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세한도 - 권세만 뒤쫓는 세태를 비판하다

Gijuzzang Dream 2008. 2. 23. 01:13
 
 
 
 
 <세한도> - 권세만 뒤쫓는 세태를 비판하다

 

 

변치 않는 제자의 의리에 감사하다

‘세한도’는 조선후기 문신이며 고증학, 금석학의 대가이자 추사체(秋史體)라는

독특한 서법을 완성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대표작이다.

그가 59세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 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여전히 그에게 구하기 힘든 책을 보내주며 그를 잊지 않는 제자인

통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감사의 정을 담아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변치 않는 이상적의 인품을 늘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해 그려준 그림이다.

그림 오른 쪽 상단에 엄정하고 멋스러운 추사체로 ‘세한도(歲寒圖)’라고 쓰여 있다.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듯

물기를 다 뺀 까슬까슬한 붓으로 간단한 가옥 한 채를 사이에 두고

오른 쪽에는 스승인 김정희를 상징하는 소나무 두그루와

왼쪽에는 제자인 이상적을 상징하는 잣나무 두 그루가 간결하게 그려져 있다.

 

  ‘세한도(歲寒圖)’, 김정희, 1844년, 종이에 수묵, 23.7x69.2㎝, 개인 소장

  
자연을 통해 정신세계 표현하는 문인화

이 그림은 사실 별로 볼거리가 없는 심심한 그림이다.
형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생각가는 대로 그냥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다.
형태나 그리는 방식은 단순한 나머지
오른쪽 측면에서 보는 가옥창의 묘사가 원근법에 맞지 않아 어색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완성작품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고독한 제주도 9년간의 유배생활에서 느낀 비애의 감정을 한결 고결한 경지로 끌어올림으로써
자연대상을 통해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문인화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김정희의 심정을 알 수 있는 발문의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

“작년에  ‘만학’  ‘대운’ 두 권의 책을 보내왔고, 금년에는 또 ‘우경문편’을 보내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하게 있는 것이 아니고,
머나먼 천만리 밖에서 구입한 것이며, 여러 해 걸려 얻은 것이지, 한 번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더구나 세상은 물밀듯이 권력만을 따르는데,
이같이 몸과 마음을 쏟아 얻은 것을 권력자에게 주지 아니하고,
바다 밖의 한 초췌하고 야윈 사람에게 주기를 세상이 권력가를 쫓는 것과 같이 하니,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친분이 성글어 진다’고 하였는데,
자네도 역시 이 세상 사람으로 초연히 권력을 쫓는 테두리 밖을 떠나서
권력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고 하였으니,
소나무,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시들지 않는 것이라면, 날이 춥기 이전에도 하나의 소나무, 잣나무요,
날이 추워진 후에도 하나의 소나무, 잣나무인데, 성인께서 특히 날이 추워진 이후를 칭찬하였다.
지금 자네가 나에게 앞이라고 더한 것도 없고 뒤라고 덜한 바도 없으니,
날이 추워지기 이전의 자네는 칭찬할 것 없거니와,
날이 추워진 이후의 자네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네… (후략)"

력에 아부하지 않는 “지조와 의리”라는 의미를 그림과 글로써 모두 표현하고 있는 ‘세한도’는
단순한 고마움의 표현인 답례품이 아니라
유학자로서 군자의 덕을 익혀서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추사 김정희가
권세를 쫓는 기회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비판을 표현한 것이다. 
- 2007.01.17 [명화로 보는 논술]

-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 경희대 미술학부 강사

 

 

***** 아래 그림은 기주짱 추가

 

 

 

 

 

 

 

 

 

 

 

[전준엽의 ‘그림 읽기’] 불신의 찬바람 견디는 지조
 
 
김정희의 ‘세한도’

거친 붓질로 험한 세월 표현 … 조선시대 문인화의 으뜸
 


배신과 변절의 계절이다.
거짓말, 중상모략, 폭로, 불신과 불복, 독선과 독단…. 이런 것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뿜어내는 사악한 기운은
온 나라를 부정적 생각으로 물들이고 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불신의 찬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얼리고 사람 사이에 혹한의 울타리를 심어 놓는다.

