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상처 입은 사슴> 상처받은 영혼, 그림으로 치유
- 프리다 칼로(1938) : 니콜라스 머레이 촬영 -
이후 프리다는 외출을 하기보다는 병원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고
멕시코 혁명 이후 낡은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새롭게 모든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이때 공산주의 활동에도 참가한 그녀는
‘멕시코 르네상스’를 이끈 벽화예술운동의 선구자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게 된다.
혹자는 프리다의 평생에 걸친 시련 중 가장 큰 것이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이라고 하기도 한다.
운명적인 사랑으로 결혼하게 된다.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이 아닌 멕시코의 정체성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멕시코 전통의상과 장신구를 고집하였다.〈상처입은 사슴〉은 그녀가 극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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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사슴〉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46년, 섬유판에 유채, 22.4x30㎝, 개인 소장
이후 그녀의 말년은 오른발이 썩어가 발가락과 오른쪽 다리 무릎아래를 절단하고
마지막 일기장에 ‘행복한 퇴장이 되기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적어 놓았던 프리다.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던 그녀는
다수의 미완성 작품이 말해 주듯 살아가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여자였다.
- 2007.03.07 조선 [명화로 보는 논술
]-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 경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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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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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장막 저편에서는 내가 원하는 여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하루종일 꽃다발을 만들고 고통과 사랑과 다정함을 그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리라. 그러면 모두들 말하겠지. 불쌍한 미친 여자라고(난 무엇보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리라). 나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겠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모든 세계들과 조화를 이루리라. 내가 살아갈 날과 시간과 분은 내게 속한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속하겠지. 나의 광기가 작업 속으로 도주할 수단이 되지 못할테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들 작품의 포로로 가둘 것이다. 혁명이란 형태와 색채의 조화이며, 모든 것이 오직 생명의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머문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와 헤어질 수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 만물은 전체인 동시에 하나이다. 불안, 고통, 쾌락, 죽음, 이들은 존재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이고, 결국은 하나이다." - 프리다 칼로 |
The Broken Column. 1944. Oil on Masonite. 38.6 x 31 cm Dolores Olmedo Foundation, Mexico City, Mexico
Tree of Hope. 1946 Oil on masonite. 55.8 x 40.7 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with the Portrait of Doctor Farill. 1951. Oil on masonite. 41.8 x 50.2 cm.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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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Pages: "Bird" Diary pages: "Masked Dancers." "El horrendo 'ojosauro.' "Portrait of Neferunico, Founder of Madness." / Frida Kahlo Museum, Mexico City, Mexico.
The Bus. 1929. Oil on canvas. 26 x 56 cm. Dolores Olmedo Foundation, Mexico City, Mexico
Flower of Life. 1944. Oil on Mesonite. 29.5 x 23 cm. Dolores Olmedo Foundation, Mexico City, Mexico
Fruit of Life. 1954 Oil on masonite. 45 x 62 cm. Private collection
Viva la vida. 1954. Oil on masonite. 59 x 50.7 cm. Frida Kahlo Museum, Mexico City,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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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다’로 보는 프리다 칼로
삶에서 나온 그녀의 작품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자기 고백적이고 자의식적인 작품 많아…초기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적 역할
서울시립미술관에 가면, 우리는 늘 천경자 화백의 작품 1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을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않겠다고 했던 천 화백이 자신의 작품들과 저작권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천 화백의 작품들을 위한 독립적인 전시실을 상설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천 화백과 작품의 성격이나 삶의 질곡이라는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과 그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천 화백과 프리다 칼로는 모두 자신의 삶의 경험과 상상으로부터 유래한 소재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으며,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라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요.
프리다 칼로(1907-1954)는 초현실주의 화풍의 멕시코 여성화가입니다. 생전에 그녀는 멕시코에서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아내로 더 유명했습니다. 프리다는 1939년 파리 <멕시코전>에 18점의 작품을 출품하여 격찬을 받기도 했지만,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시대를 앞서 간 예술가였기 때문이었지요. 40년대 그려진 프리다 작품의 가치는 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84년에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독일계 사진사였던 칼로의 아버지는 자식들 중 그녀를 특별히 아꼈고 그녀에게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47년간 그녀의 삶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되려는 꿈을 가진 명문 예비학교 학생 시절, 그녀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동안이나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죠. 그 후유증으로 평생 여러 번의 수술을 하고 모르핀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했던 그녀는 의사의 꿈을 접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작품에는 그녀의 경험, 고통, 상처가 담겨 있죠. 비평가들이 그녀 작품을 ‘초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작품은 철저히 ‘현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또 한 가지는 남편 리베라의 막을 수 없는 바람기였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21살로, 결혼 당시 프리다는 21살, 리베라는 42살이었는데요. 디에고는 전부인과 이혼하고 프리다와 재혼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가져서 프리다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녀가 다루었던 작품의 주제는 출산, 유산, 낙태, 월경 같은 서구 미술계에서 거의 다루어진 적이 없는 것들이었는데, 이러한 주제는 이후 페미니즘에서 매우 중요시 되는 것들입니다. 초기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들이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기 고백적이고 자의식적인 작품들이 많은데, 프리다의 작품들은 이러한 초기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프리다 필생의 예술적 주제는 오로지 자기 자신
프리다 작품은 초현실주의나 페미니즘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자화상이라는 점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사실 자화상을 평생의 주제로 삼고 끈질기게 그린 화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영혼의 깊이를 드러내는 걸작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나 고호도 다른 주제의 작품을 하는 틈틈이 자화상을 그렸던 것이지, 프리다와 같이 전적으로 자화상에 집중하지는 않았지요. 프리다의 필생의 예술적 주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고 평생 자신을 그리는데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자화상을 그려 자신을 돌아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겠지요.
프리다가 작은 규모의 작품을 통해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여성의 고통을 표현한 반면, 디에고는 벽화라는 대규모 작품을 통해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주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작품 양식이나 경향은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멕시코 미술의 전통인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부부의 예술 세계가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지요.
리베라는 11살부터 미술공부를 시작하여, 20대에는 유럽 거장들의 화풍을 익혔습니다. 멕시코에도 수많은 벽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인기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의 증권거래소 등에 벽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영화 <프리다>는 뮤지컬 <라이온 킹> 연출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줄리 테이머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얼핏 보기에 영화는 프리다의 예술적인 측면보다 삶과 사랑에만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자전적인 것임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작품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이 되는 것이죠. 이 영화에는 칼로 작품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흥미로운 방식이 눈에 띕니다. 프리다 그림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등장인물이 움직입니다. 혹은 반대로 등장인물이 움직이다가 어느새 그것은 프리다의 그림으로 바뀌기도 하죠. 그녀의 작품을 화면 구성에 이용하는 영화의 기법은 그녀 작품이 철저히 그녀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영화의 형식적인 기법이 영화의 중심적인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 이 무더운 여름, 한평생을 뜨겁게 살다간 프리다와 디에고 부부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요? 강렬한 태양의 나라 멕시코의 전형적인 색채로 이루어진 영화 <프리다>의 화면 역시 여름에 어울리는 볼거리이지요. 우리가 프리다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녀의 그림은 설명 없이도 보이게 될 것입니다.
- 최정은(서울시립미술관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 강사, 서울대 미학과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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