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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위덕왕의 외출, 왕흥사 특별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 김용민)와 국립부여박물관(관장 권상열)이 공동으로 마련
부여박물관에서 개막한 '백제 왕흥사 특별전'은
백제왕 창(百濟王 昌)을 위한 1천400여년만의 행차라 할 수 있다.
왕흥사지 구역 중 목탑이 있던 곳에서 발견된 '창왕명(昌王銘) 사리기(沙利器)' 세트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수습된 각종 사리공양품이 보존처리를 거쳐 일반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월 29일부터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특별전 ‘백제 왕흥사’를 개최한다.
4월 20일까지 국립부여박물관 제3전시실에서 개최되는 이번 특별전에서는
금제사리병, 은제사리호, 청동제사리함을 비롯해 각종 금공품류, 옥류, 기와류 등
백제 사비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100여점의 문화재가 전시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왕흥사의 창건연대를 알려주는 명문을 담고 있어 화제가 됐던
청동제사리함도 공개될 예정이다.
또 백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관모 장식으로 보이는
운모로 만든 꽃잎과 철제테를 비롯해 백제의 예술성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세공품들도 다수 출품된다.
국립부여박물관은
“금속, 유리, 옥 등 세공품을 주로 한 사리 공양구와 칼, 기와류 등 이번에 전시되는 문화재의 대부분은
6세기 고대 동아시아에서 국제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사비시대 백제의 화려함을 볼 수 있는 작품들”
이라며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제의 예술성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문화재들이
대거 전시돼 백제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왕흥사지 유물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백제왕실의 ‘비밀’을 알려주는 열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8000여 점의 출토 유물 가운데
청동제 사리함은 왕흥사의 창건연대를 알려주는 명문이 포함돼 있어
불교사 뿐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됐다.
사리함 동체부에는
‘정유년이월(丁酉年二月)/ 십오일백제(十五日百濟)/ 왕창위망왕(王昌爲亡王)/ 자입찰본사(子立刹本舍)/
이이매장시(利二枚葬時)/ 신화위삼(神化爲三)’이라는 명문이 표기돼 있다.
즉 ‘577년 백제왕 창(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웠다’는 것으로
이는 그 동안 알려진 왕흥사지의 조성연대를 뒤바꾸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왕흥사가 법왕 2년(600)에 축조돼 무왕 35년(634)에 낙성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번 명문의 발견에 따라 왕흥사의 실제 축조연대가 577년(위덕왕 24)이라는 것과
위덕왕이 597년(위덕왕 44)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阿佐) 태자 이외에
또 다른 왕자를 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연구소 측은 “명문 및 사리구의 구성내용을 통해서
왕흥사의 조성이 위덕왕 대에 만들어진 능산리사지(567) 보다 10년 뒤에 조성됐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짐으로써 백제사 편년과 동시기 고고학적 자료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2008-01-28,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청동제사리함과 금 ・ 은제 사리병
목탑터의 심초석에 마련된 석함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청동사리함 안에 은제 병이, 다시 은병 안에 금제 병이 들어 있었다.
사리기는 금 순도 99%에 이르는 금제 사리병과 은제 사리호, 그리고 청동제 사리함의
3중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 중 명문은 청동 사리함 겉면에서 확인됐다.
하지만 심초석 사리공에서 일괄로 수습된 사리구 외에도
심초석 서남쪽 지하에서 발굴된 각종 사리공양품 또한 모두 독특한 가치를 지닌 유물로 평가된다.
왕흥사지 출토 황금사리병, 순금으로 제작 확인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에서는 지난 2007년 11월16일부터 부여 왕흥사지 제8차 발굴조사시 목탑지 심초석 사리공(舍利孔) 내부에서 출토된 사리구(舍利具)의 재질을 밝히고자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 의뢰하여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번 분석은 1차적으로 금 · 은제사리병, 청동사리함과 은제사리병 내부 바닥에서 확인된 은단모양의 백색미상물질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실시하였는데, 유물의 표면을 측정하여 성분을 검출하는 비파괴 분석인 이동형X-선형광분석기(XRF)를 이용하였다.
그 결과 금제사리병은 금(Au)이 98%, 은제사리병은 은(Ag)이 99% 이상으로 검출되어 순금(純金)과 순은(純銀)에 가깝게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명문이 새겨진 청동사리함은 부위에 따라 구리(Cu)와 주석(Sn) 함량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부식물에 의한 오염과, 표면 조성의 불균일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정확한 조성은 알 수 없지만 구리와 주석으로 구성된 청동제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백색미상물질은 납(Pb)을 주성분으로 구리 등이 함유되어 있어 사리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확인하였다. 한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12월부터 2차적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 의뢰하여 심초석 남측에서 출토된 사리공양구(舍利供養具)인 유리·옥 등 구슬류, 금제환 등 금 · 은제 금속류, 관모장식, 흑 · 백색 유기물질, 상평오수전, 사리병 내부 액체물질 등 27건 59점에 대해 파괴 및 비파괴분석을 실시하여 성분을 규명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학적 성분 분석은 출토 유물들의 재질 규명, 산지 추정, 제작기법 확인 등에 학술자료를 제공하며, 기존에 알려진 유물들과의 비교연구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
청동제사리함의 명문(銘文)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 심초석 사리공에서 발견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기 중
특히 청동제사리함에는 사찰을 세운 연대와 주인공, 건립 목적 등이 새겨져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청동외함의 명문(銘文). 백제왕 창이 정유년 2월15일에 죽은 왕자를 위해
목탑을 세운다는 내용을 새겼다.
"丁酉年二月十五日, 百濟王昌, 爲亡王子, 立刹. 本舍利二枚葬時, 神化爲三" 29자의 명문이 보인다.