이런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그림이 있다.
 
‘세한도’. 제목에서부터 추운 세월을 견뎌낸다는 그림이다.

조선시대 회화의 매력 중 하나는 자연 풍경을 빗대 자신의 심경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회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시’라고 부르는 조선시대의 시 또한 이러한 비유를 즐겨 사용했다.
이것을 사의(寫意)라고 한다.

서양 미술에서는 상징, 은유 같은 표현법이 이와 같은 경우다.
그런데 조선 산수화에서 상징, 은유는 매우 시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냥 보면 평범하고 고루하기까지 한 산과 들의 경치를 판에 박은 듯한 방법으로
그려낸 풍경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금 관심을 갖고 꼼꼼히 살펴보면 그 풍경 속에서 작가의 심경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정취를 생명으로 하는 그림 중에는 문인화를 으뜸으로 친다.
시와 글씨, 그림이 어우러지는 문인화는
조선시대를 이끌어 왔던 지식층의 심경을 담아내는 그림이다.

조선 말기 독자적 글씨와 함께 명품의 문인화를 창조해 낸 이가 추사 김정희(1786~1856)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만나는 ‘세한도’(국보 180호)는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문인화로 이런 시절에 꼭 봐야 하는 그림이다.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1844년 그의 나이 59세 때 그린 이 작품은
유배라는 추운 세월을 견디는 추사의 심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추사는
1840년 제주도로 유배돼 8년의 모진 세월을 보내게 된다.
끈 떨어진 자신에게 등을 돌린 세상 인심을 추사는 글씨와 그림으로 이겨내야만 했다.
이 와중에 불후의 명작인 ‘세한도’가 태어난 것이다.

유배 중인 스승을 위해 유일하게
의리와 지조를 지키며 관심을 쏟아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에 비유해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 바로 ‘세한도’다.

논어에 나오는 ‘날이 추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의 푸름을 알게 된다’는 구절에서
화제를 취해 그린 이 그림은 극도의 절제미가 일품이다.


물기를 뺀 붓으로 짙은 먹을 칠하는 거친 붓질로 자신의 험한 세월을 표현했는데,
자신을 볼품없는 집으로,
양쪽에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의리를 지키는 제자 이상적의 인품으로 비유하고 있다.
또 겨울 분위기를 자아내는 여백의 배경은 자신에게 등 돌린 세상의 비정한 인심을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은 왼쪽에 추사의 글씨가 이어지지만 그림 부분만 소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그림 오른쪽 위에는 ‘먼저 이상적이 감상해야 한다’는 당부의 글까지 써 넣어
제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세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의리, 지조, 신의, 진실, 믿음, 배려 같은 것이 골동품처럼 변해버린 요즘 세상에
선조들의 참다운 인간 관계를 보여주는 ‘세한도’가 더욱 간절하게 보고 싶어지는 2007년 12월이다.
 - 전준엽, 화가, 전 성곡미술관 학예예술실장

 

 
 

   

 

추사(秋史) '세한도'에 숨겨진 수학 비밀을 풀다

 

 


"처음부터 그림 비례 염두하고 치밀한 구도 속에서 그린 듯"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1856)의 대표작

'세한도'(歲寒圖 · 국보 180호)'는

소나무 두 그루, 잣나무 두 그루와 초가집으로 구성된 담백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범접하기 어려운 듯한 존재감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신비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수미(李秀美)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미술사 전공)은

최근 출간된 학술지 '미술자료' 제76호에 기고한 논문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 의식과 장황(표구) 구성의 변화'를 통해

" '세한도'는 수적(數的) 관계(numeric relationship)에 따라 정연하게 구상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즉흥적으로 그려진 작품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치밀한 구도를 통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관은 '세한도'의 화면을 분석한 결과
"그림의 비례와 발문의 배치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작품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세한도'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탄탄한 균형감과 변화,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격조는

이와 같은 수적 관계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세한도'의 구성에 대한 연구로는

경물과 낙관 등의 배치에 대한 분석(오주석 '추운 시절의 그림, 김정희의 세한도')과

화면의 구성 요소 분석(강관식 '추사 그림의 법고창신의 묘경) 등이 있었지만,

수적 관계에 대한 분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사학자인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보편적인 기준을 통해 미술 작품의 양식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라고

말했다.


