을 기초로해서 한층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이 정적이고 보다 개별적으로 그려져 있긴 하지만

  이전처럼 그 형상을 선으로 처리한 배경 평면,

  라 굴뤼와 그녀의 파트너 발랑 텡-르-데소쎄가 격렬한 춤을 추고 있는 중앙평면,

  그리고 이러한 장면에 무관심 한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관람자가 가로지르고 있는

  전경 평면이다.

 

  이 그림에서도 무용수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경 인물들의 배치,

  앞으로 나오는 듯한 배경 인물들의 선,

  틀린 원근법으로 그려진 바닥의 선들 따위에 의해 회화공간의 깊이가 한정되어 있다.

  화면의 깊이는

  오른쪽 전경의 두 여인에서 왼쪽배경의 높은 모자를 쓴 남자와 적색코트를 입은 급사에 이르는 

  급한 대각선에 의해 얻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그것은 감지될 뿐이지 묘사되고 있지는 않다.

  구성은 바닥위에 드리워진 구불거리는 그림자의 선들에 의해 한층 더 짜임새있다.

 

  오른쪽의 배경에 있는 4명의 남자는 로트렉의 친구인 바르네이, 귀베르, 세스코와 가우치이다.

  검은 망토를 걸친 여인은 쟌 아브릴이다.
  
  이 그림은 1890년 물랑루즈의 지배인 조셉 올레르가 구입하여 그곳 현관에 걸었다.

  클리쉬 대로에 있는 음악 홀,물랭루즈는 1889년 10월에 개장했다.

  이 홀은 개점 후 곧바로 선풍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사교계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중앙의 무도장 양측 아래로는 대기장소가 있었고

  위쪽에는 관객을 위한 회장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또 그곳과는 별도로 뒤켠에 큰 정원이 있어서

  손님들은 그곳에서 앉아있거나 산보를 즐길 수 있었다.

  야간공연은 희극적이거나 감상적인 노래의 콘스트로 시작했다.

  이베르 길베르는 1890년 그 곳에서 데뷔했다.

  그러나 인기프로는 10시와 12시 사이에 마련되는 춤이었는데

  특히 유명한 몽마르트르의 댄서들인 라 굴뤼, 발랑텡, 그리유데구, 몸므 프로마쥬

  그리고 쟌 아브릴이 추는 카드릴 춤(네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추는 춤)이 큰 인기를 모았다.

 

  1890년과 1896년 사이에 로트렉은 물랭루즈를 소재로 적어도 30점 이상의 작품들을 제작했지만

  그 그림의 장면들은 그 곳에 자주 드나들던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많은 것을 얘기해주고 있는 데 반해

  그곳 건물의 구조나 외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