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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우리 노래, 민요

Gijuzzang Dream 2008. 1. 11. 18:09

 

 

 

 

 

 

 잊혀져 가는 우리 노래, 민요

 

 

민요는 지은이가 따로 없이 저절로 생겨나서

어버이에게서 자식으로, 자식에게서 다시 그 자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우리 민족의 노래입니다.

민중의 생활감정을 소박하게 드러내며 민족의 삶 깊숙한 곳에 스며들어 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요가 점차 우리 생활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민요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삶과 한을 느껴 보세요.

 


지역마다 맛이 다른 민요

 

우리나라에는 경기민요와 남도민요, 황해도와 평안도의 서도민요,

경상도와 강원도와 함경도의 동부민요, 제주도의 제주민요가 있답니다.

우리 땅 어디를 가나 지역 특유의 민요가 있는 것이지요.

 

민요의 맛은 지역마다 다 다릅니다. 그 까닭은 자연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자연환경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 영향을 끼치고,

그에 따라 느낌과 분위기가 저마다 다른 노래를 만들게 되지요.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의 노래는 무겁고 처량하지만,

들이 넓게 펼쳐진 지역에서 불리는 노래는 시원시원하고 힘이 넘친답니다.

 

또 생활 모습도 민요에 영향을 주지요.

논농사 지역에는 다 같이 부르는 노래가 많고,

밭농사 지역에는 개인의 마음을 읊은 노래가 많아요.

논농사는 여럿이 함께 해야 하지만,

밭농사는 대개 혼자서 짓기 때문에 노래 형식이나 가사도 다른 거예요.

민요를 들으며 그 노래가 만들어진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민요를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랍니다.

 


토리와 창법이 빚어 내는 민요의 맛

 

지역마다 다른 자연환경과 정서, 생활 모습을 민요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요?

토리와 창법으로 그런 멋을 만들어 낸답니다.

토리는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과 소리의 표현 방법을 뜻해요.

 

밝고 명랑한 정서를 담은 경기민요는 맑은 음을 쓰며 경쾌하게 소리를 내는 ‘경토리’를 쓰지요.

 

남도민요 가운데 「육자배기」는

낮은 음은 흔들어 주고, 중간 음은 평으로 내며, 높은 음은 꺾어 주는 방법으로 노래해요.

특히 꺾는 대목에서는 남도 특유의 멋이 넘치지요. 이것을 ‘육자배기토리’라고 해요.

 

서도민요는 중간 음을 굵게 떠는데,

대표적으로 「수심가」에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서 ‘수심가토리’라고도 해요.

 

동부민요는 ‘메나리토리’라고 해서, 낮은 음을 조금 흔드는 편이지요.

이처럼 독특한 토리 덕분에 노래만 듣고도 어느 지역 민요인지 알 수 있답니다.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몰려 들어온다 우장을 두르고 지심 매러 갈거나
진국명산 만장봉이 바람이 분다고 쓰러지며
송죽 같은 굳은 절개 매맞는다고 훼절할까
녹초청강산에 굴레 벗은 마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하여 우는 뜻은
석양이 재 넘어가니 임자 그려 우노라
저 달은 떠 대장되고 견우직녀성은 후군이로구나
태백산 네 어서 급히 행군취타를 재촉하여라


... (중략) ...


창해월명 두우성은 임 계신 곳 비쳐 있고 회포는 심란한데
해는 어이 수이 가노 잘새는 집을 찾아 무리무리 돌아들고
야색은 창망하여 먼 나무 그늘이 희미한데
경경히 그리는 것은 간장 썩은 눈물이로다
송하에 앉은 중아 너 앉은 지가 언제이냐
산천이 험준하여 오던 길을 잊었느냐
네 절이 파산사니 지금 앉고 못 일어나기는 너와 나와 일반이로다
네 이름은 절이라니 내 이름은 승이로다
석양 저문 날에 절 본 중이 어디 가랴
정 그 절간 정결하니 쉬어나 갈거나
- 남도민요 「육자배기」 중에서 -

 


대표적인 경기민요, 경기긴잡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긴잡가는

민요, 판소리, 시조, 가사 등 잡다한 내용을 받아들여 노랫말이 길어진 경기민요라는 뜻이에요.

그 중 ‘경기 12잡가’는 판소리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는 경기 12잡가 중 제일로 치는 「유산가」의 첫 부분과

전라도에서 판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틔우려고 부르는 「만고강산」과 「죽장망혜」의 내용이

거의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또 「소춘향가」, 「집장가」, 「형장가」가 『춘향전』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며,

「적벽가」나 「제비가」도 판소리 「적벽가」, 「흥보가」와 아주 비슷하답니다.

 


남도민요를 대표하는 남도들노래


전라도에서 불리는 남도들노래는 급하지 않고 느릿하면서도 구성진 맛이 특징이에요.

드넓은 평야가 주는 여유와 풍요 덕분에 소리도 기름지지요.

특히 진도는 섬인데도 들판이 많아서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들노래가 구수합니다.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전해 오는 들노래는 197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는데,

다른 지역의 영향을 받지 않고 토속적인 민요 가락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 더욱 소중합니다.

 

남도들노래는 모를 찔 때 부르는 「모뜨는 소리」,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모심기는 소리」, 논을 맬 때 부르는 「절로 소리」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리고 한 해의 논매기를 모두 끝낸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농사가 가장 잘 된 집 머슴을 소에 태우고 풍물을 치며 「길꼬냉이」를 부르지요.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노래까지 부르면 더 힘들 것 같다고요?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면 소리에 따라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게 되어 한결 일이 쉽고,

일을 흥겹게 끝낼 수 있어요.

특히 농요는 메기고 받는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므로 더욱 흥이 나지요.