     '세한도' 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① '전체 그림'과 '안쪽 그림'의 이중 구조 〈그림 1〉

    '세한도'는 종이 세 장을 이어 붙여 그린 작품이다.

    세 장의 종이를 A(8.3㎝), B(45.6㎝), C(16.6㎝)라고 했을 때 와 C의 비율은 정확하게 1대2가 된다.

    A를 두 배로 늘였을 때 차지하는 부분을 C′라 하고,

    B에서 C′와 겹치는 부분을 뺀 나머지를 D라고 하면,

    가운데에 해당하는 37.3㎝ 길이의 D는

    낙관이 끝나는 지점에서 맨 왼쪽 잣나무의 줄기 가운데까지다.

    이로써 D에는 '세한도'의 중요한 회화적 요소가 거의 다 담기게 됐으며,

    '세한도'는 ▲전체를 포괄하는 화면(A+B+C)과

    ▲더욱 핵심적인 내적 화면(D · 굵은 사각형 안)이라는 이중 구조가 됐다.


    ② 소나무의 기묘한 균형감각 〈그림 2〉

    '세한도'의 중심축은 양끝에서 35㎝ 떨어진 지점,

    가운데에 곧게 선 소나무 밑동의 왼쪽 끝인 (가)다.

    이곳을 중심으로 그림을 좌우로 나눌 때

    오른쪽에는 제목과 낙관, 굵은 둥치의 노송까지 있어 왼쪽보다 무거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노송이 화면의 중심축인 소나무를 향해 기울어 있어

    오른쪽의 무게감을 덜어 주게 되는 조형적 균형의 의도가 보인다.

    또한 그림과 왼쪽의 발문(跋文 · 작품에 관련된 사항을 적은 글)을 합한 전체 길이는 108.3㎝인데,

    양쪽에서 54.1㎝ 떨어진 가운데 선은 맨 왼쪽의 잣나무와 일치하는 (나)가 된다.



    ③ 발문의 높이까지도 철저히 계산 <그림 2의 점선>
    발문이 적힌 부분의 맨 위에 선을 그으면 왼쪽 낙관의 아래 선과 일치하며,

    발문 맨 끝의 낙관 아래 선은 그림에서의 지면 높이와 맞춰지게 된다.

    •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면밀한 수적 원리에 의해 구상된
    • 작품이라고 분석했다. / 해설, 촬영=유석재 기자
  •  

    • 계속되는 이수미 학예연구관의 세한도 분석 해설.
    • / 해설, 촬영=유석재 기자
  • - 조선, 2008.02.27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세한도’는 ‘휙’ 그려지지 않았다?

    이수미 학예연구관 논문 “추사 김정희가 주도면밀한 구상으로 계획해 그린 그림”
     

    ‘세한(歲寒 · 시린 한겨울)에 그렸네. 이걸 보게나… 완당.’

    조선 말기의 대학자, 명필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도에서 귀양 살던 1844년,

    청나라행 사신단의 통역관으로 떠나려던 제자 이상적(1804~65)에게

    이런 내용의 표제가 붙은 그림을 그려주었다.

     

    한겨울 소나무, 잣나무에 둘러싸인 초가집을 물기 없는 붓질로 깔깔하게 그린 풍경을 담고

    ‘서로 잊지 말자’는 붉은 글씨의 도장을 꾹 찍었다.

