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는(문화)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

Gijuzzang Dream 2008. 1. 2. 18:23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예술을 사랑한 한창기


한창기는

내가 남몰래 흠모하고 몸으로 따르고 본받고자 하는 발심을 일으키는

몇 안 되는 문화인 중 한 사람이다.

 

1976년에 월간지 ‘뿌리깊은나무’가 처음 나왔을 때 그이를 향한 나 혼자 사랑은 자라고 뻗쳐간다.

물론 나는 그 잡지의 골수 독자가 되어

다달이 나오는 그 잡지를 꼼꼼하게 몇 번이고 읽는 것은 기본이었다.

거기에 실리는 글들은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한자어나 외래어 대신에 순수 우리말 표현법을 굳이 골라 쓰고자 하는 것도 마음을 끌었다.

그 잡지는 외래어의 득세에 눌려 구부러지고 찢긴 우리말을

바로 펴고 깁고 다듬어 의젓하고 맵시 있는 문장으로 거듭나게 했다.

우리말을 고급 문자언어로 살려 쓴 공로뿐 아니라

살릴 만한 옛것은 잇고 가치 있는 새 것은 너른 품으로 안고 우뚝 선 ‘뿌리깊은나무’는

잡지 편집과 광고에도 혁신을 이뤄 우리 출판과 잡지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잡지다.

한창기가 서른한 해 전에

‘용비어천가’에서 한 구절을 따다 지은 ‘뿌리깊은나무’를 다달이 내면서

그 창간사에 잡지의 구실을 ‘창조’에 둔 것은 옳은 일이었다.

 

그이는 그 창조가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 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이가 창간사에 적은 말들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그이는 이 땅의 자연과 생태, 토박이 민중의 삶과 문화, 교육, 예술, 우리말의 바른 쓰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관심을 기울였다.

잡지와 그 잡지에 쓴 글에 드러난 삶을 두루 보듬은 그이의 생각은

이치에 맞았을 뿐 아니라 혁신적이었다.

그이는 사물의 겉멋을 넘어서 그 깊은 속사정까지 꿰뚫어보는 심미안과 통찰력이 남다르고,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이는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우리 옛것을 아끼고 그 아름다움을 높이 샀다.

그이가 사라져가는 판소리 전집과 민요 음반들을 만들고,

놋그릇 반상기와 전통 옹기를 되살리는 데 힘을 보탠 것은

아름다움에 뻗치는 그이의 사랑에서 비롯한 일일 게다.


한창기, 그이는 생각이 남보다 앞선 사람이다.

그이의 생각이 앞선 것은 그이가 남보다 머리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돌고 도는 세상 형편의 바른 이치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안 까닭이고,

남들이 안 보는 등잔 밑도 꼼꼼하게 살피는 사려깊음을 가진 까닭이고,

따지고 분별하는 일에 나태하지 않은 까닭이다.

 

1978년에 ‘차라리 양담배를 수입해라’를 쓰고,

1980년에 ‘미군은 어서 용산에서 물러가거라’는 글을 쓴다.

 

현실은 마치 그이의 주장을 받아들인 듯 그이의 말대로 바뀌었다.

 

1983년에 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글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다 군대 복무를 거부하여 징역살이를 하는 이들을 나무라고 꾸짖을 때

바깥 사람의 눈에 그른 믿음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제 양심에 따라 감방 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행위가 ‘올바름의 실천’일 수도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녁의 생각과 크게 다르다고 해도

‘인간으로는 따뜻하게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쓴다.

스물네 해가 지나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개선 권고를 받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부랴부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라는 제도를 내놓는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 한창기 / 휴머니스트 / 2007

그이의 눈길과 생각이 닿고 미치는 것들은

대개는 이 땅의 정치나 경제와 같이 큰 것들보다는 우리 살림의 안팎에서 다반사로 있어온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일들이다.

 

나날의 살림에 볶이고 쪼들리는 사람들에게

정치경제 얘기는 대개 실감에서 먼 헛바람과 같이 공소하게 지나간다.

 

그이가 다루는 글감은

오글보글 끓는 살림 형편에 그 뿌리가 닿아 있어 하찮은 것일망정

맺힌 생각은 바특하고 웅숭 깊어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기 일쑤다.

