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며(시,서,화)

단원 김홍도의 고향은 안산? 마포?

Gijuzzang Dream 2007. 12. 4. 20:57

 

 

 

 김홍도의 고향은 어디인가? 

 

 

 

정 병 모 (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교수)

  

 

김홍도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그는 1745년 하급 무반 벼슬을 한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실은 확인되지만,

그의 고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둘로 갈린다.

 

하나는 그의 고향이 안산이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마포라는 주장이다.

  

안산이 고향이라는 설은 변영섭교수가 처음 제기하고 유천형선생이 그 주장을 보강하였다.

강세황이 쓴 「단원기(檀園記)」에

김홍도가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집에 드나들어 그 재능을 칭찬하고

그림 그리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 내용을 그 근거로 삼았다.

강세황이 관직에 나가기 전 약 30년동안 처가가 있는 안산에 살고

거기서 어린 김홍도가 그림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안산이 고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반면에 마포은 오주석에 의해 제기되었다.

김홍도가 초년에 사용한 호인 서호(西湖)가 한강인 마포 강가라는 점을 들어

마포가 김홍도의 출생지임을 암시하였다.

 

그런데 이들 주장 모두 김홍도의 출생지에 대하여 추정일 뿐, 확실한 증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와 연구 내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김홍도가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밖에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김홍도가 그림을 배운 강세황의 집이 어디냐가 중요하다.

어린 시절이라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그곳이 고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홍도, <매해파행> 비단에 옅은 채색, 71.5×37.4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진품이나 다름없는 <매해파행(賣蟹婆行,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에 적힌

강세황은 평문을 보면, 그가 안산에 살았을 가능성을 시사하여 준다.

 

"내가 일찍이 바닷가에 살 때, 아이를 업고 광주리를 인 십여 명의 젓갈 파는 아낙들이 무리를 지어

길을 가는 것을 보았다. 바닷가 하늘에 태양이 처음 떠오를 때 갈매기와 물새들이 다투어 날아오르고,

거칠고 차가운 풍물이 한 무리를 이룬 것이 또한 필묵의 밖에 있고, 바야흐로 도도히 흐르는 속세의

티끌 속에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돌아가고픈 생각이 일게 한다."

(余嘗居海畔 慣見賣穰婆行徑 負孩戴筐 十數爲群 海天初旭 鷗鷺爭飛 一段荒寒風物

又在筆墨之外 方在滾滾城塵中 閱此 尤令人有歸歟之思 豹菴)


이 그림에는 강세황이 바닷가에서 보았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다.

그 바닷가는 그의 처가가 있는 안산임에 틀림없다.  

 

  

김홍도의 작품 가운데 이 작품과 빼어 닮은 것으로

<행려풍속도병> 중 <매해파행(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있다.

 

이 작품에 적혀있는 강세황의 제발에는

광주리와 항아리에 담겨진 어물이 무엇이고,

언제 어디서 출발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성게, 새우, 소금으로 광주리와 항아리에 그득 채워 포구에서 새벽에 출발한다.

해오라기 놀라서 날고 한 번 펼쳐보니 비린내가 바람에 코를 찌르는 듯하다."

(栗蟹鰕 滿筐盈缸 曉發浦口 鷗鷺驚飛 一展看 覺腥風鼻)

 

포구의 여인들은 성게, 새우, 소금을 광주리와 항아리에 담아서 이고 가고 있다.

그들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포구를 출발해서 향하는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곳은 필시 한양(서울)일 것이다.

 

서화에 재능을 가진 문장가인 유한준(1732∼1811)이

바닷가 풍물을 그린 풍속화인 "게 파는 여인"에 대해 시로 쓴 평에서

인천과 부천 사람들은 바닷가에 나는 방게를 주어 무리를 지어

한양, 즉 서울로 가서 옷과 바꾸어 돌아온다고 했다.

 

이들 지역과 붙어있는 안산의 풍속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산은 조선시대에 서해의 어장 중 가장 우수한 지역으로,

궁중에 생선 등 어물을 진상하는 사옹원분원(司甕院分院)이 관할하는

안산어소(安山漁所)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이 고장의 여인들은 어물들을 직접 이고 한양까지 가서 내다팔기도 했다.

