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정감어린 노래 이야기 -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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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 옛 사람들과 흥겹게, 구성지게 소통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모여 흥을 돋우고 마음을 모으는 데에는 노래만한 것이 없다. 예전에는 마을 어른의 환갑 잔칫날이면 장구 장단에 온 동네 사람들이 마당을 돌고 뛰며 노래를 불렀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게 차려입는 한복 맵시가 민요 가락에 너울너울 잘도 어울렸다. 이렇듯 민요에는 노동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혼상제 등을 치룰 때 부르는 의례요, 놀이판에서 부르던 유흥요 등이 있다. 옛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민요를 통해 그들의 한과 흥을 만나보자.
민요에서 의례요는 노동요와 유흥요에 버금가는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도 끈질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의례요는 특히 성격상 주술성과 종교성을 가지고 있어, 불교 음악이나 무속 음악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들과 다른 점은 일반인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의례요는 세시요와 장례요로 나눌 수 있는데, 세시요는 연중 특정한 시기에 마을 또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의례 때 부르는 노래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이웃과 어울려 살았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다음으로 장례요는 상을 치르는 과정에서 부르는 노래로, 각 나라의 고유한 매장 문화와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노래이다.
이밖에도 기우제라든가 고사, 상량식 등 발복을 비는 노래들도 의례요에 포함된다.
의례요 가운데, 강릉 단오제에 불리는 노래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전역에서 단오가 되면 세시 풍습에 따라 제를 지내는데, 이 중에서도 강릉단오제는 그 대표격이다.
이는 영동 지역의 풍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영동 지역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북쪽 지방은 단오를 크게 치르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강릉단오제는 국사서낭을 모시는 제사로서, 국사서낭은 신라시대의 승려인 범일(梵日)국사를 모시는 것이다.
무당이 신을 불러 신목(神木)에 내리면 축원굿을 하고 강릉 시내에 있는 여서낭당으로 간다. 여서낭당은 정씨 집안 며느리가 호랑이한테 물려 가서 국사서낭의 부인이 되었다는 신이다. 강릉단오제에 참석한 이들은 대관령 옛길을 따라 강릉으로 내려가며 흥겨운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 때 부르는 노래가 바로 ‘기화자자 영산홍’이다.
이처럼 강릉의 단오제는 국사서낭과 여서낭을 일 년에 한번 만나게 해주는 의례로서, 이미 부부의 연으로 맺어졌으나 일 년 내내 따로 살다 잠시 잠깐 만나게 되는 부부를 위로하며 축하해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신목을 앞세우고 징과 꽹과리를 앞세운 행렬의 모습은 그야말로 흥을 돋운다.
‘기화자자 영산홍’, ‘기화자자 영산홍’을 후렴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라. 어깨가 절로 들썩이지 않는가. 유흥요를 들어 보면 절로 흥이 나며, 고개를 까닥이게 된다.
유흥요는 우리 민족의 밝고 긍정적인 성품을 담고 있으며, 때로는 고된 노동도 흥겨운 노래를 통해 유흥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유흥요는 세시 명절에 여럿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 때때로 놀이판을 벌여 놓고 부르는 노래, 아이들의 노래 정도로 나눌 수 있으며, 집단으로 부르는 노래와 혼자 부르는 노래로도 구분할 수 있다.
다음 옛 조상들에게 전수받은 유흥요를 통해, 우리 민요가 ‘슬프다’는 기존의 편견을 새로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유흥요 가운데 ‘강강술래’ 노래를 들어 보자. 뛰어보세 뛰어나 보세 / 윽신윽신 뛰어나 보세
강강술래는 여러 민요 가운데 아리랑만큼이나 귀에 익숙한 노래다. 그렇지만 정작 후렴구는 익숙해도 전체적인 가사 내용은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강강술래는 대체적으로 호남 지방 여인들이 많이 부르는 노래였는데, 지역마다 가사가 다르긴 해도 공통된 내용은 즐겁게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여인네들이 집 안에만 갇혀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강강술래를 들어보라.
정월보름, 단오, 유두절, 백중절 등 세시 명절에 여인네들이 모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빙빙 돌며 한 밤을 온전히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놀이가 무어 그리 재미있을까 싶겠지만, 달 밝은 밤에 이웃 여인네들과 함께 자유시간을 즐기며 맘껏 웃고 노래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현대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날밤이 새는 줄 모를 정도로 흥겨웠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남 완도군 소안면의 강강술래 가사를 보면, 가끔 여인네들의 놀이판에 동네 총각들이 끼어들어 마음에 정해둔 여인 옆으로 가서 슬쩍 손을 잡고 놀았다는 내용들이 나타나 있다. 이로 미루어, 강강술래가 단순히 여인네들의 놀이 문화에서 그치지 않고 청춘 남녀가 사랑을 키우는 구혼의 장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강술래는 이밖에도 원을 그리며 도는 모양을 통해 달의 모습을 형상화하며 풍요와 생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였고, 이순신 장군이 전라 우수사로 있을 당시 왜적에게 우리 군사의 수를 많아 보이게 하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한데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 민요를 구분해 놓고 보아도 딱히 분류가 어려운 노래들이 많다. 신세타령, 심심풀이 노래가 그렇다. 이러한 노래를 통해 우리들은 전통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옛 사람들의 정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신세타령은 주로 부녀자들이 많이 불렀는데,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여인네들이 살아가기에는 꽤 힘들었을 것임을 감안할 때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혼잣말로 신세를 한탄하는 것을 두고 ‘타령’이라고 한다. 결국 타령이 좋은 내용일 수 없다 보니, 대중이 모인 곳에서 부르기 보다는 친한 사람들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만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이렇게 타령 한 구절, 한 구절을 읊조리다 보면 힘들고 외로운 자신의 신세가 위로되었으며,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양질의 자양분을 얻게 되었다.
슬픈 신세가 절절한 ‘따박네야’ 노래를 불러 보자.
따박 따박 따박네야 너 어디로 뭐 하러 가니 /
가요 중에 ‘따박네야’라는 노래를 아는 이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사도 슬프고 가락 또한 구성진 것이 괜히 마음을 가라앉게 해 자신도 모르게 엄마 생각을 한 번쯤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사를 보면, ‘따박네’는 엄마를 여윈 아이다. 울며불며 엄마 무덤을 찾아가다가 마을 어른들이 자꾸 물어 보니 아이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한다. 이렇듯 ‘따박네야’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호응으로 이루어진 노랫말이다.
지역에 따라 따박네는 따북네, 타박네, 따복네 등으로 불리는데, 가사의 전개 방식과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그만큼 엄마를 잃은 슬픔은 지역을 넘어 사람들의 공통된 슬픔이었던 것이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도 짧고 병이 들면 고치기도 힘들었으니 자식이 성장하도록 부모가 생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같은 사회적 환경이 ‘따박네야’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지게 만든 것이었다.
민요는 소박하지만 진솔하다. 그것이 민요가 가진 매력이요, 우리가 민요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민요를 통해 우리는 옛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람살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을 뛰어넘어 옛 사람들과 함께 흥겹게 때로는 구성지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현재에도 민요가 필요한 이유이며, 가치일 것이다.
- 2007-07-13 문화재청 문화재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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