    저 유명한 명작 <세한도(歲寒圖), 국보 180호 · 개인 소장>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추사의 역경과 불굴의 기개, 예인의 감각 등이 두루 스며든 이 걸작은

    추사가 즉흥적으로 ‘쓱쓱’ 붓질한 무심한 그림일까, 치밀한 구상을 거친 계획적 그림일까.

    가장 널리 알려진 옛 그림이며, 마니아 많기로도 소문난 <세한도>의 창작 과정을 둘러싸고

    흥미진진한 단서들이 드러나고 있다. 내키는 대로 붓질한 그림이란 통설과 달리,

    치밀한 사전 구상을 암시하는 흔적들이 학계에 보고됐다.

    <세한도>의 그림과 발문을 합한 전체 작품.

    전체 가로 길이의 중간에 해당하는 지점이

     (ㄱ)으로 표기된 두 번째 잣나무다.

    몸통 부분을 중심으로 비례 관계

     

    국립중앙박물관이 2005년 서울 용산 이전 재개관 전시를 하면서

    빌려왔던 <세한도>의 그림 얼개를 집중 분석한 결과를 2년여 만에 논문으로 공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한도>는 한번에 ‘휙’ 그린 문인화나 득도한 듯한 필력의 그림이 아니라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한 그림이었다는 것.

     

    회화사 전공인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최근 나온 박물관의 연간 학술 간행물 <미술자료> 76호에

    ‘<세한도>에 내재된 조형 의식과 장황 구성의 변화’라는 논문을 실어 이런 견해를 밝혔다.

    논문은 <세한도>에서 느껴지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 쉽게 눈치챌 수 없는 그림의 구성 원리에

    대한 열쇠로 ‘수적 관계’란 콘셉트를 내왔다.

    정연한 수학적 비율은 아니지만, 그림 속 풍경 소재들(경물) 사이에 객관적인 조형적 비례와

    호응 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잣나무 외곽선으로 중심축 표현

     

    이 연구관은 <세한도>가 편지지 세 조각을 붙인 화폭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세한도> 구성에 대한 추사의 전체 구상과

    세 쪽의 편지 종이를 붙인 화폭의 이음새가 긴밀한 관계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림과 옆으로 이어진 발문을 가장 오른쪽에서부터 차례로 보면,

    <세한도>는 길이 8.3cm로 가장 작은 처음 종이 조각(A)과

    그림의 핵심 이미지들이 들어 있는 몸통 격인 길이 45.6cm의 제일 큰 종이 조각(B),

    길이 16.6cm인 왼쪽의 종이 조각(C)으로 구성된다.

     

    이 중 맨 왼쪽 종이 조각 C의 길이는 오른쪽 종이 조각 A의 딱 두 배다.

    그림 핵심이 그려진, 제일 큰 종이 부분(B)을 중간에 두고

    양쪽 부분인 A와 C가 1대2의 비율로 잇대어진 얼개인 것이다.

     

    또 그림 맨 오른쪽 종이 A를 두 배로 펼치면 그 부분(C’)이

    C부분과 더불어 그림 양쪽에서 <세한도>의 시작과 끝을 형성한다.

    결국 C부분과 C’ 부분 사이에 해당하는 D부분에 <세한도>의 핵심인 집과 나무가 대부분 들어간다.

    따라서 A, B, C, D 각 부분을 포괄한 전체 화면과 그림의 핵심 요소만 들어 있는 D화면이

    이중 얼개를 이뤄 정연한 비례 관계를 형성한다는 분석이다.

     

    글을 보면, <세한도>의 숨은 의도는 추사의 발문과 같이 살펴볼 때 더욱 자명해진다.

    <세한도>는 그림 다음에 세로 23.8cm, 가로 37.8cm의 발문이 이어지는데,

    전체 그림과 발문을 합한 총 가로 길이는 108.3cm다.

    그 한중간이 정확히 그림 속의 두 번째 잣나무(ㄱ)가 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두 번째 잣나무의 왼쪽 외곽선. 이 외곽선이 유독 진하게 색칠됐는데,

    바로 그 지점이 전체 작품의 딱 중간이 된다.