 

김홍도의 두 그림에 적혀 있는 강세황의 제발을 통해 볼 때,

강세황은 젊은 시절에 안산에 살고

김홍도가 어렸을 적에 그의 집을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곧 김홍도가 안산 태생임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홍도가 어린 시절 강세황에게 배웠다면,

그의 고향이 안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풍속화,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다. [단원 김홍도]

 

 

 

어린 나이에 도화서 화원이 되다

김홍도(1745~?)는 18세기 중반에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화가로, 호는 단원입니다.

그는 풍속화의 대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신선 그림이나 행사 그림을 비롯해 초상화, 산수화, 불교 그림 등 모든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솜씨를 보였습니다.

 

김홍도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예닐곱 살 때 벌써 당대의 유명 화가 강세황(1712~1791)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0대에 도화서 화원이 되었지요.
젊은 나이에 화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스승의 추천 덕분이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김홍도의 산수화는 강세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러나 김홍도가 솜씨를 가장 잘 발휘한 분야는 뭐니뭐니해도 풍속화입니다.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에는

당시 백성들의 생활상과 농업, 상업,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구수하고 익살스럽게

잘 나타나 있으며, 우리 고유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단원의 그림 중에서도 풍속화가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답니다.

또한 김홍도가 이룩한 풍속화 그리는 방식은

같은 시대의 긍재 김득신(1754~1822), 혜원 신윤복(1758~?)에게도 크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점에서 김홍도가 조선 시대에 풍속화라는 새로운 그림 영역을 개척했다고도 할 수 있지요.


김홍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삼공불환도」, 개성 만월대에서 벌어진 잔치를 그린 「기노세련계도」,

말을 타고 가다가 꾀꼬리 소리에 멈추었다는 「마상청앵도」, 『단원 풍속도첩』 들이 있습니다.

김홍도 이전에도 조선 후기 풍속화를 이끈 선구자 화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공재 윤두서(1668~1715)와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이지요.

 

윤두서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당파 싸움 때문에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평생 실학을 연구하며 여가 시간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나물캐기」와 「짚신삼기」는 모두 일하는 백성이 주인공입니다.

 

조영석도 선비 화가로서 「목기깎기」,「소젖짜기」 같은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린 그림도 도화서 화원을 지냈던 직업 화가 김홍도의 그림과 견주어어 보면

 완성도나 기술 면에서 떨어집니다.

또 김홍도의 풍속화는 그 소재가 무척 다양한데다 좀 더 현실적이며 서민적 체취가 느껴집니다.

 

윤두서나 조영석이 그린 농부나 일하는 여성은 대상으로서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김홍도의 풍속화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답니다.

 

오늘날까지 김홍도의 풍속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런 점들 때문일 듯싶습니다.


구수함이 느껴지는 김홍도의 풍속화

『단원 풍속도첩』은 김홍도가 그린 그림책 형태의 풍속화 25첩입니다.

 

이 도첩에는 「서당」, 「씨름」, 「밭갈이」, 「활쏘기」,「행상」, 「무동」, 「기와이기」,

「대장간」, 「나들이」, 「시주」, 「나루터」, 「주막」, 「고수놀이」, 「빨래터」, 「우물가」, 「잎담배썰기」, 「자리짜기」, 「타작」, 「서화 감상」, 「길쌈」, 「말징박기」, 「어장」,

「신행길」, 「들밥」, 「기로행려」등 풍속화 25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1745~1816년(영조 21~순조 16)에 그린 풍속화인데,

대부분 소탈한 조선 후기 백성들의 생활 모습과 먹고사는 모습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이 밖에도 당시 백성들이 즐기던 놀이를 소재로 삼은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김홍도의 그림을 통해 당시 백성들이 씨름이나 고누 같은 소박한 놀이를 즐겼으며,

양반들은 그림 감상이나 매사냥 같은 호사스러운 놀이를 즐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김홍도의 풍속화는 대부분 배경 설명을 생략하고, 인물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인물에 대한 묘사는 선이 거칠고 굵으며, 힘찬 붓질로

당시 백성들의 생활 감정과 한국적인 웃음을 아주 짜임새 있게 나타냈지요.

이로써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면서도 감동을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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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한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①]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사계절 출판사에 있습니다.
*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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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24 문화재청 문화재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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