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주짱의 하늘꿈 역사방

나아가는(문화)

차마고도

Gijuzzang Dream 2008. 1. 2. 18:10

 

 

 

 

 차마고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높은 길

 

사람은 지구 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이다.

 

육안으로 관찰할 때 거의 완벽한 좌우대칭형의 외관을 가진 이 포유류는

불을 다룰 줄 알고, 선과 악을 구분하며, 화가 날 때는 공격을 하며 두려울 때는 도망가고,

선택과 분류에 뛰어나고, 대부분 오른손잡이로 살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남 험담하기를 즐기고, 일하는 것보다 섹스를 더 좋아하고,

거짓말을 중요한 심리적인 방어기제의 방법으로 쓰며, 추측을 통한 추론에도 능하다.

 

이들 중에는 풀 말린 것에 불을 붙여 그 연기를 몸 안으로 빨아들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마시면 동공이 풀리고 신경계통의 반응이 느려져 걸음이 흐트러지는

이상한 물을 제 몸 안으로 계속 들이붓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댐으로써 자기 불안을 해소하려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한사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자기 수행의 방법으로 삼는 자도 있다.

너른 풀밭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놓고

그 구멍 속으로 작은 공을 집어넣는 것에 열중하는 이들은

비열한가 하면 숭고하고, 숭고한가 하면 더없이 비열하다.

시, 음악, 동화를 짓고 그것에 빠지는가 하면,

약한 자를 찌르고 밟고 죽이고 강제로 성의 자주권을 빼앗기도 한다.

 

이들은 유전적인 것, 제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받은 DNA,

거기에 후천적인 학습과 영향으로 만들어진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많은 한숨으로 만들어진 신기루”(다이앤 애커먼)에 휘둘리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자아’라고 부른다.

‘차마고도’를 읽으며, 지구 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인 사람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차마고도(茶馬高道)는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기 위해 열린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단순히 물자만 오간 교역로가 아니다.

사람과 물자가 오간 이 길로 문화와 종교와 풍습이 이동한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높은 길’인 이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서 열린 문명교역로다.

 

중국의 윈난, 쓰촨에서 티베트 고원을 지나고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인도로 이어지는

5000㎞에 이르는 긴 길이다.

 

본디 ‘차마고도’는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먼저 만든 것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은

계곡과 설산을 넘고, 다시 거대한 강과 협곡과 고원 분지들에 흩어진 촌락들을 넘어

윈난, 쓰촨과 티베트를 잇고, 더 멀리 인도, 네팔, 서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대동맥인 차마고도를 영상에 담는다.

또한 아열대 우림지역의 풍광, 헝돤산맥의 설산, 고산협곡, 칭짱고원 등의 비경들과 함께

차마고도가 지나가는 분지에 흩어져 사는

따이족, 하니족, 와족, 라후족, 이족, 백족, 나시족, 리쑤족, 장족 등 수많은 소수 민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이들 소수민족의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의복과 종교, 전통과 생활관습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문화박물관’이다.

차마고도
KBS 인사이트아시아 차마고도 제작팀 / 예담 / 2007

차마고도로 차와 말이 오고 간 역사는 1000년에 이른다.

송나라는 숱한 이민족들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말이 필요했고,

티베트 사람들은 차를 원했다.

 

송나라는 차마 무역을 전담할 부서를 꾸리고

매차사, 매마사, 차마사, 여차사, 도대차마사 등을 만들었다.

 

“쓰촨 지역의 찻잎을 정부에서 매입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오직 서장(西藏)의 말과 교환할 때만

사용하는 전문적인 역마용 차로 지정한다.”

 

북송 때 송나라에서 사들이는 티베트의 말이

약 1만5000필에서 2만여 필에 이르고,

티베트로 넘어가는 차의 양은 해마다 1000만 근이 넘어갔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귀족과 승려 등 지배계층은 말할 것도 없고

티베트 사람들 모두 중국의 차에 중독되어 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

 

티베트의 운명을 뒤흔든 것은

바로 이 차마고도를 넘어오는 중국의 차였다.

그러나 이 멀고 험한 길을 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마방이 말들을 끌고 넘는 이 길은 목숨을 걸어야 했을 정도로 험한 생존의 길이었다.

티베트 사람에게 차와 함께 또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소금이다.

 

가축이나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염분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티베트에서는 소금이 곧 생명물질이며 보석이다.

여기서 소금을 구할 수 있는 바다는 수천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티베트 장족 자치구 망캉현에 있는 옌징(鹽井)에서 소금이 나온다.

