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스프링게르 作 -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Gijuzzang Dream 2008. 2. 1. 00:04

 

 

 

 

[명화이야기] 여장 남자의 시조는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1595년, 캔버스에 유채, 24X19,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남자와 여자는 머리 구조가 달라 상대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지만

섹스는 서로 다른 신체 구조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하나다. 섹스가 즐겁다는 것이다.

섹스가 없다면 크게 보면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작게 보면 삶의 기쁨이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선남선녀가 일상에서 가장 쉽게, 가장 빠르게, 가장 건전하게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섹스다. 하지만 모든 남녀가 섹스에 강한 것은 아니다.

특히 남자의 치명적인 약점인 섹스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로지 신이 준 본인의 천부적인 능력만 필요하다.

신이 부여한 천부적인 능력으로 섹스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지만

육체의 부실함으로 섹스가 즐겁지 못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섹스의 즐거움을 찾는다.

스프링게르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여자 옷을 입고 섹스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헤라클레스를 묘사했다.

여장 남자의 시조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근육질의 남자 헤라클레스는 성격이 난폭했다.

어느 날 그는 화를 참지 못해 친구 이피토스를 때려 죽인다.

이에 분노한 아폴로 신은 헤라클레스에게 난폭한 행위를 속죄하라면서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의 노예가 되라는 형벌을 내린다.

쾌락의 도시 리디아의 여성들은 결혼 후의 만족한 생활을 위해

혼전관계를 통해 섹스를 배우는 풍조가 있었다.

풍부한 혼전관계로 여왕 옴팔레의 섹스 능력은 리디아에서도 최고였다.

여왕 옴팔레는 자신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에게 여자 옷을 입혀 침대에 끌어들였다.

성의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는 그녀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3년 동안 헤라클레스는 옴팔레 궁전에서 성의 역할을 바꾸어 생활했다.

옴팔레가 헤라클레스를 놓아준 것은 성적 매력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그의 신분을 알고 해방시켜 준 것이다.

바르톨로마이우스 스프링게르(1546~1611)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성별이 바뀐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를 통해 에로티즘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사자 가죽옷을 살짝 걸친 옴팔레가 몽둥이를 들고 서 있다.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몽둥이를 옴팔레가 들고 있는 것은 그의 힘이 사라졌음을 암시한다.

여자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는 성의 노예가 되어 비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헤라클레스가 반지를 끼고, 왕관을 쓰고 있는 것은 옴팔레와 동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머리 위에 아기 천사가 휘장을 들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큐피드인 아기 천사는 그들의 사랑을 암시한다.

천사 아래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남자가 판 신이다.

옴팔레를 짝사랑한 판 신은 그녀의 침실을 몰래 훔쳐보지만

여장을 한 헤라클레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스프링게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임에도

에로티즘을 강조하기 위해 알몸의 여체를 화면 가득 채웠다.
- 2008 02/05   뉴스메이커 761호
- 박희수〈작가 · 아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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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리디아의 여왕이자 팜므파탈이었던 옴팔레는

사자도 맨손으로 때려잡는 헤라클레스를 단숨에 자신의 노예로 길들여버렸다.

프랑수아 르 무안이 그린 연안들의 모습에는 이런 주종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남녀관계가 뒤바뀐 듯 실을 잣는 헤라클레스와 그의 사자가죽을 걸치고 몽둥이를 든 옴팔레,

순종하는 듯 올려다보는 남자와 군림하는 듯 내려다보는 여자의 모습...

옴팔레의 위력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스신화 속에는 옴팔레가 있다.

‘옴팔레’라는 이름은 사람의 배꼽을 의미하는데

이는 대지의 중심, 세계의 근원을 의미하니 이름에서만도 강한 음기가 느껴진다.

그녀는 부유한 리디아의 여왕이었는데,

리디아란 나라의 여인들은 혼전관계로 마련한 지참금으로 시집을 갔다고 하니 그 여왕은 오죽했으랴.

또한 오비디우스의 기록에

‘그녀의 젖가슴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그 정점에 장밋빛 유두가 당돌하게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녀의 빼어난 미모와 음란함이 절정에 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

 

헤라클레스도 옴팔레에 만만치 않았다.

그는 취미삼아 사자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강물의 흐름조차 바꾸꿔버렸다고 한다.

한번은 사자떼로 인해 쑥대밭이 된 나라를 구해주어

그 나라의 왕이 고맙다며 50명이나 되는 자신의 딸들을 그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그날밤 헤라클레스의 능력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막강한 두 남녀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그리스 신화만큼 역시나 헤라클레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산 것이 원인이다.

홧김에 친구였던 이피토스를 때려죽인 일로 신들은 인명을 하찮게 여긴다며

그가 옴팔레의 궁전에서 삼년간 노예생활 할 것을 명령했다.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한갓 여자에게 무릎을 꿇었을까만 옴팔레였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녀의 강한 음기에 굴복당한 헤라클레스는 옴팔레를 ‘마님’으로 모시며 남자체면 구기는 짓은 다 한다.