 

이녁의 기분에 취해 상대의 몸과 마음의 형편을 고려치 않는 강압과 마셨다 하면

질탕함으로 번지는 술 마시는 버릇을 두루 훑은 뒤

“다만 우선 사람이 술을 마셔야 하겠거든,

몸과 마음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너무 마시지 말기가,

또한 자기가 버는 돈보다 더 많은 값의 술을 마시지 말기가,

그리고 제발 안 마셔도 되겠거든 마시지 말기가 나의 호소다”라고 끝맺는다.

 

남과 다를 권리를 찾는 일에 태만하고,

오히려 세태와 유행에 한꺼번에 몰려 획일화 일색이 되고서야 안도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풍속의 뿌리를 더듬으며,

“이 ‘남과 다를 권리’의 사회적인 박탈 때문에

관리는 ‘모나면 정 맞을까 무서워서’ 새로운 발전적인 결정을 내리기를 꺼려하고,

많은 유능한 젊은이가 ‘건방지기’가 싫어서 위선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고 점잖게 꾸짖는다.

‘시골의 오일장’ ‘오늘 사도 늦지 않은 골동 가구’ ‘골동품 가게’ 등과 같은 꽤 긴 글은

그이의 우리말 다루는 무르익은 솜씨와 삶의 안팎을 두루 톺아보는 깊은 안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문이다.

 

서른 해 전 언저리에서 쓰여진 이 글들은

오늘 다시 읽어도 그 세련함에서, 문장에 서린 사고의 넓이와 깊이에서, 드물게 아름답고 빼어나다.

 

 ‘시골 오일장’은 벌교에 서는 오일장의 풍물과

장터 구석구석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흑백사진을 박듯 세밀하게 그려낸다.

 

‘오늘 사도 늦지 않은 골동 가구’는 그이의 골동 가구에 대한 사랑과 눈썰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글이다.

혹시라도 골동 가구를 사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문가급 수준에 이른 그이의 안목을 믿고 훈수를 귀담아들을 일이다.

가게 주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손님이 물건 무르는 이와 물건값 더디게 치르는 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이는

“아예 야박할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고 심사숙고해서 사는 것이 나중에 타박하는 것”보다 낫고,

“살 때 매정하게 물건값 깎는 편이 돈 안 주고 질질 끄는 것”보다 낫다고 이른다.


한창기는 전라남도 보성 사람이다.

거기서 나고 자란 뒤 광주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다.

살아오면서 그이가 피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타지인들의 몹쓸 편견과 부당한 따돌림이다.

전라도를 태생지로 갖고 있다는 까닭만으로

욕을 먹는 일의 터무니없음과 그릇됨을 또박또박 짚어가며 일러바친 글이 ‘편견’이다.

 

전라도 사람이라고 이 땅의 타지에서 난 사람보다 더 많은 결점을 갖고 있을 리가 만무하니,

전라도 사람을 표나게 드러내놓고 차별하는 일은

“기침했다고 해서 매를 한 대만 때리고 재채기를 했다고 해서 두 대를 때리는 잘못”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나고 자란 고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이의 전라도 사랑은 유별나다.

1983년도에 쓴 ‘그 사람들의 한평생’은

전라남도에서 나고 자란 이녁의 체험에서 끌어낸 전라도 사람 보편의 자서전이다.

전라도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해방한 뒤 고향을 등지고 타관으로 나와 사는 전라도인들은

부당하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면서 그것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그러나 걸고 볼품 있는 육지와 바다의 풍부한 산물들,

대와 동백나무와 같은 나무들이 많은 자연 산천의 아름다움,

그 땅에서 토박이 민중으로 사는 일의 사무침과 보람을 그이는 꼼꼼하게 적는다.

한창기,

그이는 1997년에 조금 이르다 싶은 예순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생전에 그이와 말을 섞은 적도 없고

그이의 훤칠하고 늠름하다는 모습을 발치에서라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이는 가르침을 베푼 스승이고, 따르고 본받아야 할 인생의 사표였으며,

어쩌면 내가 존경할 만한 유일한 문화인이었다.

 

그이가 죽은 뒤 나는 많은 부분에서 삶의 보람을 잃은 듯한 깊은 상실감을 앓았다.