말 그대로 옌징은 ‘소금우물’이다. 이 고원의 우물은 염수를 뿜어내는데,

이 염수를 증발시켜 얻는 소금으로 티베트 동부와 윈난성 서북부 사람들의 소금 수요를 충당한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삶을 꾸려가는 ‘꺼라’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7월이면 소금을 구하러 떠난다.

야크 등에 소금과 맞바꿀 수유를 가득 싣고 닷새 동안 걸어서 이 옌징 마을로 향한다.

이 차마고도에서도 네팔의 북서부에 있는 돌포 지역은 최후의 오지다.

네팔 곳곳에 도로가 뚫리면서 사람의 왕래가 점점 쉬워지고 있지만,

히말라야 산록 중에서 가장 오지인 이곳은 아직도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다.

 

여기 사는 티베트 사람들을 돌포파라고 부르는데,

농사지을 땅은 척박하고 그나마 좁아서

여기서 나오는 감자와 보리, 조 등은 서너 달 식량밖에 되지 못한다.

 

그래서 돌포파들은 티베트의 계절 시장에서 소금을 사서

가을 추수를 끝낸 뒤 소금을 되팔기 위해 남쪽 지방으로 떠난다.

소금을 팔아 식량과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떠나는 이들 소금 카라반의 일정은 최소한 6개월이다.

한겨울의 히말라야는 눈으로 뒤덮이기 때문에 이들이 돌아오려면

이 눈들이 녹을 때까지 히말라야 저편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아버지 혹은 남편을 소금 카라반으로 떠나보낸 가족들은 설산을 바라보며 이들을 기다린다.

 

소금 자루와 차가 든 자루, 식량과 텐트 등을 가득 짊어지고

가파른 산자락을 느릿느릿 걸어 올라가는 야크, 그리고 뒤를 따르는 돌포파들.

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고산 험로를 넘어가야 하는 이 고단한 운명을

소금 카라반 돌포파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이들은 이 수고와 노동이 삶의 원형질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들이다.

‘차마고도’를 읽으면 살아간다는 것, 욕망, 자아, 행복이 무엇인가,

그 어렴풋하던 본질이 투명하게 보인다.

 

척박한 환경에서 고단한 삶을 꾸리며 차마고도를 오가는 티베트 사람들은

뜻밖에도 밝고 행복해보인다.

그들은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오지에서 최소의 물자로 살지만

그 척박함이나 가난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다.

수난과 역경은 차라리 그들의 생명을 더 푸르게 만든다.

야크와 말들, 그리고 약간의 차와 소금만으로도 삶을 이어가고,

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거친 땅과 눈과 거센 바람에 의연하게 맞서며 원형질의 삶에 충실하다.

 

오히려 기름진 음식으로 살이 찌고 비만 때문에 성인병을 걱정하며,

잉여와 부조리 속에 던져진 문명세계 이쪽의 사람들이 늘 욕망으로 헐떡거리고,

불행과 절망과 비탄에 잠긴다.

 

문명 세계에서는 제가 기르지 않고 가꾸지 않은 것들을 먹는데,

그것들은 생산과 유통 경로는 불투명하다.

무심코 슈퍼마켓에서 산 포장육은 항생물질로 범벅되어 있고,

수입 채소들은 기준치를 초과하는 농약에 오염되어 있다.

온갖 편리와 풍요의 그늘에 가려진 악, 권력의 추악한 실상, 온갖 거짓과 파렴치함 들이

그들의 생명에서 활력을 빼앗고, 그 대신에 음습한 우울증과 환멸, 의기소침을 키운다.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번영의 미천함에 몸을 떨며

사람들은 목숨을 기대고 추구한 것들이 이토록 허술한 것이었던가, 하고 절망한다.

이 거칠고 험한 히말라야에 길을 뚫고

한 줌의 차와 소금을 싣고 오가며 삶을 꾸리는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과 의지는 굳세고,

눈빛은 형형하다. 역경은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든다.

깎아지른 협곡과 설산을 오르내리며 정신적으로 더 강해진 그들은 자아가 무엇인지

어지러운 궁리에 빠지지 않고,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신이 산란하고 삶이 시들해졌다면 이 ‘차마고도’를 읽어보라!

 

길은 첩첩이 이어지는 웅장한 산들, 까마득한 협곡, 천길 벼랑,

만년설과 눈이 녹아 흐르는 장강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펼쳐진다.

 

글로 읽고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 길을 열어 말을 주고 그 대신에 차와 소금을 구하며 삶을 이어온 사람들,

때묻지 않은 그들의 삶은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다 !
- 2007 12/11   뉴스메이커 753호 <장석주/시인 ·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