디오니소스의 향연에 참석하는 그녀를 위해 여장을 하고선 황금양산을 받쳐주지를 않나,

그녀를 등에 태운 채 네 발로 궁전을 기어다니지를 않나,

그러면 옴팔레는 알몸에 사자가죽을 두르고 몽둥이를 든 채 헤라클레스를 호령했다.

새디즘과 메조키즘이 범벅된 이들의 관계는 가히 엽기적이었다.

 

뿐만아니라 노예신분인 헤라클레스의 주된 일과는

옴팔레가 처녀시절 입던 비단치마를 걸치고 길쌈을 하며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을 익히는 것이었다고 한다.

과거 올림포스의 신들을 도와 거인족을 물리치고 태양이 뜨겁다 하여 태양과 맞서 싸우던 헤라클레스가

이 꼴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1770)  

 

 

 

프랑스풍의 로코코 양식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프렌치키스를 나누는 옴팔레와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낯뜨거우리만큼 격정적으로 담긴 이 그림은

과연 ‘연애신화를 창조한 화가’ ‘젖가슴과 엉덩이그림’이란 야유를 받았던 18세기 거장 부셰의 그림답다.

 

- 슈프랑거(Spranger, Bartholomaeus: 1546-1611) / 1595년

  

 

16세기 매너리즘 화가 슈프랑거는 그들을 손바닥만한 동판에 그렸다.

작은 사이즈지만 완벽한 이 그림을 가만히 보면 드레스를 걸친 헤라클레스는 실잣기에 여념이 없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눈을 흘기는 모습이 영낙없는 소녀다.

그 옆에 위풍당당 서 있는 나신의 그녀는 옴팔레. 사자가죽으로 몸을 가린 듯 만 듯

상대방을 유혹하며 몽둥이를 들고 있다. 완벽한 콘트라포스트 자세는 거만하기 그지없다.

옴팔레는 무시하는 듯한 눈초리로 자신의 노예를 내려다보고 있다.

 

헤라클레스 등 뒤에서 엿보는 두건 쓴 남자는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저 이상한 손가락질의 의미는 무엇일까.

검지와 약지를 빳빳하게 펴 보이는 것은

‘가늘고 짧은 손가락은 네 물건이고, 굵고 긴 손가락은 내 물건이니,

물건이 실한 나에게 그대의 연인을 내놓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헤라클레스에게 맞아죽고 싶어 환장한 놈인가.

 

옴팔레 신화는

사랑에 빠진 남자가 얼마나 우매할 수 있는지,

여자의 성적 매력이 어디까지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괴물 헤라클레스를 애완견으로 만들어버린 옴팔레의 능력에 존경해마지 않는다.

- 굿모닝닥터,  2004년 8월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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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톨로메우스 슈프랑거 作 -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맞벌이 부부의 급증으로 가사일을 분담하는 신세대 부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놀랍게도 중세의 대가족제에서 역시 남자의 가사 돌보기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가 그러하듯,

중세인들 역시 남자가 집안일을 돌본다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16세기 마니에리즘의 대표 화가이자 신화, 우화에 재능을 보인

슈프랑거의 걸작 '헤라클레스와 옴팔레’가 당시 남성들의 생각을 방증한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는 비록 작은 그림(24×19㎝)이지만

놀라운 세부 묘사와 완벽한 구도가 돋보인다.

옴팔레의 눈부시고 육감적인 나신에서 풍기는 성적 매력이 화면을 압도한다.

 

그림 속에서 옴팔레는 사자가죽을 걸친 채 큰 몽둥이를 들고

화가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당당한 가장의 모습이다.

이와 달리 헤라클레스는 옴팔레의 핑크빛 드레스를 걸친 채 실을 잣고 있다.

주눅이 들다 못해 가자미처럼 비굴한 시선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그야말로 ‘주부’인 남성을 비굴하게 풍자한 대표작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 그림의 바탕에 ‘성 도착증’이 있다고 한다.

서로 성적 기교에 빠진 두 남녀가 서로 노예가 되어 ‘역할극’을 하며 3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의 면면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둘의 첫 만남을 보자.

헤라클레스는 홧김에 오이칼리아의 왕자 이피토스를 죽인 뒤 죄를 씻기 위해

헤르메스의 노예로 팔려간다. 이때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가 그를 거둬 ‘하녀처럼’ 부린다.

당시 옴팔레는 원래부터 사자가죽과 몽둥이를 들고 다닌,

‘여성 천국 리디아’의 위대한 통치자로 묘사됐다.

쾌락의 향연이 넘친 나라이긴 했어도

경제 부국으로 감히 넘보지 못할 대국을 다스린 여왕이었던 셈이다.

 

헤라클레스 역시 아무리 노예라 해도

마음만 먹었다면 탈출을 못했을 리 없다.

그러나 순순히 옴팔레를 섬기면서

리디아에 재앙을 일으키는 뱀을 죽이고

도적 케르코페스를 혼내주는 등

남성으로서 여성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치웠다.

단지 드레스를 입고 실을 잣는 ‘한심한’ 행동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이의 바탕에 사랑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훗날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와 결혼해 두 아들까지 낳았다고 하니

둘의 사랑은 단지 풍자로만 치부되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  2006-11-10,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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