이는 "577년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사찰(혹은 목탑)을 세웠다.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기한 조화로 3개가 되었다."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577년에 왕흥사가 창건된 것이거나 혹은 목탑만을 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건립목적은 죽은 왕자를 위한 것이어서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종래 이 절이 600년에 창건되었다거나 634년에 완성되었다고 전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과 다른 새로운 사실이다.
이를 통해 이 방면의 백제 역사를 재구성해야한다고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백제 제27대 왕은 죽은 뒤에 붙인 이름인 시호(諡號)가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이고
생전 이름은 창(昌)이었다.
백제 왕실은 부여(扶餘)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생각에서 이를 성씨로 삼았으니
그의 생전 성명은 부여 창(扶餘 昌), 줄여서 여창(餘昌)이라고도 했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제27대 위덕왕(威德王)은 이름이 창(昌)이며 명(明)이라고도 한다.
위덕왕은 갑술년에 즉위해 44년을 다스렸다.)
시호건 생전 이름이건 왕실과 나라를 창성(昌盛)케 하고,
위엄과 덕을 아울러 갖춘 위대한 임금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운모장식과 철제테
같은 모양의 철제테가 부여 능안골 백제고분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
단 왕흥사에서는 능안골과 같은 은제관식이 출토되지 않은 반면, 은빛 찬란한 운모장식이 출토되었다.
백제에서는 16관등 중 6위 이상은 은제관식을 썼다고 전한다.
이 관장식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왕자의 관식이었을 것을 가능성이 높다.
철심(鐵心)만 남은 관모(冠帽) 테 장식 주변에서는
운모로 만든 연꽃 모양 장식판이 발견됨으로써 백제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탄목금구(炭木金具)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 심초석 주변에서 수습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공양품 중 탄목금구는
불에 탄 나무숯(炭木)을 타원형으로 깎고 그 테두리에 금판을 감아 장식한 납작한 구슬모양이다.
무령왕릉에서도 출토된 예가 있는데 왕의 허리띠 드리개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목걸이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탄목금구는 무령왕릉에서는 왕의 허리띠 드리게 근처에서 발견됐다.
금실(金絲)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 심초석 주변에서 수습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공양품 중
금사를 시계반대방향으로 꼬아서 제작한 것이다.
선형, 나선형, 혹은 사슬 형태를 한 금실은 현미경 조사 결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꼬아서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그 정확한 사용처는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진묘수형 패식(佩飾)
호박을 호랑이 모양으로 깎아 만들었으며 중앙에 구멍을 뚫어 목걸이 장식으로 사용을 장식품.
호랑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무령왕릉에서 유사한 탄목제 짐승모양 패식이 출토된 바 있으며
부여 군수리에서 출토된 호자(호랑이)와도 그 형태가 유사하다.
고개를 살짝 튼 모양이나 앉아 있는 발의 표현까지 재료를 잘 살려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평오수전
북제北齊에서 제작되고 유통된 동전으로 “상평오수常平五銖”가 양각 주조되어 있다.
청동제사리함에 새겨져 있는 정유년과 비슷한 시기에
백제가 중국의 북조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 줄 수 있는 고고학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금제귀고리
금제 귀고리의 방울장식은 가는 선과 금 알갱이를 정교하게 눌러 붙이는 이른바 누금(鏤金)기법을
구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마치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도깨비형상과 같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귀고리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 심초석 주변에서 수습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공양품 중 귀고리
관 금장식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 심초석 주변에서 수습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공양품 중 곡옥 머리 부분에 씌운 금장식. 이를 금모장식이라 한다.
한편, 쌀알보다 작은 유리구슬과 손톱만한 금공품은 백제인의 정밀 세공술(細工術)을 엿보게 한다.
부여 왕흥사지(사적 제427호)
왕흥사라는 절 이름은 고대문헌인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창건(法王 2년, 600)과 낙성(武王 35년, 634) 등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1934년 부여군 규암면 신리 일원에서 「王興」銘이 찍혀진 기와편이 수습 · 신고됨에 따라
백제시대의 왕흥사지로 위치가 추정되었다.
이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0년부터 백제 고대 가람의 규모와 구조를 확인하고자
연차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발굴조사 중에 있다.
고려시대 석축유구와 함께
백제시대 사찰가람 구조인 목탑지(木塔址), 회랑지(回廊址), 부속건물지, 석축(石築) 등을 확인하였으며
출토유물로는 「王興」銘 기와편 및 연화문 수막새, 치미편 등 백제시대 유물이 다량 확인되었다.
현재까지의 조사로 추정되는 왕흥사지 가람구조는
탑지(塔址)와 금당지(金堂址)가 남북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의 백제시대 가람구조이며
사찰의 동서회랑의 폭이 58.7m로서
부여 능산리사지(陵山里寺址)와 유사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회랑지는 백제시대 와적기단(瓦積基壇) 기법으로 축조되어 있는 건물지로서
회랑의 북편에 별도의 건물지가 이어져 축조된 평면구조를 보이고 있어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 사지(사적 제434호)의 가람형태와
동일한 구조로 백제 시대 건물 축조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자료를 확보하는 큰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또한, 사역의 남쪽에서 동서방향으로 길게 연결되고 있는 석축은
사역의 경계를 벗어나 서편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므로
당시 백마강을 건너 왕흥사지로 진입하는 배를 댈 수 있도록 설치한 접안시설이나
사찰 내 대형연못의 호안석축(護岸石築)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양각연화문양전(陽刻蓮花紋樣塼), 소형 연목와(小型 椽木瓦)를 비롯하여
7세기 전반으로 파악되는 토기와 기와 등 100여점의 중요한 유물을 수습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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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진단구 (오른쪽) 진단구 뚜껑 (아래) 사리기 일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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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Gijuzzang Dream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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