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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2. 철기시대의 기술

Gijuzzang Dream 2008. 1. 11. 19:09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②]
한국 문화유산, 전통과학의 새로운 조명

 

 

글 : 전상운(문화재위원, 전 성신여자대학교 총장)

  
 
나라의 발전을 가져다준 철기시대의 기술

 

 

 

돌 거푸집에 의한 주조기술은

기원전 3세기경에 전개된 한국의 독자적 모델의 무쇠도끼 주조 기술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는 많은 무쇠 도끼들이 같은 크기의 돌 거푸집을 써서 대량으로 주조되었다.

한국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5∼4세기에 중국의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그 시기에 거푸집으로 무쇠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민족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더욱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이나 시베리아의 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형식의 쇠도끼 제품을 같은 규격의 돌 거푸집을 사용해

대량으로 만들어낸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인 것이다.

제철기술의 발달은 철제 농기구의 대량생산으로 농업 생산의 혁신적인 증대를 가져왔다.

삼국간의 치열한 전쟁의 와중에서 필수적으로 철제무기를 확보해야만 했고,

백성들을 먹여 살리고 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농업 생산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철제 농기구가 필요했다.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 철기시대 후기부터 많이 나타나는 덩이쇠는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독특한 유물이다.

한국인이 만든 특이한 철기인 덩이쇠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철기문화를 발전시키는 기틀이 되었다.
『일본서기』에는 4세기 중반 백제의 근초고왕이 왜에 보낸 물품 목록이 적혀있는데,

그 중에 덩이쇠 40매가 보인다.

덩이쇠는 철을 얇게 두드려서 만든 철소재로서 가공하여 여러 가지 철기류를 만들 수 있다.

철기의 사용으로 고조선의 성읍 국가는 한층 더 큰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철과 철기의 생산은 국가의 부와 직결되고 강대한 군사력의 바탕이 되었다.

철로 만든 괭이와 보습과 낫 등의 새로운 농기구로 농업이 크게 발달했다.


 

흙과 불의 조화 , 가야의 기술 문화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한반도의 남쪽 낙동강 하류 지방에서는 새로운 토착문화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것은 철의 생산을 바탕으로 해서 일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 만든 철제품은 매우 질이 좋은 것이어서

그 제철기술이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철의 생산량도 크게 늘어나서 철제품의 사용이 급속도로 확대 보급되었다.

철기가 크게 보급되면서 새로운 토기가 출현하였다.

가야문화(또는 김해문화)가 만들어 낸 경질(硬質)토기가 그것이다.

이 새로운 토기는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민무늬토기에

새로 철기와 함께 들어온 중국식 회도(灰陶)의 기술이 이어진 것이다.

 

우리가 가야토기라 부르는 이 경질 토기는

그 미적美的 감각이 뛰어난 멋있는 디자인과,

쇠소리가 나는 단단한 그릇의 질에서 가장 훌륭한 토기로 평가된다.
흙과 불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이 기술의 발전으로

가야문화는 한 차원 높은 창조적 기술의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그것은 중국과는 다른 가야의 기술 문화였다.

금장식과 유리구슬을 만드는 기술의 개발도 가야문화와 이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기술은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세계 최초로 고대 철제 말(馬) 갑옷의 실물이 발견된 곳은 다름 아닌 가야다.

경남 함안의 마갑총에서 발견된 말의 갑옷과 투구는

가야시대 맹주국의 하나였던 5세기 초 아라가야의 발전된 사회기반과 강력한 무력을 상징한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갑총은

나무곽 가운데 시신을 눕히고 오른쪽 가슴 부위에

길이 83cm의 금판을 장식한 둥근고리칼(환두대도)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양 곁으로 말의 갑옷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으며,

철제 재갈, 철낫 등 금속유물과 함께 목긴 항아리 등 여러 가지 토기들이 함께 출토되었다고 한다.

가야는 이미 1세기에 철기를 기반으로 성장해,

당시의 하이테크였던 철 제련 능력과 토기 생산기술이 일본보다 500년이나 앞서갔다.

학문적 과학의 전개, 빛을 발하다.


이러한 기술 문화의 전통 이외에

삼국에는 과학의 학문적 전개를 나타내는 몇 가지 사례가 확인된다.

그 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이 천문학과 의약학의 성과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돌에 새긴 천문도와 천체를 관측하는 천문대가 있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천체의 그림은 이 사실을 밑받침하는 것이다.

 

천문대는 백제에도 있었는데, 백제에는 6세기 초에 역박사(曆博士)가 있었다.


경주에는 삼국시대 한국 천문학의 상징인 첨성대가 있다.

647년에 세워진 이 석조 천문대는 지금 남아있는 가장 오랜 천문대 유물이다.

이 천문대는 그 아름다운 곡선미를 지닌 우아한 모습으로

한국적 아름다움의 상징으로도 꼽히고 있다.


신라 천문학자들은 중국에서 천문학과 역학(曆學)을 배웠지만,

언제나 배우고 모방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천문학을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첨성대는 그들의 그러한 노력에서 얻어진 귀중한 소산이었다.

첨성대와 같은 천문대는 그 당시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국 고대 과학기술의 가장 뛰어난 유물의 하나이다.


삼국시대의 과학적 성과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것이 한국 의약학의 전개이다.

불로장생의 의약학적 처방들과 질병 치료를 위한 한국의 약재들에 관한 기록과 평가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그 시기의 한국 의약학의 체계적인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삼국시대의 과학기술은

일본에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에서도 그 창조적 전개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다양하다.

잃어버린 고리들 중의 많은 부분이 일본에 남아있는 것으로 복원되고 있다.

이 작업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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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실에서 발간한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비밀]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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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10-05 문화재청 문화재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