그이가 타계한 지 열 번의 봄가을이 바뀐 뒤에 비로소

그이가 생전에 썼던 글들을 따로 모아 책이 세 권으로 묶여 나왔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들을 소중하게 펼쳐 읽으며

적어도 스무 해쯤은 앞서 나간 그이의 생각에 무릎을 치고, 사유의 유연함과 지혜로움에 감탄을 한다.
- 2007 12/04   뉴스메이커 752호 <장석주 /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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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우리 것이 왜 좋은지에 관하여


일부 출판계·문화계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창기라는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1997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가 한 일만 놓고 보면

그는 분명 우리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어야 할 인물이다.

‘한창기’라는 이름 석 자보다 ‘뿌리깊은나무’라는 잡지가 그를 떠올리는 데 훨씬 유리하다.

그는 ‘뿌리깊은나무’의 발행 · 편집인이었다.

단순히 잡지의 발행·편집인이라는 역할만으로 그를 기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는 ‘뿌리깊은나무’뿐 아니라 그 전신인 ‘배움나무’ ‘샘이깊은물’의 발행·편집인으로서

이 잡지들을 통해 우리 전통과 관련된 일을 무척 많이 한 사람이다.

우선 그는 판소리를 되살려냈다.

‘판소리가 언제 죽었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 테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실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스스로 홀대했다.

낡은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홀대한 문화에는 민속, 미술, 언어 등도 포함된다.

생전, 지인들과 만나면 늘 우리 것을 강조하고

우리 언어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하기를 즐겼다는 한창기는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글로 표현하고 강조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본인이 펴내는 잡지에는 물론이고 여러 매체에 글을 발표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투의 주장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문화적·인문학적 성찰을 거친 후에 얻은 실체였다.

그리고 그것에는 ‘지킴과 변화’가 공존한다.

그가 생전에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모아 세 권으로 펴낸 책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샘이깊은물의 생각’  ‘배움나무의 생각’은

우리 사회에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의 토대를 마련한 그의 업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은

언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글들이 중심이 된 책이며,

 

‘샘이깊은물의 생각’은

전통과 민속, 우리 문화를 다룬 글들을 모은 책이다.

 

시평(時評) 위주로 되어 있는 ‘배움나무의 생각’에서는

이 땅의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비록 거창한 담론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틈틈이 이야깃거리로 삼을 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세 권의 책은 한창기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처한 현주소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 한창기 지음 / 윤구병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전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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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특집! 한창기

 

● 특집!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샘이깊은물’ 등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으로서

우리 사회와 문화에 큰 자취를 남긴 한창기의 삶과 행적을 돌아본

추모글 모음집이다.

 

한창기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 새삼 그의 행적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깨우치게 하고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운 그의 생전의 노력은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의 문화적 실험정신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생전 그와 우정을 나누었던 필자들이 모였다.
/ 강운구 외 지음 / 창비

 

- 2008 02/05 경향, 뉴스메이커 761호

 

 

ㆍ눈 밝았던 그사람 전모를 들려주다

 

한창기는 잡지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이었다.

한글만으로 정확한 문장쓰기에의 주력, 허튼 낭비가 눈곱만큼도 안 비치는 지면 안배,

우리의 시속과 전통을 아우르는 오달진 시각 등은 잡지의 성격이자 명성 자체였다.

그는 우리말과 글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 선각자였다.

 

'한창기'의 전모를 그의 마니아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이

'특집! 한창기'(강운구 외 58인/창비)이다. 그는 ‘전문직종’을 여러 개 갖고 있었다.

브리태니커사전을 손수 방문판매한 세일즈맨으로서 ‘성공신화’의 당사자,

판소리 대중화를 주무한 명창 이해자,

우리의 의식주 관행을 계승하고 실천한 바람직한 전통고수주의자,

우리말 쓰임새의 탁월한 이론가, 안목이 출중한 문화재 수집가 및 감식자,

이 땅의 일상적 문화현상 전반에 대한 비판적 칼럼니스트 등이 그것이다.

그런 명실상부한 조예가 전적으로 독학, 곧 그의 타고난 눈밝음에서 비롯됐음을 알고 나면

누구라도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이 책은 잡지와 단행본 편집체제를 뒤섞어 놓아서

그가 살아 있었다면 그 잘잘못을 한참이나 따졌을 게 분명하다.

- 김원우 소설가, 계명대 문창과 교수
- 2000-04-16,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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