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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발견의 바다로 가다 꿈을 꾼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망상은 안된다. 인간은 망상을 없애버리도록 힘써야 하며, 그 일에 기여한다는 것이 나의 욕심이자 자부심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앞다투어 신대륙에 깃발을 꽂고, 무적함대를 물리친 대영제국이 새로운 바다의 왕자가 되고, 네덜란드의 영리한 상인들이 곳곳에 항구 도시를 건설하고, 카리브해의 해적들이 잉카에서 세비야로 향하는 보물선을 탈취해 안개 속의 해골섬에 감추어두던 시대.
우리는 시속 800㎞의 여객기로 대양을 가로지르면서도 저 바다의 시대를 질투한다. 내게 그 꿈을 대신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오직 낡은 항해 지도들뿐. 나는 미완성의 지도 한 장을 품에 숨기고, 상상의 선박을 타고 세계 일주의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 허풍쟁이 의사 걸리버의 배가 닻을 올린 항구이며, ‘보물섬’의 주인공인 소년 짐 호킨스의 선술집 ‘어드미럴 벤보’가 있던 곳이다.
아니다. 조금 더 남쪽의 플리머스(Plymouth)로 가야겠다. 카리브해 정도가 아니라 세계를 목표로 한다면 역시 영국 해군성 직할의 배를 타야 한다. 무적함대를 물리친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시장으로 있는 항구 도시로 가자. “제임스 쿡은 세계의 모든 대양을 3번 항해하면서 그 이전 250년 동안의 항해가들보다 더 많은 발견을 했다. 그는 괴혈병을 이겨냈고, 정확한 항해술을 남겨주었으며, 비밀과 전설의 왕국이던 태평양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태평양으로 만들었다…. 그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역사상 그 어떤 인물보다 더 많이 세계 지도를 바꾸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 침을 튀기며 칭찬하는 이 사람을 제치고 어떤 선택이 있겠는가? 플리머스 항구를 떠난다. 시작은 너무나 여유로워 유람하는 기분까지 들 정도다. 배는 포르투갈령 마데리아 제도에 잠시 머물러 물자를 충당한 뒤에, 아프리카 서쪽으로 내려가 스페인령의 카나리아 제도에 이른다. 그때 둔중한 스페인의 갤리선이 나타나 ‘어디로’ ‘무얼 하러’ 가는지 물어본다. 갑판 위의 선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학술 탐사라는 명목 역시 염탐과 밀수를 위한 핑계임을 서로 잘 알고 있다. 실제 쿡이 그린 남아메리카 해안의 지도로 리우 데자네이로 항구를 폭파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허허실실의 대답이 나온다. “별 보러 갑니다.” 쿡의 2차 세계 일주 항해의 공식적인 목적은 ‘금성의 태양면 통과 측정’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해군성과 쿡은 그렇게 입을 맞추고 ‘알아서’ 이런저런 목적을 수행해야 했다.
카나리아 제도는 대서양을 항해하는 스페인의 거점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선 역시 여기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멕시코 만류에 몸을 싣고 서쪽으로 향했다. 청명한 태양 아래 열대 야자가 탐스럽게 열린 카리브해가 나온다.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잔혹한 스페인 전투선이 바닷길을 막고, 야비한 해적들이 좁은 섬과 섬 사이에 숨어 있다. 어서 남쪽으로 달아나는 게 낫겠다.
해안선을 따라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가던 우리는 태풍을 만나 항로를 이탈하는 바람에 오리노코강 하구 근처에서 털북숭이 남자를 만난다. “나는 영국 여왕의 충실한 신민, 이 섬의 총독이요.” 남자의 이름은 로빈슨 크루소. 요크에 정착한 독일 상인의 아들인데, 이 무인도에서 28년간 혼자 살아왔다고 한다. 아니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원주민 하나를 구해준 뒤,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인으로 삼았다고 한다. 멀리서 천둥치는 것도 아니고 독수리가 우는 것도 아닌 괴성이 들려온다. 배가 크게 휘청거리더니 보랏빛 물보라를 튕기며 하얀 괴물이 물속에서 튀어나온다. “저게 뭐죠?” 나는 분주히 갑판 위를 뛰어다니는 장교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장교는 나의 뺨을 철썩 때린다. “어서 배 밑으로 꺼져. 딕이야. 모비 딕(Moby-Dick).”
1830년대 칠레 남쪽 해안의 모하(Mocha) 섬 근처에는 거대한 알비노 고래 모하 딕(Mocha Dick)이 살았다. 허먼 멜빌은 이 하얀 고래의 전설에다 자신이 1841~42년 포경선의 선원으로 항해한 체험을 섞어 위대한 해양 소설 ‘모비 딕’을 창조해냈다.