    추사가 마치 중심축을 표시하려 한 듯 밑동에 진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학예관은 “이는 배치 관계를 의식한 의도적 표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한도>의 세부 도해도.

    그림이 시작되는 오른쪽 종이부분(A)의 길이를 두 배로 하면,

    정확히 그림의 세 번째 종이부분(C)의 길이가 된다.

    A부분을 두 배로 늘려 표시하면 C'부분이 된다.

    C와 C'사이에 있는 D부분에 그림의 핵심 풍경이 들어간다.

    발문 글씨의 배치를 그림과의 관계 아래 분석한 대목도 보인다.

    추사는 발문을 쓰면서 글자 한자씩을 넣는 틀인 300개의 모눈(방안)을 만들었다.

    개당 세로 1.1cm, 가로 8.2cm의 모눈 틀은 세로 1줄마다 15개씩 있는데,

    추사는 틀을 막 넘어서 자유자재로 글자 크기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도

    한 줄에 15개의 글자를 넘어서지 않는 재주를 부렸다.

     

    이런 변화 덕분에 모눈 틀 전체를 글자가 빽빽하게 채운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모눈 구획을 적절히 넘나드는 자유로움으로 글씨 사이에 탄력미를 조성했다는 평가다.

     

    흥미로운 것은 당대 <세한도>와 비슷한 관념적 산수 풍경이 당대 선비들 사이에 유행했고,

    추사도 다른 문인화를 적잖이 그렸지만,

    이렇게 딱 부러진 조형적 원리가 들어간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학예관은 “객관적 조형 원리를 유일하게 내재화한 <세한도>의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대목”

    이라고 정리했다.

     

    따라서 <세한도>는 모든 측면에서 그림과 글씨, 화폭 등 여러 요소들의 수적 관계에 바탕해

    주도면밀한 구상으로 계획된 그림이라고 논문은 단정지었다.

    발문 위치와 <세한도>에 그려진 풍경 소재들과의 대응 관계,

    <세한도>와 발문을 합친 폭의 중심에 잣나무가 자리잡은 점 등으로 미뤄,

    처음부터 <세한도>와 발문이 동시에 그려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추사는 구상을 사전에 완성한 뒤 붓을 들어 그리기 시작했으며,

    이런 맥락에서 <세한도>의 조형 원리인 ‘수적 관계’는 글씨와 그림의 일치,

    그림과 선사상의 일치가 특징인 추사 예술의 객관적인 조형적 장치가 된다는 논리다.

     

    이 학예관은 “<세한도>의 탄탄한 균형감과 변화, 깊이와 격조, 고전적 절제는

    수적 관계가 깔려 있기 때문이며 많은 관람객들이 감동할 수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한도>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득도한 그림, 선적인 그림 등으로 신비화돼왔는데,

    이번 논문은 그림 이면에 깃든 실체적 조형 원리를 밝혀내어

    <세한도>의 회화적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술 중심의 기계적 해석” 비판도

     

    하지만 학계에서는 서구적인 산술 비례 중심으로 <세한도>를 바라보는 것은

    기계적 해석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술자료>의 편집위원인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이 학예관의 분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옛 대가들이 즉흥적으로 빨리 그림을 그려도 치밀한 구성미를 잃지 않은 것은,

    자기가 지향하는 비례 감각과 구성 감각이 체질화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전통 문인, 화원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서양식 화폭 비례 개념으로

    추사가 <세한도>의 발문과 그림을 사전에 같이 구상했다고 추론하는 것은

    미술사적인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부터 추사가 비례에 대한 개념을 갖고

    그림과 발문을 맞춰 <세한도>를 구상했다면,

    현재 전하는 발문 내용이 그림 얘기는 전혀 없고

    온전히 제자 이상적에 대한 편지글 형식으로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 2008년02월28일, 한겨레21, 제699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