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서왕모의 생일잔치(요지연도)

Gijuzzang Dream 2007. 12. 15. 00:17

 

 

 

 

 

 

 서왕모의 생일잔치

 

 

정 병 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젖가슴처럼 봉긋한 모습의 복숭아가 있다.

그것에는 매미 한 마리가 편안하게 깃들어 있고,

나뭇가지의 받침과 그것에서 살짝 삐쳐 오른 복숭아 잎이 단아하면서 감각적으로 빚어졌다.

<청화백자진사채 복숭아형 연적>(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는

선비들이 글씨를 쓰기 위해 벼루에 물을 붓는 연적이다.

 

<청화백자진사채 복숭아형 연적> 18세기, 높이 10.8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워낙 육감적인 형상이라 그 용도를 쉽게 눈치 채지 못할 수 있겠지만,

이 복숭아는 이 세상의 과일이 아니라 신선세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반도(蟠桃)이다.

반도는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천산의 요지(瑤池) 옆에 있는 반도원(蟠桃園)에 난다.

 

천산은 서역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투루판과 우루무치 사이에 위치한다.

타클라마칸 사막 위에는 중국의 신들이 사는 곤륜산이 산맥으로 이어지고,

그 서쪽 끝에 서왕모가 사는 천산이 있다.

지금 천산의 꼭대기에는 천지라는 큰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 서왕모 사당이 건립되어 있다.

천산의 천지. 천산은 중국의 신들이 사는 곤륜산 중에 있는 산으로

서왕모에 관한 전설이 전한다.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

 

천산의 요지원에 나는 반도는 3천년에 한번 꽃이 피고 3천년에 한번 열매를 맺으며,

이를 한번이라도 먹으면 1만8천살을 산다고 하여 장수를 상징한다.

복숭아형 연적은 장수를 기원하면서 에로티시즘을 맛볼 수 있는 문방구인 것이다.  

 

신선세계의 최고의 여신인 서왕모는

자신의 생일인 3일3일에 곤륜산에 사는 신들을 요지로 초대하여 잔치를 베푼다.

생일잔치의 음식으로 내놓는 것이 바로 반도이다.

반도는 신의 잔치에 사용되는 음식인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서왕모의 초대를 받은 이는

주(周)나라의 목왕(穆王, BC 10세기 무렵 활동)이다.

그는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와서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서왕모의 생일잔치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요지연도(瑤池宴圖)라 부른다.

이러한 병풍은 왕세자 책봉을 기념하여 제작하여 궁중에 설치하였고,

청계천 광통교 다리 아래 그림 파는 가게에서도 판매하여 서민들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요지연도>  19세기, 비단에 채색, 134.2,377.6cm, 경기도박물관 소장.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된 <요지연도>는

궁 요지연도의 성대한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왼편에 곤륜산의 신들은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부력이 없어 모든 사물들이 빠진다는 약수(弱水)를 가볍게 건너고 있고,

오른편에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인간인 목왕(穆王)이 서왕모와 마주 앉아 잔치를 즐기고 있다.

 

높은 조감의 시점으로 펼쳐진 깊은 공간에 서왕모의 생일잔치를 장대하게 묘사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요지연도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에 가장 많은 신들이 등장하는 그림이다.

 

18세기 후반 정조가 화성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푼 잔치를 그린

<원행을묘정리의궤도병>부터 시작된 조감법의 행사 그림이 이 작품에서도 적극 활용되었다.

위에는 나무와 궁전, 아래에는 산들로 공간을 적절히 규제하여 장소성을 나타내고,

유난히 넓은 공간에 많은 신들과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래도 남은 공간을 유려한 선묘로 그린 구름으로 장식하였다.

이러한 장식성은 세세한 옷의 문양에까지 미칠뿐만 아니라 유려한 흐름 속에서 더욱 화려함을 빛냈다.

스펙터클한 광경부터 세밀한 표현의 장식까지 스케일과 더불어 디테일을 갖춘 작품이다.

 

 

 

 

 

 

 서왕모(西王母) 이야기

 

 

왕모의 요지에서 화려한 연회가 시작되니       (王母瑤池綺席開)

자줏빛 구름 노란 안개 퍼지며 누대를 감싼다. (紫雲黃霧鎖亭臺)

 

 

아름다운 꽃과 나무, 화려하게 장식한 누각으로 신선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들어온다.

어떤 이는 학을 타고, 또 어떤 이는 용을 타고 들어온다. 선계의 파티는 곧 시작될 것이다.

이 요지의 연회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시와 판소리 가사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그림의 소재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 요지연의 주재자가 바로 서왕모이다.

서왕모는 전국시대(BC403-221)를 전후한 시기부터 그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한대(漢代, BC202-AD220)를 거치며 여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목천자 서왕모를 만나다

 

(周)의 목왕(穆王)은 젊어서부터 신선의 도를 좋아하여

늘 전설상의 제왕, 황제(黃帝)처럼 전국을 주유하고 싶어 했다.