1520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마젤란은 98일 동안 이 대양을 항해해 오늘날의 괌과 세부에 이르렀다. 마젤란은 항해 동안 너무나 평온한 날씨가 이어진 데 감탄하며 태평양(太平洋 : Mare Pacificum)이라고 이름지었다. 하지만 태평양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폭풍에 휘말려 북쪽으로 이끌려 들어간 우리의 배는 겨우 해안선을 벗어나 북서쪽으로 항로를 잡는다. 선원들은 황량한 바위투성이 섬에 누군가를 내려놓는다. “찰스 다윈이라는 미친 과학자야. 섬에서 이상한 거북이들을 잔뜩 잡아다가 배의 창고를 어지럽혀 놓는 놈이지. 원숭이가 인간의 선조라는 헛소리를 한다나?”
갈라파고스 제도. 1831~36년 비글호에 올라탄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여러 증거들을 찾아낸 땅이다. 거대한 석상들이 솟아 있는 이스터 섬에 와서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문명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싶은 마음에 무기력해지기까지 한다. 나의 이런 감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원들은 시시덕거리며 항해를 재촉한다. 고향은 아직 멀었을 텐데 뭐가 그렇게 좋을까? 그후 수백년간 유럽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지상 낙원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뉴질랜드, 하와이, 이스터 섬을 잇는 삼각형 지역의 폴리네시아인들은 비교적 밝은 색의 피부에 멋진 몸매를 하고 ‘티모도레’라는 선정적인 춤을 즐겼다.
그들을 찾아온 유럽인들에게도 매우 관대했다. 특히 성적인 면에서, 소시에테 제도의 ‘타히티(Tahiti)’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남녀들이 성적인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이상향이었고, 오랜 항해에 지친 뱃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였다. 1891년 영감을 잃어버린 유럽의 삶을 뒤로 한 채 배를 탄 화가 고갱은 ‘물고기와 과일 속에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폴리네시아의 풍광을 캔버스에 옮겼다. 1908년의 소설 ‘블루 라군(Blue Lagoon)’은 이 벌거벗은 낙원을 풋과일 같은 로맨스로 형상화했고, 브룩 실즈 주연의 영화 ‘푸른 산호초’로 그 이미지를 이어왔다. 당시 유럽에는 미지의 남방대륙(Terra australis incognita)에 대한 환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 북유럽은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난류 덕분에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남쪽에도 그와 같은 땅이 있지 않을까? 쿡 선장은 선원들의 불평에도 무모하리 만큼 남쪽 바다를 유랑한다.
“이번에는 남방대륙이 존재할 거라는 망상에 종지부를 찍으리라. 꿈을 꾼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망상은 안된다. 인간은 망상을 없애버리도록 힘써야 하며, 그 일에 기여한다는 것이 나의 욕심이자 자부심이다.”
그는 유랑 중에 쥘 베른의 소설 ‘신비의 섬’에 나오는 ‘링컨 섬’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는 모른다. ‘해저 2만리’의 잠수함 노틸러스 호와 네모 선장의 비밀 기지다.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던 영국, 프랑스 출신의 아이들인데, 해양학교의 배를 타고 있다 닻이 풀려 아이끼리 낯선 섬에 표류해버렸다고 한다. 권력과 부패로 오염된 유럽을 떠나 깨끗한 백지의 땅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꿈을 그린 쥘 베른의 ‘십오소년 표류기’의 주인공들이다. 1699년 앤틸로프 호에 타고 있던 의사 걸리버는 현재의 태즈매니아 서북쪽에서 표류하다, 소인국 ‘릴리퍼트’에서 눈을 뜬다. ‘킹콩’의 영화 제작자들은 ‘수마트라의 먼 서쪽’에 있다는 ‘해골 섬’을 찾아간다. 해골 섬에서 인도양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거대 괴물들의 본거지가 나온다.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 브롭딩나그다. 희망봉을 돌아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길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은 포르투갈 인들이지만, 여기에 항구 도시를 만들어 거점으로 삼은 것은 네덜란드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카르타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항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이 안식처 앞에서 영원히 방황하는 자가 있으니, 바그너의 오페라와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잘 알려진 ‘플라잉 더치맨’이다. 이 가련한 네덜란드인은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케이프타운의 앞 바다를 헤매야 한다. 쿡 선장은 자신의 배에 함께 탔던 작가 게오르크가 ‘마음의 항해 지도’에 대해 물어보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여러 대양을 측정했고, 그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네. 나는 지도 위에 섬과 조류와 여울, 산호 사이의 미로와 위험한 빙산도 그려야 했지. 그런데 마음의 항해지도라…. 누가 측량을 하겠나? 별도 나침반도 크로노미터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을 텐데…. 셰리 주(酒) 한 잔 더 들겠나?”
- 이명석 manaman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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