목청 좋고 노래 잘 하는 앞소리꾼이 먼저 노랫말을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 식이에요.

앞소리꾼은 일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는데도 품값을 다른 사람의 두 배로 쳐 주었대요.

앞소리꾼은 평생 똑같은 노래를 수천 번 부르면서 노래를 점점 세련되게 만들고,

전문 소리꾼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강강술래


주로 8월 한가위에 부녀자 수십 명이 무리를 이루어 둥그렇게 원을 만든다.

서로 손을 맞잡고 돌면서 목청이 빼어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를 받으면서 춤을 춘다.

 

「육자배기

대표적인 우리 민요.

박자가 아주 느려서 한스럽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억양이 강하고 구성진 멋이 있다.

 

「수심가」

구슬픈 서도민요의 하나.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는 사설로, 평양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만고강산」

강산을 두루 유람하며 삼신산의 하나로 꼽히는 봉래산의 절경을 감탄하는 내용이다.

“만고강산 유람할 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봉래 이방장과 삼영주 아니냐.

죽장 짚고 풍월 실어 봉래산을 구경할 제…….”로 시작된다.


「죽장망혜」

남도 지방에서 널리 불리던 노래로,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강산 들어가니 폭포도 장히 좋다마는 여산이 여기로다…….”

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벽가」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

중국의 『삼국지』에서 관우가

화용도에서 포위된 조조를 죽이지 않고 너그러이 길을 터 주어 달아나게 한

적벽대전을 소재로 만든 것이다.

 

「흥보가」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로, 「흥부가」, 「흥부 타령」이라고도 한다.

『흥부전』을 극화한 것이다.

 

 


농요 부르며 모내기하기


우리 민족은 노래를 부르면서

힘든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고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어 능률적으로 노동을 했다.

모내기를 할 때에도 목청 좋고 노래 잘 하는 앞소리꾼이 먼저 노랫말을 메기면

나머지 일꾼들이 입을 모아 뒷소리를 받아 노래를 부르면서 모를 심는다.


더디다-더디다 점심채미가 더디다-
숟가락 단반-에-세니라고 더디나-
바가지 죽반에 끼니라고 더디나-
미나리 챗국에 맛본다고 더디나-
짜린 치매 진 치매 끄니라고 더디나-
짚신 한 짝 메트리 한 짝 끄니라고 더디나-
작은에미 큰에미 싸운다고 더디나-
삼칸집 모랭이 도니라고 더디나-
동세야 동세야 한꾸네 가자 요내 점심도 다 되었네
(후렴구)
더디고-더디다 점심채미가 더디다
더디고-더디다 점심채미가 더디다
- 고성농요 「모심기」 중에서 -

 


땅에 뿌린 노래, 농요


남도들노래처럼 농사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를 ‘농요’라고 한다.

농요는 농민 문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협동을 통해 일의 능률을 높이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농요는 보통 논이나 밭을 갈 때 소를 모는 소리, 도리깨로 마른 보리를 때리면서 내는 소리,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좁은 논틀에 서서 모를 심을 때마다 박자를 맞추는 소리 등이

가락을 타고 되풀이해 나오며,

여기에 일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소리 중간중간 한 소절씩 가락을 넣어 주면 노래가 된다.

이것을 ‘메기고 받는다’라고 하는데,

같은 농사일을 해도 지방마다 가사와 가락이 다르고,

일의 빠르기에 따라 빠르게도 느리게도 불렀다.

하지만 농사에 제초제를 쓰기 시작하고 여러 가지 기계가 도입되면서

농요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때문에 남도들노래와 고성농요, 예천통명농요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해학을 담고 한을 녹여 낸 소리의 명인

-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 보유자 조공례 -

조공례 할머니의 찢긴 윗입술

                                                                - 곽재구

진도 지산면 인지리 사는 조공례 할머니는
소리에 미쳐 젊은 날 남편 수발 서운케 했더니만
어느 날은 영영 소리를 못 하게 하겠노라
큰 돌멩이 두 개로 윗입술을 남편 손수 짓찧어 놓았는디
그 날 흘린 피가 꼭 매화꽃처럼 송이송이 서럽고 고왔는디
정이월 어느 날 눈 속에 핀 조선 매화 한 그루
할머니 곁으로 살살 걸어와 입술으 굳은 딱지를 떼어 주며
조선 매화 향기처럼 아름다운 조선 소리 한번 해 보시오 했다더라
장롱 속에 숨겨 둔 두 개의 돌멩이를 찾아와
이 돌 속에 스민 조선의 핏방울을 꼭 터뜨리시오 했다더라.


조공례 할머니는 남도들노래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한 소리꾼입니다.

전라남도 진도 지산면 인지리에서 나고 자라 결혼을 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재담과 걸쭉한 해학을 소리에 담아 냈지요.

할머니는 아버지 조정옥, 어머니 이장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노래를 기막히게 잘 하는 분이었대요.

 

1942년 간이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스승 없이 아버지한테서 자연스레 창을 익히기 시작했지요.

그 후 할머니는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면서

우리네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박하고 수수하면서도 꿋꿋한 소리로 남도들노래를 잇고

널리 알리는 데 힘썼어요.

 

할머니는 남도들노래 말고도

「강강술래」, 「진도 상여소리」, 「진도아리랑」, 「진도 다시래기」 등

남 지방 민요에 두루 능하답니다.

 

『뿌리 깊은 나무 조선소리 선집 10』, 『조공례의 대지의 창』 같은 음반은

조공례 할머니의 귀한 소리를 담은 소중한 자료이지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 박동매가 남도들노래 전수 교육 조교로 할머니 뒤를 잇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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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한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②]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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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11-16 문화재청, 문화재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