이에 말을 잘 다루기로 유명한 조보(造父)에게

여덟 마리 준마가 끄는 수레를 몰도록 하여 서쪽으로 달려 갔다.

그는 요지에서 서왕모를 만났고,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목왕은 너무도 즐거운 나머지 돌아가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결국 국내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빨리 돌아가 진압했다.

 

서왕모 하면 이름부터 서쪽을 주관하는 여신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서왕모와 '서역(西域)'과 관련이 없었으며,

특히 그녀의 거처인 '곤륜산' 역시 후대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대 이후로 사람들은 서왕모가 서역에 거처한다고 생각했다.

사마천(司馬遷)은 서왕모가  안식(安息, 파르티아, 오늘날의 이란지역)으로부터 수천 리 떨어진

조지(條枝)라는 곳에 산다고 하였다.

 

<한서(漢書)>는 금성군(金城郡, 오늘날의 간쑤성)에 서왕모의 석실이 있다고 하였다.

한대 무제가 서역을 경영하기 전까지 서역은 미지의 세계였다.

바다에 접한 동쪽과는 달리 서쪽에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고,

저 사막 건너에는 중국과 다른 귀한 물건들로 가득한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서쪽으로 향했던 주(周) 목왕은 서역으로 가고 싶어 했던 한대 사람들의 욕망이며,

서왕모는 바로 그 욕망이 지향했던 서역이 아니었을까?

 

 

한무제 서왕모를 만나다

 

한의 무제(武帝)는 즉위 후 명산대천과 오악(五岳)에 기도를 올리며 신선이 되기를 기원했다.

여선(女仙) 중 한 명이 무제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서왕모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서왕모는 기원전 110년 7월7일 장안(長安)의 궁전으로 내려와

며칠간 목욕재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무제와 만났다.

서왕모는 곤륜산으로부터 가져온 복숭아 일곱 개를 꺼내 네 개는 무제에게 주고,

세 개는 자신이 먹었다. 무제가 복숭아를 먹고 씨앗을 챙겨두자 서왕모는 그 이유를 물었고,

무제는 나중에 심고자 한다고 말했다.

서왕모가 이 복숭아는 3천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데다가,

중원 땅은 척박하여 심어도 자라지 못한다고 말해주었다. 

서왕모는 시녀들에게 선계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였다.

무제가 신선이 되는 비결을 묻자 서왕모의 시녀 상원부인이 "당신은 천성이 난폭하고 음탕하며

사치를 즐기고 잔혹하며 남을 해치기를 좋아하여 신선이 결코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무제는 서왕모에게 애걸하며 가르침을 따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며,

신선이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서왕모는 신선이 되는 방책과 비결을 전수하고 천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무제는 서왕모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정벌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서왕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으며 비결도 불에 타 없어져 버렸다.

 

서왕모는 장생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3천년마다 열리는 복숭아의 주인도 서왕모였으며,

예(예)의 부인 항아(姮娥)가 달 속에서 두꺼비로 변했던 이유도 서왕모의 불사약을 훔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서왕모는 한나라 사람들의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한대인들은 조상의 무덤에 서왕모를 조각하여, 사후에도 영원한 생명력을 간직하기를 기원했다.

 

한대 무덤의 화상석에 등장한 서왕모(가운데 날개 달린 신상)

 

 

심지어 전한 애제(哀帝) 건평(建平) 4년(BC 1년)에는 서왕모 광풍이 불기도 하였다.

관동(關東) 일대의 백성들이 서왕모의 비결을 전수받았다며 각지를 돌며 장안에까지 들어왔다.

이들은 서왕모에게 제사를 올렸으며 밤이 되면 횃불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

북을 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서왕모, 두 얼굴을 가진 여인

 

서왕모가 무제의 궁궐에 강림했을 때,

그녀는 황금빛 적삼을 입고 빼어난 미모와 맑고 온화한 미소를 지닌 30대 여성이었다.

 

하지만 화상석에 나타난 서왕모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풍채가 있고 날개가 달려 있으며 이따금 호랑이와 같은 맹수를 타고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호랑이의 이빨을 갖고 표범의 꼬리를 갖고있는 괴수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명계(冥界)에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심판자, 또는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선녀로

서왕모는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환상적인 장면에서는 보다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기를 희망하며,

무언가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자라면 나를 압도할 수 있는 외모를 가져햐 한다는 생각은

2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서왕모는 "천모낭낭(天母娘娘)"  혹은 "왕모낭낭(王母娘娘)" 이라 불리며

여전히 중국인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타이완을 포함하여

중국 각지의 왕모사(王母祠)에서는 장수를 축원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다.

- 이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소식, 2008년 07월호

 

 

 

 

 

 

 

 

 

 - 女人花 / 매염방(梅艶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